마니산, 많이 들은 이름이지만 처음 오르는 산이다.
김규인과 이종국이도 총각 때 와 보고 처음 온다니 아마도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사실 교통편 때문에 이런 곳에 오기 힘들지만 명산을 찾아다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촐한 일행
내심 열 다섯명이 차량 석대에 분승하는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결혼 시즌이라 그런지 꼭 와야 할 친구들이 많이 빠졌다. 특히 김용호는 몸이 불편하여 하루 전 취소하였다. 참가인원은 여덟명, 차량은 동부와 서부지역에서 각각 출발하였다.
동부는 김규인이 차례로 집 앞까지 돌았고 서부는 오이균이 집결지로 신도림역을 택했다. 서울 강동에서는 9시에 출발하면 10시반 정도면 초지대교 까지 갈 수 있다. 서부지역은 신도림역에서 9시반에 출발하였는데 시간으로 보아선 서부가 먼저 합류지점에 도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동부지역이 약 15분 정도 빨랐다. 더구나 동부의 출발자체도 20분 정도 늦었는데도 말이다.
당초 초지대교 건너기 전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휴게소가 아니라 회 타운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도로 방향으로 나올 수 없고 뒤편 농지를 한바퀴 돌아야 했다.
초지진에서 집결
초지대교를 건너 우회전 하여 초지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만남의 장소로도 적절하지만 역사적인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현재는 대포를 설치한 돈대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상당한 병력이 주둔하고 첨사가 관장하던 곳이다. 첨사는 절도사 밑의 첨절제사의 약칭으로 절도사가 군단장급이라면 첨사는 사단장급에 해당되는 큰 진영을 관할하는 무장이다.
이곳은 구 한말 세계열강의 침략을 온 몸으로 받은 곳이다. 병인양요, 미군함 셔먼호, 운양호 사건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 병인양요는 프랑스 함대에 의해 강화도가 점령당한 사건이다. 오늘날 프랑스와 논란이 되고 있는 고서반환 문제도 당시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는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도서 1000여권중 약 300권을 약탈했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렸다. 이 때 빼앗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책인 국보급 직지심경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셔먼호 사건은 얼마 전 TV에도 소개된바 있지만 당시 빼앗긴 장수의 깃발 “帥”가 현재 미 육사박물관인가에 보관하고 있어 반환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운양호 사건은 일본에 나라를 여는 굴욕적 조약의 단초가 되었으니 참으로 비운의 유적지라 할만하다.
돈대 옆에 있는 대형 분재와 같은 소나무에는 당시 총을 맞은 자국이 남아있다는데 눈으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함허동천 매표소에서 출발
함허동천 입구에는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등산객이 몰렸다. 특히 회사나 산악회에서 온 단체 산행이 많았다.
아직 진달래가 본격적으로 피는 않았지만 산 아래서부터 피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 주 정도면 봄꽃들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함허동천은 정수사를 세운 함허대사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으로 하늘만 보이는 깊은 골짜기(洞天)란 뜻이다.
이곳에는 야영장과 공연장등이 있고 젊은 층이 캠핑을 많이 오는 곳이다. 주차료는 따로 받지 않지만 입장료는 일인당 1,500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장료를 내고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계곡 대신 능선 길을 택했다. 정상까지는 2,2킬로 미터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곳이 있어 숨 고르기를 몇 번 해야 한다. 나는 걸려온 전화를 몇 번 받느라 선두와는 많이 뒤쳐져 버렸다.
헷갈리는 정상
함허동천 뒤편의 높은 봉우리가 마니산의 정상이다. 그러나 산위에는 아무런 표시판이 없었고 우리 일행도 없었다. 나는 지도에서 분명 이곳이 정상인 줄로 알았으니 사람들이 없으니 잠시 정상이 아닌 것으로 착각했다. 더구나 참성단 밑에 있는 바위에 마니산 표지판이 있으니 더욱 그랬다.
모두 참성단을 향해 산행을 계속하다 보니 윤율현과 내가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이곳에서 참성단 까지는 700미터에 불과하지만 주로 암릉구간이다. 더구나 큰 바위가 아니라 넓적한 바위들이 방구들 마냥 쪼개진 너덜지대의 난코스다. 곳곳에는 철제난간과 사다리가 있기에 망정이니 이마져 없다면 베테랑이 아니면 산행을 하기 힘든 곳이다. 만일 비가 오거나 눈이 쌓여 있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막걸리 한잔하고 하산길을 이 코스로 택한다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서해바다가 장관이지만 옅은 연무가 끼어있어 아쉬움을 준다. 처음에는 구름사이로 섬들이 보이는가 했지만 나중에 보니 구름이 아니고 바다였다. 영종도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마치 바다위를 쾌속으로 달리는 모터보트 처럼 보였다.
참성단은 출입금지
참성단은 요새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이곳은 일년에 딱 세 번 문을 연다. 신년 해맞이 행사와 개천절, 그리고 전국체전 성화 채화 때이다.
이곳은 그동안 허물어져 있다가 이조 중기 강화유수가 중수하였다는 비석이 서 있는데 정상과 참성단 중간지점에 있다. 비문을 풀이한 표시판을 보면 참으로 명문장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글을 볼 때 마다 옛날 과거제도는 참으로 좋은 인재등용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에는 그 사람의 지식수준이나 인격, 가치관등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어 전인격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법만 달달 외워 법관이 되고 행시를 통한 공부 도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현대제도는 최상의 방법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것은 국가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학식이나 인격이 옛사람들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순신 같은 명장이나 황희같은 청렴한 인물이 태어날 수가 없다.
참성단의 진짜 목적은
이곳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이 있어 민족의 성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참성단은 태백산 장군봉의 천제단과 흡사하여 종교적인 목적으로 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좁은 소견이지만 고조선의 강역은 요동반도나 만주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태여 이곳 까지 내려와서 쌓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 이유는 고조선의 후계를 표방한 고구려나 부여의 도읍지가 요동과 송화강 유역이기 때문에 그 앞선 고조선도 당연히 그곳에 있지 않았을까. 그 기록 또한 삼국사기등 정통사서가 아니라 조선후기의 사학자가 개인적으로 쓴 기록에 의할 뿐이라니 더욱 그렇다. 그나마 참성단을 중수한 기록이 고려시대에도 있었다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더욱 종교적인 목적으로 쌓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기가 세다는 데 있다. 산행 표시판에도 그 내용이 적혀있는데 높을 수록 그 수치가 높다. 명리학자 조용헌 컬럼을 보면 기가 센 곳에서 기도를 하면 그 기도 빨이 먹히고 도 닦는 사람들은 수련이 잘 된다고 한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인근에는 각 종교의 기도도량이 다 들어와 있는 종교백화점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더욱 단군의 천제단이라는 말이 가슴에 닿지 않는다.
원점회귀 산행에서 종주산행으로 바뀌어
참성단 밑 바위에서 가져온 간식을 내어 놓는다. 김밥과 떡, 과일, 감주, 커피가 나온다. 한가지씩 가져와도 여덟종류다.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하산을 재촉하였다. 하산길은 흔히 계단등산로 일컬어지는 최단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차는 함허동천에 세워두고 왔지만 암릉길을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행 중 한사람도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친구가 없었는데 누구라도 이 구간을 오른다면 같은 생각일 것이다. 비록 택시비는 들겠지만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마니산을 오를려면 단군 등산로에서 참성단, 정상을 거쳐 함허동천이나 정수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좋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약 한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앞서 가는 친구 네명이 너무 빨리 하산하여 뒤에 따라가는 나를 포함한 네명은 온갖 구경을 다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강화읍 풍물시장에서 뒷풀이
택시를 타고 함허동천 주차장으로 되돌아가 다시 풍물시장으로 향했다. 많은 친구들이 포구의 횟집에 가자고 하였지만 오늘 회비는 교통비에 불과하여 상당한 마이너스가 예상되었다. 풍물시장에서는 횟감을 사고 초장집에 올라가서 먹는 방식이 아무래도 저럼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회에 곁들여 막걸리로 산행의 피로를 푸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때이다. 왁자지껄한 환담 속에서 친구들의 우의도 더욱 돈독해 지리라.
식사를 끝낸 시간이 거의 다섯시였다. 강화읍에서 강화대교로 나가는 도로는 완전히 마비상태라 우리는 다시 함허동천 방향으로 돌아서 초지대교를 건넜다. 곳곳에 구제역 예방을 위한 진입금지나 소독액 살포하는 모습이 보인다.
끝으로 오늘 비용은 교통비가 많이 들어 예상금액을 초과하였지만 그 사정을 아는지 변종환이 10만원을 찬조하여 그럭저럭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변종환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덧붙여 차 때문에 술도 하지 못하고 차량 정체로 고생한 김규인과 오이균에게도 감사드린다. 만사 제쳐놓고 산행에 동참한 친구들에게도 ...(끝)
첫댓글 그날 일기가 불순한 거로 기억되는데 산행은 잘했는지요? 가보고 싶은 산이었으나 업무가 있어서 참석못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