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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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세 번째 길인 '심미골 단풍길' 초입에서 만나는 '한국의 그랜드캐년' 불영사계곡의 웅울한 용트림.(사진제공=울진군청) |
낙동정맥이 배태한 경북 울진군 서면 전곡리 송리재 골포천에 서면 "물이 옷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이 옷 벗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영남의 삶과 문화를 잉태한 태백산맥과 낙동강이 어울려 영남 700리를 적시며 낙동정맥은 아마득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또 셀 수 없는 앞날까지 사람살이를 보듬고 모둠살이를 만든다.
강(江)과 내(川)는 필연적으로 길을 만든다.
길은 길로 이어져 삶의 곡절을 껴안아 기필코 마을로 닿는다.
낙동정맥 트레일은 영남사람들의 핏줄이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 구간의 시작은 봉화군에 속한 산중의 역사(驛舍) 승부역 건너편 송이재(松利峴)로 이어지는 "벼리길"부터 시작한다.
송이재는 낙동강의 지류 골포천이 만든 고개마루다.
"눈꽃축제와 백두대간 협곡열차"로 이름난 승부역은 울진사람들에게는 아쉬운 기억의 현장이다.
본디 승부역은 울진의 소유였다.
1956년 강원도 울진군 서면 전곡리에서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산중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실어 날랐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울진군 서면 전곡리에서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로 편입됐다.
지난 2013년 2월 21일에 승부역사 앞에 있는 영암선 개통 기념비가 등록문화재 제 540호로 지정되고 같은 해 4월 12일에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운행을 개시했다.
영암선 개통 기념비석은 여느 비석과는 다른 곡절을 품고 있다.
철로를 개설하면서 소중한 목숨을 버린 노동자들의 넋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영암선은 한국의 개발시대 동력원이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강원도 철암과 경북 영주를 잇는 87Km의 산업철도이다.
행정구역은 봉화군으로 편입됐지만 승부역에는 여전히 울진 전곡리와 원곡리 사람들이 켜켜이 쌓은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낙동정맥이 이룬 협곡과 강은 철로 개설의 난관이었다. 그렇다고 오늘처럼 마구잡이로 자연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영암선은 이 때문에 터널 33개소, 교량 55개소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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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번째 길인 "금강송숲길"에서 만난 서설(瑞雪)을 이고 있는 금강송/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40여년 전 이곳 승부역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지었다는 "하늘도 세평이요/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는 시비를 가슴에 담고 자갈과 흙이 서로 섞인 강둑길을 따라 왼편으로 물길을 건너 들어서면 비로소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길인 "금강송숲길" 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주변의 지세와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금강소나무의 위용이 그렇고 물살이 휘감고 도는 아마득한 절벽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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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의 첫 길인 "금강송숲길".(사진제공=울진군청) |
◆ 골포천 벼리길서 만나는 산판쟁이의 삶...금강송숲길
절벽 낮은 자리에 뱀허물처럼 가느다란 길이 흐릿하다.
조도잔(鳥道棧)이다. 조도잔은 벼랑과 벼랑을 잇는 구름사다리를 뜻한다.
울진사람들은 이를 "벼리길"이라 부른다.
골포천이 배태한 산중마을 전곡리 전내마을 사람들은 숱한 삶의 곡절을 이고 지고 골포천이 빚은 송이재 벼리길을 넘나들었다.
이 벼리길만이 승부역을 거쳐 대처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승부역에서 벼리길을 지나 전내마을까지는 7.7Km, 20리에 조금 못 미치는 거리이다.
전내(前川)마을은 평생 금강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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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맹 트레일 울진구간 첫 길인 "금강송숲길"을 배태한 골포천의 겨울/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한 뼘의 땅뙈기조차 내 것으로 갖지 못했던 사람들은 식솔들을 데불고 산중으로 들어왔다.
바람좋은 날을 잡아 산비탈에 불을 들였다. 화전을 일궜다.
메밀과 수수와 조를 가꿨다. 그러다가 금강송이 이들 화전민들의 삶을 바꾸었다.
조선왕조 궁궐을 올리기 위한 나무로 금강소나무를 실어내면서 전내마을은 "산판마을"로 모습을 바꿨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다.
"황장목(黃腸木)"으로 불리며 울진을 지키고 울진을 가꾼 금강송은 조선조 궁궐 대들보에서 일제강점기 수탈의 자원으로 마구잡이로 베어졌다.
전내마을에서 베어진 금강송은 목두쟁이들에 의해 골포천을 지나 낙동을 건너 서울로, 경향각지로 건너갔다.
금강송의 이명(異名)으로 붙박힌 ‘춘양목’도 이렇게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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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번째 길인 "금강송숲길" 골포천 변에서 팔등신의 선남선녀를 닮은 금강송 연리지(連理枝)가 똬리를 튼 채 깊은 황홀한 사랑의 나누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전내마을로 이어지는 벼리길이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금강송 연리지(連理枝)한 쌍이 사람의 발길을 멈춘다.
여느 연리지처럼 그저 손이나 잡고 있는 밋밋한 형국이 아니다.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매끈한 팔등신 금강송이 온 수족과 몸뚱아리를 똬리처럼 틀고 부비며 하늘을 받치고 있다.
오래 헤어졌다 만난 연인처럼 사랑의 몸짓이 치열하다. 사랑의 정점이다. 바라보면 괜스레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진다.
금강송 연리지 아래서 그런 사랑을 꿈꾸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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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번째 길인 "금강송숲길"의 첫 마을인 서면 전내마을에서 넓재로 이어지는 낙엽송 길.(사진제공=울진군청) |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첫 길을 품고 있는 첫 마을인 전내마을은 지금 "산촌생태마을"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전내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골포천에 산천어를 놓고 무지개송어를 키웠다.
금강송을 휘감고 도는 바람과 볕을 갈무리해 생존의 텃밭으로 변모시켰다.
전내마을에는 현재 8가구가 산다.
불을 놓아 옥토로 바꾼 산밭에는 고랭지 배추를 심고 약초를 가꾸고 토종벌을 길러 천연의 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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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두 번째 길인 "봉황의터 탐방길" 위에 자리잡은 "군조조봉형(群鳥朝奉形)"의 명당지 대봉마을로 들어서는 낙엽송 길.(사진제공=울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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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두 번째 길인 "봉황의터 탐방길"(사진제공=울진군청) | |
◆ "글 읽는 산중마을" 대봉(大鳳)서 팔경에 취하다
전내마을을 지나 폐광터를 거쳐 넓재를 넘어 진조산을 끼고 돌아 깨밭골과 대봉마을에 이르는 길 옆에는 금강송과 굴참나무와 자작나무가 제 만의 빛깔과 소리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제강점기, 넓재 부근에는 중금속광산이 성업했다.
넓재 너머 깨밭골과 대봉마을, 덕거리 사람들은 이 길을 넘나들며 광부들에게 옥수수, 메밀전 등 먹거리를 팔아 가계에 보탰다.
온 겨울 내내 순백의 껍질로 수 천 년 제자리를 지켜 온 자작나무는 그 모습만으로도 오롯이 사랑이다.
어린아이 엉덩이 살처럼 부드러운 자작나무 피부는 연인들이 꿈꾸는 연정처럼 빛나고 매끄럽다.
자작나무 잎사귀 새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햇살은 눈부시다. 자작나무 잎사귀가 일구는 바람을 맞으며 연필 금처럼 이어진 길을 걷는 일은 가히 천상에서 맛보는 희열이다.
깨밭골을 지나 만나는 대봉마을은 산중마을에서는 좀체 만나기 힘든 "글 읽는 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대봉전(大鳳田)이다. 진조산이 펼친 마을이다.
60~70년전까지만해도 대봉마을에는 서당이 있었다. 봉암 남봉호 선생이 훈장을 맡았다.
진조산이 가꾼 깨밭골, 덕거리, 대봉마을 학동들이 이 곳을 통해 세상을 깨쳤다.
진조산을 중심으로 언저리에는 대봉마을을 비롯 깨밭골(荏田谷), 진전(眞田), 대우치(大牛峠), 불근이(佛近), 너다리골, 복상터, 용소목이, 맹산터(孟山基), 심미골(深美谷) 덕거리(德巨里)마을이 제 마다 한 골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이 마을을 가꾼 봉암(鳳菴) 남봉호 선생은 대봉마을의 풍광을 "팔경(八景)"으로 호명했다.
왜 우리 선조들은 풍광 좋은 곳을 유독 팔경으로 부르는 것일까? 왜 칠경(七景)이나 구경(九景)이면 안되는가.
우리 민족은 예부터 여덟 팔(八)자를 좋아한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팔자(八字)를 택해 자연과 산수를 세계관으로 끌어들였다.
박민일교수(강원대)는 논문 ‘강원도 팔경 攷’에서 현존하는 전국의 팔경이 98곳 784경으로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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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두 번째 길인 "봉황의터 탐방길"로 들어서는 깨밭골에 삶의 보금자리를 튼 산촌. 봄을 기다리는 사래 긴 밭 너머 양지바른 곳에 뿌리내린 산중마을 집 마당에 겨울볕이 모여있다./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울진에는 송강 정철이 평생을 찬탄한 관동팔경 중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을 품고 있다.
대봉마을의 팔경은 봉암대(鳳菴臺), 탁영담(濯纓潭), 세족반(洗足磐), 은폭포(銀瀑布), 병치잠(屛峙岑), 앵소령(鶯巢嶺), 휴게정(休憩亭), 차강산(此江山)이다.
대봉마을을 찾은 풍수사가들은 최고의 명당인 "군조조봉형(群鳥朝奉形)"으로 해석한다.
"뭇 새들이 봉황을 향해서 머리를 숙여 절을 하는" 형국이다.
"독미산"에는 "천고사(天告祀)" 의식이 전해온다. 하늘에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과거에는 매년 정월에 날을 잡아 제를 올렸으나 최근에는 삼년에 한번씩 올린다.
사람들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초입에 수구당이 자리잡고 있다.
대봉마을을 지나 덕거리마을에 닿으면 "한국의 그랜드캐년"인 불영사계곡을 구절양장처럼 잇는 36호국도를 만난다.
구절양장 36호 국도는 2016년에 마무리되는 새 36호국도가 개통되면 전국 최고의 생태문화관광도로로 탈바꿈한다.
울진군은 또 하나의 생태관광 자원 하나를 보태게 되는 셈이다.
덕거리마을 앞을 지나 "의상대사와 구룡의 쟁투"가 서려있는 불영사계곡을 휘감고 흐르는 광천(光川)을 건너 통고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의 세 번째 길인 "심미골단풍길"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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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세 번째 길인 "심미골단풍길"과 네 번째 길인 "수구당탐방길"(사진제공=울진군청) |
◆ 자연풍광에 녹아있는 정겨운 산촌민속을 만나다
심미골단풍길은 봉화군 소천면과 맞닿는 남회룡 주막거리로 이어지는 7.9Km의 산중길이다.
울진군(군수 임광원)은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을 조성하면서 많은 고민을 가졌다.
길의 본래 원형질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본래 길을 되살리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산림청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을과 연접하도록 일부 구간에 데크를 설치하고 작은 내(川)를 건너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자연에 삶을 반죽처럼 버무려 인간이 자연에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했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두 번째 길이 끝나고 세 번째 길이 만나는 곳인 덕거리마을에 오면 비로소 "점방(가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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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 세 번째 길인 "심미골 단풍길"로 접어드는 서면 쌍전리 덕거리마을 심미골로 오르는 산길데크.(사진제공=울진군청) |
덕거리에는 길 위의 도반들이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펜션도 한 채 자리잡고 있다. 울진군이 산촌생태마을 조성을 위해 건립한 산촌마을 펜션(054-783-9055)이 그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한다.
산중마을 펜션이 자리가 꽉 차면 바로 인근에 위치한 통고산 휴양림을 이용할 수 있다.
통고산 휴양림은 수 천년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자연이 빚은 화강암 군락과 크고 작은 폭포, 사계절 연록과 초록, 단풍, 설경을 연출하는 갖은 활엽수 숲에 싸여 고즈늑하게 앉아 있다.
낙동정맥 트레일 울진구간의 마지막 길은 "수구탐방길"로 이름 붙여진 영양군과 울진군의 경계인 "윗삼승령"에서 온정면 조금리의 "원수목재"로 이어지는 13.5Km구간이다.
온정면은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백암온천과 신선계곡을 낀 온천마을이다.
특히 신선계곡은 크고 작은 200여개의 폭포와 화강암의 기암괴석이 빚은 소(沼)와 이무기와 용의 설화가 가득 찬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