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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최은경
아이들, 신화를 이야기 하다
○ 2006년 12월 27일 물의 날. 구름이 낮게 떠 있고 창문에 물방울이 맺힘
방학식 마치고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했다. 일훈이는 하이 파이프를 했고 영인이는 힘차게 악수를 하고 갔다. 남기는 방학 때 제천 간디학교에서 하는 캠프에 가다고 좋아했다. 여자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다며 교실에 남아 미적거렸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하면서 혜진이를 안아주었더니
“선생님 사랑해요. 편지할게요.”
라며 속삭였다. 강현이가
“저도 안아 주세요.”
해서 여자아이들과 따뜻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화분도 다 돌려보냈고, 창문도 꼭꼭 닫았고 걸레를 빨아 책상도 깨끗하게 닦았다. 대걸레를 세워두고 청소함도 정리를 했다.
‘이제 교실 문만 잠그면 올 한 해 마침표를 찍는 걸까? 잊어버린 건 없나?’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방송이 나왔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학년별로 승차하시면 됩니다.”
선생님들과 같이 양평 용문사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두물머리에서 잠시 쉬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의 한강이 되는 지점, 그래서 두물머리라 불리는 곳이다. 두 강이 만나니 강폭이 아주 넓다. 햇살이 반짝거리고 파도는 찰랑이는데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길 위의 바리」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열다섯 바리가 병든 아버지를 위해 서천서역국 동대산 약물을 뜨려고 걷던 길. 그 길 위에서 만난 누렇게 굽이치는 너른 물. 산 사람은 못 가고 죽은 영혼만이 건너갈 수 있다는 황천수가 생각났다.
지난주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 오구신 바리데기』(서정오, 현암사, 2003)를 읽고 우리 조상들이 섬긴 신들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사회과에 3-(2) 민속을 통해 본 조상들의 삶을 공부하면서부터다. 건국 신화와 동네 제사를 알아보고 조상들의 종교생활을 원시종교와 불교, 유교, 천도교, 그리스도교, 원불교, 대종교를 통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교과서를 따라 공부하다 보니 요점 정리하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 조상들의 삶에서 일과 놀이 다음으로 간절했던 부분. 아침, 저녁으로 소원을 빌던 그 정성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교과서에 신화나 전설, 종교가 담겨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교사는 이것을 어떻게 전해야 하며 어떤 배움을 실천해야 하는가? 분명 교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전승과 문화를 알려주어야 하고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넘어 삶을 성찰하고 사회적 관계를 일깨워 아이들 속에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런 배움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며칠 고민 끝에 찾은 답은 ‘이야기’로 재미있게 신화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신화의 주인공이라? 어떤 이를 만나게 할까? 진정한 신화의 모습을 갖추고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노래를 들려줄 그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자청비나 아이들과 닮은 오늘이, 소별왕과 대별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만큼 힘든 삶을 살았던 거북이와 남생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삼신할멈 이야기를 할까? 이 책 저 책 뒤지며 우리 신화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우리 신화에 나오는 인물> 조사하기를 했다.
“신들 이름이 너무 이상해요.”
“한자 이름이 많아요.”
“불교 이야기 같아요.”
“예전에 할머니 집에 가면 쌀을 넣어 둔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성주님, 성주님 하던 게 기억나요.”
“집안 곳곳에 귀신이 다 있어요. 부엌에 사는 조왕신도 있고, 화장실에 살던 측간신, 문 지키는 문왕신도 있어요.”
“동짓날 팥죽해서 집 주위에 뿌린 것도 다 액막이 하려는 거죠?”
“이사하면 팥시루떡 해서 돌리는 것도 있고, 시험 잘 보라고 엿 먹는 것도 신한테 소원을 비는 거예요.”
“와아. 많이 찾았네. 사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측간 귀신을 진짜 봤거든.”
“에게. 거짓말이죠? 귀신을 어떻게 봐요.”
“어떻게 보기는 똥통에 빠졌으니까 봤지. 우리 집 화장실이 나무판으로 되어 있었어. 똥통이 넓어서 말이야 똥 눌 때 조심해야 해. 그런데 하루는 똥 누다 힘을 너무 많이 줘서 미끄러지고 말았어. 똥통에 들어갔더니…….”
“아휴, 그만 하세요.”
아이들이 코를 싸쥐고 손사래를 친다. 내가 자기들 옆에 가기만 해도 몸서리를 치면서 저리 가라고 했다.
여세를 몰아서 『똥떡』(박지훈 그림, 이춘희 글, 언어세상, 2003)을 읽어 주었다.
“봐! 준호가 똥통에 빠져서 준호 엄마랑 할머니가 떡을 만들잖아. 그런데 측간에 귀신이 쓱 나타나지. 그림에 보이잖아.”
“맞아요. 눈이 쭉 찢어졌네. 다음 장 빨리 보여 줘요.”
뒷간 귀신이 똥떡 먹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우와. 손이 똥처럼 생겼다. 얼굴도 막 흘러내는 것 같다.”
“우우웩. 지금 3교신데 한 시간만 지나면 급식 시간인데…… 뭐예요, 선생님?”
“이거 작전이야. 작전. 어제 말 안 들었다고 선생님이 복수하는 거야. 우우욱.”
뒤집어지는 아이들.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학교 4층 화장실에도 측간귀신이 산다는 사실. 어제 내가 확인했지.”
“어떻게요?”
“너희 다 가고 나서 나 혼자 화장실에 갔는데 뒤가 으스스해서 돌아보았더니…….”
“꺄아악! 그만 해요. 머리는 왜 풀어요? 선생님이 귀신 같애.”
“그래도 똥떡으로 제사 지내고 나면 측간귀신도 사라지고 동네 사람들끼리 나눠 먹고 좋잖아?”
“아아. 그래서 음식을 나눠먹으면 복이 오는구나.”
아이들은 이렇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깨우친다. 예쁜 것들.
“신들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말이야. 종류라기보다 급이라고 해야 하나?”
“알아요. 집에 있는 가신들 말고 세상을 만든 신이나 농사신, 저승신, 옥황상제나 뭐 이런 신들 말이죠?”
역시 희교다.
“그렇지. 너희들이 아는 신화나 신들은 어떤 게 있어?”
“그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죠. 페르세포네, 제우스, 아테네…… 황금사과 이야기는 너무 많이 읽어서 다 외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나도 좋아해. 특히 페르세포네와 데메테르와 하데스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단다.”
“저도 읽었어요. 페르세포네가 하데스가 준 석류를 먹잖아요. 그래서 1년의 3분의 1은 지하세계에서 살고 나머지는 지상에서 살게 돼요.”
“맞아. 그 신화 속에 어떤 뜻이 숨겨 있단다. 단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다는 거지.”
“어휴우 어려워라. 뭐지? 하데스는 지하 세계의 왕인데…….”
평소 판타지를 즐겨 읽는 강현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음 그 속에는 말이야. 곡식 알맹이인 씨앗의 의미가 들어 있어.”
“씨앗이라고요?”
“아하! 그러니까 씨앗일 때는 어두운 지하 세계에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이 나서 땅 위로 올라오는 거죠. 그러다 다시 열매를 맺고 죽어서 땅 속으로 가게 되는 거요.”
“희교 짱이다. 희교야, 너 언제 그런 걸 다 알았어? 영재반 가도 되겠다.”
승욱이가 부러운 듯 칭찬을 한다.
“그렇지. 죽음과 다시 살아나는 것 그리고 영원히 되풀이하는 삶이 바로 신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는 거야.”
조금 숨을 돌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얘들아, 우리는 지금 여기 살고 있지. 그런데 다 살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 어디로 갈까? 지금 사는 이곳과 죽음의 세계 어디에 더 많이 있을까?”
“그야, 죽고 나서가 더 길겠죠. 사는 건 백 년이면 땡이잖아요?”
“그렇지. 그 긴 죽음의 세계와 죽음에 대해 우리는 뭘 알고 있지?”
“저는 예수님 믿으니까 천당 가서 행복하게 산다는 거 알아요.”
“나는 불교 믿으니까 부처님처럼 지내겠죠.”
“맞아. 종교는 이렇게 사는 것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사는 걸 이야기 하는 거란다. 그런 믿음을 여러 사람이 나누는 거지.”
“우리 신화에도 죽음의 신이 있단다. 죽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서 길 안내를 해 주는 신이야. 처음엔 공주로 태어났다가 버림을 받게 되지. 다시 친부모를 만나고 그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먼 여행을 해. 죽은 사람들만 간다는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있는 약물을 얻으러 간단다. 그러다 약물지기인 동수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
“다 읽어 주세요. 천천히 읽어 주세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오구신 바리데기」를 읽기 전에 칠판 가득 ‘우리 신화의 배경 지도’를 그렸다.
북쪽 위로 하늘나라(옥황)가 있고 남쪽 아래 지하국이 있고 동쪽에는 인간세상으로 불라국과 해동조선국이 있지. 서쪽 끝으로 가면 황천수가 흐르고 건너면 저승세계야. 저승세계는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서천꽃밭이고 꽃밭을 지나면 극락이 나와. 가운데가 시왕국이고 동대산 가는 길이지. 왼쪽이 바로 지옥이야.
“우와,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지도는 굉장하네요. 저승도 세 가지나 있고.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이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호진이의 말에
“『반지의 제왕』에 보면 중간계도 나오는데 우리 조상들이랑 서양 사람들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네.”
『나니아 연대기』와『반지의 제왕』을 독파한 일훈이가 한마디 한다. 지도를 보고도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바리신화를 들려 줄 생각을 하고 나서 찾아본 바리신화는 참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서 신동흔 선생의 「길 위의 바리」(『살아있는 우리 신화, 한겨레신문사, 2004)와 서정오 선생의 「오구신 바리데기」, 비룡소에서 나온 그림책 『바리공주』(김승희 글, 최정인 그림, 2006)를 놓고 한참 고민을 했다.
그림책 『바리공주』는 오방색을 사용한 점이나 무장승과 산신령을 부분적으로 그려 상상을 하도록 남겨둔 점과 바리공주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참 좋았지만, 바리의 모습이 너무 공주다워(?) 나중에 죽음의 신이 되기보다 그저 작고 여린 공주 상이 남을 것 같아 빼게 되었다.
서정오 선생님이 글머리에 쓴 <우리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 우리 신화> 중에서
이 책의 목적이 신화를 자료로 남기는 데 있지 않고 널리 알리는 데 있는 만큼, 무엇보다 이야기로서 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구전되는 이야기는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것이므로, 글쓴이도 적극 전승과 창작에 참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야기를 썼고 따라서 고치고 다듬는 일을 크게 겁내지 않았다.(5면)
는 말이 새삼 눈에 띄었다. 서사무가로 제의에서 불러지는 바리공주뿐 아니라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는 신화에 초점을 맞추니 입말을 살린 서정오 선생의 「바리데기」를 읽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오구대왕이 길대부인이 내리 딸만 낳자 마지막 칠 공주는 보지도 않고 버리라는 대목에서 여자 아이들은 열불을 냈다.
“왕자가 일곱째 태어나면 갖다버리라고 했겠어요? 정말 왜 그래요? 미리 가리박사가 딸만 낳을 거라고 예언을 했는데도 무시하더니 참 길대부인도 그래? 버리라고 버려요? 나 같으면 혼자서도 키우겠다.”
헉! 역시 당당한 예림이다. 예림이 말에 남자 아이들 괜히 두리번거린다.
오구왕을 살릴 수 있는 건 동대산 샘물인데 이걸 구해 와야 한다는 말에 여섯 공주는 아무도 못 간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듣던 아이들
“어릴 때 너무 귀하게 크면 안 돼. 자기만 알잖아.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바리데기가 아버지를 위해 길을 떠난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주인공은 늘 힘든 고난을 거친다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알아챘다. 머리 허연 할아버지와 빨래 빠는 할머니, 숯 씻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풀 뽑는 할머니에게 꽃 한 송이와 방울 하나를 얻게 되는 장면에서 상명이가
“좀 이상해요. 다른 책에는 검고 이상한 짐승이 나타나서 도와주는데 이건 없어요.”
라고 해서 바리신화는 지역마다 이야기가 다르다는 말을 해 주었다.
“바리이야기가 전국에 다 있었어요?”
“그럼.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입으로 이야기도 해 주고, 무당들이 굿을 할 때도 바리 신화를 노래하면서 신을 부른단다. 신을 노래하니까 신화지.”
“아, 그렇구나. 난 옛날이야기책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아니야. 선생님이 찾아봤더니 지금도 경기도랑 경상도 여러 곳에서 굿하는데 바리 신화를 노래한대.”
아이들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긴 줄 알았는데 지금도 노래된다니 더 놀란 것이다.
방울을 흔들어 황천수를 건너는 대목에서는 성민이가
“바리데기가 무당 같아요. 죽은 사람을 부를 때 무당이 방울을 흔들잖아요.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했다.
동수자와 결혼해서 아이 셋을 낳고 뼈살이꽃과 살살이꽃과 혼살이꽃과 약물을 얻어 오니 남편인 동수자는 하늘로 가고 없다는 대목에서는
“에고, 바리데기가 또 버림을 받네. 어쩌지?”
내가 물으니까
“그래도 바리데기는 씩씩해서 괜찮아요. 잘 살 거예요.”
“주몽에 나오는 소서노도 남편이 없지만 씩씩하게 잘 살잖아요.”
하며 여자 아이들이 응원을 했다.
“그런데 저는 다 이상해요. 바리데기처럼 아무 힘도 없는 여자 아이가 황천강도 건너고 약물도 떠 오잖아요. 아무리 부처님이나 그런 신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소연이가 심각하게 물었다.
“그러게 나중엔 나라의 반을 준다고 해도 받지 않고 죽음의 신이 되잖아요? 그것도 이상해요?”
“신은 신이지 인간이 아니잖아요?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되나요?”
아이들의 질문은 쏟아졌다.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될 수 있었을까? 죽음의 강을 건너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간 이야기는 여럿 들었지만 저승에 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이승으로 온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긴데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하지?’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희교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예수님도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 대신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신이 되지요. 부처님도 왕자였다가 도를 알게 되고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죽어서 부처가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바리데기도 자기 목숨을 버리고 저승에 다녀와 죽은 사람을 살리니까 자기도 다시 살아났으니까 신이 될 수 있었던 아닐까요?”
“바리데기처럼 아주 심한 고난을 겪고 나면 신처럼 죽음도 이겨 내니까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명이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또 어릴 때 그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여러 가지를 배우잖아요?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윤주가 소연을 보며 말했다.
“무조건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인간이 신이 되는 건 아니잖아? 무당은 신이 아니고 그런 건 미신이라고 하잖아? 책에도 원시종교라고 하고 교회나 절하고 다르잖아? 그런데 바리데기랑 예수님이랑 부처님하고 어떻게 똑같은 신이라고 생각하니?”
진희가 똑 부러지게 묻는다.
“맞아요. 굿하는 거하고 교회서 예배 보는 건 차원이 다르지. 비교가 안 돼요.”
“굿은 왠지 무섭고 살벌하고 주몽에 나오는 신녀처럼 으스스할 것 같아요.”
아이들도 나름대로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나도 신화를 알기 전에는 그저 아주 오래 된 풍속이고 할머니들만 믿는 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신화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니까 생각이 바뀌게 됐단다.”
“어떻게요?”
“음. 1학기 때 『고양이 학교』(김진경 지음, 김제홍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2001) 읽었잖아? 그 안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우리 신화에서 가져온 거래. 작가 선생님이 쓴 글을 봤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화는 아주 오래 전 이야기지. 고구려 이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신화야.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무당이나 그들이 모시는 신에 대해서 양반들이나 왕들이 싫어하게 되지. 왜냐하면, 우리나라 신들은 모두 평등하니까. 불교나 유교는 그렇지 않지. 왕이 가진 힘을 인정하고 더 키워 주니까. 게다가 일본이 들어와 동네 제사나 민속신앙을 미신으로 여기고 심지어 풍물놀이도 못 하게 했어. 그러다보니 자연히 우리는 무당이 하는 굿이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신화들을 미신이라고 아주 낮은 종교라고 배워온 거란다.”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그래, 지금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과 다른 점도 많아.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잖아. 너희들이 크면서 우리 신화에 관심을 갖고 자꾸 읽어보고 생각을 키우면 숨은 속뜻을 알게 될 거야.”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그림책『바리공주』와 <한겨레 옛이야기> 책들을 소개했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글쓰기를 하며 마지막 책읽기수업 마무리를 했다.
○ 뒷이야기 - 내가 바리데기였다면
․ 내가 바리데기였다면 엄마가 나를 찾았을 때 나는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바리데기 말고 다른 딸들도 다 같은 자녀인데 막내라는 이유로 바리데기 엄마는 자기 배로 힘들게 낳은 자식을 버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점쟁이가 딸을 일곱 낳는다고 내년에 결혼하라고 할 땐 말도 듣지 않았으면서……. 만약 바리데기가 아들이었다면 오구대왕은 바리데기를 버렸을까? 아들 일곱을 낳아 막내가 또 아들이라는 이유로 버릴 수 있었을까? 또 다른 공주들한테 어릴 때부터 사회 생활을 가르치던가 했어야지, 좋은 옷에 유모에 편안한 생활을 했으니 공주들이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게 아닌가? 그건 애초부터 바리데기 엄마, 아빠가 잘못 가르쳤다. 또 길대부인은 바리데기를 버리라고 명을 받았을 때 버리지 말라고 왕을 달래던가 몰래 도망시켜 살리던가 하지, 그렇지도 않으면서 염치없게 버린 딸을 찾아 하는 말이 “약 좀 구해 오라.” 였다.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 그런데도 바리데기는 낳아주는 은혜를 입어서 약을 구하러 간다고 했다. 내가 바리데기였다면 어릴 때 이미 흰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윤예림)
․ 날 버린 부모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쓰는 건 옳지 않다.
선생님은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성덕 바우만>이란 사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태어나면서 부모가 버려 외국으로 입양되어 자랐다고 했다. 어른이 되어 부모를 찾으러 우리나라에 왔다고 했다. 또 부모의 나라 사람을 위해 자신의 골수를 기증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서 왜 생고생을 해야 하는가? 목숨을 바쳐 가며 꼭 살려야 하는가? 바리데기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또 한 가지는 남편인 동수자가 아이들과 자신을 버렸다. 그런데도 바리데기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구대왕에게 간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린다. 바리데기는 공주로 편히 살 수도 있고 오구대왕의 대를 이어 황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음이 신이 되었을까? 잠시라도 자신이 황제가 되어 자신을 버린 부모나 자매들을 벌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으로 살아가는 게 훨씬 나아서일까? 내가 바리데기처럼 죽음의 신이 되었다면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가두거나 벌을 줄 것이다. 그런데 바리데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김승욱)
○ 한 해 동안 책 읽기에서 느낀 점
․ 난 책 읽기를 싫어한다. 만화책이면 몰라도. 엄마는 하루에 2시간씩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학교 다녀오자마자 학습지하고 씻고 학원 갔다가 와서 밥 먹고 학교 숙제하고 나면 책 읽을 시간은 없다. <주몽> 보는 시간이 제일 좋다. 하지만 동화책은 누가 읽어주는 게 생각이 잘 되고 지겹지 않다. 선생님처럼 책을 읽어 주고 그림도 그리고 뒷부분도 상상하여 쓰고 하면서 재미있고 책이 이해가 잘 된다. 하지만 5학년을 마치고 앞으로 계속 쌤이 읽어줄 수 없으니까 혼자서 책을 재미있게 읽어야겠다. 난 이 책읽기를 하면서 나의 문제점을 찾았다.
① 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떤다.
② 책을 꾸준히 읽지 못하고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보는 걸 좋아한다.
이 문제점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앞으로 노력해서 두 가지 문제점을 고쳐야겠다.
지난번 『노란 두더지』를 읽고 김종렬 쌤께 메일을 보내고 내 문제점을 고칠 방법을 알아냈다.
① 책을 무조건 빌리거나 사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반을 읽어보고 반은 빌려서 읽는다.
② 놀 때는 열심히 힘들게 놀고, 공부할 땐 오렌지 주스 한 잔 하고 시원하게 공부한다.
앞으로 이렇게 실천하며 6학년에 올라갈 것이다. (김진태)
․ 1학기에는 내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서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지루했다. 만화에 소질이 없어서 만화로 그리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심심할 때 보고 싶은 책을 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자주 읽어 주고 듣다 보니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시를 쓰라고 하셨다. 그때는 잘 쓰겠다는 생각으로 썼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시가 아니었다. 1학기 끝날 때쯤 다시 한 번 시 쓰기를 했는데 느낀 그대로를 썼다. ‘이번에도 별수 없군!’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좋은 글이 된 것이다. 했던 말을 그대로 썼는데 말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뒷이야기 상상하기와 일기쓰기가 생활화되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읽어 주시는 글을 귀기울여 들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책이 『찐찐군과 두빵두』(김양미 지음, 김중석 그림, 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그리고 「다랑리에 사는 민우」(장주식, 창비어린이 2006 겨울호 15호)가 기억이 난다. 찐찐군과 두빵두가 친해지는 것도 재미있고, 민우의 변화가 마음으로도 그려지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작년과는 다르게 책읽기 능력을 많이 길렀고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 (이상명)
․ 나는 선생님께서 책을 읽어주실 때 집중해서 들은 적도 있고, 딴 짓을 하면서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집중해서 들었건 딴 짓을 하면서 들었건 선생님께서 읽어 주시는 책은 다 재미있었다. 그중에서 『똥떡』과 「바리데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 이유는 내용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교과서로만 공부하지 않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넓혀가는 게 좋다. (정현정)
․ 나는 5학년 한 해 동안 우리 선생님과 많은 책을 읽었다. 선생님은 「엄마 몰래 탈출하기」(김종렬, 창비어린이 2006 가을호 14호) 『똥떡』 『찐찐군과 두빵두』 『청소녀 백과사전』(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낮은산, 2006) 등 정말 많은 책을 읽어 주셨다. 그중에서 어제 읽어 준 책이 「바리데기」였다. 내용은 슬펐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효행심이 느껴졌다. 뭐,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은 모두 재미있게 들었지만 어제 이야기는 우리나라 신화 이야기라서 그런지 유별나게 재미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신들을 조사하는 과제를 하면서 우리나라 신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또 선생님이 바리데기가 여행하던 곳을 그림지도를 그리며 이야기해 주셔서 더 알기 쉬웠다. 책 내용을 들으며 부모님과 효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바리데기는 어떻게 그렇게 참을성이 많고 생각이 깊을까? 나 같으면 아버지를 살릴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가 아니면 포기를 했을 텐데. 바리공주는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죽음의 신이 된 것일까? 나도 이제부터는 열심히 노력해서 삶을 살아볼 생각이다. (김혜진)
○ 내가 생각한 바리데기 그리기
<길 떠나는 바리데기-박소연> <죽음의 신 바리데기-윤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