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라 (요한일서 5장 1-15절)
----------------------------------------------------------------------------------------
우리 인생에서 제일 좋았던 시절, 소위 나만의 ‘리즈 시절’을 꼽으라면 아마도 꿈 많은 학창시절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렇지만 그 좋은 시기로 돌아가더라도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 더군다나 시험 보는 것을 좋아 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정해진 시험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수업 도중에 즉석에서 묻는 질문도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실 겁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매주 예배드린 후에 예배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설교의 내용에 대해 객관식 50문항, 그리고 봉사하고 교제한 내용에 대해 주관식 10문항씩 시험을 보고, 거기다가 점수까지 매겨 공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숨이 꽉 막히시죠. 주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신앙생활 하라고 말씀 하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들이 시원한 장소에서 평안하게 은혜를 사모하며 앉아 계시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도 아무 부담 없이 말씀 듣는데 집중하면 “큰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오후 예배 시간에 사도행전을 말씀 드리면서,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좋은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서 훌륭한 바울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씀 드리면서, 우리 교회도 어른부터라도 성경 요절 한 50~100개 암송에 도전해서, 그걸 바탕으로 기도도 하고 아이들 교육시키는 밑거름으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 분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눈빛에서도 “아닙니다. 하지 마시죠”라는 단호함을 볼 수 있었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해 놓고 뭘 하는 것, 그리고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저도 싫어합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시험 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설교나 강의 중에 질문하는 것도 최소화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평안하게 들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을 빌어 오늘 말씀과 관련되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아주 간단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이죠?” “아 그런 걸 왜 물어 보세요”라고 답하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몰라서 구체적으로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묻고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 궁금하여,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라고 답변하려고 생각하셨다면 거의 정답이 됩니다. 이렇게 답변했던 사람이 나사로의 동생이요 마리아의 언니였던 마르다 였습니다. 여기에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면 완벽한 정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답변을 한 사람이 베드로 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르다와 베드로의 고백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황당한 사건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절대로 믿지 못하는 황당한 경우는 이런 것들입니다.
제일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이신데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서 오셨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죄를 짊어지려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는데도 무덤에서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면서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말로만 전해들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 관련된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당연히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요한 일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들 중에 특히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습니다. 요한 일서는, 예수님께서는 곧 하나님이시고 분명하게 태초 이전부터 계셨던(존재하셨던) 무한하신 분이신데, 유한한 육체를 입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특별히 오늘 봉독한 요한일서 5장에서는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후속탄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부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세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잇는데, 첫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것, 둘째, 믿음을 자라나게(성장시켜) 하여 영생으로 나아가는 것, 셋째, 믿음으로 담대하게 구하고 취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첫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 없으셨다면 생성되지도 않았을 단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했을 때도 베드로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고백하도록 마음을 움직이고 입을 열어 주셨습니다. 전적인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음이 우리 마음 안에서 생성되고, 분출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에 심겨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된 모든 상황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짜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믿음이 곧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 합니다. 내가 현재 믿는 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건더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은 지극히 객관적이어서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런 객관적인 믿음이 우리 마음에 침투해서 각자의 삶의 모습과 여건과 생각과 행동을 제어합니다. 각자 다른 형태의 감동과 고백을 이끌어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이 나타나도록 전부 개별적인 루트로 우리에게 심겨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각자가 다 다른 믿음의 경로를 통해 이 자리에 와 계시는 겁니다. 길은 다르게 오셨지만 예수님 따라서 한 방향으로 오다보니 이렇게 예배당이라는 한 곳에 모여서 신앙생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주신 믿음인데도, 그 믿음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물을 받았으면 풀어보고, 감상하고, 집안에 장식도 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선물을 받자마자 방구석에 밀쳐놓든지, 창고에 깊숙이 숨겨 놓든지, 아니면 선물 보따리를 길가에 버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선물은 보라고 주는 것이고, 자랑하고 사용하라고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역할이 믿음을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주임시켜 주시는 것이었다면, 우리 각자는 믿음이라는 이 강력한 수단을 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는 쓰지 않고 내버려 두는 믿음,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 믿음, 거짓 믿음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충고합니다.
믿음을 어디에서, 무엇하는데 사용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합니다. 이어서 4절에서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라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믿음을 뿜어내고, 믿음을 마음대로 휘둘러서 거침없이 세상을 이겨나가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이 세상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고 정복해야할 높은 고지입니다. 세상 자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바로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호락호락 하지 않는 세상을 이겨낼 힘이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토록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5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들이 내 아들인데, 내 딸들인데, 너희들이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겠느냐! 세상이 주는 것이 무엇이냐? 패배의식을 갖게 하고, 매사에 무기력하게 만들고, 나태하고 게으름에 빠지게 하고, 교만과 욕심을 채우게 만들고, 불화와 분쟁을 일으키고, 비판과 판단을 일삼고, 얕잡아보고 무시하게 만들고, 돈, 돈, 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지 않느냐? 너희가 그것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선물로 준 믿음은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을 강력한 권세가 있다. 무한으로 사용해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라. 너희가 승리할 때마다 나는 너희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니라”
우리는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믿음을 주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나는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한 번쯤 이런 고백을 하신 분이라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출생한 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나에게 주신 믿음이라는 방패와 창을 가지고 세상과 대항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나와 짝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정복하고 무너트려야 하는 대상입니다. 세상을 조종하는 사탄과는 그 어떤 거래도 하여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선언하십시오. “나는 오직 오직 예수님이 내게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고 승리 하였노라” 당당히 선언하시고, 믿음의 능력과 권세로 날마다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둘째, 믿음을 자라나게 하여 영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생 이라는 것은, 믿는 자에게(예수님을 영접 하는자, 예수님과 연합 하는 자) 새로운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0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증거 있다”고 했는데, 그 증거는 11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 인데, 이 생명은 한 번 죽었다가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몸은 다 썩어지고 사라지겠지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 합니다. 우리는 죽을 번 하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어요. 죄 때문에 사망선고를 받고 완전하게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살려 주셨어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한정 된 시간을 살 수 있도록 살려 놓은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살려놓으셨습니다. 영생한다, 영원토록 살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 속에서는 그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데 엄청난 무기가 되고, 죽어서는 영생 얻는 생명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시간을 지배하고, 나아가서 죽어서 까지 이런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 이라는 선물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하고, 감사한 선물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썼습니다. 요한 장로(사도요한)가 요한 일서를 쓴 이유가 이 편지을 읽는 믿는 자들 모두에게는“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영생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 주려고 쓴 편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영생의 소망을 붙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가운데 살아가도록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영생이 웬 말인가? 영생보다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고달픈 내 삶의 현장이 더 급합니다. 하루 동안 스트레스 받고 일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데 영생이라는 아주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영생을 주는 새 생명의 약속을 붙잡고 살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빡빡합니다. 저도 경험자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겪고 있는 삶의 고단함 때문에 영생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겠다는 것을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가 안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육신이 지치고 힘들 때 시원한 물로 개운하게 몸을 씻고, 잠 푹 자는 게 제일이죠.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샤워를 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주님! 주님! 주님!.... 이 말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주님!, 기뻐도 주님!, 배불러도 주님!, 배고파도 주님!, 덥고 짜증나도 주님!, 화가 치밀어 올라도 주님!, 일어나자마자 주님! 잠자면서 잠꼬대 까지도 주님!....온통 내 삶에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부르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왜 입술에서 주님을 달고 살아야 합니까?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주님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붙잡으면 지금 당장 세상이 끝이 나고 심판의 날이 온다하여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만 붙들고 살아간다면 내가 지금 당장 죽은 목숨이 된다고 하여도 즉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영생의 나라로 데려갈 것이라고 약속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주~~~님! 소리밖에 안 나옵니다. 우리의 대책이 주님뿐이기에, 우리의 문제들의 해결사가 주님뿐이기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를 때마다 우리의 믿음은 견고해지고 서서히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내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만큼 내 안에 심겨진 영생의 씨앗도 그만큼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 생명과 영생이 있고, 내 안에 새 생명과 영생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십시오. 우리 모두가 영생의 소망가운데 이 땅에서의 고난과 괴로움들을 다 이겨내시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셋째,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모든 것을 구하고 취하여야 합니다.
14, 15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기도를 통하여 구하고 바라는 것을 다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이 말씀뿐만 아니라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요한복음 16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마가복음 11장 24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러 구절에서 보듯이,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그대로 되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일관된 말씀이셨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응답 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분명하게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그(예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이라는 단서가 있고, 마가복음 11장 23절에도, “~ 이루어질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를 야고보서 4장 2, 3절에서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기도가 응답 되지 않는 가장 많은 이유는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아무런 응답도 없는 것입니다. 두드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겠습니까? 그 다음으로는 기도를 하긴 하는데 의심과 욕심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제가 한 두 가지 덧붙이자면, 남을 의식하는 기도를 하기 때문에(외식 적으로 남이 보는 데서만), 그리고 너무 짧고 무성의 하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되는 것도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이 입만 움직이는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그대로 되는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주는 역동성은 기도에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성장에는 기도가 역사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더라”(행 2:42)라는 구절이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날마다 수가 더하여 지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이 박해를 받았을 때도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마쳤더니 땅이 진동하고 모인 모든 무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는 기록(행4:31)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간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단 하나 기도의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계속 선포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지셔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의 시간에 자리가 너무나도 비워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누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기도하는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계획하지도 않으시고, 계획하신 일에 대해사도 역사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기도하라고 시기를 가르쳐 주시고, 기도의 음성을 기다리시는 주님의 뜻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14절에 기도하는 사람은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담대함은 ‘확신 한다’는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바탕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목이 터져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하는데 동참하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이 뜻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과 00교회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려고 하는 참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뜻, 주님이 주시는 사명,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아서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그대로 다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는 그날까지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심을 다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졌고, 선물을 받은 모두가 믿음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해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고, 믿음을 자라나게 하여 영생으로 나아가고, 믿음의 담대함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는 삶의 실천 항목들도 마음에 받았습니다. 믿음, 영생, 기도,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존귀한 자녀로서,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의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게 하시고, 영생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도록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0814 주일설교.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장 13-21절).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