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께서 개국하신 처음에 도평의사사를 설치하여 일국의 정치를 도맡게 하였는데 이후에 의정부로 고쳤찌만 그 임무는 초기와 같았다. 갑오년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대신이 작은일에 친히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며 군사와 관련되는 중대한 일만 의정부 회의에서 아뢰게 하고 그외에는 육조로 하여금 각기 맡은 자가 직접 아뢰게 하소서"하였다. 이 이후로 일의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육조에 귀속되고, 의정부에서는 관계하지 않게 되어 , 의정부에서 아뢰는 것은 오직 사형수의 논결 뿐이었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이 재상에게 위임하는 뜻과 어긋남이 있었다. …(중략)…6조는 각기 맡은바 직무를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고, 의정부는 가부를 헤아린 뒤에 (왕에게) 아뢴 뒤에 (왕의) 분부를 받아 다시 6조에 내려 보내어 시행하라. 다만 이조와 병조의 관리제수나 병조의 군사업무,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판결은 곧 해당 조에서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고 곧바로 의정부에 보고하라. 만약 타당하지 않으면 의정부가 심의 논박하고 다시 아뢰어 시행하라.
읽기:전지의정부왈 상왕유충 범소조치실위대신 의의시행 금여수명계통 군국서무병개청단 실복조종지구 자금형조사수외 범궐서무 육조각이기직직계(<<세조실록>>, 권2. 1년 8월 경술)
해석 : 상왕(단종)이 어려서 무릇 조치하는 바는 모두 대신에게 위임하여 헤아려 시행하였다. 지금 내(세조)가 명을 받아 왕통을 계승하여 군국 서무를 아울러 모두 처리하며 조종의 옛 제도를 모두 복구한다. 지금부터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모든 서무는 6조가 각각 그 직무를 담당하여 직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