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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ETEN "EL CAMINO" POR FAVOR NO TIRAR BASURAS
마을 복판, 산타 마리아 광장 골목에 있는 알베르게(Santa Maria)로 갔다.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젊은 수사가 매직 펜으로 쓴 우리글'환영합니다'에 스페인어 발음표기를 한 종이를
내밀며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뜻을 잊어버렸는가 아니면 한국 영감과 부드러운 말길 트려고 짐짓 그런 것인가.
웰컴, 비엔베니도(welcome/bienvenido)라 했더니 서투른 발음으로 '환영합니다'.
이래서 모두 함께 웃는 분위기는 되었으나 저층(1층) 침대가 만원이란다.
오후 4시 남짓된, 아직 이른 시각인데 때이른 더위 탓인가.
드디어 2층으로 올라가게 되나 싶어 약간 주저되었을 뿐인데 눈치 빠른 수녀가 저층
어느 분에게 양해를 구해보겠단다.
부담되는 일이라 했더니 다른 알베르게를 알아봐 주겠다고.
그 일도 역시 부담되어 내가 직접 나섰다.
그냥 지나쳤던 마을 초입의 산타 클라라(Santa Clara)알베르게에서 묵게 된 연유다.
작은 방에 들어있는 단층 침대 4개의 주인공은 3명의 스페인 자전거 순례자와 나.
모스텔라레스 고개넘을 때 만나 베가의 같은 집에 묵었던 세뇨리타와도 재회했다.
벌써 힘겨워지는지 어둑해질 때 도착한 그녀는 반색 반 경악 반이었다.
전날 그리도 많이 걷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 40km가 넘는 사아군까지 가려 한다니까.
4월 18일 아침 7시 5분, 산타 클라라 알베르게의 육중한 문을 열었다.
아직 밝지 않은 시각에 마을을 빠져나와 카리온 강(rio Carrion)을 건넜다.
16세기작품이라는 다리를 건너 지금은 화려한 호텔과 박물관으로 변신한 산 소일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Zoilo)도 지났다.
카미노는 <Sahagun 41. Santiago 455.>라 쓰인 하얀 이정표를 지나 N-120도로를
가로지른 후 시골 농로가 된 부도로로 이어진다.(산티아고는 잘못 표기된 거리다)
가이드북과 이정표들이 제각각이라 해도 사아군이 반환점을 벗어나는 것 만은 분명
하므로 사아군에 도착하는 오늘이 고무적인 날임에 틀림 없다.
좁은 포장도로에서 2차선으로 확장됐다가 다시 좁아지거나 비포장으로 바뀌는 곧은
들길이 다음 마을 칼사디야 데 라 케사 까지 장장 17km나 계속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다음으로 넓은 땅이라 하나 마을 사이가 참으로 먼 지역이다.
그래도, 이 길은 한 때 로마인들이 보르도(Bordeaux) 까지 운송로로 사용한 비아
아끼타나(Via Aquitana)로 오늘날 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순례자의 길(Calzada de
los Peregrinos)이란다.
파란 들판이라 해도 지루할 수 밖에 없는 길에서 쉼터 오스피탈레호 샘(Fuente del
Hospitalejo)은 반갑기 그지없으나 쓰레기가 볼썽사납게 널려 있다.
산타 마리아 베네비베레 수도원(Abadia SantaMaria de Benevivere) 유적(ruinas)
을 지나 순례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쉼터인데.
이 길을 순례자 외에 누가 걷는가.
그러니까, 순례자의 짓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에게 고행의 의미, 영성훈련의 참 뜻은 무엇인가.
백두대간은 대간 사랑을 표방하고 산을 타는 사람들 외에는 애써 갈 사람이 없다.
대간이 쓰레기장으로 변했다면 누구의 짓이겠는가.
공자의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논어)은 수시로 나를 깨우쳐주는 금언이다.
근본을 확립하지 않고 고행만 하면 영성이 수련되는가.
<RESPETEN "EL CAMINO" POR FAVOR NO TIRAR BASURAS
RESPECT "THE CAMINO" PLEASE DON'T LITTER>
(카미노를 소중히 합시다.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십시오)
결국, 얼마쯤 더 가서 있는 카나다 레알 레오네사(Canada Real Leonesa) 쉼터에
수치스런 호소판이 등장하고 말았다.
스페인을 제주도쯤으로 생각하는가
서북의 레온쪽 하늘이 심상치 않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기(雨期)라는 4월, 보름이나 참아준 하늘에 무슨 원망을 하랴.
그러나 영물 개미들의 역사(役事)에 안심했는데 과연 몰려오던 먹구름이 사라졌다.
카미노에 들어선 이후 신문, 방송 등 일체의 News 매체와 절교한 나는 이른 아침에
근면한 개미들로부터 그날의 일기예보를 받고 있다.
개미에 의존하다니 만물의 영장 자리를 그들에게 물려줘야 하는가.
샌들의 단점은 비포장 자갈길에서 드러난다.
작은 돌멩이들이 무시로 발바닥으로 숨어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수시로 벗고 털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지혜를 마침내 터득했다.
바짓부리로 샌들 등을 덮어버리도록 바지를 내려입는 것.
지루한 아끼타나 루트 자갈길이 가르쳐준 지혜에 쾌재를 부르며 걷는데 뒤에서 들려
온 젊은 목소리 "안녕하세요"
반가운 주인공은 당연히 한국 청년.
내 배낭에 달린 타월에는 한글로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라 씌어있다.
두개를 얻었는데 하나는 아타푸에르카 알베르게에 놓고 왔기 때문에 남은 하나다.
이 타월을 보고 한국인 임을 알았다는 청년은 동행하는 잠시 동안에 내가 묻지 않은
이야기들을 자랑삼아(?) 많이 했다.
작년 7월에 이어 두번째 왔다는 것.
그 때, 힘에 겨워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버스를 탔기 때문에 그 구간을 걷기 위하여
다시 왔다는 청년.
한참 일할 나이인 그는 돈과 시간이 얼마나 많기에 스페인을 마치 제주도쯤 되는 듯
가볍게 왕래하고 있을까.
백두대간은 고사하고 초등학생도 아는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모르는 그,
한해 동안에 체력단련을 얼마나 했기에 다시 왔으며 도중에 또 버스를 이용했다니?
걸음이 빠르다면서 앞서 갔으나 칼사디아 데 라 케사에서 휴식중인 것을 보았을 뿐
이후 카미노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
가톨릭신도가 아니며 건강도 별로인 그는 카미노의 무엇에 홀렸기에 먼 스페인까지
거듭 온 것일까.
그의 인사말 "안녕하세요"가 무료한 나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했다.
"안녕하세요" 또는 "안녕하십니까"는 윗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문안 인사말이다.
스페인어 Como estas?, Que tal?(영어 How are you?)과 달리 우리 말에는 특유의
'하오체'(예사높임)와 '합쇼체'(아주높임)가 있다.
즉, 하오체의 어미 '세요'가 인칭대명사 "당신, 그대, 이분, 저분" 등에 사용하는 표현
이라면 '십니까'는 역시 인칭대명사 "어른, 어르신" 등에 사용하는 합쇼체다.
인사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기는 하나 이왕 하는 인사라면 가려서 하는 예의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수치상으로 '십니까'는 '세요'보다 3분의 1의 에너지가 더 소모되며 '세요'는 '십니까'
의 3분의 2의 에너지만 소모된다.
즉, 하루에 합쇼체 인사 100 번을 한다면 '하오체'로는 120번의 인사를 하는 꼴이다.
그러나 에너지 20%초과 소모에 비해 훨씬 많은 엔도르핀(endorphin)이 생성된다면
합쇼체가 결코 손해보는 인사는 아니지 않은가.
템플라리오스에서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일부 습지 외에는 개간이 거의 완료된 광활한 들녘이지만 지루한줄 모르고 칼사디야
데 라 케사(Calzadilla de la Cueza)에 도착했다.
전적으로 청년이 점화시켜 준 인사말 소고(小考) 덕이다.
(두번째 때는 생각거리를 미쳐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무척 지루했다)
이 작은 농가 마을을 지난 카미노는 약 6km를 취향 따라 가게 갈린다.
N-120도로와 짝해 가며 산타 마리아 데 라스 티엔다스 수도원(Santa Maria de las
Tiendas) 유적을 지나 레디고스로 가는 길과 케사 강 따라 곧바로 가는 길로.
레디고스(Ledigos) 마을을 통과한 후 다시 N-120도로와 나란히 가는 카미노는 곧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마을을 지난다.
비록 인구 80여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 이름이 암시하듯이 중세의 한 때는 템플
기사단의 근거지였으며 역사적 연관이 깊은 마을이다.
어떤 까닭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템플기사단 최후의 단장인 하께스 데 몰라이
(Jacques de Molay)가 1314년에 분형(焚刑)에 처해지기도 한 곳이란다.
그는 왜 장작더미 위에서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까.(burnt at the stake)
종교재판은 1.184년에 이태리 베로나 공의회에서 171대 교황 루치오(Lucius:1181~
1185) 3세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후, 종교재판에서 이단자라는 죄목으로 얼마나 많은 반대자들이 분형을 당했던가.
갈릴레이가 죽임을 면하기 위해 신념(지동설)을 철회하고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독백했다는 일화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단자 응징을 표방한 종교재판의 가혹상을 그린 것이니까.
문득, '바비도'라는 제목의 김성한의 단편소설이 머리를 치밀었다.
월간 사상계사(지금은 폐간)가 제정한 동인문학상 제1회(1956년) 수상작이다.
일개 가난한 봉제공이 영역 성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분형당한다.
태자의 온갖 회유에도 끝내 양심의 명을 따라가는 주인공을 통해 15c타락한 교회의
횡포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념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인간을 고발한다.
피고의 승률 제로인 재판, 개정하기 전에 이미 확정된 유죄, 재판은 요식행위에 불과
했으며 우리가 체험한 공산주의의 인민재판은 종교재판의 후신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 위에 세워진 무한 사랑의 종교가 반성서적 '교의'의 칼로 인간을 마구
살해한 최악의 반그리스도 행위였다.
그러므로, 중세 기독교사의 일부는 하느님의 대리자를 빙자한 악마들의 전횡사다.
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6세도 "역사가 이뤄지는 동안 기독교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한 것이 사실" 이라고 시인했다.
"오랜 역사에 걸쳐 때때로 폭력을 사용한 데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과도 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악독한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싶었다.
고백하건대, 내가 유명하다는 교회와 시설물들에 짐짓 무관심한 것은 당시에 건립된
으리으리한 교회에 대한 혐오감에서 기인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다름 아닌 문맹화, 우민화 정책의 산실들이었으니까.
반(半)고개를 넘어선 카미노 프랑세스
돌이 지천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돌이 귀한 것은 습지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인가.
비아 아끼타나를 만들 때 수천톤의 석재를 딴 곳에서 실어왔다는데 여기 산 페드로
교회(Iglesia de San Pedro) 역시 붉은 벽돌로 지은 것이 특별하다.
인근에 건축용으로 쓸만한 돌이 없다는 뜻이다.
콘데스~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의 27km에는 중간마을이 2개 밖에 없으며
그나마 작은 마을들이라 순례자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구역이다.
그래도,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는 카미노 프랑세스의 중간지점이라는데
페레그리노스에게는 현실적 의미가 있는 마을이다.
마침내 반고개를 넘어선 것이다.
아침부터 앞을 다투듯 하던 독일 중년남은 양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코리안 스트롱
맨'이라는 말로 작별하고 마을 알베르게를 찾아감으로서 다시 나홀로가 되었다.
널따란 공간을 가진 알베르게 로스 템플라리오스의 인력도 적지 않았으나 이겨냈다.
늙은 나그네의 몸까지 무겁게 하려는 중세 종교재판의 우울한 상념을 털고 일어섰다.
템플라리오스 개울(arroyo de Templarios)을 건너 밀밭으로 둘러싸인 모라티노스
(Moratinos)를 통과했다.
작은 마을의 뒷동산에 있는 토굴들이 궁금해 누군가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고 쉼터에
앉아 있었으나 유령마을인가.
알베르게는 아무런 안내 없이 닫혀있고 마을 규모에 비해 제법 큰 교회(Parroquia
D Santo Tomas Apostol) 역시 텅 비어있고.
나 외에는 단 한 사람이 가고 있을 뿐인 꿈틀거리는 듯한 긴 밀밭 길가에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가 있다.
옛 템플기사단과 관련이 깊은 마을이란다.
모두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 간의 거리가 17km에 이르는 오전에 비해 지루함이 없어
피로감도 덜하는가.
세끼요 강(rio Sequillo)을 건너 팔렌시아 주와 레온 주(Provencia de Ldon) 주계를
넘는데 속도감이 나는 듯 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방의 9개 주(州)중 하나인 레온 주는 곧(4월 20일) 통과하게
될 레온이 주도이며 카미노 프랑세스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주란다.
사아군이 한 눈에 들어옴으로서 40km의 마감도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내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다음 달 말경에 다시 방문하게 될 마을이다.
마드리드~사아군의 마드리드 길을 역으로 걸어가서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니까.
(이 계획은 차질 없이 완료되었다)
발데라두에이 강(rio Valderaduey) 앞에서 사아군에 집입하는 길이 둘로 나뉜다.
N-120도로 따라 직진하는 길과 도로를 가로질러 강 따라 에르미타 데 라 비르헨 델
푸엔테(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를 거쳐가는 두 길이다.
(처음에는 후자를 택했고 두번째 때는 전자를 택했다)
마을 중심지에 있는 지자체 알베르게(Cluny)에 도착했을 때는 약간 지친 상태였다.
늙은이가 케사에서 먹은 2.5e짜리 점심으로 40km를 걸어왔으니 그런 것이라고?
아니다. 국내에서도 늘 해온, 체질화 된 방식이다.
아마, 연일 과도한 강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거리로는 수퍼에서 빵과 주스, 맥주, 딸기 등 4e치를 샀다.
이 정도면 성찬이 된다.
그러니까, 이 하루의 지불은 숙박비 4e를 포함해 10.5e가 전부다.
구두쇠처럼 의도적으로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돈쓸 일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에 돈쓰러 온 것이 아니므로 전대의 지퍼 여는 빈도가
적은 것이 정상이다.
그보다 알베르게 대문에 붙은 대형 광고가 늙은이 기를 죽이고 말았다.
'시고구 헨로'(四國遍路/The Shikoku Pilgrimage) 안내판이다.
일본 시고구 섬의 88개 사찰 일주 1.200km 길을 순례하러 오라는 홍보판 아닌가.
이같은 광고판을 아무나, 아무데나 붙일 수 있는가.
일본 카미노 순례자는 우리나라의 반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그들은 도처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학인 순례자협회와 깊이 관계하고 있으며 순례길의 마을과도 결연관계에 있다.
더 나아가 이같은 광고판의 등장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무엇하고 있는가.
카미노가 도저히 당할 수 없는 훌륭한 길들을 두고도 자부심은 커녕 길 사대주의에
몰입되어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 일본은 순례길에서 마저도 내실을 추구하고 있으니 기죽을 수 밖에.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을 때 한국 남자를 만났다.
미국 교포 청년에 이어 두번째다.
환갑을 넘긴(1950년생) 그는 3인 일행으로 왔으나 체력이 달려 처지게 되었단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한국인이 얼마간 교통승용구를 이용하는데 낙오된 느낌을 극복
하고 끝까지 걸어가려는 그가 어찌나 가상한지 그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늙은이도 하고 있는 당연한 일임에도 웬 호들갑이냐고?
한국인의 카미노 순례 실태에서는 아주 돋보이는 사람인데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초면인데도 격의없이 대화하며 내일 하루는 더디더라도 그와 동행하리라 맘먹었다.
이미 절반을 넘어섰으며 여유를 좀 부려도 당초의 예상 5주를 깨고 1주나 단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으니까. <계 속>
아침 7시가 넘었는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는 산 소일로 수도원을
지남으로서 멀어져 간다.(위)
<Sahagun 41, Santiago 455>는 없느니만 못한 안내판이다.(아래)
제각각인 자료를 종합해 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중간지점은 레디고스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의 어느 곳이 되는데 사아군이 중간지점도 되지 못하는 안내판이니까.
한 걸음이 여금인데 저리 큰 오차라면 안내의 기능 상실을 넘어서 실망을 주니까.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 칼사디아 데 라 케사는 길고 긴 직선로다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길이지만 비아 아끼타나, 칼사다 로마나, 칼사다 데 로스 페레그리노스 등으로
불리는 훌륭한 길로 알려져 있다.(위/아래)
그러나 순례자를 위한 쉼터(오스피탈레호)가 볼썽사나운 쓰레기장으로 변하여(아래1) 마침내 수치스러운
호소간판이 등장했다(얼마쯤 더 가서 있는 쉼터 '카나다 레알 레오네사'에)
<RESPETEN "EL CAMINO" POR FAVOR NO TIRAR BASURAS
RESPECT "THE CAMINO" PLEASE DON'T LITTER>
(카미노를 소중히 합시다.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십시오)
(강우 여부를 100% 맞추는 개미들의 역사/위)
(개간에서 제외된 습지/위)
칼사디야 데 라 케사 ~ 레디고스(위)와 레디고스 ~ 테라디요스 데 템플라리오스(아래)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위)는 페레그리노스에게 중요한 마을이다.
카미노 프랑세스에서 반고개를 넘는 지점이니까.
그러나, 나를 무거운 상념에 빠지게 한 마을이다.
1.314년에 이 마을 어느 지점이 분형장이었을까.
템플기사단 최후의 단장 하께스 데 몰라이가 분형당했다니까.(burnt at the stake)
그의 죄목은 무엇이었을까.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 모라티노스(아래)
(저 토굴의 용도는?/위)
모라티노스 ~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위)
팔렌시아 주를 뒤로 하고 레온 주에 들어서면 사아군이 한 눈에 들어온다(아래)
(일본의 카미노 순례자는 우리나라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곳곳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허장성세 형이라면 일본은 내실추구 형이라 할까.
대학인 순례자협회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순례길의 마을과도 결연관계에 있다.
사아군의 클루니 알베르게에도 대문짝 같은 안내판이 붙어있다.(위)
'시고구 헨로'(四國遍路 /The Shikoku Pilgrimage)는 일본 시고구 섬의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1.200km 길을 말한다.
내가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하고 바야흐로 어떤 계획을 세우려 한다면 그 광고의
위력을 인정해야 하지 않은가.)
사아군 알베르게 클루니(위)와 마을(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