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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고등학교 28회 동창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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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5 호 |
飛鳳 소식샘 |
發行人 朴 慶 夫 |
2008. 12. 29. |
編輯人 李 韓 東 | |
◈ 인 사 말 씀
금년 한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달인 12월은 선생님도 뛰어다닌다는 바쁜달 입니다. 다사다난한 무자(戊子)년도 무사히 지내시고 다가오는 기축(己丑)년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며 가내행운이 충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서울동창회 소식을 전해드리면 12월7일 비봉산악회(회장 정연세 / 39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소재 예봉산(해발 684m)에 산행을 가졌던날이 모진 한파가 몰아치고 눈보라까지 겹친 혹독한 추운 겨울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문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 동창은 이영국 동창내외분, 노춘실, 송도근동창 등 11명이 참석하여 겨울의 진맛을 만끽 하였습니다. 일행들은 얼어붙은 오솔길을 따라 정상 윤리봉에 올라서니 그림과같은 남,북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전희숙(김형도 동창부인)여사께서 정성껏 준비해온 따끈한 찰밥과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니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그맛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하산하여 팔당역 광장에서 비봉산악회 후배들과 함께 막걸리와 따끈한 육개장 국물로 잠시 몸을 녹이고 그주변에 유명한 옛날 손두부집으로 장소를 옮겨 몸을 녹이면서 두부찌개로 늦은 점심을 하였으며, 그곳에서 먹어본 향토 음식의 찌개맛이 어찌나 좋은지 동동주를 거나하게 마시면서 제각기 멋있는 윗트에 입심좋은 친구들의 회춘비결의 열강에 얼마나 웃었는지.... 아~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두고 어찌 갈꼬?
12월17일 산우회(회장 김종태)는 10년이 넘게 다니고 있는 단골집인 구기동 소재 옛날민속집에서 송년회를 갖고 노춘실동창 내외분, 김형도, 송도근동창 등 27명이 모여 백필수동창의 고희 잔치를 겸하여 고희를 축하하는 뜻에서, 저는 그날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일본정종을, 박명수동창은 오리지날 복분자술을, 백필수동창 본인은 칠레산 와인과 과일로, 민속집의 건강식 안주와 찬으로 근사한 잔치를 베풀었으며 이어서 노래방에서 신나는 여흥으로 큰잔치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산우회 신년하례겸 총회를 새해 정월 18일(일)에 가질 예정이오니 많이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경진고총동창회(회장 정우현 / 38회)는 12월9일 이사회를 춘하추동에서 갖고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동창회에서는 저와 탁재용동창 2명이 참석하였으며, 회의 내용은 차기 수석부회장에 박인제(40회)후배를 선임하였고, 자랑스러운 진고인상에는 육군대장 이상의(40회) 3군야전 사령관과 어청수(43회) 경찰청장을, 공로상에는 최진철(43회), 강찬우(51회), 강석희(52회)를, 감사패는 정건호(38회)후배를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모교소식으로는 비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정든 모교는 다른곳으로 이전하지 않고 그자리에 내년에 재건축 할 예정이며, 공사기간중에 재학생들은 도동소재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12월18일 총동창송년회는 소공동소재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 동창는 구종회, 김동호, 김원채동창 등 24명이 참석하여 흥미진지하게 정담을 나누고 우정을 다짐하는 유익하고 보람있는 송년회를 대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송년회에서 신임회장에 하창식(38회)후배를, 감사에 조승호(50회), 민영포(51회) 후배들을 추인하고 이어서 새로운 회장단을 구성하였으며, 자랑스러운 진고인상, 공로상, 감사패를 수여 하였습니다. 특이사항은 재경진주여고동창회 합창단 “남가람” 30여명의 특별출연으로 좋은 멜로디를 우리들에게 선사해 주어서, 진주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인지 착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12월20일 기우회(회장 박봉규)는 송년바둑대회를 사당동소재 제일기원에서 갖고 강인현, 강정호, 문자현동창 등 13명이 참석하여 친선플레이를 하고, 양경석동창이 마련한 목우촌에서 소주와 삼겹살로 한해 무사히 지낸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내년에도 더욱 활발하게 지내기를 다짐하면서 즐겁게 지냈으며 일부동창들은 다시 기원에서 밤늦게까지 바둑을 두었습니다. 신년하례바둑모임은 새해 정월 17일에 가질 예정이오니 많이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창회(회장 박경부)는 신년하례겸 정기총회를 구정 지내고 2009년 2월 12일(목) 에 개최할예정 이며,장소는 추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소지 변동사항을 알려드리면 정세근동창은 12월20일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1-23 삼성빌라 301호로 이사하였으며 연락전화번호는 전과 같습니다
(자택전화 : 02-413-1677, 핸드폰 : 010-3936-1677).
진주동창회 소식에 의하면 12월12일 산우회(회장 조현오)는 명석면 소재 광제산 산행을 가졌으며 김귀동 동창내외분, 류충림, 오석호동창 등 13명은 3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다녀왔습니다. 일행들은 광제산의 토종 소나무길로 잘 알려진 숲길을 따라 자연을 만끽하면서도 준비한 간식으로 즐거운 산행을 마치고 중식으로 토종 순두부를, 저녁에는 용암탕으로 특별한 별미로 몸보신을 하고 노래방에서 송년노래자랑도 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특별찬조한 안석환동창이 마련한 좋은 음식점에서 송년회를 즐겁게 마쳤습니다.
부산동창회 소식에의하면 12월 6~7일 양일간 재부진고 비봉기우회(회장 정정양 / 34회)는 동문바둑대회를 서면소재 부영기원에서 갖고 총 50여명의 동문들이 모인 가운데 우리 동창은 강동순, 김정규, 문길무동창 등 9명이 참석하여 성대히 거행 하였으며, 6일에는 개인전으로 남강, 비봉조로 나누어서 각 4개조로 편성 총 8개조로 리그전을 거쳐 겨룬 열전의 결과, 비봉조에서는 입상치 못했으나, 남강조에서는 정덕화동창이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7일에는 각회에서 5명이 출전한 단체전에 총 8팀이었으며, 우리동창은 김정규, 문길무, 안문규, 이일영, 최종태동창 등 5명이 출전하고 예비선수로 정덕화, 정문영동창을 대기시켰으나 예선에서 1승2패로 애석하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매년 매회마다 입상했던 우리동창회의 위상을 높였던 감상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개인전에 준우승한 정덕화동창은 회무침, 족발안주와 소주로 위안하는 자축연을 마련하였습니다.
12월27일 봉석회(회장 최두석)는 송년바둑모임을 석목기원에서 갖고 강동순, 손판용, 안문규동창등 13명이 모여 1개조에 4명씩, 3개조로 편성하고 예선리그를 거쳐, 각조1,2위가 교차 토너먼트로 결전한 결과 우승에 문길무동창이, 준우승에 이규현동창이 차지하였으며, 금년한해를 무사하고 편안하게 잘 보낸 감사와 세해 기축년에도 더욱건강하고 봉석회의 발전을 도모해 나아가기를 건배하면서 한해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같은날 저녁에 동창회(회장 최두석)는 송년회를 동래온천장 아촌숯불갈비집에서 갖고 강동욱, 강태현, 강평중동창 등 31명이 모여, 손판용 총무의 사회진행에 따라 최두석회장은 금년 한해동안 동창생들의 많은 협조로 동창회가 활성화 되었고, 오늘 송년회에도 많은 동창생들이 참가한것과 지난 3일 박병철동창 따님결혼식에도 많은동창생들이 축하를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으며, 내일도 최명환동창의 아들결혼식도 다들 참석하여 줄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박남은 부회장께서 골절상을 입어 1개월간 병원생활을하고 집에서 치료를 하고 있어, 하루속히 쾌유되기를 기원 하였으며, 또한 늦게 알게된 일이지만 강동욱동창의 장모께서 1개월전에 운명을 달리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강동욱동창을 위로하였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동창생들이 별다른 사고없이 건강하게 지내왔으며, 다가오는 새해 기축년에도 건강하고, 활기있는 동창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삿말을 하였습니다. 한해를보내는 아쉬움과 일년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술잔을 나누고 우정을 다지는 좋은 송년회가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자 자리를 뜨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남은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정담을 나누고 헤여졌습니다.
주소지 변동사항을 알려드리면 정태영동창은 부산시 금성구 남산동 럭키아파트 103동 1202호로 이사하였으며, 자택전화번호는 051-582-6439, 화실전화번호는 051-516-4977, 핸드폰은 010-9570-4077 이며, 최항림동창은 경남 진해시 자은동 월드메르디아파트 101동 805호로 이사하였으며 자택전화번호는 055-545-9933입니다.
본회를 깊은 사랑으로 협조하여 주셔서 더욱 활성화되고 동창간의 끈끈한 우정이 결속 되고 있으므로 타동창회보다 모범이 되어 왔다고 믿으며, 이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금년 한해를 되돌아보면 우리들은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와 고희합동잔치, 산우및 기우회 등 각종모임, 동창가족 단체 해외여행, 인천대교견학과 고희기념 합동 지리산 천왕봉 정복 등을 통하여 동창들 뿐만아니라 가족간에도 우정을 둠뿍 나누고, 우의를 돈독히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건강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한 한해 였으며, 동창생내외분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새해에도 복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며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방산 정의근동창의“고희년에 지리산천왕봉에 올라“라는 내용의 천왕봉에서 받은 정기를 별첨과같이 동창생 내외분들에게 보내드리오니 기(氣)를 둠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첨 부 : “고희년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1부 끝.
2008. 12. 29
효암 박 경 부
◎활동및 변동사항
-서울동창회
*변동사항
◦정세근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1-23 삼성빌라 301호
- 집 : 02-413-1677 / 핸드폰:010-3936-1677 (전화 전과 동일)
*12월7일 비봉 송년산악회 : 예봉산
◦부부 : 김형도(전희숙), 이영국(김유미)
◦단신 : 김종태, 노춘실, 송도근, 이상주, 탁재용, 한석래
*12월9일 재경진고 총동창회 이사회 : 춘하추동
박경부, 탁재용.
*12월17일 산우회 : 옛날민속집
◦부부 : 노춘실(이덕임), 박경부(권영숙), 박명수(심태자), 박상진(최행지),
백필수(반순자), 이상주(최경자), 이영국(김유미), 정태성(임지연), 한석래(하계남)
◦단신 : 김종태, 김형도, 박봉규, 송도근, 송풍길, 오성근, 이동기, 정의근, 탁재용
*12월18일 총동창회 송년회 :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
구종회, 김동호, 김원채, 김종태, 김평호, 김형도, 김홍식, 김의진, 문자현,
박경부, 박봉규, 박상진, 박원우, 설응춘, 송풍길, 오성근, 이상주, 정문화,
정의근, 조정상, 탁재용, 한석래, 허남구, 황진연
*12월20일 기우회 : 제일기원
강인현, 강정호, 김원채, 문자현, 박경부, 박봉규, 양경석, 이상태, 이종택,
이한동, 정길화, 정의근, 조정상
-진주동창회
*12월12일 산우회 : 광제산
◦부부 : 김귀동, 김영록, 안석환, 조영일, 조현오
◦단신 : 류충림, 오석호, 이남진
-부산동창회
*주소변경
◦정태영 : 부산광역시 금성구 남산동 럭키아파트 103동 1202호
집전화:051-582-6439, 화실:051-516-4977, 핸드폰:010-9570-4077
◦최항림 : 경남 진해시 자은동 월드메로디 아파트 101동 805호
집전화 : 055-545-9933
*12월6-7일 재부진고 비봉기우회 : 서면소재 부영기원
강동순, 김정규, 문길무, 안문규, 이남기, 이일영, 정덕화, 정문영, 최종태
*12월27일 봉석회 : 석목기원
강동순, 문길무, 손판용, 안문규, 이규현, 이남기, 이병규, 이일영, 정덕화,
정문영,정태영,최종태,최두석,홍현근
*12월27일 동창회 : 동래 온천장 아촌숯불갈비집
강동순,강동욱,강태현,강평중,강현석,김규영,김현영,문길무,박병철,서윤석,손강의,
손판용,송만영,이규현,이남기,이병규,이수한,이일영,이은규,정기영,정건화,정덕화,
정부경,정태영,정영호,정현정,조정래,최두석,하병태,홍현근,정문영(마산)
謹 賀 新 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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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聲援에 感謝 드리며 새해에는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고 健康과 幸運이 함께 하시길 祈願합니다. 기축년 새해아침 효암 박 경 부 올림 |
<별 지>
古稀年에 智異山에 올라
晋州高28회졸업생 대부분이 금년에 古稀를 맞이할 것이다. 古稀라는 말은 옛날 사람들의 삶이 耳順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70까지 사는 것은 드물었다는 뜻으로 오래 사는것을 찬양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든 忍棒 송풍길군이 한달전부텨 會員을 모집하여 2008.11.10 서울팀은(박봉규, 송도근 麗江 김형도, 松軒 서홍수, 忍棒 송풍길, 정의근)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여 인삼랜드휴계소를 거쳐 12시30분경 원지정류소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나와 있던 진주팀(廣巖 오석호, 勤潭 이남진, 愚巖 김영록, 一鶴 조현우) 등과 이미 부산에서 올라와 있던 晉山 하병태, 최순이 부부와 반갑게 만났으며 하병태부부는 지난봄 설악산 봉정암 천불동계곡을 같이 등산을 했기에 더욱 반가웠다. 車편을 준비해온 광암과 근담의 車를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단성의 목화추어탕집으로 가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中山里停留所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자연학습원까지 가는 법계사 셔틀버스를 타고 자연학습원 입구에 내려서 약2시간의 山行 끝에 로타리산장을 지나 바로 법계사에 도착하여 房배정을 받고 6시부터의 저녁공양으로 오늘의 山行을 마쳤다.
저녁 禮佛에는 全員이 참석하여 약 2시간동안 住持스님과 같이 절하고 염불하고 기도하고 조촐하나마 敬虔한 자세로 임했으며 주지스님의 法文은 없어서 좀 섭섭하기는 했으나 끝까지 住持스님과 함께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房으로 돌아온 우리는 금년봄 설악산 봉정암에 가서 주지스님으로부터 祈禱方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개 하기도 했지. 즉 우리가 법당에서 절하고 혹은 塔을돌면서 석가모니불이나 관세음보살을 念하는데 그냥 규칙적으로 입으로만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을 念하지말고 모든願을 하나로 묶어 석가모니불을 念하면서 한순간도 석가모니불을 떠나지말고 붙들고 念하면 잠도 안오고 精神集中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才談으로 안동양반 上京記, 즉(점잖은 안동 양반께서 上京하게 되었는데 옛날에는 먼저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분은 마침 자리를 잡아 앉게 되었다. 한두시간 가다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 화장실에 갔다오니 어떤여자 한분이 자기자리에 앉았는기라. 안동양반 점잖게 “아주머니 이 자리는 제자리 입니다”. 그여자 들은 척도 안하는기라. 조금 목소리를 높여 “아주머니 이자리는 제자리 입니다.” 아무런 대꾸가 없어서 성난 목소리로 “이 자리는 제자리 입니다.” 그아주머니 안동양반을 힐끗 쳐다보고 아래위를 흟어 보고는 “참“ㅈ”같은 새끼네!“ 안동양반어른 깜짝 놀라 아주머니 ”지금 뭐라고 했능교? 또 아무말없이 자기 할일만 하고 있는기라. 더욱 화가 난 안동양반 목소리를 높여 ”아주머니 지금 뭐라고 했능교? “그아주머니 안동양반을 똑바로 쳐다 보고 “야이“ㅈ”같은새끼야 여자보고 성내는 것은“ㅈ”밖에 더있냐?” 안동양반 너무나 부끄럽고 겁이나 삼십육계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와 서울시내 地下鐵을 타면 기독교 선전차 電鐵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예수를 믿으시오. 그렇게 하면 天堂을 가고 그렇치 않으면 地獄에 떨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죽지 않고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납니다. 마침 어떤스님이 敬老席에 앉아있는데 유난히 그사람앞에 와서 무슨책자를 흔들며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며 죽은자도 다시 살아 납니다. 3-4회 유독 그스님앞에 와서 그러니까 그스님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야 이새끼야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ㅈ”밖에 더 있냐? 야 이놈아! 그 선교사 얼른 다른 칸으로 도망 갔다는 이야기등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웃음꽃이 피었으며 우리는 내일의 出戰(?)을 위하여 일찍 자기로 하고 각각 자리를 잡고 누웠다.
房은 따뜻하고 자리도 넓어 불편함이 없었는데도 잠자리를 바꾸면 잠이 안오는 것은 할수없고 뒤척이다가 새벽 2시경 문밖을 나가보니 달빛은 휘영청 밝기도 밝고(음력10월13일) 낙엽이 떨어진 나뭇가지엔 하얀달빛은 새벽의 싸늘한 바람의 느낌과 함께 마치 북극의 어느 아름다운 골짜기를 연상케 했으며 하늘에는 數도 알수 없는 별들이 쏟아져 내릴듯이 빤짝이고 가깝게 느껴졌으며 이 近年에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본일도 없고 쾌청한 공기는 몸속에 쌓였던 온갖 苦惱와 먼지와 때를 씻는듯 했다.
내옆에 누운 박봉규군은 모처럼의 큰山行이라 좀 過했는지 앓는 소리가 正常이아닌듯 느껴졌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天王峰行을 포기했다. 機會가 쉅게 오는 것은 아닌데 遺憾이지만 조심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느껴졌다. 우리일행은 아침 7시부터 始作하여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졌던 天王峰에 거의 기듯이하여 드디어 倒着했다. 조그마한 돌비석에 천왕봉이라 써 놓았다.
晉山하병태군은 봄에 설악산 갔을때나 지금이나 어찌나 夫人최순이씨를 알뜰살뜰 보살피고 제일 먼저 천왕봉에 당도하기도 했다. 올라 오면서 뒤돌아보니 疊疊의 山들이 눈아래로 보였으며 골짜기의 아름다운 丹楓은 떨어질까 두려울 정도로 보기 좋았으며 저멀리 雲海속의 山들은 구름속에 보일 듯 말듯한 것이 仙界와 같이 느껴져 우리가 仙界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錯覺이 들기도 했었지. 천왕봉은 큰바위덩어리로 인근에는 수백년묵은 朱木나무가 여기저기 보였으며 나무가 좀 허술한곳은 주목나무를 補植해 놓은듯 했다. 지리산은 죽은소의 갈비뼤 같다더니 實感나는 말인것 같았다.
옛글에 山高 松下立(아무리 높은山 이라도 소나무밑에 서 있고) 江深 沙上流(江은 아무리 깊어도 모래위를 흐른다)라는데 소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泰山같은 바위만 우뚝했다. 擇里志에 의하면 지리산의 동네는 굽이굽이 깊고 크며 土質은 흙이 두텁고 기름지다. 온산이 모두 사람살기에 적당한데 안에는 긴골짜기가 많으며 밖은 좁고 안은 넓다 百里의 긴 溪谷을 걸어서 가본 사람은 그길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實感할 것이다. 그러므로 골짜기가 길어“지리하다”에서 지리한山이 되었고 그런의미에서 漢文으로 옮긴 것이 智異山이 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지리산이라는 명칭은 언제 누가 만든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지리산은 白頭山의山脈이 소백산을 거쳐 이곳까지 뻗어내려 神靈스럽고 맑은氣運이 흘러와 쌓였다는 뜻에서 頭留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백두대간이 흘러내리다 바닷가에 이르러 멈추었다는 의미에서 頭流山이라고도 하고 또한 지리산을 方丈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神仙이 사는山이라는 뜻에서 붙여졌으며 方丈山은 中國의傳說속의 三神山의 하나로 태을이 그산위에 사는데 신선들이 모이는곳이고 龍象이 거처 하는 곳으로 되어있다. 世上에서는 金剛山을 蓬萊山 智異山을 方丈山 漢羅山을 영주(瀛洲)山이라 불러 三神山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유난히 날씨도 포근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특별히 選擇된날 같이 느껴졌으며 날짜를 잡은 忍棒에게 감사를 드리고 우리는 청왕봉 바로 밑에 있는 널찍한 장소에 둘러앉아 晉山이 갖고 온 떡과 술안주로 간단히 梅實酒를 한잔씩하고 다음 목적지인 장터목산장으로 行했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으나 너무나 경사가 심하여 아찔아찔했으며 옛날에는 枯死木이 많았는데 많이 없어져 옛날의 지리산이 아닌 듯 싶었으며 제석봉(해발1805미터)에서 한참 쉬어 주변을 둘러보고 지리산의 웅장함에 찬사를 보내고 장터목산장(해발1653)에 도착하여 진주친구들이 준비해 온 컵라면을 끓여서 廣巖이 준비한 김장김치와 함께 맛있게 잘 먹었으며 물과 버너 등등을 준비하는 등 세심한데까지 신경을 써준 진주친구들께 감사를 드린다.
人傑은 地靈이라는 말은 빼어난 人物은 그땅의 신령스런 정기를 받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朝鮮時代선비들은 높은산에 오르면 사방을 眺望하여 각 방면의 名山을 가르키고 人物을 떠올린다. 代表的인 것은 지리산밑의 南冥 曺植 속리산밑의 大谷 성운 덕유산의葛川 임훈 청량산밑의 退溪 李滉 등을 들수있다.
南冥은 지리산밑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氣節이 가장 뛰어난분으로 그 學統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精神이 强하고 實踐에 勇敢 했으며 義를 좋아하고 삶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利로움도 그들의 뜻을 굽힐수 없고 어떤 해로움도 그들의 志操를 바꿀 수 없었으니 그들에겐 우뚝한 節操가 있었던 것이다. 옛부터 處士는 世俗的 利己的 鬪爭을 하지 않고 自身을 갈고 닦아 自信의몸에 道德을 간직해 그것으로 不義에 對抗한다.
南冥은 61세 되던해에 합천삼가에서 산청군 시천면으로 들어온다. 그때 지은詩 德山卜居에는 “봄산 어느곳엔들 香기로운 풀이 없겠는가마는(春山低處 無芳草) 내가 이곳으로 온것은 이上帝 있는 곳이 가까운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며(只愛天王 近帝居) 맨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것인가? (白手歸來 何物食). 銀河같은 저 十里물 아무리 퍼마셔도 오히려 남으리(銀河十里 喫猶餘)”南冥은 천왕봉을 떠받들고 尊崇했던 것이다.
남명은 1528년 세석평전 영신사 대성골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으며 58세때까지 무려 11번을 지리산을 유람하셨다. 남명은 천왕봉이 되고 싶었다. 그는 題德山溪亭柱에서“請看 千石鍾(請컨대 千石들이 鍾을 보시게) 非大扣 無聲(북채크지 않으면 쳐도 소리 안나네)“爭似 頭流山(나도 어찌하면 저두류산 처럼 될까) 天鳴 猶不鳴(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고서있는) 남명은 거대한 천석종 같은 정신세계를 꿈꾼 것이다. 그종은 큰북채로 크게 치지않으면 소리가나지 않는다. 거대한 울림을 갖는 종이다. "에밀레종이 경주의 서라벌에 울렸다면 이종은 朝鮮八道에 울리고도 남을 종이다. 바로 남명이 추구하는 精神이다. 그는 그鍾을 쳐서 온나라에 울려 苦痛에 시달리는 民生의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천석종은 머릿속에 상상하는 종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천왕봉이다. 하늘에 매달려있는 천석종이 바로 천왕봉인 것이다. 자기는 거대한 천왕봉같은 천석종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남명은 산을 오를 적에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힘들더니 내려올때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쏠려 내려간다고 말씀하시고 가파른 山언덕을 오르면서 人間이 善한데로 나가기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고 山을 내려오면서는 인간이 惡으로 나가기가 그처럼 쉽다는 것을 생각하고 善을 따르기란 山을 오르는것처럼 힘들다(從善如登山). 즉 온몸으로 느끼고 行動하신 것이다. 지리산에서 천만년이 흘러도 不變하는 天王峰을 바라보며 남명선생의 氣槪와 氣像을 생각해 보았다.
컵라면을 먹고난 후 10시40분경 장터목산장을 出發하여 길고 긴 지루한 中山里溪谷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아름다운 小폭포도 보고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끝없이 지루하게도 내려왔으며 어떤 이름모를 다리위에서 천왕봉을 올려다보니 정말 장엄한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하늘에 닿을 듯이 까마득히 보이는 것이 내가 저기를 갔다왔다고 생각하니 나도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 중간중간 조금씩 쉬어가면서 칼바위(여러전설이 있으나 확실한내용은 알수없음)를 지나니 그지리하던 중산리골짜기가 끝이나고 드디어 중산리정류소에 도착한 것이다.
오후3시30분이다. 중간에 쉰시간이 한시간 이상이기는 해도 장장 8시간30분을 걸은것이다. 마치 설악산 봉정암에서 소청봉으로해 千佛洞溪谷으로 新興寺에 이르는 시간이었다 천불동계곡은 굽이굽이마다 아름답기가 그림 같았지만 우리일행 아무런 탈없이 내려온것을 지리산 山神靈님께 감사 드리면서 이번 山行을 위해 勤潭 이남진군과 愚巖 김영록군이 미리 답사를 해 우리를 잘 案內 해준데 대해 感謝를 드린다.
孔子님의 말씀에“智慧로운者 물을 좋아하고 어진자는 산을 좋아하고 智慧로운자는 動的이고 어진자는 靜的이다. 智慧로운자 즐겁고 어진자는 長壽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 靜 智者樂 仁者壽)” 孔子는 산과물을 바라보면서 自然의 산과 물로만 보지 않고 산과물이 갖고있는 德을 보았다. 눈앞의 물을 보면 그물이 어디서 發源하여 어디를 거쳐 지금 이곳을 지나 어디까지 가는지를 생각하였다. 어떤사물에 부딪치면 始原부터 살펴 그結果를 생각한다. 예컨대 어떤사건이 생기면 무엇때문에 그런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근원을 살피고 현재의 상황을 살피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를 살피는 것이 智慧인 것이다. 눈앞의 現狀만 보지 말고 裏面의 理致를 생각하고 전부를보는 것이 智慧인 것이다.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데로만 흐르면서 웅덩이가 있으면 채우고 큰바위돌이 있으면 그것을 둘러서 흘러 德을 실어나르는 역할을하며 계속 움직여 動的인 것이다. 山은 늘 그자리에 서있다. 山은 움직이지 않는 不動의“이메이지”로 靜的이다. 山은 온갖 생명체를 감싸고 生成시키며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德이 仁에 가까운 어머니인 것이다. 樂山은 長壽한다는말은 사람의 목숨처럼 오래산다는 뜻이 아니고 變치 않고 永遠하다는 의미이다. 孔子는 山과들을 보면서 이렇게 깊고도 아름다운 精神世界를 만들었다. 그래서 樂山樂水는 단순히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뜻이 아니고 山의 德인 仁을 좋아하고 물의 德인 智慧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山을 오르고 내리면서 仁의 德을 한번 더 되새겨본다.
중산리에서 단성쪽으로 나가다가“숯굴 사우나”로 진주친구들이 案內하여 생전처음으로 색다른 體驗을 하고 머리도 맑아졌고 온몸이 가벼워져 그옆집 돼지고기집에 들러 저녁식사겸 많은 소주병을 비우게 되었다. 이번 山行에대한 여러 가지 느낀바를 돌아 가면서 이야기하고 앞으로 우리가 5년간만 봄에는 설악산, 가을에는 지리산을 이번과같이 할수 있도록 각자 健康 다지기에 最善을 다할 것을 서로 다짐하고 이번 古稀記念登攀을 모두 마치고(근담과 광암은 車때문에 그좋아하는 소주 한잔도 같이 못해 아쉬웠지만.)서울 부산 진주로 헤여졌다.
모두 모두 健康하고 즐거운 餘生이 되길 빌며........
2008. 11. 30.
成均館 典學 鄭 義根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