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피는 분홍바늘꽃
떠나간 이를 그리워함..
분홍바늘꽃의 꽃말이다..여행길에서 가끔 보았던 것 같다. 그때는 군집으로 모여 핀 진달래꽃 쯤으로 생각했던 꽃이었는데..우리 출판사에서 <분홍바늘꽃>이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야 나는 이 꽃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 탓인지, 이 책이 나왔을 즈음 내가 일하며 들었던 노래 탓인지, 그때 즈음의 일들의 기억 탓인지 꽃말만큼이나 이 꽃은 나에게 애잔한 느낌을 갖고 있다.
참 재밌다. 책이 나온 이후로 영화나 책들 속에서 간간히 분홍바늘꽃이란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반갑다. 그리고 그 단어를 담고 있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내용이 범상치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긴..불탄 곳에서도 피어난다는 이 야생의 꽃을 담고 있는 영화나 책이 절대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INTO THE WILD>
며칠 전에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라는 실제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그가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2년간 방랑에 떠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청년으로 성장했던 그가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서 돈도, 전화도, 애완동물도 담배도 없이 훌쩍 떠나 방랑을 떠나 혼자 야생에서 지내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알래스카였다. 그 곳에서 그는 숲 속에 버려진 버스 안에서 혼자 삶을 살아가지만, 스스로 충분히 자유를 느끼며 살아간다. 그 영화 마지막 즈음에 겨울을 보내는 주인공이 먹을 것이 없어 숲을 헤매는 장면이 있는데 풀을 헤치며 주인공이 발견하는 풀들 중에 하나가 내 눈에 띄었는데 그게 바로 분홍바늘꽃이었다. 아주 잠깐 나오지만 말이다..그가 버려진 버스 앞에서 일기를 쓰는 장면에서도 슬쩍 지나쳐가지만 분홍바늘꽃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인간 정신의 기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뜻이에요.
인생의 즐거움이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이걸 봐야해요.
- Into the wild 중에서 -
<숲에서 사는 즐거움>
네이버서 무언가를 검색하려고 할 때 언저리 뉴스의 유혹을 넘지 못해서 원래 찾으려던 것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도서관에서도 정작 내가 찾고자 하는 책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어쨋든 이 책은 원래 찾으려던 책이 아니었는데...ㅋㅋ 이런게 또 재미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내가 찾고 싶은 책에는 발치에도 가지 못하고 나는 이름에 끌려 이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숲에서 사는 즐거움 | 베른트 하인리히
원제 In a Patch of Fireweed(1984)
미국 버몬트 주립 대학교와 버클리 대학교에서 동물학 교수가 쓴 책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밝힌 이 책은 저자가 숲에서 있었던 소소한 생각들, 끝없이 이어지는 호기심들을 수필처럼 쓴 잔잔하지만 나름 재밌는 책이었다. 자연 속에서 경험한 '온갖 소리'와 '광경들, 끝없는 잡일과 행복한 순간들, 몰입과 경이로움과 같은 과학에 대한 느낌들이 따뜻하게 책 속에 녹아 있었다. 그의 여러가지 재밌는 연구분야 이야기 중에 내 눈에 확~ 띄는 부분이 바로 "벌들의 에너지 순환과 벌통 형성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바로 이 연구가 숲에 펼쳐진 분홍바늘꽃밭에서 일어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의 원제는 [In a patch of fireweed : 분홍바늘꽃에 대한 몇가지 단상(?)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였다.)
지은이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숲에서 살고 있는데 하루는 야생의 분홍바늘꽃밭을 거닐다 우연히 꿀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오전 오후에 따라, 꽃에 따라 벌들이 꽃에 내려앉는 횟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은이는 이 벌들의 몸의 온도를 재어보았고 결국 꽃들과 꿀벌의 몸의 온도의 관계를 밝혀서 꿀벌 몸의 에너지 순환과정을 알아내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하..이런 재밌는 연구를 분홍바늘꽃밭에서 하다니..
본문 중간중간에 삽입된 저자가 직접 그린 연필 스케치도 재밌다.
헛간 일부가 썩어서 무너지자 우리는 남은 우리에 불을 질렀다. 이 불 때문에 부식토에까지 오랫동안 연기가 스며서 땅 속에 묻힌 수백만 개의 씨앗이 죽었다. 땅은 불모지가 되었는데, 워싱턴 주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한 후와 마찬가지로 처음 이주해 온 식물은 분홍바늘꽃(Epilobium angustifolium)이었다. 분홍바늘꽃 씨앗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갓털에 매달려 바람에 실려 왔다. 이 씨앗은 이스트 월턴의 윌슨 개울이나 뉴펀들랜드의 군집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그 씨앗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 수 없어도 분홍바늘꽃은 매년 여름 군집을 형성할 만한 곳을 찾아 탐사대를 보내는 것 같다. 이곳 메인 주에서는 불에 타 불모지가 된 토양에 내려앉은 씨앗들 중 일부만이 싹이 터서 살아남게 된다. 다른 곳에서는 자기 터전을 굳힌 토착 식물이 늘 이런 씨앗들을 몰아낸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가장 강력한 종만이 이미 군집이 형성된 땅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 분홍바늘꽃의 가녀린 녹색 싹이 재 속에서 돋아났다. 바람에 실려와 이 새싹에 내려앉은 진딧물은 분홍바늘꽃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식량 에너지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새싹이 땅에서 끌어올린 빗물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진딧물은 번식했다. 이윽고 작고 검은 개미 한 마리가 진딧물 집단을 발견하고 집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렸다. 개미는 진딧물 감로를 이용하고 그 대가로 포식 동물로부터 자신들의 '가축'을 보호해 줄 셈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날던 붉은 색과 검은색의 작은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발견하고 그 곁에 알을 슬어 놓았다. 그리고 무당벌레와 녀석의 애벌레들은 진딧물을 잡아먹었다. 분홍바늘꽃은 계속 자랐다. 몇 미터까지 자라자 이 식물에는 선홍색 꽃이 피어 녹색 밭 위에 불꽃처럼 빛났다. 이 꽃은 밤에 박각시나방을 끌어들였다. 낮에는 멋쟁이나비, 청띠신선나비, 부전나비, 호랑나비 등이 이 꽃을 찾았다. 혼자 사는 녹색 벌은 꽃가루를 취했고, 붉은가슴벌새는 주위를 날며 혀로 꿀을 취했으며, 가장 흔한 털북숭이 뒤영벌은 꽃가루와 꿀을 찾아다녔다. .....(중략)..내가 뒤영벌의 에너지 균형과 뒤영벌과 꽃의 상호 작용에 대한 데이터를 얻은 시기는 적절했다. 분홍바늘꽃밭에 들어갔다가 뒤영벌 경제학자가 되어 나왔다.
- 숲에서 사는 즐거움 중에서- |
<집에서 키우는 분홍바늘꽃>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 우연찮게 분홍바늘꽃을 키우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야생꽃인 줄만 알았는데 또 다른 느낌이지만 키우는 꽃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꽃말때문이었으리라..아마도 이 꽃을 이렇게 아름답게 여기고 집에서 소중하게 키우는 사람은..왠지 꽃말처럼..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만 같다..
- 꿈처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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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 전에 분홍바늘꽃이란 책을 읽었어요. 그랬더니 이 글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움.........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분홍바늘꽃이 있었군요. 금년은 숲에 사는 즐거움을 더욱 느껴봐야 겠어요. 가까운 숲에서 햄목을 치고 책도보고 할 작정입니다. 조그만 체험이 있다면 글로 올리겠어요
손꼽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