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 밤늦게 시를 쓰다가 / 쇠주를 마실 때 /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 명태~ 명태라고 /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의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인 가곡 ‘명태’의 가사 중 일부이다. 그러나 요즘 명태는 위의 가사처럼 가난한 시인의 밥상에 오를 만큼 만만한 생선이 아니다. 너무 많이 잡힌다고 해서 한때 산태(山太)라고도 불렸던 명태는 서민들의 안줏거리로 오랫동안 사랑 받았지만 이젠 모두 옛날 얘기일 뿐이다.
|
▲ 요즘 명태는 가난한 시인의 밥상에 오를 만큼 만만한 생선이 아니다. ⓒ연합뉴스 |
요즘은 국내 수요량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지난 2010년에는 공급 부족과 수입량 감소로 명태 가격이 치솟아 ‘금태’로 불리기도 했다. 명태가 이처럼 우리나라 근해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치어인 노가리의 남획도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주서식지인 원산만의 온도가 올라간 원인이 크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조사에 의하면 한반도 주변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10년까지 43년 동안 1.29도 상승했다. 전 세계 바다 수온이 100년에 0.5도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동안 2.5배나 오른 셈이다.
이에 따라 주요 어획 어종의 어장이 대부분 북상해 명태 같은 한류성 어종은 보기 힘든 대신 멸치나 오징어 같은 난류성 어종은 많이 잡히고 있다. 제주도에서나 잡히던 자리돔이 요즘엔 울릉도나 독도 인근해에서 잡혀 다시 제주도로 팔리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서해 꽃게의 경우 2030년에는 주어장이 연평도 부근에서 더욱 북상한 북한 영해에서 형성돼 우리나라에서는 점점 잡기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표층 수온은 이처럼 상승한데 비해 바닥의 저층 수온은 오히려 차가워져 지난 1983년부터 2008년까지 평균 0.256℃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저층 냉수성 어종인 대구를 비롯해 꼼치, 말쥐치는 오히려 남하하고 있다. 특히 동해와 경남 진해에서 주로 잡히던 대구는 최근 그 분포영역이 서진하여 전남 고흥과 여수까지 확장되었다.
최근 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수산연구센터가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상을 조사한 결과, 청줄돔을 비롯한 아열대 어류들이 이제는 제주 연안에서 정착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 청줄돔, 가시복, 독가시치, 거북복 등 28종의 아열대성 어종이 평균 40% 이상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청줄돔과 독가시치의 지난해 출현 개체수는 2011년보다 52%, 44%나 증가한 것으로 확인돼 제주도에 정착,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 사과는 옛말, 이젠 양구 사과가 명품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의 산지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사과이다. 예전엔 사과하면 대구였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기후변화로 인해 최근 30년간 대구 지역의 사과 재배면적이 75%나 줄어들었기 때문. 사과는 연평균 기온이 13도 이하여야 휴면 등 생장에 적합한 환경이다.
이에 따라 사과의 최적 재배지는 청송, 안동, 영주 등으로 올라가다가 충남 예산을 거쳐 경기 북부 포천으로까지 북상하고 있다. 최근엔 최전방에서 생산되는 양구 사과가 타 지역의 사과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있어 최고의 명품 사과로 이름을 알리고 있을 정도이다.
양구 지역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기온으로 인한 냉해 피해 등으로 사과 등의 과수를 재배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와 품종 개량, 재배기술 개발로 전국 최고의 사과 재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양구군은 지난달 말 서울 양재동에서 열린 봄맞이 행사에서 양구 사과를 알리는 홍보 부스를 운영하는가 하면, 올해부터 2017년까지 총 150억원을 투입해 집중 육성할 계획인 5대 전략 작목 중에 사과를 포함시켰다.
심지어는 국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도 점차 북상해 외국에 다수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최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몽골 및 중국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공동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종 Ⅰ급인 상제나비가 몽골에서 다수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으며 멸종위기종 Ⅱ급인 독미나리는 중국에서 발견됐다는 것.
상제나비는 우리나라가 남방한계인 북방계 생물종으로서, 국내에서는 강원도에서 1990년대에 관찰된 이후 조사 기록이 없는 종이다. 또한 독미나리는 우리나라 내륙 습지에 서식하는 종으로 대관령 일대와 군산 등지에 분포하며, 기후변화와 내륙 습지 육화로 인한 서식지 감소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립생물자원관은 기후변화로 분포권이 북상해 국내에서 사라지고 있는 생물종이라 하더라도 원종을 확보하고 서식지의 보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우리나라 생물주권의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80년엔 나비 30종이 멸종 위험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비 중 30종은 멸종할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GIS 공간분석 기법을 적용해 남한에 서식하는 나비 158종의 분표변화를 예측 연구한 결과, 조사대상 158종의 약 18%인 30종은 2080년에 멸종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밝혀진 것.
멸종 위험 나비로 분류된 30종에는 대왕팔랑나비, 높은사세줄나비, 큰주홍부전나비, 큰표범나비, 참줄나비, 북방기생나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난 나비류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을 실시해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환경과학원이 한반도 주요 생태계의 환경변화에 따른 동태를 예측할 목적으로 실시한 2010년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 결과에 따르면, 2071년 이후에는 백두대간의 일부 고산지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이 아열대 기후에 들어설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의 공간분포 전망에서는 제주도 서귀포의 연평균 기온(16.7℃)과 유사한 아열대 기후인 연평균 기온 16~18℃인 지역은 2040년까지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부, 2070년에는 제주도, 남해안, 서울, 대구 및 서해안 일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강수량의 분포 전망에서도 연강수량이 1천600㎜ 이상인 지역이 현재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이나, 2040년 이후에는 강원도 및 남해안, 제주도를 중심으로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마 그때쯤이면 가난한 시인의 술상에 오르는 안줏거리뿐만 아니라 명절 때의 차례상에 오르는 농수산물도 확 바뀌어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2013.03.08 ⓒ ScienceTi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