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가로질러 강남구 압구정동과 왕십리를 이어주는 다리가 성수대교 입니다
남측 강남구는 과거에는 장마때 물이 차는 지역이었으나
한강상류에 많은 댐을 건설하고
한강변에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로 제방을 만들어 주거지로
적합하여 졌고,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강남개발이 가속화 되어
오늘날 가장 부자들이 사는 고장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명회가 은퇴후에 압구정 (한명회의 호)이라는 정자을 짓고 기러기와
벗삼던 곳이었습니다
한명회에 대하여는 모두 잘 아실것입니다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만 이야기 해보면
그는 청주 한씨로 그의 조부는 개국공신으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왔습니다
한명회는 여러차례 과거에 낙방하다가
나이 40에 음보 (집안덕)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가
수양대군의 사조직에 가입하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계유정란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사육신의 부활을 막아 정권에 우뚝 섰읍니다
두딸을 성종비로 들어 대를 이어 권력을 독점하였습니다
성종비였던 그의 딸이 몸이 허약하여 죽자 한명회는 압구정으로 은퇴하여 살다가
압구정에서 사사로이 명 사신을 접대하였다가 발각되어 파직당합니다
연산군 갑자사화때 윤비사사 사건에 한명회가 관련되었다 하여 죽은 한명회는
부관참시 당하고 그의 시체는 한양 길거리에 전시되는 수모를 당합니다
그후
중종반정후 신원이 됩니다
한명회가 짓고 살았던 압구정 부근에 가설된
성수대교는 붕괴사고로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우리나라 건설사의
한 획을 그은 다리입니다. 구 성수대교는 1977착공하여 1979년 완공되었
는데 포철에서 생산하는 강재를 사용한 최초의 다리이었으며 당시에는
서울 발전의 상징으로 알려졌던 다리이었읍니다
그러나
동아건설이 놓은 이 다리는 시공시 근본적으로 용접이 불량한데다 , 과적 차량, 유지관리 부실로 1994년 10월 21일 아침 붕괴되어 32명 사망, 18명의 부상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였읍니다. 이후 서울시에서는 구 교량을 전면철거하고 교량등급을 DB 18에서 DB24로 상향 조정하고 차로수도 왕복 8차로로 크게 하였읍니다. 과거의 교랑은 어느 한 부재만 파괴되어도 곧바로
교량 전체의 파괴로 이어지었지만 신 교량은 안전 개념을 도입하여 한 부재 파괴시
다른 부재가 대신 지지토록 설계개념을 바꾸었읍니다
색상도 청색에서 현재와 같은 자주색으로 바꿨읍니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하였고 영국계 회사가 전면 책임감리를 하였읍니다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전면 책임감리제가 도입되고, 시설물은 일정 기간마다
정밀 안전진단을 받도록 하였으며 구조물도 이제는 건설보다 유지관리 위주로
관리키로 하여 우리나라의 건설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이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