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속의 꽃
꽃을 가꾸는 할머니
최균희
꽃이란 단어는 예쁘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말이다. 누가 언제 붙여준 이름인지는 몰라도 우리 주변에 꽃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꽃을 보고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 서로에게 꽃을 선물하나보다. 한편 집안에서는 화분을 가꾸고, 밖에서는 산책을 하며 길 양옆에 피어있는 꽃을 감상하며 마음의 힐링을 얻곤 한다.
하지만 꽃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말이 어린이다. 아기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면, 근심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정화되어 그 이상의 보약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젊었을 때, 아들딸을 키우던 때보다 손자들이 커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어린이를 어찌 꽃에 비길 수 있을까?
내가 1984년에 여섯 번째 창작동화집으로 펴낸 책 제목이 『꽃을 가꾸는 할머니』이다. 꽃님이라 불리는 어린 아이가 사시사철 꽃들로 둘러싸인 집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말을 못하는 낯선 아저씨가 찾아온다. 그 후 할머니의 생신 날, 타지에서 살다가 모여든 친척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된 아이는 그만 쓰러지고 만다. 꽃님을 찾아온 아저씨는 바로 몇 년 동안 딸을 찾으러 다니던 장애인이 된 아버지였고, 고모들도 삼촌도 모두 할머니가 고아원이나 길에서 데려와 꽃처럼 곱게 키운 아들딸이었던 것이다.
「꽃님이네 가족이 흘리는 그 눈물은 결코 슬픈 눈물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정말 이슬처럼 곱고 보석처럼 값진 눈물이었어요.
이 광경을 지켜본 할머니네 꽃밭에서는 꽃들끼리 소곤소곤 소문이 생겨나고, 지나가는 바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 산 너머 곳곳에 알리고 다녔어요.
“뱅 돌아 산이 있는 구름골에는
꽃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살고 있지.
불쌍하고 외로운 아이들을 맡아서
꽃처럼 예쁘게 키워 보내는
꽃집 할머니는 사랑의 천사
꽃집 할머니는 사랑의 천사.”
동네마다 골목마다 꼬마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나 공놀이를 하면서 꽃을 가꾸듯 아이들을 사랑한 꽃집 할머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늘도 끊임없이 온 세상에 알리며 흥겨운 가락에 맞춰 노래하고 있어요.」
『꽃을 가꾸는 할머니』 이전에 낸 동화집 『해바라기 친구』에서는 어린 친구들을 비롯하여 엄마의 추억을 함께 다루며 변치 않는 우정과 그리움을 살려냈고, 197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화를 중심으로 펴낸 『아기 참새』 속에도 「할머니의 꽃그늘」 「호박꽃초롱」이란 작품 속에 꽃들이 주는 상징적 이미지를 살려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다. 동시집 『아이와 달맞이꽃』도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신비롭고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며, 스물한 번째 동화집 『동전 한 닢의 편지』에 들어 있는 「돌층계와 민들레」 「찔레꽃 전설」 「소년과 코스모스」에서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어린이와 슬픔을 견디며 삶의 목표를 향해 씩씩하게 달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아냈다.
또한 나의 작품 중에는 동요 가사를 써내어 70여 편이 작곡되어 음반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노랫말에도 나는 ‘들꽃 풀꽃’ ‘민들레’ ‘초롱꽃’ ‘나리꽃’ ‘갈꽃’ 등 화려하고 어여쁜 꽃보다는 산과 들에서 저절로 피어난 꽃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내 작품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꽃나무들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거나 비바람에 흔들려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끝내 꽃을 피워내는 인내와 의지의 표상이다.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꼼과 희망을 펼쳐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재로 선택되어진 것이다.
(동화작가, 소설가. 어린이문화진흥회 이사장, 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