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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phon Interview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
“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제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아주 솔직하게 씁니다”
김상미 시인
*인터뷰: 김정수(시인, 사이펀 편집위원)|사진: 이성수(시인)
계간 《사이펀》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는 김상미 시인을 찾았다. 1990년 《작가세계》 여름호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 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와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를 발간했다. 박인환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종로구 ‘행촌공터 1호점’에서 정독도서관 독서스터디 ‘시作의 풍경’팀과 시인을 만났다.
김정수-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리 공식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 하니 좀 어색하네요. 오늘은 신상보다는 좀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느닷없겠지만 시인이 생각하는 ‘죽음’은 무엇인가요. 물론 죽음의 정의는 생물학적 호흡이 멈추는 것이겠지만, 존재론이나 종교적 죽음은 다를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철학 하기는 죽음을 학습하는 것’이란 말도 있는데요.
김상미- 저는(제가 생각하기에도) 단순하고 명쾌한 성격이라 ‘죽음’에 대해 특별히 두렵거나 많은 의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 예전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복잡한 해석 없이 아주 단순하게 죽음은 삶이 끝나는 것, 생물학적 호흡이 정지된 상태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어떤 큰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여태껏 살아 있는 것도 언제나 죽음보다 삶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 하기는 죽음을 학습하는 것’이라는 데에 크게 수긍하는 편입니다. ‘철학’ 역시 삶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한 학문이고, 그렇게 잘 살아가다 보면 ‘죽음’은 내 삶의 일(영역)이 아니게 되고, 죽음 앞에 선 마음이 훨씬 더 편하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이젠 육십을 훨씬 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매일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게 되더라고요. 버릴 것은 가감 없이 버리게 되고, 제 삶을 정리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더라고요. 더 쉽게 말하면 이제는 ‘죽음의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는 느낌! 하여 그동안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나를 한곳으로 모으는 중이에요. 마지막 호흡이 끊길 때까지 죽음과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죽음은 마지막 호흡이 멈추는 것’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김정수- 저도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나를 모을 준비를 해야겠네요. 제가 첫 질문을 ‘죽음’으로 택한 이유는 죽음 이후의 영생이나 영원한 존재에 관한 관심 때문입니다. 저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영원’ 같거든요. 단절되지 않은 것들의 끔찍함 같은 거요.
김상미- 물론 죽음 이후의 ‘영원’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예요. ‘영원’에 대한 생각은 늘 하지요.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영원은 끔찍’하지요. 그건 절대적 관성 때문이기도 하고,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삶에 대한 끝없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지요. 삶이 결코 멈추지 않는 회전목마와 같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20대에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를 읽고, 그 책 속의 주인공처럼 만약 내가 죽지 않는 인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를 한동안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겠구나. 나는 그냥 나답게 살다가 죽자! 그렇게 마음먹었어요(웃음). 그 후부터는 되도록 순간에 충실하고, 영원에 대한 상상은 안 하기로 했어요. 그런 점에서 제게 ‘영원’이란 그냥 무無에 가까워요. 아니, 무無 그 자체예요. 지구가 영원이라면 저는 잠시 그곳을 다녀간 한 먼지에 불과한 거죠. 하여 저는 제가 영원히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는 사람이라는 게 무척 고맙고, 다행스러워요.
김정수-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현생과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한데 문학작품, 즉 시의 영원성은 어떨까요.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싶은, 그런 욕망 같은 거요.
김상미- 물론 저도 젊은 시절엔 ‘불멸의 작품’을 꿈꾸고,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혹은 포부가 있었지요. 젊음은 곧 야심이니까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욕망보다는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작품과 작가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꼭 문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불멸’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작품에. 그들을 읽고, 배우고, 느끼고, 듣고, 보는 그 과정에서 저는 참 많은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제가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입니다. 독서의 경험과 삶의 여정에서 겪는 경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고 하잖아요. 그 때문에 저는 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제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아주 솔직하게 씁니다. 하여 제가 죽고 난 뒤에 누군가가 제 작품을 읽고 그것에 공감하고 동질성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 같아요. 그건 예전에 꿈꾸었던 그런 ‘불멸의 작품’과는 다른, 아주 소박한 희망 같은 거죠(웃음).
김정수- 그래도 불멸의 작품은 아니더라도 이 시만큼 살아남았으면 하는 시가 있을까요.
김상미- 아무래도 저는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의 말씀 -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를 아주 좋아하고, 저 역시 ‘사랑’을 먹고사는 사람이라 세 번째 시집(『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시작, 2003년)에 실린 「사랑」이라는 시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 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사랑」 전문
김정수- ‘내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네요. 2017년에 출간한 김상미 시인이 사랑하고 사랑한 작가 11인의 창작노트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나무발전소, 2017)에서도 죽음보다 삶을 말씀하셨지요. 11인의 작가 중 잉게보르크 바흐만도 있는데, 바흐만은 「너희 말들」이란 시에서 ‘죽음에 아무 생각 없는 너’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책은 어찌 쓰게 된 건가요.
김상미- 이 책은 2000년대 초에 계간지 《시현실》과 《리토피아》에 연재했던 「작가앨범」 산문을 모아 만들었어요. 산문 청탁이 왔는데 그냥 잡다한 일상 대신 옛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유령과의 대화도 괜찮나요? 하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해서 제가 20~30대에 좋아했던 작가들을 상상 속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찾아가 만나는 형식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그들에 관한 책이 많지 않아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참 많이 뒤지며 발로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20대부터 이것저것 메모해왔던 노트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30매 정도의 짧은 평전이어서 중요 부분이 빠지지 않도록 애도 많이 썼어요. 그 원고를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온 나무발전소 김명숙 사장이 보고는 ‘언니, 이거 무조건 책 내자!’ 이렇게 해서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부족한 부분도 더러 눈에 띄지만, 책으로 나오니 무척 기뻤습니다. 반응도 꽤 좋았고요. 카렐 차페크의 『원예가의 열두 달』은 이 책 때문에 재출간되기도 했으니까요.
김정수- 죽음에서 삶으로 분위기를 좀 바꿔 보지요. 첫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세계사, 1993)를 낸 지 30년 만에 복간본(2023년 1월)이 문학동네에서 나왔습니다. 첫 시집이 ‘탄생’이라면 복간본은 ‘부활’쯤 되려나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김상미- 무지무지 좋았어요. 첫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는 2쇄까지 찍고 오랫동안 절판이 되었어요. 저도 소장하고 있는 게 3권 정도밖에 없어 서평을 쓰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돌려받기를 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복간이 되어 정말 기뻐요. 누구에게나 ‘첫’은 소중하잖아요. 30년이 지난 시편들이 새 옷을 입고, 다시 서점에 깔리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고, 대견했어요. 너, 죽지 않고 살았네! 하는 그런 기분! 게다가 복간 시집을 다시 읽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 현재 절판 상태인 2시집, 3시집도 차례차례로 복간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김정수- 자세히 비교해가며 읽지는 못했지만, 해설이 빠진 것과 시 수록 순서가 조금 바뀐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김상미- 네. 문학동네 포에지 복간 시집엔 모두 해설을 빼기로 했나 봐요. 시 순서가 몇 개 바뀐 것은 편집 배열상 문제로 그런 거고, 옛날 세계사 시집엔 ‘시인의 말’이 없었는데, 복간 시집엔 ‘시인의 말’이 들어갔어요. 그걸 빼면 옛날 시집이랑 똑같아요. 뺀 시도 없고 다시 넣은 시도 없이 그대로예요.^^
김정수- 초판 ‘시인의 말’에서 시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2022년 12월에 낸 5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에서는 ‘설사 시가 아니어도 나는 계속 시를 써왔다’고 했습니다. 시가 뭘까요.
김상미- 저에게 시는 ‘제가 살아가는 한 방식’이에요. 페르난두 페소아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했듯이 저에게도 시는 ‘제가 홀로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깨어 있게 하는 긴장감, 혹은 버팀목 같다고나 할까요. 때로는 시가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 같을 때도 있고요. 하여 저는 어떤 시를 쓰겠다고 작정하고 시를 쓰진 않아요. 시 쓰기에 특별한 기획 같은 것도 없고요. 제가 경험한, 쓰고 싶은 것들을 순간순간 착안해 써요. 제가 좋아하는 저만의 시 호흡법이 있어요. 온갖 경험을 들이쉬고, 시로 내쉬는~^^ 한마디로 말하면 시가 제 삶의 일기인 셈이죠. 그래서 시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고 더 솔직하게, 더 용감하게, 더 자유롭게, 더 다양하게 꾸밈없이 쓸 수 있는지도 몰라요. 제게 다가오거나 느껴지는 모든 불투명한 것들을 시로 투명하게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제가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김정수- 저는 요즘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고 있어요. ‘시가 삶의 일기’라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그렇다면 혹시 문학으로 이끈 스승이 있을까요.
김상미- 저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통해 자연스레 문학의 길로 들어섰어요. 독학인 셈이죠. 그러다 40대 후반쯤에 문득 깨달았어요.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끈 건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깨달음.
저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웬만한 글자는 다 깨쳤는데요. 그건 제가 글자를 좋아해 학교에 다니는 언니나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곁에 바짝 붙어 앉아서 소리 내어 교과서를 읽어달라고 했어요. 그게 국어책이든 산수책이든 자연책이든 상관없이…. 그러곤 그 내용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었다가 혼자서 더듬더듬 그 부분들을 그림 보듯이 따라 읽고, 또 읽었어요. 모르는 건 언니나 오빠에게 다시 물어가면서. 그러다 보니 글자들을 하나하나 깨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시장을 가다가 제가 간판들을 읽는 걸 보고 엄마가 놀라서 물었어요. ‘너, 글자를 아니?’, ‘응, 좀 알아’ 대답했더니, 그다음 날 엄마가 공책 두 권을 사주시며 ‘여기다 네가 아는 글자들을 매일매일 적어보아라. 대신 네가 모르는 단어는 그 뜻을 알기 전엔 절대 적지 말고, 꼭 네가 아는 단어들만 적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학교도 안 다니는데 숙제가 생긴 것이 너무너무 기뻐, ‘나비’를 쓰기 위해 나비들을 따라다니고, ‘잠자리’를 쓰기 위해 잠자리를 쫓아다니고, 모르는 단어는 동네 어른께 묻고, 혼자서 짧은 문장 만들기도 해보면서 글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어요. 그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는 버릇과 자연은 물론 인간을 사랑하고, 매일매일 메모하는 습관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모르는 걸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고, 저 또한 누군가가 무얼 물으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게 된 것 같아요. 엄마는 저와 잘 놀아주지 못해서 제게 ‘숙제’를 내주시고, 금방 공책을 다 채울까 봐 모르는 단어는 절대 쓰면 안 된다고 한 것인데, 저는 엄마의 그 말 때문에 글을 쓸 때 제가 모르는, 혹은 모호한 문장들, 특히 비문非文은 절대 쓰지 않고, 정확한 단어를 올바르게 사용, 전달하는 법을 저도 모르게 그때 습득한 것 같아요. 어릴 때 배운 게 평생을 간다잖아요. 그때 엄마가 제게 사준 공책 두 권이 저를 문학의 길로 자연스레 인도했듯이 제 문학의 스승 또한 엄마라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저는 학교에 가서도 글 잘 쓰고, 글 잘 읽고, 글씨 잘 쓰는 아이로 유명했어요(웃음).
김정수- 아, 부럽네요.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겨우 글자를 익혔는데요. 다섯 번째 시집 ‘시인의 말’에서 ‘문학이라는 그 사나운 팔자’라고도 했습니다. 문학에 첫발을 들여놓은, 팔자의 시작이 언제쯤일까요.
김상미- 그 팔자의 시작이 엄마가 사준 그 공책 두 권 때문이 아닐까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자를 좋아해 글자를 찾아다니던 그때, 이미 그 사나운 팔자가 형성된 게 아닐까요? 그 습관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교지를 도맡아 만들게 되고, 늘 책을 읽고, 글자를 모으는(글 쓰는) 일, 그 사나운 팔자가 지금까지 계속 쭈욱 이어져 온 걸 보면….
김정수- 훌륭한 어머니시네요. 저는 중·고등학교에서 문예반 활동을 한 시인들이 참 부럽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군대에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김상미- 중·고등학교 때 거의 혼자서 교지를 만들면서 저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도 쓰고, 산문도 써서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친구 이름으로 교지에 싣기도 했어요. 교지에 실을 작품이 부족했거든요. 하지만 학교 다닐 땐 산문 백일장에 나가면 거의 장원을 했지만, 시로선 장원을 한 적이 없었어요. 늘 차상이었어요. 선생님들도 문학을 하지 말고 법관이 되라고 했어요. 굳이 문학을 하려면 시 말고 소설가가 되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시인이 될래요. 꼭 시인이 될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 당시 어딘가에서 읽었던 ‘시인은 천형天刑을 타고난 운명’이라는 말이 너무 멋있게 느껴진 탓도 컸어요. 아마 그 형벌을 지금까지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요(웃음).
김정수- 삶의 무늬가 다 다르긴 한데 공부도 잘했고, 글도 잘 썼는데,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상미- 저는 가정 형편상 그 당시 대학 진학이 어려웠어요. 하여 고2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성적 좋은 학생은 못 되었어요. 글은 잘 썼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몇몇 선생님은 대학 진학을 못 하는 저를 무척 아까워하셔서, 등록금이 거의 없는 신학교나 여군에라도 가라고 설득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엔 지금과 달리 모두가 힘든 시대라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제게 큰 기쁨을 주는 문학을 붙들고 그 시절을 잘 참아낼 자신이 있었어요. 물론 그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불이익도 당하고 크고 작은 대가를 기꺼이 치르기도 했지만요(웃음). 그 대신 얻은 것도 많아요.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을 통해 크게 보는 법도 배우고, 글쓰기를 통해 가부장적 세상의 불평등과 젠더, 소외, 가난이 주는 갈등과 불편함을 나름대로 용감히(?) 잘 극복해 왔으니까요.
김정수- 저는 글쓰기가 참 좋은 치유라 생각합니다. 시 덕분에 고단한 삶을 견뎠다 생각하고요. 과거의 삶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등단 이후 서울에서 줄곧 산 건가요.
김상미- 네. 서른한 살 가을쯤에 서울로 올라와 여태껏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어요. 시력이 33년이니 그동안 서울에서 혼자 산 햇수만도 35년쯤 되겠네요.
김정수- 저와 같은 1990년 등단이니 서울에 올라온 지 2년쯤 등단하셨네요. 초기 현대시학회에서 활동했는데, 문단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등단해 사실 저는 잘 모르거든요.
김상미- 제가 등단한 해가 1990년 초여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1990년대는 한국문학의 전환점,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1980년대를 풍미하던 이데올로기 문학과 리얼리즘 문학이 침체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물밀듯이 들어왔습니다. 그 물결을 타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구조주의 기호학자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텔켈’(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인 필립 솔레르스가 만든 잡지) 그룹에 속하는 라캉, 데리다, 롤랑 바르트, 크리스테바, 미셸 푸코, 소쉬르, 모리스 블랑쇼 등. 또 한 편으로는 전후 독일 문학 작가들(토마스 베른하르트, 뷔히너, 귄터 그라스 등등)과 비엔나 47그룹 작가들(바흐만, 파울 첼란, 페터 한트케, 에른스트 얀들 등),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 조르주 바타유,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마르그리트 뒤라스, 오에 겐자부로, 조지 오웰, 실비아 플라스 등을 비롯한 영미와 유럽 쪽의 새로운 작가들, 또 한편으로는 백석, 김수영, 이상 등을 비롯한 우리나라 모더니즘 시인들이 재조명되고, 스페인과 중남미 쪽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사람들에 의해 보르헤스와 옥타비아 파스, 마르케스 등의 작가들이 새롭게 소개되면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또한 활발하게 재해석되었지요. 그야말로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풍성하고 화려한 새로운 물결들이 넘실넘실 파도타기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한국 문단에서도 젊고, 새롭고, 개성 있는 시인들과 소설가들이 대거 출두하였고요. 문예지 《외국문학》, 《현대시사상》, 《작가세계》, 《문학사상》, 《현대시학》, 《문학정신》, 《문학예술》 등에서 이 새로운 작가들을 대거 수용, 소개해 주었죠.
저 역시도 이 시기만큼 많은 책을 읽고, 영화, 미술 등의 정보를 수용하고 탐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이 그들을 빨아들이느라 뚱뚱한 스펀지 같았으니까요.
그 당시 《현대시학》의 주간이신 정진규 선생님과 《현대시사상》의 주간이신 이승훈 선생님만큼 전국의 좋은 시인들을 발굴해내시던 분들도 드물고, 젊은 시인들의 시를 깊은 애정으로 읽어주시던 분들도 드물었지요. 제가 일하는 곳이 그 두 잡지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있어 그분들이 저를 호출하면 언제든 달려가 도움을 드렸지요. 그 와중에 ‘현대시학회’를 만드는 데 저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문학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고, 참 재미있고, 인간적으로 무척 낭만적인 시대였지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고, 격려가 되고자 한, 참으로 젊고, 뜨거운 시절이었지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제 인생에서도 가장 활기차고 순수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 왕성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술도 많이 마시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미친 짓도 많이 했던 그런 시절(웃음)! 새삼 그 시절이 참 그립네요. 김정수 시인도 그 중심에 있었던 피 뜨거운 시인 중 한 분이었지요. 정말 그때가 참 그립네요(웃음).
김정수- 저는 그때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습니다. 외국 문학이나 그 이론에 참 무지했어요. 국내 문학 따라가기도 벅찼으니까요. 새삼 부끄럽네요. 저와는 현대시학회나 시인축구단 ‘글발’에서 같이 활동했지요.
김상미- 네. 시인축구단 ‘글발’은 축구를 잘하거나 좋아하는 시인들이 모여 만든 팀이지요. 저는 여자라 직접 축구 경기에 참여하진 않지만, 김정수 시인은 그때 전윤호 시인이랑 함께 골키퍼였지요. 우리나라 최고 골키퍼 이운재 선수를 닮았다 하여 우리 모두 ‘이운재 골키퍼!’로 불렀지요. 축구팀 이름도 정하고, 유니폼도 맞추고, 본격적으로 ‘글발’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부터인 것 같아요. 이름 없이 지낸 그전까지 다 합하면 이 모임도 30년이 조금 넘어가네요. 저도 1년 넘게 단장을 한 적도 있을 만큼 ‘글발’ 축구팀 친구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만큼 오래된 시우詩友들도 없으니까요. 1990년대는 ‘글발’을 이기는 축구팀이 거의 없을 정도로(그땐 선수들이 모두 젊었으므로) 기세등등했죠. 대부분 공과 함께 날아다녔죠. 지금은 대개가 환자들이죠. 김정수 시인도 축구 환자잖아요.^^ 아마 안 다친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이도 많아지고요. 그 때문에 경기 때마다(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경기하고 있거든요) 져도 좋으니 제발 다치지 말라는 기도를 저도 모르게 하게 되어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열정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나 봐요. 제 생각에도 ‘글발’은 참 대단한 축구팀 같아요. ‘글발! 詩발! 파이팅!!!’
김정수- 저도 초창기 때 글발에서 골키퍼를 보고, 감독도 했으니 인연이 깊지요. 이번 시집에 「FC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축구에 대한 시도 몇 편 있지요. 특히 메시를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요.
김상미- 네. 아마 축구선수를 인간적 매력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건 메시와 모드리치가 마지막일 것 같아요. 메시 이전의 선수들 – 우리나라의 차범근, 박지성,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 로타르 마테우스, 브라질의 호나우두, 호베르투 카를로스, 호나우딩요,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켐페스, 다니엘 파사렐라,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오언,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등에게서 느꼈던 그런 인간적 매력과 흥분은 이제 앞으론 못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대도 변하고 인간도 변해 축구선수들도 이제는 상품화되어 거대한 자본주의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 것 같아서요. 어떤 선수가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예전 같은 가슴 설레는 인간미와 흥분을 못 느끼니까요. 아마 나이 탓이 클 거예요. 몇 년 전부터 밤새워 축구 경기 보는 걸 그만두었거든요. (웃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선수 중엔 이강인을 무척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더 멋진 선수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김정수- 와, 유명 축구선수들을 줄줄이 꿰고 있네요. 저도 박지성이 맨체스트 유나이티드 선수일 때는 늦은 밤에도 봤는데, 지금은 거의 안 봅니다. 시인인 동생도 글발 멤버이죠? 소개 좀 해주세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시를 보여주는 게 어려울 수 있지요. 서로 쓴 시를 보여주나요.
김상미- 제 동생 김점미 시인은 200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해 시집, 『한 시간 후, 세상은』(북인, 2013)과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산지니, 2021), 그렇게 2권의 시집을 내고, 요산창작기금과 이주홍문학상을 받았어요. 시력에 비해 시집을 적게 낸 편인데 아마도 고교 교사로 오랫동안 임무에 충실한 탓일 겁니다. 이제 명예퇴직을 한 상태라 문학에 대한 자세도 좀 진지하고 여유롭게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동생이 같은 시인이라는 게 참 좋아요. 든든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서울과 부산이라는 거리상 문제 때문인지 급하게 조언이 필요할 때가 아니면 서로의 시에 대해 토 달지 않는, 아주 자유로운 편이에요. 대신 동생이 발표한 시는 큰 관심과 애정으로 일일이 찾아 읽고 따라 읽어요. 아마 제가 언니라서 그런가 봐요.^^ 요즘은 동생의 도움 덕분에 주거 환경이 좀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어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저보다 동생이 경제적으로는 더 언니 같다고나 할까요(웃음)?
김정수- 저는 가족사를 시로 많이 쓰긴 했어요. 한데 선생님의 시에는 가족사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대신 과감하다 할 만큼 연애사가 담겨 있는데요. 시 한 편 소개해 주세요.
김상미- 제 첫 시집에 있는 「그 집」이란 시를 소개할게요. 서울에 오기 전의 제 가족들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시 한 편에 제가 쓰고 싶은 가족사 혹은 가족애가 듬뿍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언제나 그 집이 그립습니다
대청마루 한켠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와
혀를 끌끌 차시면서도 끝까지 신문을 읽어내리시던 아버지
토닥토닥 싸우면서도 동생과 함께 듣던 모차르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김민기의 노래가
뭐든지 숨길 수 있고 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타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던 집이,
집 안의 집,
우리 집이 그립습니다
그 집에서 나는 삶의 계율을 익혔습니다
동그랗게 깎인 사과의 심장을 맛보았습니다
불가사의한 가족의 현, 그 나긋나긋한 갈등들을 호흡했습니다
평탄하진 않았지만
사방으로 난 창문 밖으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마당 한 모퉁이 깊은 우물 속 짙푸른 이끼 냄새가
벽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냄새만으로도 세월의 굴곡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지붕 아래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포클레인의 방문과 함께 시작된 생체해부 이후
그 집은 도로가 되어버렸습니다
크고 작은 차들로 흩뿌려진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애는 존재하지만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추억이, 음악이, 환희의 정령들이, 짙푸른 숨소리가 한없이 배어 있던
벽돌들은 다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집의 내력 또한 거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더이상 그 집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집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집 안의 집, 우리 집은
형이상학 속으로 잠겨버렸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발굴되지 못한
황금의 사닥다리
그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건
햇빛뿐입니다
바람뿐입니다
기억뿐입니다
가까스로 타오르는 옛정뿐입니다
그 집이 그립습니다
그 집의 활기, 그 집의 유리창, 그 집의 우물, 그 집의 흙, 그 집의 채송화, 그 집의 가족들이
다 그립습니다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 잠을 설쳤다던 옛 켈트족처럼
내 삶에서 그 집이 무너져 내릴까 겁이 납니다
하여 나는 아직도 그 집에 빗장을 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집의 영화처럼 초목을 삼키고, 보도를 삼키고, 시간을 삼키고, 슬픔을 삼키고, 체취를 삼키고, 사람들의 뜨거운 한숨을 삼켜
어찔어찔한 옛 향기로
천천히 심연으로,
심연으로 기울어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끝에 있었습니다
그 집이 그립습니다
눈물겹게 그립습니다
- 「그 집」 전문
김정수- 시집에는 연애사만큼이나 읽은 책이나 그림, 영화, 사진 등이 시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김상미- 맞아요. 하지만 사랑시라 하여 다 연애사인 건 아니에요. 여성들이 사랑시를 쓸 때 꼭 어떤 특정한 대상을 두고 쓰는 건 아닙니다. 여성적 특성상(사랑=죽음=삶) 사랑시 형식이 자신을 풀어내고 숨김없이 드러내는 데 최상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이 쓰는 사랑시는 모두 연애시라고 치부하는 건 좀 구태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성 시인들이 형상화하는 사랑은 남성 시인들의 사랑과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아무리 세상이 성차별 없이 평등해졌다고 해도 여성이 지닌 육체적 조건이나 의식의 지향성, 사회적 환경 등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여성들은 그 많은 상흔을 사랑과 죽음이라는 한 그릇에 담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하여 여성 시인들의 사랑은 ‘죽음’이나 ‘절망’과 깊게 관련되어 있어요. 꼭 연애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처한 삶 자체를 사랑의 상실, 사랑의 파탄,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로 바꿔 충분히 노래할 수 있어요. 순간순간 느끼는 자아의 죽음을 사랑에 비유해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제 시에 책이나 그림, 영화, 사진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고의로 그러는 게 아니라 제 경험이나 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풀려나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 점이 저도 때로는 신경 쓰일 때가 있는데… 제 머릿속에 든 게 온통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파편들뿐이니 잘 고쳐지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제 삶이기도 하고요.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제가 추구하는 것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엔 그들이 제 글의 소재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저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셈이기도 하고요. 제 시를 읽고 다른 사람들도 제 시에 나오는 그런 좋은 작품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다시 한 번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빌려와 쓰지는 않아요. 보편성과 공감도를 위해 그 속에 저 자신을 통째로 제물로 바치니까요(웃음).
김정수- 제가 언급한 ‘연애사’는 앞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아주 솔직하게 씁니다’의 연장입니다. 읽은 책이나 그림, 영화, 사진을 언급한 것도 작품을 빌려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재적 차원에서 한 질문입니다. 용어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죄송합니다.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네 번째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 2017)와 다섯 번째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의 표지가 다 녹색이네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상미- 특별히 녹색 표지의 시집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에요. 출판사에서 보내준 표지 시안 중 그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서 정한 게예요. 시집 제목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녹색은 악마의 색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는 깨어 있는 색, 자연의 색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안정감을 주는 색이기도 하잖아요. 그 때문인지 저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녹색이 좋아지고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노란 병아리색이었는데^^
김정수- 표지가 녹색인 이유가 시집 제목에 ‘자연’이 들어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갈수록 자연이 되어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김상미- 말 그대로 자연스레 잘 늙어가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죠(웃음). 이 표제의 시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을 읽고 난 후에 쓴 시 「한겨울, 버섯요리를 하며」에 나오는 시구예요. 저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에 나오는 여자들을 무척 좋아해요. 그녀는 ‘인간과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늘 사유하게 만들어요. 자연이 여자의 집이라는 걸 아는 작가인 셈이죠.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인 저도 여자들의 장소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인 거죠. 더 쉽게 말하면 자연인 ‘나’로 돌아간다는 뜻이지요. 구모룡 평론가의 해설처럼 ‘무위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인 셈이죠. 이젠 제 위에서 한꺼번에 많은 비(고난·고통 등)가 쏟아져도 견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김정수- 읽을 책 한 권이 더 늘었네요. 시인 개인에 대한 시를 쓰는 게 쉽지 않은데, 이번 시집에 「최승자 시인」이라는 시가 있어요. 왜 최승자일까요.
김상미- 최승자 시인을 제가 참 좋아해요. 인간적인 매력도 있고요.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한 잡지에서 1970년대 이후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 시를 쓰는 청탁이 왔어요. 그래서 「최승자 시인」을 쓰게 되었어요. 처음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읽고는 깜짝 놀랐어요.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일제히 활활 타올라 펑펑 터지는 것 같았어요. 그만큼 그녀의 시어들은 강렬하고 처절하지만, 그럼에도 놀라울 정도로 언어들을 잘 다루고, 그 언어들이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잘 배치돼 있었어요. 그 뛰어난 언어 능력, 언어 내공으로 인해 오히려 깊은 절망보다는 독특한 매혹과 신비를 느끼게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시 자체는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난폭하고 냉소적이고 절망적인데도 시 속의 최승자는 아주 곧고 명료하고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리고 정말 솔직하고 순수했어요. 그녀가 남달리 글을 참 잘 쓴다는 건 그녀의 산문집을 읽어보아도 금세 알 수 있어요. 얼마나 시대의 소음과 절망을 자신만의 줄넘기로 잘 넘고, 넘어가려 하는지 놀라울 정도죠. 그런 시인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어요. 이유 없이 그냥 좋고, 마냥 좋은 거죠(웃음).
김정수- 전체적으로 보면, 직접적인 사회적 참여 시가 좀 드문 편인데 이번 시집에는 촛불 집회에 대한 시가 있어요.
김상미 -이번 시집은 묘하게도 시인으로서의 제 자서전 같은 시집이 되어 버렸어요. 여자 혼자서 하루하루가 난파 직전의 조각배 같은 곳에서 시 쓰며 산 세월이 몹시도 아팠나 봐요. 제 시에도 직접적인 사회적 참여 시들이 더러 있는데 이 시집엔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요. 저는 모든 글쓰기는 그게 어떤 글이든 펜을 들고 쓰는 순간, 사회적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까요. 김정수 시인이 말한 「당신의 진짜 얼굴」은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쓴 시가 맞아요. 어떤 특정인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권력에 대한 시죠.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그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오염시키느냐에 대한 섬뜩함과 그 안에서도 끝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염원을 표현한 시죠. 랠프 앨리슨이 말한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과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나 자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김정수- 제가 선생님의 ‘사회적 참여 시’라 한 한 것은 선생님의 시에 사회적 문제나 불균형 같은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 드물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이라 한 것이고요. 이번 시집에서 「당신의 진짜 얼굴」이 다른 시와 결이 조금 달라 질문을 한 것이고요. 다음 시집의 방향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어떤 건가요.
김상미- 지금까지 써왔던 대로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요. 특별히 어떤 시를 쓰겠다는 그런 기획은 없지만 제 삶이 제 모든 시의 소재이니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제 사유에 따라 시도 그렇게 발맞춰주지 않을까요. 되도록 우리 삶에 상처를 주는 비자연적인 언어나 비속어들은 멀리하고 싶은데, 세계가 이 모양이니 잘 될지 모르겠어요.
김정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 좀 들려주세요.
김상미- 달팽이처럼,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살아요. 그러면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을 되새기죠. ‘나는 행복을 찾아 모든 곳을 헤맸지만, 결국 어느 한구석에서 책을 읽다 행복을 발견했다’는. 저도 그렇게 작은 기쁨들을 모으고 즐기며 살아요. 역시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게 더 큰 행복이네, 즐거워하면서요. 그러다 심심하면 영화도 보고, 좋은 전시회도 가고, 제가 많이 좋아해서 평생 갈 것 같은 정독도서관의 ‘시作의 풍경’ 팀과 만나 수업하고, 틈틈이 김정수, 조현석 시인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렇게 살아요. 매일매일 홍제천을 산책하듯 아주 평안하고 자연스럽게. 제 동생 말을 빌리자면 ‘아무 발전이 없는,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처럼요(웃음).
김정수-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의 행복을 저도 느껴보고 싶네요. 저는 채울 새도 없이 쓰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김상미 제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부디, 이 세상 시집들을 많이 읽어주시고, 어제보다 더 많이, 오늘보다 더더 많이, 내일보다 더더더 많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김정수- 오랜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상미- 저는 문학의 가장 깊은 본질은 쓰기가 아니라 읽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터넷 세계로 이동하면서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독서가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가를 제발 잊지 말고, 진심으로 그 놀이에 동참, 몰두할 수 있었으면 해요. 책은 기억을 재생시키는 열쇠입니다. 기억이 하나둘 살아나면 쓰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간이 문학을 발명한 건 세상이 인간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이 불안전하고 불행한 시절, 책을 통해 자신의 안전망을 획득하시길 바랍니다. 장시간 저와 함께해주신 김정수 시인과 ‘시작의 풍경’ 친구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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