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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의 선택> 나는 나를 경영한다.
백지연/ 다우
고통은 나눌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의 의미는 나눌 수 있다.
고통이란 오르지 홀로 겪어야 하는 무엇이다. 사랑하는 이들, 부모, 형제, 친구,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홀로 이겨낸다는 것은 지독한 아픔이지만, 그때 진정한 극복이 있고 승리가 있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사실’보다 힘센 소문.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된다.
물에 빠져도 고개만 돌리면 기슭이다.
‘성공’보다 ‘감동’의 대상이 되고 싶다.
나태해지면 이름을 생각한다 /
나태해질 때, 내 이름을 생각한다. 이름은 나의 얼굴이고 나의 라벨이며 나의 자존심이다.
고통 때문에 자지러질 때에는 홀로 실컷 울 곳을 찾는다 /
눈물은 영혼을 카타르시스하는 진수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위로, 아니 좀더 확실하게 말하면 동정을 얻고 싶어서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 앞에서 울 수 있을 때는 고통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 때이다. 주변의 모든 동정이나 위로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유난히 잠이 안 올 때는/
웬 횡재인가. 모처럼 나만을 위한 시간을 얻었다. 만화를 읽든, 글을 쓰든, 손톱을 다듬든…. 시간이 아깝다는 강박관념 없이 덤으로 얻은 시간. 잠이야 나중에 자면 그만이지.
나는 나를 경영한다 /
티베트에는 ‘내일이면 집지리’라는 이름의 새가 있다고 한다. 이새는 날씨가 따뜻한 낮에는 실컷 놀고먹다가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추워지면 오들오들 떨면서 ‘날이 새면 당장 집을 지어야지.’ 결심했다가 날이 밝아 햇볕이 나서 포근해지면 지난밤 추위를 새까맣게 잊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내일이면 집지리새’와 완전히 반대인 새가 있는데, ‘내일은 추우리’라는 이름의 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새인데, 다른 새들은 모두 놀기 바쁜 대낮에 뜨거운 햇볕을 등지고 ‘내일은 추울 거야’라고 걱정하며 집만 짓는다. 걱정을 태산처럼 짊어지고 집만 짓느라 생을 즐기지도, 여유 있게 보내지도 못한다. 한 새는 너무 게을러서 탈이고, 다른 한 새는 쓸데 없이 부지런해서 탈이다. 이 두 새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전략 부재의 삶’
자신을 경영하라 /
21세기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아무도 나의 지적, 육체적 노력을 대신해줄 수 없다.
삶에 ‘if'는 없다 /
행복은 ’느끼는 만큼‘ 커지고, 불행은 ’빠지는 만큼‘ 깊다는 말이 있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주제가가 있다면 ’~가 내게 있다면‘, ’~한다면‘ 하는 가정법 메들 리가 아닐까?
때론 단호하게 ‘생각 중지’ 명령을! /
내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가정법적 사고가 꿈틀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단호하게 ‘생각 중지’명령을 내리고 뇌와 마음을 쉬게 한다.
캐리어 개발을 위한 키워드/ ‘나는 안 돼’, ‘내 주제에 뭘….’ 하는 식의 자기 비하나 자기 학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내팽개치는데 대체 누가 나를 아껴주겠는가.
“여성들은 같은 여성 중에 좀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봐주질 않고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e-월드에서 기술은 계급적 서열도 가리지 않고 학력의 서열도 가리지 않으며 지연 학연의 구분도 없다.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다. 드디어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21세기 정보화사회는 수평적이고 감각적이며, 유연한 사고방식이 강조되는 시대이고, 따라서 여성 특유의 감성적인 리더십과 유연한 경영방식이 인정받게 될 것이다. 여자로서 성공하는 것도 힘들지만, 성공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여성의 경우, 능력보다 외모, 이혼경력 등 사생활에 관심이 집중되고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즉각 ‘설친다’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한다.
@는 성(性)을 묻지 않는다 /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한 부부 동반 송년 모임에서 남자와 여자가 따로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들끼리 모여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고,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모여서 아이들과 살림살이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백지연씨는 남자들 쪽에 않으세요” “사모님, e-메일 할 줄 아세요?”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라, 예전에는 사회 활동을 하는 남성들이 아무래도 정보를 얻어내기가 쉬웠다. 회사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구체적인 업무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보를 활용하는 법에서도 여성보다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횡적 매체가 등장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가! TV를 보듯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인터넷 세계에 접속만 하면 정보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 좋은 정보를 골라내고, 축적하고, 정리하고, 가공하는 데는 섬세하고, 눈치 빠르며, 감각적인 능력이 더 유리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금 당장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다. 지금 당신을 막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디지털로 사고하고 아날로그로 느끼자 /
나는 디지털이 좋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세상의 편리함이 좋다. 인터넷은 내게 ‘정보 성역’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주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금광과도 같다. 아무런 자격증도 필요 없고 신분 차별도 없다. 국경도 없고 물리적 거리도 뛰어넘는다. 이 책의 원고는 완성될 때마다 곧바로 출판사에 e메일로 보내졌다. 원고를 주고받으려고 왔다갔다하지 않아도 되고, 저자의 원고를 새로 타이프할 필요도 없어졌다. 편리한 건 둘째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절약될 수 있는가? 속도의 ‘황제’디지털 기술 덕분에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쓰면서 과거의 48시간의 효율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삶이 세이브되는 것이다. 나는 아날로그의 시간을 남기려고 디지털로 일한다. e메일로 메신저가 되고, 뉴스를 볼 때도 디지털 월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새벽녘 교회에 다녀온 추 샤워를 하고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때, 어김없이 한강이 보이는 창을 마주하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쇼팽을 들으며 진한 블랙커피를 마신다. 그 시간만큼은 그 어떤 디지털도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열흘에 한 번 정도는 ‘종이책’을 파는 서점에 나가 책을 고른다.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생일에는 e-메일보다는 ‘종이카드’를 직접 골라 펜으로 축하의 마음을 써보낸다. 그것이 내 삶에 자유와 숨결을 주는 나만의 고유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중에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아날로그 시간!’ 그것은 바로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대로 느끼려고 나는 다른 모든 시간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디지털로 일하고 아날로그로 느끼자!”
살이 찌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책을 사러간다 /
무지무지 재미있는 책, 한번 잡으렴 쏘옥 빨려드는 책, 스티븐 킹의 소설이 제격이다. 독서에 속도가 붙을 때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세요. 온통 먹는 것에만 신경이 쏠려 있던 자기 자신이 갑자기 미물로 보이고 각성하게 된다구요.
‘일등주의’에서 ‘유일주의’로 /
이제 사회는 ‘아군과 적군’ 또는 ‘나와 너’의 경쟁보다는 횡적인 연대, 네트워킹을 통한 협력을 중시할 것이라는 예측.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시대가 21세기이다. 서열을 매개는 경쟁이 아니라 나의 ‘절대치’를 높이려고 나 자신과 경쟁을 해야 한다.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 그것이 21세기의 ‘나의 과제’이다.
자신의 핵심역량을 개발하라, 쉰 살을 넘긴 여성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컴맹 아줌마’ 성인 대부분이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지만 차의 엔진이나 구조를 알고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만들 줄 아는 최고의 기술자를 부리면서 일한다.
그녀는 아름답다. /
인류 역사 이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본능이 아닐까. 젊은 여성에[게 “예쁘다”고 할 때 그 말은 능력과 상관없이 예쁜 얼굴 하나로 한몫보고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예쁘다는 말은 어쩐지 젊음이 동반되는, 20대 미만에 한정된 표현 같아서 찰나적이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아름답다’는 말은 외모뿐만이 아닌 그 사람의 내면까지 포함하는 표현 같아서 그윽하고 품위 있게 느껴진다.
이혼한 경우, ‘이혼당했다’ ‘이혼해버렸다’ 식의 수동적인 표현은 삼가고 ‘이혼에 성공했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라. 주변에서 묻기 전에 먼저 얘기하라. 당신이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말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당신을 대할 수 없다.
최후의 순간까지 따져라 /
연애할 때는 “결혼하면 당신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좋겠어” -“다른 집 여자들은 돈도 잘 벌어도더구만” “나는 일하면서 자신을 성취해나가는 여성이 좋아. 결혼하면 아줌마처럼 팍 퍼지는 여자는 딱 질색이야.” 남편의 말에 도취하여 정말 멋진 남자를 만났다고 흥분하지 마라. 사실 학력과 빈부 격차를 막론하고 부부가 거대담론이나 추상적인 문제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현실은 낭만적인 감정이나 환상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잔인하다.
“너보다 잘난 남자랑 결혼해!” /
자아 성취형의 여성이면 아내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만큼 중요시하며 아내가 내조하듯 자진도 외조할 수 있고, 아내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자신감 없는 남자,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모자란 남자를 만나게 되면 정말 대책이 없다. 자신감 없는 남자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다. 남자의 열등감은 끝없는 부부 싸움의 원천이며 백약이 무효한 고질병이다. 아내가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남편을 우습게 봐서이고, 반대로 침묵을 택하면 남편을 무시하는 게 된다. 이런 남편은 아내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모든 일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한, 그는 아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아도 아내를 라이벌로 생각해 ‘아무리 잘난 척 해도소용없어. 내 말 한마디에 꼼짝 못 하잖아’하는 식으로, 매우 권위적인 방식으로 아내를 억누른다. 과잉반응으로 폭력까지 난무할 수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평강공주 콤플렉스’ 온달다운 온달을 만나지 못하면 더는 평강공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널 기다린다” /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부스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윌리엄! 어서 크렴. 세상이 널 기다린단다.” 교육을 그리 많이 받지 못했던 평범한 어머니였지만, 그녀는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축복과 가르침을 준 것이다.
일하는 엄마가 좋다! /
어쩌면 이것은 일하는 엄마의 자기 위안일 수 있고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일하고, 아이 앞에 당당하기 위해 일한다. 아이는 내 양심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방부제’와도 같다. 나는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안타까울 때마다 “아들아,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열심히 일하고 더욱 노력할 게. 네가 무럭무럭 자라듯 엄마도 계속 성장하마. 그래서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땐 더 든든한 엄마로 서 있을 게.
백야가 준 선물/
‘백야’는 내가 프리랜서가 된 이후 처음 진행한 프로그램. 토크쇼, 그것도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에 나와주는 게스트는 모두 귀한 손님이자 고마운 사람들이다. 백지연 씨가 눈 똑바로 뜨고 갑자기 ‘그런데 말이죠.’ 때아닌 시사문제라도 질문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한다. 토크쇼의 진행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정보나 뉴스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앵커, 따뜻한 방송이인이 되고 싶다. ’함께 대화하는 방송인‘
에필로그 Iam free /
앵커가 된 이후 12년 동안 새벽 3시 기상. 그런데 24시간이 내 마음대로 라니. 우와! 내 인생, 내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창업했다!, 내 꿈은 늘 내 현실을 앞서갔다. 하나의 목표를 채우고 나면 어느새 나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나는 계속 배우고 싶었고 베테랑 앵커가 아니라 계속해서 열심히 뛰는 방송인고 되고 싶었다. 조직에 있든, 밖으로 나오든 내가 믿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 자산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물인 ‘나’라는 자산 가치에 자신이 있다면 독립하자. 나는 ‘나’하나를 믿고 창업한 것이다.
나는 편견과의 싸움은 계속할 것이다 /
1999년 내가 겪었던 그 소문, 여성에 대한 편견, 성공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남성의 성공은 능력이고 여성의 성공은 후광으로 보고 싶어하는 시각) 이혼한 여성에 대한 폄하, 가부장적 권위주의.
무릎의 먼지를 털고 다시 일어난다 /
방송과 강의, 학업 등으로 지난 10년을 투자해 얻은 결실을 계속 재활용하고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개인 창업을 했으니 내가 사장이고 국장이고 사원인데 무엇을 계획하지 못하고 무엇을 집행하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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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지연에 대해 모른다. 알긴 알지만, 관심이 없었다. 백지연이 진행하는 프로는 보았었지만, 게스트를 보았지 진행자를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백지연은 너무 이름이 컸고 백지연은 너무 잘났고 백지연은 너무 도시적이었다. 늘 자신만만한 태도의 백지연을 보면서 해가 비쳐도 그림자라고는 없는 완벽한 ‘신선’같은 ‘너무’의 존재였다.
며칠 전, 무르팍 도사를 보는데 백지연이 나왔다. 무슨 일로 연루되었다가 다시 방송에 복귀한 강호동을 보고 있었다. 강호동은 거리에 지나가면 자신의 신체적 부위를 보며 놀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잘나가는 시절’이라 했다. 지나가는 강호동을 보며, “힘내세요” “강호동, 파이팅!” 을 받을 때의 짠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 그 너무의 주인공 백지연이 풀어놓는 토크를 보며, 비로소 백지연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나는 나를 경영한다’ 백지연이 쓴 책을 빌려왔다. 생각보다 오래된 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10년 전 무엇에 몰두했었는지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잘 몰랐다.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일에 신경을 끄고 사는 문외한이다. 나는 지금도 나는 백지연을 똑똑한 여자로만 기억한다.
이미 백지연의 삶을 지침 삼을 나이는 아니다. 그런 딸을 키워낸 어미도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떠오르고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었다. 나는 아들만 둘을 둔 어미이기에 시어머니밖에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리 없다. 여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한다는 롤모델 백지연. 며느리나 딸이 아닌, 자연인 백지연을 읽었다. 내눈에 백지연은 예쁜 여자는 아니다. 그녀의 말대로 아름다운 여자에 가깝다. 내 아들들의 짝지도 '아름다운 여자'이기를 바란다.
류창희 수필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