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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의 성모성지/순례지
2. 성모 발현성지 (교회 공식승인)
3. 한국천주교회와 성모마리아
4. 천주교가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니 ?
5. 성서안의 마리아
6. 한국의 성모성지.순례지
7. 성모의 밤 행사 (예시문)8. 마리아의 종
9. 성모님의 중요 메시지10. 성모님과 성화상 공경
11.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들12. 마리아의 4가지 교의
1. 세계의 성모 성지 / 순례지
성지(聖地)란 말은 특히 거룩한 곳으로 인정받은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곳과는 구별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국가나 교회를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들의 무덤이나 유해, 성화나 성상 등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지는 흔히 교회가 주도하기 이전에 신자들의 열렬한 신심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교회가 추인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성지에서 드리는 기도는 그 성지의 특수한 "신심"에 따른 기도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최초의 카리스마는 퇴색되기 쉽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사건과 신심은 남기 마련이다. 대개 이런 것들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 성지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준다. 그래서 교회는 가능하면 최초의 카리스마와 신심 등을 보전하고, 공적 예식을 통하여 고유한 특성을 확립하려고 애쓰고 있다. 왜냐하면, 성지는 특별한 어떤 신앙 개조를 보전하거나 이교와 열교를 피하게 하고 또 하느님의 백성을 하나로 일치시키며, 그들의 영성을 살찌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교회가 인정하는 셈이다.
성지는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다. 여기서는 성모님과 관련되는 성지가운데에서 세계적인 성지로 꼽히는 곳들을 나라별로 소개해 본다.
남아프리카
* 숑웨니의 성모-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상이 더반 교회 언덕에 서 있다.
* 알퇴팅의 성모- 뮌헨에서 60마일 지점에 위치한 성지. 이 곳의 성당은 황제궁의 일 부이며(877년),
성모님의 성화는 122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 케벨렐의 성모- 남부 라인에 위치한 이 성지에는 룩셈부르그의 위로의 성모상이 있 다.
한 군인이 이 성상을 이곳에 모시자마자 큰 성지가 있다.
멕시코
* 과달루페의 성모
미국
* 무염 성모 성지
* 젖과 행복된 구출의 성모(DE LA LECHE Y BUEN PARTO)- 플로리다주 세인트 어거스틴 교외에 있는 성지로서 17세기부터 시작되었고, 현재의 성지는 1915년에 재 건되었다.
* 승리의 성모(LA CONQUISTADORA)- 뉴멕시코의 산타페에서 1692년에 시작된 성지.
베트남
* 라 방의 성모- 발현이 있었던 후에에 있는 성지(1800년). 공산치하 속에서도 수십만 명이 순례하영ㅆ다.
벨지움
* 보렝의 성모
볼리비아
* 코파카바나의 성모- 자신의 보호에 감사하는 뜻으로 어느 인디안 어부가 만든 성모 상(목재와 석고로 만든 상).
북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숫가 성당에 있었는데, 1925 년에 대성당이 세워졌다.
브라질
* 나자렛의 성모- 북 브라질의 어느 종려나무 아래 두 사냥꾼이 세운 성모상.
* 발현의 성모- 원래는 어느 강가의 어부 몇 사람이 세운 머리 없는 성모상(목재). 1719년에 머리가 얹혀졌고,
나중에 상 파울로 교회의 새 성당으로 이전하였다. 발현 의 성모는 브라질의 수호성인이다.
세일론
* 마두의 성모- 17세기에 세워진 성지. 신자와 비신자가 구별없이 순례한다.
스위스
* 은수자의 성모- 9세기에 순교하신 성 마인라르도에게 바쳐진 성모상.
스페인
* 에스트레마두라의 과달루페 성모- 성 그레고리오(대)에 의해 세빌리아의 성 레안데 르에게 바쳐진 성상,
8세기부터 위의 이름으로 불린다.
* 바르셀로나의 성모- 흔히 "블랙 마돈나"라고 불리는 이 성상은 9세기의 어느 목동이 만들었다.
* 필라르의 성모- 사라고싸에 있는 스페인 제일의 성지.
아일랜드
* 녹크의 성모
* 리머릭크의 성모- 1622년경, 플란데르에서 만들어진 성모자상이다.
알제리아
* 아프리카의 성모- 1840년에 프랑스에서 옮겨진 유럽의 무염 성모 성상인데, 동으로 만들어진 암갈색 성상이다.
아르젠티나
* 루한의 성모- 1630년, 신비스런 방법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인 이 곳에 모셔진 22인치의 토기 무염성모상이다. 1904년에 대성당을 짓고 모셨다.
오스트리아
* 마리아제의 성모- 10세기의 성모상이 있다.
우간다
* 아르리카의 여왕이신 마리아- 코보코에 있다.
이스라엘
* 성모 영보 대성당
* 성탄 대성당
* 임종 성당
* 방문 성당
이탈리아
* 산따 마리아 마죠레 바실리카- 로마의 3대 바실리카 중의 하나로서, 366년에 세워졌 고, 435년에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 로레또의 거룩한 집
* 산 루까의 마돈나- 볼로냐의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에 있는데, 이곳의 옛 성화는 로마의 성모로서 공경을 받는다.
* 영원한 도움이신 성모- 성 알퐁소 성당에 세워진 성지인데, 가장 유명한 마리아 성 화가 있다.
인도
* 반델의 성모- 1596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세운 성지에 사페 트라벨의 성모상이 있다.
* 반드라의 성모- 1640년에 세워진 성지로서 "산의 성모상"이 있다.
일본
* 일본의 성모- 나가사끼의 이 성지는 1897년에 세워졌고, 17세기의 일본 순교자들을 기념한다.
잉글랜드
* 엘리스포드의 가르멜산의 성모- 1241년에 시작된 가르멜 수도원에 있는 성지로서, 1949년에 재건되었다. 가르멜회의 수호자이신 성모상과 성 시몬 스톡크의 유해가 있다.
포르투갈
* 파티마의 성모
폴란드
* 체스토코바의 성모
필리핀
* 안전 여행의 성모- 1626년에 멕시코에서 마닐라로 옮겨온 성모상이 있다. 1929년에 마닐라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후, 안티폴로에 모셨다.
* 투룸바의 성모- 18세기에 바다에 세워진 통고의 성모상이다. 파킬에 있다.
프랑스
* 라 살레뜨의 성모
* 루르드의 성모
* 기적의 메달의 성모- 뤼 뒤 박
*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 1163~1320년 사이에 세워진 대성당인데 마리아의 일생 성상 이 있다.
* 샬트르의 노틀담- 12세기와 13세기에 세워진 고딕 건축물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성당 이다.
희랍
* 아토스산의 성모- 이 거룩한 산에는 성지가 세군데나 있다.
이비론에는 이비론의 성모. 킬란달에는 손이 셋인 동정녀상, 그리고 바토페디에는 위로의 동정녀상이 있다.
출처 : ‘마리아사랑’홈페이지/ [마리아사전], 최정오 역편 발췌
2. 성모발현성지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성지)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한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한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과달루페]
1531년 l2월 9일 성모 마리아께서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나타난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주었다. 이때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였다. 성모님은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 외국 홈페이지 http://www.sancta.org/
[파리]
1830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가타리나(Catherine Laboure)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당시 프랑스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가치관의 혼란으로 교회의 신앙이 흔들리고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는 등 사회의 변혁기였다. 성모님은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펼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 주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성모님은 이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Medaille miraculeus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발현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었으며,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라 살레트]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에 있는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Melanie Mathieu Calvat)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미 술이 달린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장미관을 쓰고 계셨다. 당시는 과학 만능주의.자유주의.무신론 등으로 교회의 전통 신앙과 성서의 가르침이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히면서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하였으나. 1846년 이래 대흉년으로 유럽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870년에는 보불(普佛)전쟁까지 발발하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루르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프랑스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셨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하셨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다.
*루르드 홈페이지 http://www.lourdes-france.com/bonjour.htm
*루르드 순례자료 http://bh.kyungpook.ac.kr/~psdon/catholic/lourdes.htm
[파티마]
제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칼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nt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nacisco)에게 발현하였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셨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다.
* 외국 홈페이지 http://www.fatima.org/
[바뇌]
1933년 1월 15일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벨지움의 바뇌(Banneux)에서 비신자인 12세의 소녀 마리에트(Mariette Beco)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당시는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 고 있던 때였는데, 성모님은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옷에 푸른 허리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채 합장하고 오른팔에는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칭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하면서 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하셨다. 그 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이상의 성모님의 발현들은 모두 교회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1928~1975년 사이에 발생하였던 성모님의
발현들 중에서 교회의 공식 인가나 동의를 받지 못한 발현은 230 여 건에 달한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발현 참조 http://www.apparitions.org/]
3.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 대한신심은 예전부터 특별한 공경으로 교회안에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성모 신심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주며 자칫 자나치거나 굴곡된 성모 신심은 많은 신자들에게 오해와 환상을 일으키는 결과를 주게 되곤 한다.
1)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
1838년 12월 1일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교황에게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교구의 수호성인으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1841년 이를 허락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성모 마리아와의 공적인 관게가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1864년 다불리 신부는 고주 수리치골에서 성모성심회라는 신심단체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한국교회 마리아 신심 단체의 효시를 이룬다.
이후 1954년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선언 1백주년 기념 성모성년 대회에서 한국교회는 다시한번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고, 1984년 5월 6일 교황요한 바오로 2세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명동 대성당에서 한민족과 한국 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날의 활발한 마리아 신심운동은 바로 이같은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바른 성모공경을 위해
그러나 한국 교회의 적지않을 수가 성모발현과 관련한 기적과 징표만을 찾아 예수를 외면한 마리아 중심의 그릇된 심심을 가지을 따르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마리아 공경은 결코 교회의 성사와 전례에 우선되어서는 안된다. 일부 신자들이 미사성체와 성체성사보다 마리아 신심을 앞세워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경향을 올바른 신앙교육을 통하여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점이다.
특히 오늘날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목자들의 지시도 받지않은체 사적계시를 빌미로 출판물과 개별집회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어긋난 맹목적 유포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성모에 대한 신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데에 있다.
마리아가 교회로부터 공경을 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직그히 거룩하신 모친이고 그리스도의 신비에 동참하여 아들의 생애와 구원사업에 일치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높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마리아 공경의 형태를 사랑, 공경, 기도 그리고 모방 등네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모시고 성자 다음으로 모든 것 위에 공경을 드리며 전구하고 성덕 전체를 본받는 것이 참된 마리아 공경의 형식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또한 마리아 신심의 오용과 남용을 막기 위해 사목적 규범들을 명시,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의 질서안에서 '정통교리의 테두리속에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가톨릭 교리를 의식적으로 가르치며 동시에 복되신 동정녀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충분히 촉진하고,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온 신심 행위의 풍습을 중히 여기며, 과거에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에 대하여 결정한 것을 엄수하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한 공의회 문헌(교회헌장 8장, 22항)는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데 있어 마음의 협소함과 아울러 지나친 거짓 과장을 피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마리아 신심은 언제나 확실한 신앙에서 나오고 마리아께 향한 사랑을 지니고 그 덕행을 본받는 것을 촉진한다.
결실없이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된 믿음이 마리아 신심을 대변하는 것이 이니며 참된 신앙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함을 공의회는 천명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레지오마리애, 푸른군대 등 마리아께 대한 공경을 주제로 한 신심단체가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어 올바른 성모 신심행사 비중은 자못 크다.
환상이나 환영에 빠져 성모 발현과 성모이적의 허황함을 쫓고있는 신자들의 무지와 오해를 일깨워 참된 신앙의 터전위에 자녀다운 올바른 성모 심신을 배워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께로]이끄는 사목적 배려와 본당 사목자들의 관심이 촉구된다.
- 바오로딸 가톨릭정보 교리에서 발췌
4. 천주교가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니?
많은 개신교 사람들은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 종교 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천주교는 마리아라는 우상을 섬기는 거짓 종교 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성모상 앞에서 꿇어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우리들의 성모 마리아 신심을 비방하게나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근거 중에 하나로 다음의 성서 구절을 들고 있다.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고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 뿐이시니 곧 인간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 분은 당신 자신을 모든 이를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디모테오전서 2,5-6). 이 말씀에 의한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인간과 하느님의 중재자인데, 왜 천주교는 성인들과 성모 마리아를 중재자로 내세우며, 또한 성모 마리아를 신(神)으로 모셔 그 분께 기도(로사리오 기도, 성모송)까지 하느냐는 주장이다.
사실 하느님의 인류구원 사업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중재자라는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중재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사람들, 특히 순교로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온전히 참여한 이들은 제 2의 그리스도와 같은 이들로서, 이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 죄인들이 청할 때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믿음이 있어왔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 교인들의 공통된 신앙 고백문인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 이다.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메우는 이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비록 그리스도의 중재처럼 영원한 효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에 한 몫을 한다는 점에서 중재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동참한 이들은 모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남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중재라고 할 수 있으니(개신교에서는 이를 중보기도 라 함), 우리의 기도로써 하느님과 우리가 기도해 준 사람과의 벌어진 틈이 메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중재 가운데서도 우리는 특히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높이 평가하는데, 이는 그 분이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가장 깊이 있게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인으로서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며, 결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신(女神)이 아니다. 그 분은 단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잉태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서, 아들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가장 처절하게 동참하신 분이다. 또한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38)며 하느님의 뜻을 겸손되이 따른 모범적 신앙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하지만, 성모님의 중재를 청할 때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라고 기도한다. 성모님은 하느님과 같은 수준에 놓고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의 비방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공통된 신앙을 오해한데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일부 천주고 신자들의 잘못된 성모 신심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성모님은 우리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객이 전도된 듯한 성모 신심 자세와 신앙 생활 , 예를 든다면 미사 중에 로사리오 기도를 바친다든지, 더구나 미사보다도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일로써 개신교 신자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굳이 높낮이로 따진다면 성모님은 하느님과 비교도 될 수 없는 낮은 존재로 주님의 여종 일 뿐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앙의 길잡이요, 모범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신앙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그 분이 걸었던 길을 우리도 따라 걸을 때 마리아 교회라는 오해를 없앨 수 있고, 올바른 성모 마리아 신심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 '성바오로딸' 홈페이지 발췌
5. 성서안의 마리아
1) 개론
구약성서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물론 마리아와 관련된 진술들을 찾아보면 창세기 3,15; 이사야 7,14; 미가 5,1-2.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간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마리아에 대한 신약성서의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마리아는 예수의 생애 초기에 짧게 등장하고 예수의 공생활 중에는 매우 기묘한 상황에서 한 번 나타나며, 마지막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날 뿐이다. 그 외에 마리아는 예수의 결정적인 활동 시기 즉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때부터 승천하는 날까지(사도 1,22)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약성서의 주요한 관심이 세례에서 부활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4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 마리아에 대한 일차적인 증언은 신약성서의 후기 저서인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 비로소 형성되었다. 이 두 복음서의 1장과 2장에 나오는 예수의 유넌기 설화에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으나, 성서를 통하여 '역사적 마리아'를 알아내기는 힘들다. 다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과 그 위치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때로는 알아듣지 못한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따르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나듯이 이웃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예수에게 청하는 고운 성품 안에서 기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예수의 탄생, 공생활, 십자가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 겸손하게 머물며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 주님의 여종으로서의 모습이 돋보이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서 저자의 관심은 1세기 중엽에 서술된 바오로 서간에 간략하게 언급되었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만 마리아의 동정성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루가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 사가에 비해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전통적인 그리스도론(로마 1,3-4참조)의 하나의 반영으로 볼 수 잇다. 동정 잉태는 초대 교회에 두루 알려진 사실이었고, 이 전통을 마태오 복음사가와 루가 복음사가가 이어받아 복음서에 묘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해서는 신약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평가는 확대발전되어 교의로 확정되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성서에서의 마리아는 복음 선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며. 또한 교회론과 관련되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예(fiat)'로 응답한 신앙인의 모범으로 드러나고 있다.
2) 바오로 서간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절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갈라디아서 4,4이 간접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언급이다. 이 구절의 '여인에게서 태어남?' 은 예수의 진정한 인성(人性)을 의미하는데 동정녀 출산과 연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동정 출산에 대한 첫 증언의 자료로 보았으나, 아기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진술만으로 바오로가 동정 출산을 암시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바오로의 관심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사실 성서에서 '여인에게서 태어남'은 인간적 조건을 표현한다(욥기 14,1; 15,14; 마태 11,11; 루가 7,28). 바오로는 단순히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모성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어머니임을 이야기할 뿐이다. 따라서 동정 잉태에 관한 바오로의 입장은 중립적이다.
3) 마르코 복음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 복음에서는 간단하게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과 예수의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다만 마리아에 관하여 두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3,31-35; 6,3).
3장 31-35절은 문맥상으로 3장 20-21절과 관련되어 있다. 3장 21절의 '친척들'과 3장 31절의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마리아와 관련되어 나오는 6장 34절의 '예수의 형제들과 누이들'의 관련성 문제는 마태오 12장 46절과 루가 8장 19-21절과 더불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한 문제 제기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아델포스(형제)와 아델페(누이)는 일반적으로 친형제와 친자매를 뜻하나 신약성서에서는 좀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든다면, 마르코 복음 3장 34-35절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맺어진 영적 가족 관계 안에서의 형제 자매를, 마태오 복음 5장 22-24절에서는 이웃 사람을, 마르코 복음 6장 17-18절에서는 이복 형제를 뜻한다. 칠십인역의 창세기 29장 12절에서는 '형제'나 '친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히'를 아델포스ㄱ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볼 때 아델포스나 아델페의 표현은 친형제 자매만을 뜻하지 않고 좀더 광범위하게 친척까지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간의 이견이 여러 가지여서 본문 자체만으로 해석을 내리기는 어렵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시학적인 관심은 숨겨져 있던 메시아인 예수의 영광이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에게 계시될 것이라는 데 모아졌으며, 이러한 취지에서 마르코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예수의 본연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혈연 관계로 예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채우려는 자세를 통하여 예수와 유대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4) 마태오 복음
마태오는 1-2장을 예수의 족보, 탄생, 그리고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로 꾸미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아주 돋보이게 묘사되어 있다. 1장 1-17절의 족보에서는 예수가 구약의 이스라엘과 온전한 지속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윗의 후손이고 메시아임을 밝히고 있다. 문체상으로 볼 때 "'갑'은 '을'을 낳았다"라는 형식들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1,16)라는 표현으로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돋보이게 하였다.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유대인의 풍습으로 보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와 함께 마리아가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자비와사랑으로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참여한 여인들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이 선택한 여인으로서 하느님의 메시아적 구원 계획을 실현시킨 여인이다.
1장 18-25절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의 역할과 그와 약혼한 젊은 여인 마리아가 두드러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1장 23절에서 "보라,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고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하면서 예수의 탄생이 메시아 탄생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하였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알마(젊은 여인)를 칠십인역에서는 파르테노스(동정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유대교 내의 어떤 전통이, 앞으로 일어나리라 고대되는 이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인 모친에게서 태어나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하였음을 뜻한다.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 인용된 이 신탁을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다. 그러나 마리아의 동정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복음서의 연구를 통해서 입증할 방법은 없다. 예수 탄생 이전의 마리아의 동정성 언급은(1,25) 출산 후에 요셉과의 부부 관계를 긍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마리아의 태중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그 사건이 이루어진 방법은 인간의 역사와 한계를 초월한 하느님의 주도권에 속한다. 이 방법을 마태오 복음사가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1,18)라고 표현하였다.
예수의 공생활 가운데 등장하는 마리아와 함께 친척들이 예수를 찾는 설화인 12장 46-50절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에게는 인간적인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 새로운 관계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마태오의 관심은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보다 예수의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마리아의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는 요셉과 비슷하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5) 루가복음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 설화(1-2장)와 예수의 공생활(8,19-21; 11,27 - 28)과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사도 1,14) 안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루가 복음 1-2장에서 마리아는 예수 탄생 예고(1,26-38)와 예수 탄생(2,1-21) 이야기에 등장하고 그 주위로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1,5-25. 39-56. 57-66. 67-80).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탄생 예고의 구조는 구약성서적인 배경을 띠고 있다. 천사가 나타나고(1,11.28), 두려워하고(1, 12.29), 천사는 나이 든 불임의 여인과 동정녀로부터의 출생과 아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명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예고한다(1, 13-17. 30-33).
예수 탄생 예고(1,26-38)에서 루가는 마태오처럼 분명하게 예수의 동정 잉태를 단언하지 않는다. 1장 28절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은총을 입은 이여'라고 불린다. 이 호칭은 하느님과인격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기뻐하소서'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모든 대목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이런 구조는 구약성서안에서만 몇 군데(요엘 2,21; 스바 3, 14; 즈가 9,9; 애가 4,21) 나올 뿐이다. 이 인사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어 주는 하느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시온의 딸'과 연관되어 나오기 때문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생각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침묵 가운데 곰곰이 생각하고(1, 29) 좀더 자세한 설명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1, 34), 천사의 대답(1, 35-37)에서 제시되는 것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아이를 낳게 되고, 이 아이는 하느님의 활동적인 개입으로 인해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게 될 것(1,35)이라 한다. 또한 그 일은 엘리사벳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림으로써 실제적인 것으로 확증되며(1,36), 하느님의 신뢰성과 권능을 지시함으로써 확실히 실현되는 것으로 제시된다(1,37).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1,38)라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한다. '주님의 여종'은 성서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의 탄생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호의에 적극적인 자세, 기쁨으로 가득 찬 자세로 모성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하느님 백성을 구원하였던 구약의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의 계열에 속한 '주님의 여종'으로 부각되고 있다.
루가 복음 1장 26-38절의 내용은 1장 39-56절의 이야기를 통해 보완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일과 이 일을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수락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39-45)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일에 관해 말한다. 마리아는 모든 여인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1,42), '내 주님의 어머니'(1,43)란 존경의 말을 듣는다. 또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복되다고 찬양받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1,45).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인으로 엘리사벳에게 알려지고 증언된다. 마리아의 노래(1,46-55)는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모든 세대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하느님 자비의 특성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노래는 구약 전승을 이어받은 찬미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메시아의 시대. 새로운 창조의 시대의 모든 이들은 구세주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하여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마리아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1,48).
요셉은 그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고, 그곳에서 예수의 탄생(2,1-7), 목자들의 방문, 그리고 정결례가 이루어진다. 그 후에 소년 예수의 성전에서의이야기(2,41-52)가 나온다. 이 이야기들은 목격자의 증언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문학적이고 신학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고 있으며, 이야기들 속에 나타나는 목자들의 말(2,17-19)과 시므온의 예언(2,34), 그리고 성전에서의 예수의 말(2,49)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그 뜻을 마음속에 새겨 곰곰이 생각하면서 믿는 제자로서의 그녀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예수의 공생활에서 마리아는 이름에 대한 언급 없이 8장 19절과 11장 27절에 등장한다. 이 구절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지속적인 제자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으며, 그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한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루가 복음사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사도 행전 1장 14절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마리아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었음을 증언해 주는 유일한 성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루가는 마리아의 인격을 인상 깊이 묘사하고 있다. 루가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탄생 설화가운데 나오는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느님께 전인적으로 위탁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루가 복음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예수의 제자 신분과 일맥 상통한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는 신앙 고백이자 동시에 루가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 선포이다. 루가는 마리아를 하느님 말씀에 경청하고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간직하는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루가는 마리아의 직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마리아의 복되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운 신앙의 태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6) 요한 복음
단지 두 곳에서만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예수의 삶 중 결정적인 전환점, 즉 가나의 혼인잔치(2,1-12)와 십자가 아래(19,25-27)에서 '예수의 어머니'(2,1.3.5: 19,25-26)와 '부인 asdjf?'(2,4;19,26)으로 나온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공적 활동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활동은 예수의 위력과 영광(1,14참조)을 계시하는 기적으로 시작된다. 마리아는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예수에게 말한다(2,3). 마리아가 기적을 드러나게 청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대답은 마리아가 기적을 청하였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부인, 부인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2,4) 라고 한 대답의 의미는 다른 복음사가들도 전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예수의 태도와 일치하고 있다. 예수의 태도를 규정하는 것은 혈연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데에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말씀이 드러날 때에만 '그 시간'이 오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 '호라(시간, 때)'는 예수의 수난과 구속 사업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7,30;8,20;12, 23;13,1;17,1). 동시에 이 '호라'는 예수의 영광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예수의 대답에 마리아는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2,5)라고 함으로써 예수의 '때'가 앞당겨지게 하였다. 동시에 예수의 공생활 중 처음으로 행한 이 기적으로 메시아인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2,11) 역할을 수행하였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마리아는 다시 '부인'으로 불린다. 예수는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그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세운다. 이 말씀은 혈연 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종말론적 관계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의 공적 활동 처음과 십자가 아래의 죽음 앞에 놓인 중요한 '호라'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신앙의 길을 걷는 어머니로 제시하고 있다.
7) 요한 묵시록
12장을 보면 '하늘'에서 '사내 아이'를 출산한 '여인'은 '용'과 대적하고(12,1-6), '땅'에서 '사내 아이'와 함께 '여인'은
'용/뱀'으로부터 피신한다(12,13-17). 여기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근동의 신화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상징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12장은 '여인'과 그녀의 '자손'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여인'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신약의 하느님 백성, 즉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여인을 하와(창세 3,15-20)라고 여기며, 또한 새 하와인 시온의 딸로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묵시록의 저자와 초대 교회의 저술가들의 견해를 따르면서 마리아가 그 '여인'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마리아동산’홈페이지 / 한국 가톨릭 대사전
6. 국내 성모성지/순례지
1. 남양 성모성지 2. 대구 성모당 3. 감곡 매괴의 성모성지
[남양 성모성지]
남양 성지는 초대 교회 교우촌이자 처형지이며 우리 나라 유일의 성모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면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바닷길이 열렸듯이 매일 썰물 때면 육지까지 바다가 열려 길이 생기는 제부도의 신비스런 광경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다. 백학, 활초 등 많은 교우촌이 인근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 교우촌은 안양 수리산, 양지 골배마실, 안성 미리내, 진천 배티, 아산 걸매리 등과 걸어서 하루거리에 위치해 박해 당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원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신앙 선조들이 순교한 순교 성지인 남양 성지는 1991년 10월 7일 정식으로 성모님께 봉헌됨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되었다. 원형으로 펼쳐진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로 꾸며져 있는데 대형 십자 고상과 성모상을 비롯해 어른 둘이 팔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돌들로 묵주알을 만들어 놓았다.
남양 성지는 성모 성지로 선포된 후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묵주의 기도 고리 운동은 현재 수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매일 자신이 약속한 시간에 15분간 5단을 바침으로써 24시간 내내 묵주의 기도가 이어지게 하고 있다. 또 1년에 두 차례씩 실시되는 피크로스(PICROS) 운동은 며칠 동안 도보 성지 순례를 하면서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함으로써 희생과 고통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낙태죄를 속죄하기 위한 기도 모임을 매주 토요일마다 마련하고 있다.
[대구 성모당]
1911년, 대구교구가 조선대목구에서 분리, 창설되어 드망즈 주교님이 초대 교구장이 되셨을 때이다. 교구로서 갖추어야 할 시설이 거의 없는 상태로 새 임지에 며칠을 지낸 드망즈 주교는 1911년 7월 2일 대구대목구를 성모께 완전히 의탁하는 허원을 드렸다. 성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교구에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 성당 증축 등을 다 이룰 수 있다면, 교구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성모께 봉헌해 그곳에 루르드의 성모 동굴 모형대로 성모당을 세워서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순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드망즈 주교가 쓴 글을 통해서 성모당의 설립배경과 함께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알 수 있다.
"플로리아노 드망즈 아드라스의 명의 주교요, 대구의 감목은 하느님의 은총과 교황 성부의 은혜로, 여기 참석한 분들과 함께 새로 발족한 대구교구 7년의 지난날에 대한 깊은 감사와 앞으로 자녀로서의 신뢰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루르드의 성모께 바치며 이를 증거로 남기고자 합니다. 교황 비오 10세께서 이 교구를 설정하시어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새 교구의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였으나, 작은집 하나도 지을 수 없이 가난한 형편이었습니다. 1911년 7월 2일 대구에 와서 처음 맞은 주일, 우리는 루르드의 성모를 이 교구의 주보로 모시고, 이 교구의 재정 관리자가 되어 주시기를 겸손 되이 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허원을 하였습니다. 성모께서 교구기금을 사용치 않고 주교관과 선교사들이 회합과 휴양을 위한 집과 신학교를 짓고, 주교좌 성당답게 루르드의 성모성당을 증축하게 해 주시면 주교관 대지가 될 땅에 가장 닮은 성모 동굴을 만들겠다고 허원하였습니다...이 허원은 1911년 7월 2일 공문으로 사제들에게 통보되었습니다. 천주의 성모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재정 관리인이 되어 주셨고, 세계 각처에서 보내온 헌금으로 허원의 소청뿐 아니라 전쟁 때문에 유지비마저 부족하던 교구의 기금을 쓰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 주셨습니다. 첫째는 1913년 주교관을 완공하였고, 둘째는 1914년 신학교를 건립하였습니다. 셋째 청이 이루어지기가 어려워 성모 굴은 상당히 늦어질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6년 말 소세(Saucet)신부가 중병으로 앓았고, 임종에 이르렀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소세 신부를 낫게 해 주시면 주교좌 성당 증축 전에 성모 동굴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새로 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그를 낫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1917년 7월 31일 성모동굴 정지작업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좋으신 성모님은 해가 바뀌기 전 전날인 1917년 12월 30일, 이로부터 두달 안으로 주교좌 성당 증축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심으로써 허원의 셋째 청도 들어주셨습니다. 성모동굴은 주교관, 신학교, 수녀원, 가톨릭 청년회관, 그리고 대구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에 만들었습니다. 성모동굴의 설계와 모형은 루르드의 것을 본뜨고 성모동굴의 크기는 물론 바위모양까지도 되도록 이면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흡사하게 만들었으며, 외부는 벽돌로, 굴 내부는 시멘트로, 기념틀의 모양은 교황 레오 13세께서 바티칸 정원에 만들어 놓으신 루르드의 성모 기념 동굴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성모상은 대구교구의 불란서인과 한국인 사제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1918년 10월 13일 성신강림 후 21주일 교구내의 사제단과 신학생들이 참석하고 광장을 가득 채운 대구와 각처의 남녀 신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먼저 성모동굴과 성모상을 축성하였고, 성모동굴 제단에서 대미사, 성체강복이 있었습니다..."
동굴 윗면에 있는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의 1911은 대구교구가 설립된 연도이며, 1918은 드망즈 주교께서 교구를 위하여 하느님께 청한 3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진 해를 가리킨다.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서원에서'란 뜻이다. 성모당은 가톨릭 신심행사와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고장만이 아니라 교구적 여러 큰 외부 행사의 식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외교인들에게도 호감을 주는 대구의 명소가 되었다.
[감곡 매괴의 성모성당/성지]
1928년 공사에 착수한 대성당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시잘레(Chizalle) 신부가 설계해 주었고 공사는 중국인 업자들이 맡아 공사를 하였다. 길이 40m, 넓이 15m, 종탑높이 36.5m가 넘는 현재의 고딕식 붉은 벽돌조 성당을 신축하게 되었다. 재원과 석재의 부족 뿐만 아니라 공사기간중 장마로 인해 설계대로 건축할 수는 없었던 관계로 건물 규모도 설계보다는 축소해야만 했다.
건물에 내부 천장이 원형 돔(Dome)으로 중앙 제대와 옆면 에 4개의 소제 대가 있다. 평면은 삼랑식의 장방형으로 열주와 천장에 의해 신랑과 측랑의 구별이 뚜렷하고, 좌우 양측의 돌출한 출입구에 의해 라틴 십자형의 구성을 하고 있다. 신랑은 (6m30cm) 측랑(3m)보다 주간이 넓은 바실리카식 평면 형태를 하고 있다. 앞면은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세개의 종탑을 가진 정면 파사드에 다다른다.
계단에서 정면까지의 거리가 짧으므로 계단을 오르면서 보이는 정면 종탑부는 무척 높게 느껴진다. 고딕 건축의 상징인 중앙종탑의 높이는 36.5m로 성당의 모습을 한층 돋보이게 하며 8각으로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첨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중앙종탑이 좌우 양탑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특색이며 정면 3개의 종탑은 전동 성당과 구포동 성당에 이어 3번째이다.
매괴의 성모상
성당 중앙 제대 위에 모셔진 매괴의 성모상은 1930년 대성당 설립시 불란서에서 제작되어 온 성모님 상으로 감곡 매괴 본당의 수호 성인으로 1950년 한국 동란 당시 인민군으로부터 7발의 총탄을 맞고도 깨지지 않았으며 인민군 장교가 총으로도 깨지지 않자 망치로 부수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다 성모님의 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후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일화도 있으며, 감곡(장호원) 지역에서는 인민군으로 이 지역 청년들이 한 명도 징용되어가지 않고 또한 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은 성모님이 총을 맞는 등의 수난으로 대신한 것으로 이 지역 신자들은 굳게 믿으며 지금도 성모님 상에는 당시의 총상 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다
감곡(옛, 장호원) 매괴 성모 성당
감곡(옛, 장호원) 매괴 성모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이다. 또한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가 된 곳이며, 150여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이다.
(1) 감곡 성당이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되고 "매괴 성당"이 된 이유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미리내 에서 한국의 풍습과 언어를 공부하였으며, 첫 본당으로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발령을 받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 같은 집(현재 매괴학교 운동장)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09칸 집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사실상 민씨 문중이 서서히 몰락하면서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으나 그 집을 매입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과중하여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신부가 기도한지 불과 1년 4개월만인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온전히 매입할 수 있었다. 그 해 9월 17일 본당을 이전하여 매괴성월인 10월 7일에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면서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는데, 장호원 지역에서는 의병들이 민응식의 집인 109칸 집을 점거하게된다. 이에 일본군이 습격하여 의병들을 모두 몰아내고 모든 집들을 불태워 잿더미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임 신부가 모든 집터와 산을 싼 값에 매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임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 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 곳이 감곡 매괴 성모 성당이 된 것이다.
(2) 매괴 성당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성모님의 전구하심이 크게 드러나는 곳이다.
1) 성모광장
첫 번째 역사적 사건은 매산 중턱의 성모광장이다. 성모광장은 1943년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자 임 신부가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 두고 "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 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성모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묘하게도 공사를 진행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기상이변과 큰 짐승들의 출현으로 더 진행시키지 못하고, 2년 만에 해방이 되면서 물러가게 된다. 195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성모광장으로 봉헌되고 매년 거행되는 성체거동을 그 곳에서 지금까지 거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된다.
2) 수난 받은 성모님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대성전 안에 모셔진 본당 주보 매괴 성모님에 관련된 것이다.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는데,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의 총을 7발이나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구멍만 남아 있고 건재하게 서계신 모습은 주보성인으로서 본당을 수호해 주시고 성모님 본연의 역할인 전구하심이 크게 드러난 것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성모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 감곡 본당 공동체는 성모님의 사랑이 특별한 이 곳을 많은 이들이 성모님 사랑을 배워갈 수 있는 성모 순례지로 개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3) 성체거동
매괴 성당 성체거동은 지방에서 거행된 최초의 성체신심행사이며, 1914년 성체성혈 대축일 이래 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만을 제외하고 매년 거행되고 있다.
(성체거동일 : 매년 본당 설립일 10월 7일과 가까운 목요일)
6. 성모의 밤 행사 예식 (예시문)
1. 예식전 해설과 시작성가
◈ 조용히 스며드는 초야의 어둠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진실을 모아 성모님께 봉헌하기 위해 오늘 성모의 밤을 시작하려 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님을 찬미하는 이 밤에 우리의 보호자이시고 전구자이신 평화의 어머니 앞에,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어머니께서 가신 순명과 겸손의 길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따를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 ooo 성당 모든 신자들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하느님의 자녀되기를 소망하며, 성모님께 의탁하며 성모의 밤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서셔서 성가 245번 "맑은 하늘 오월은"을 부르시겠습니다.
2. 인사와 취지의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5월 성모성월을 맞아 일생을 당신 아드님과 함께 하신 성모님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성모님은 참으로 신앙의 모범이요, 특별히 일생 동안 고통과 외로움, 주위의 차가운 눈빛마저도 기도와 희생으로 기꺼이 감수 인내하신 분이셨습니다. 오늘 성모의 밤을 시작하며, 우리 모두도 성모님처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구세주 그리스도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충실한 생활로, 우리 자신을 봉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 독서 : 사도 1,12-14.
◈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오늘 독서 말씀은 사도행전 1장 12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사도들은 그 올리브라고 하는 산을 떠나 안식일에 걸어도 괜찮
을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성안에 들어 온 사도들은 자기네가 묵고 있던 이층방으로 올라갔는데 그 일행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아, 필립보, 토마,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혁명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들이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4. 화답송
◈ 화답송으로 성가 252번 "성모여 우리 위해"를 부르시겠습니다.
5. 복음 : 루가 1,39-56.
◈ 모두 일어서십시오.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주님 영광받으소서.
◈ 오늘 복음은 루가 복음 1장 39절에서 56절의 말씀입니다.
†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 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6. 강론
◈ 자리에 앉으십시오.
7. 헌화 및 초, 예물, 편지 봉헌
◈ 이제 우리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 성모님께 꽃과 초를 봉헌하겠습니다. 준비한 꽃을 봉헌한 후 앞에서부터 두 줄로 나오셔서 각자 초를 봉헌하시고 좌우로 가시면서 성모님께 바치는 편지와 예물을 봉헌하시겠습니다. 봉헌이 이어지는 동안 성가 253번 "네 머리를 꾸미오니"를 부르시겠습니다. 이어서 성가 236번 "사랑하올 어머니" / 성가 257번 "나의 기쁨 마리아"/ 성가 249번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 / 성가 247번 "애덕의 모여" / 첼로, 플롯, 바이올린 : 구노의 Ave Maria.
8. 성모님께 드리는 글
◈ 이어서 성모님께 드리는 글 낭독이 있겠습니다.
9. 특송
◈ 성가대의 특송이 있겠습니다(살베 레지나).
10. 묵주 기도
◈ 이제 우리의 소망과 바램을 아시는 어머니께 우리의 마음을 엮어 묵주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성가 270번 "로사리오의 기도" 영광의 신비 1단을 노래합시다.
1) 성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기도 봉헌자는 지향 기도가 끝나면 바로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을 선창하고, 신자들이 이어서 한다.
◈ 성가 270번 영광의 신비 2단을 노래합시다.
2) 세계 평화와 우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성가 270번 영광의 신비 3단을 노래합시다.
3)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성가 270번 영광의 신비 4단을 노래합시다.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 성가 270번 영광의 신비 5단을 노래합시다.
5) 우리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11. 성가
◈ 다함께 성가 271번 "로사리오 기도 드릴 때"를 노래합시다.
12. 성모께 자기를 바치는 기도
◈ 모두 일어서십시오. 성모의 밤 유인물에 있는 "성모께 자기를 바치는 기도"를 합송하시겠습니다.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는 비록 성모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사오나
성모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며
모든 천사와 더불어
당신을 어머니로 모시는 저희를
자애로이 지켜주소서.
● 저희는 당신 아들 예수님을
더욱 충실히 섬기며
어머니 슬하에 살기로 약속하나이다.
○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시며
당신 자신은 성부께 맡기시고
성모님은 제자에게, 제자는 성모님께 맡기셨나이다.
●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
십자가 밑에서 맺어진 모자의 인연으로
저희를 품에 안아주시고
온갖 위험과 고통중에 돌보아 주소서.
저희 죽을 때에 저버리지 마옵소서.
◎ 아멘.
13.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모든 이의 희망이시며 보호자이신 하느님,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열심한 신앙에로 나아가고자 하는 당신 자녀들을
강복하시고, 이 모든 이들이 당신 모친의 도우심으로 늘 신앙에 항구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충실한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14. 장엄축복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태어나시어 인류를 구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교우들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 성모님을 통하여 생명의 주인을 모신 이 교우들이 언제 어디서나 성모님의 보호를 깨닫게 하여주소서.
◎ 아멘.
† 오늘 성모성월을 시작하며 성모의 밤을 지내려고 모인 이 교우들이 영적 기쁨과 천상 상급을 가득히 받게 하여주소서.
◎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15. 마침성가
◈ 마침성가로 244번 "성모의 성월"을 노래합시다.
6. 마리아의 종
교회의 마리아 신심에 투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신심의 신학적, 영적 근거를 마련하여 교회 안팎으로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을 "마리아의 종"이라고 불러왔다. 이런 분들 가운데에서 동방 교회의 에프렘, 베르나르도, 루도비꼬 마리아 그리니옹 드 몽포르, 알퐁소 리구오리 그리고 막시밀리안 꼴베 등이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1) 성 에프렘(St. Ephrem of Syrian, 306-373)
시리아 교회의 위대한 박사인 성 에프렘은 서기 306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니시비스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이교의 사제였다. 그러나 양친이 크리스챤으로 개종함에 따라 18세 때에 세례를 받았으며, 즉시 니시비스의 성 야고보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덕을 닦았고, 그 후 이 학교의 책임자로서 주교를 수행하여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그후 그는 성 바실리오와 친한 친구로 지내면서 그를 따라 에집트 수도자들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338년에 부제품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363년에 황제 요비안에 의하여 니시비스가 페르샤의 수중에 들어가자, 그는 수많은 신자들과 함께 로마 땅인 에데싸로 피신하여, 그곳에 신학원을 세웠다. 그는 여기서 수많은 시를 비롯한 신학적 저술을 집필했고, 신자들에게 직접 설교도 하였는데, 그의 시가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성령의 하아프"라는 칭호를 얻었다. 에프렘은 373년에 에데싸에서 서거했고, 1920년에 베네딕도 15세 교황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언되셨다.
성 에프렘은 자신의 저서 대부분을 시리아어로 서술했는데,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원어에서 아르메니아어 혹은 희랍어로 번역된 역서 몇 가지가 있다. 그는 성서적 근원을 밝히는 비중이 큰 저서들을 비롯하여 성서주석, 교의 및 수덕 생활에 관한 작품들을 남겼고, 이단들, 특히 아리아파와 영지주의에 대한 반박문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도 훌륭한 글을 남겼다.
성 에프렘은 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투철하였고, 마리아 신학의 본질을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단언하였기 때문에 "무염시태의 증인"이란 칭호도 얻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름다운 찬미가를 지었고, 이를 공식 예식에서 사용하였으며, 신앙 교육에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마리아 찬가 한 소절을 우리말로 옮겨본다: "예수여, 당신의 모친은 홀로, 가장 아름다우신 분, 당신이 티없으시니, 모친 또한 흠없으시도다."
이 성시 안에, 성 에프렘이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표현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사실 그는 이 싯귀 하나만으로도 마리아 박사라는 칭호를 얻을 만하다. 성 에프렘은 성자를 낳으신 마리아를 성서에 근거하여 신심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영성가이자 신심가로서의 모델로 칭송 받고 있다. 그의 마리아 찬미가는 늘 읽고 묵상해도 싫증나지 않는다.
"숙명의 나무에서 딴 하와의/ 쓰디쓴 열매대신, / 마리아는 달디단 열매를 우리에게 주시니,/ 온 세상은 마리아의 열매로 환희에 젖네.// 동정의 나무가 포도를 생산하니/ 그 즙은 달콤하고,/ 고생한 이들에겐 기쁨 안기네.// 하와와 아담은 생명수를 맛보고,/ 위안 찾아 헤맸으나/ 돌아온 건 불안에 움츠렸을 뿐.// 거룩한 몸, 아름다운 영혼, 고귀한 정신,/ 마음은 완전한 사랑뿐이니,/ 정결하고 충실한 티없는 마음이/ 고통에 시달리어도/ 마리아는 모든 덕이 충만하도다."
2) 성 베르나르도(Bernard, 1090-1153)
성 베르나르도는 그당시 씨토회가 주축이 된 마리아 운동의 기수였다. 부르군디의 가족 성(城)인 폰텐느 레 디죵에서 일곱 자녀 중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샤틸롱에서 수학하던 중, 모친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씨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1113년에 입회하였고, 1115년 씨토회를 재창설하여 65개의 수도원을 세운 위대한 수도자였다. 그는 교황의 명에 따라 제 2차 십자군의 특사로 활약했고, 위대한 설교자로 인정받았으며, 수많은 편지와 아르마그의 성 말라키의 생애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로랑땡 신부는 이렇게 평한다. "성 베르나르도는 마리아 신심의 아름다운 모델이다."
마리아께 대한 그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의 찬미가에 대하여>라는 글 속에는 4개의 강론과 성모 영보에 관한 복음 해설이 들어 있다. 성모 취결례 축일에 관한 강론 3개, 성모 영보 축일에 관한 강론 3개, 성모 성탄에 관한 강론, 성모 승천 강론 5개 (이중의 하나는 성모 승천 8부 축일용), 주의 봉헌과 할례에 관한 강론, 대림절 강론, 잉태축일에 관하여 리용의 참사 위원들에게 보낸 편지 174통.
성 베르나르도의 마리아 영성은 전례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는게 특색이다. 그는 구원 계획의 맥락속에서 마리아를 보았고, 천주의 모친에게 지녀야 할 신심이 신자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려고 애썼던 위대한 마리아의 종이었다. 그의 마리아 신심은 크게 두 줄기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마리아가 당신의 동의로 이루어진 강생의 신비이고, 다른 하나는 성모승천의 신비이다. 그에 의하면, 마리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만남 가운데 가장 친밀한 입장에 서 계신다. 마리아의 모성은 그녀의 평생 동정의 결과로서 일어난 것이다. 마리아의 겸손은 그녀로 하여금 펀주의 모친이 되게 하였고, 동시에, 여왕, 세상의 여왕, 중재자와 더불은 천상적인 중재자, 만민의 어머니, 죄인들의 사다리, 그리고 하늘의 문이 되게 하였다. 또 성 베르나르도는 동정 마리아께 대한 전 시대의 찬미가들을 전해주었으며, 수많은 마리아 신심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의 이러한 신심과 학식 때문에 "꿀처럼 단 박사"라는 칭호를 얻었고, 1830년에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3)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니옹 드 몽포르(1683-1716)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니옹은 프랑스 몽포르의 어느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18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였다. 18명의 자녀 가운데 3명이 사제, 2명이 수녀가 되었다. 그는 렌느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했고, 17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루도비코는 랄러망 신부의 문하생으로서 프랑스 학파의 깊은 영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그의 스승은 슐피스회 제 2대 총장까지 역임하였다. 그는 1700년부터 죽을 때까지 순회 선교사로 활약했는데 서방 교회 10개 교구를 두루 다니던 중, 43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그가 지도했던 "지혜의 딸 수녀회"와 "마리아 선교회"는 그의 선종후에야 발전하기 시작했고, 1947년 7월 20일,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루도비코는 사도 성 바오로와 같은 방법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를 받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사도처럼 악을 근본적으로 물리쳤고, 성령께 자신의 전 생애를 완전히 내맡긴 삶을 살았다. 그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사도바오로처럼, 영세 받은 때부터 동정녀의 손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한다. 마리아와의 신비적인 일치가 그의 영성 생활의 핵심이자, 그의 선교사적 사도직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신심에 불탔던 루도비코는 약 16,000마일을 선교 여행하였고, 수많은 마리아 관계 저술을 남겼다. 그가 쓴 164개의 마리아 찬가 원고는 모두 20,000행이 넘는데, 그 중에서 널리 애송된 것은 24개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안토니우스 토마스 O.P 신부가 다이제스트했던 "신비로운 장미"의 원본은 성 루도비코가 쓴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놀라운 비밀"이다. 이 저서에서 루도비코는 이 대중적인 신심인 로사리오에서 얻는 영적, 사도적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또 그리스도론적 영성의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저서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서 마리아 신심을 제시하여 끝맺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생전에 빛을 본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사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루도비코의 마리아 관계 저서는 "마리아의 비밀"이라는 소책이다. 비록 소책에 불과하고, 또 영적 지도 형식을 띤 편지이긴 하지만,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일치 방법을 다룬 것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다른 저서는 저 유명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올바른 신심"이다. 5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 책은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에 완전히 잠기는 영성 생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몽포르 신부는 자신의 상상이 아니라 복음서에 확고한 기반을 둔 신심을 발전시켰다. 그는 예수님이 공생활 이전의 숨은 생활이 전적으로 마리아께 의존되어 있었다는 견지에서 우리들도 마리아께 의존해야 하는 모델을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만드는 세례가 우리를 마리아의 잔려로 만든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또한 그의 봉헌 행위는 이러한 자녀 관계를 인정하고 사는 것으로 알아 들었다. 그리고 몽포르 신부가 영혼의 영적 자세를 설명했던 네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께 마음을 열어야 한다. 2) 마음으로 생명의 모델과 일치한다. 3) 마리아 안에서 모성적 사랑을 알아본다. 4) 마리아께 대한 봉사에 전적으로 위탁하고,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한때 많은 반대를 받았고, 급기야는 설교권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4)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phonsus Mary de Liguori, 1696-1787)
성 알퐁소는 1696년 9월 21일, 나폴리 근교 마리아넬리에서 태어났고, 172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732년에 속죄회를 창설했다. 1762년부터 1775년까지 산타 아가타 데이 고띠 교구의 주교로 봉직하셨고, 1787년 8월 1일에 빠가니에서 선종하셨으며, 1839년에 시성되셨다. 1871년에는 교회 박사, 1950년에는 윤리학자와 고백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셨다.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일관했던 성인의 전 생애는 천주의 모친이신 마리아 어머니의 중재로 더욱 빛났는데, 성모님은 그를 중병에서 수차례나 일으키셨고, 초자연적인 발현과 상호 소통하는 은혜로 당신의 아들을 깊이 사랑하셨다.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성인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내게 일어난 모든 좋은 일들, 나의 회개와 성소 그리고 또다른 수많은 은혜들은 모두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은 개가 모든 것 위에 당신 사랑하기를 바라시옵고, 또 원하시옵나이다. 이리하여 무한한 축복에 대한 감사르 돌려 드리기를 바라시나이다. 내가 항상 어디서나,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당신께 대해 말하고자 하며, 당신의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신심을 모든 영혼 안에 심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영광> 중의 청원기도)
이러한 마리아 신심의 반향이자 증거로서 표현된 것이 그의 저 유명한 찬미가 "오, 내 사랑, 희망이여" 이다. 그러나 마리아에 관한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1750년에 두 권으로 간행된 "마리아의 영광"이다. 이 책은 그의 오랜 사제 생활의 산물이다. 그가 비록 개화된 나폴리인들을 잘 알았고, 또 무라토리와 얀세니즘의 영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의 마리아 신심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성인은 그의 저서에 대한 논쟁을 무시해버렸다.
1권과 2권에서 그가 제시한 마리아 신심의 체계는 다음과 같다: 1) 마리아의 특권과 칭호를 강조한 교리적 부분, 그리고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마리아 신심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2) 대중적인 신심에 알맞는 실례 혹은 교회적인 이야기. 3) 마리아 교리를 마리아 신심으로 옮긴 기도문.
이로써 성 알퐁소는 마리아를 살아 계신 인격자, 사랑하올 어머니로 우리에게 제시하며, 마리아가 죄스런 우리들의 중재자이심을 강조한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어머니, 우리를 인도하여 성사를 받게 하며, 크리스챤 사랑을 실행하도록 돕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강조되어 있다. "마리아의 영광"은 지금도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널리 읽혀진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 언어로 약 800판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성 알퐁소는 대중적인 신심에 영적인 깊이를 더하면서 신학적 기반을 튼튼히 한 공로가 높이 평가되고, 그의 방법은 사목적 활동에 적합하여 마리아 영성 계발에 박차를 가한 위대한 마리아 종으로 공경받는다.
5) 성 막시밀리안 꼴베(Maximilian Kolbe, 1894-1941)
성 막시밀리아노 꼴베 신부는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났고,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막시밀리아노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1911년에 유기 서약을 발했다. 그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의 사도요 신학자로 불리는데, 1917년에 이미 로마에서 "무염 성모의 기사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1918년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폴란드로 귀향하여, 월간 "성모의 기사"를 창간했고, 1927년에는 와르소에서 25마일 거리되는 곳에 무염 성모의 마을을 세웠는데, 그 후 이같은 명칭의 마을이 일본과 인도에서도 세워졌다. 기사회의 목표는 "무염 성모를 통하여 전 우주를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문, 라디오, 잡지 등 온갖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교묘히 위장한 무신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는 무염성모께 대한 봉헌만이 유일한 치료약임을 설파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꼴베 신부의 마리아적인 가르침은 루르드의 성모님이 가르치신 내용이 주축을 이룬다. 특히 그는 벨라뎃따가 마리아의 성명을 물었을 때, "나는 원죄없는 잉태"라고 하신 마리아의 응답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께서 선포하신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표현한 것이다 (이 선포는 루르드의 성모 발현이 있기 4년 전에 나왔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오묘하게도 이 신비를 계시하셨고, 꼴베 신부를 통하여 온 세상에 더 빨리 전파되게 하신 것이다.
그는 폴란드의 무염 성모 마을의 원장으로 있던 중,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하여 체포되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는 어느 죄수의 탈출로 인한 대가로 아사 감방으로 끌려가는 어느 기혼자의 절규를 듣고, 자신이 그 사람 대신으로 아사 감방으로 갔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연명하다가 결국은 석탄산 주사를 맞고 순교한 것이다. 그는 1971년 10월 17일에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10일에 시성되었다. (축일은 8월 14일)
* [마리아사전], 최정오 역편 발췌 편집
9. 성모님의 중요 메시지 (요약 정리)
1. 미사를 매일 또는 자주 참례하라.
2. 고해성사를 적어도 한달에 한 번 하라.
3. 육체적 단식(물과 빵), 마음의 단식, 영혼의 단식을 적어도 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하여라.
4. 기도를 매일 끊임없이 하여라.
5. 묵주신공을 하루에 적어도 15단을 하여라.
6. 매일 성서를 읽어라.
7. 매일 자신과 주위의 모두를 예수성심과 성모 성심께 봉헌하여 맡겨 드려라.
8. 남을 무조건 용서하여라.
9. 성령 충만하여 기도하여라.
10. 매일 죄를 독사, 뱀 피하듯이 피하며 자기와 주위 사람들의 정화를 위하여 기도,
노력하여라.
11. 기도 공동체에 매주 참석하여라.
12. 인류의 영혼 구령을 위해 보속과 기도를 드려라.
13.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여라.
14. 청소년, 아이들,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15. 세계 평화와 자기 주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16. 교황, 주교,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17. 천신들께 기도하여라.
18. 수호 천사께 보호, 인도, 전구의 기도를 청하여라
19. 성 미카엘 대천사께 보호 기도하여라.
20. 성 가브리엘 대천사께 보호 기도하여라.
21. 성 라파엘 대천사께 치유하여라.
22. 축성된 성물을 집에 보관하여라.
23. 집에 제대를 만들어 주님의 자리를 마련해 드려라.
24. 너희 몸에 축성된 성물을 지니고 다녀라.
25. 묵주를 손에 지니고 다녀라.
26. 나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생활화하고 전하여라.
27.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하여라.
28. 죄중에 길잃고 있는 영혼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여라.
29. 하느님이나 성모님의 메시지를 한 가지도 더 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그 메시지
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진리의 성령을 구하여라.
30. 하느님께서 항상 너희를 지켜보시니 유혹을 겁내지 말라.
31. 범한 아주 작은 죄까지도 매일 성찰하고 회개하여라.
32. 가족들이 매일 모여 묵주의 기도를 하여라.
33. 아이들을 미사에 자주 참례하게 하여라.
34. 보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35.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너희에게 보내시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달 메시지
대로 생활하여라.
36.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여라.
37. 하느님께서 허락 해주신 모든 은혜에 자주 감사하여라.
38. 잠잘 때도 기도 속에서 자도록 하여라.
39. 끊임없이 열절히 기도하여라. 너희가 기도를 멀리 할 때 사탄은 너희의 기쁨을 맹 렬하게 빼앗아 간다.
40. 내 메시지대로 살고 나머지와 너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 드려라.
41. 죄인들이 마음을 열도록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보속하여라.
42. 너희들의 피곤, 문제, 감정, 시련, 역경 등을 성모 성심과 예수 성심께 맡겨 드려라.
43.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기도를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을 보내신다.
44. 하느님께서 주신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하여도 감사드려라.
45. 너희를 악하게 하는 이들까지 사랑하여라.
46. 청소년들에게 정신 차려 기도하도록 간곡히 부탁하여라.
47. 예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시도록 보속들을 바쳐 드려라.
48. TV를 끊고 아무 가치 없는 일들을 끊어버리고 회개하고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49. 예수님께서 당신 계획을 이루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게 하기 위하여 희생과 보속을 바쳐라.
50. 가장 큰 희생 제물인 사랑의 희생을 자주 하여라.
51. 물질적인 것에 빠져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모든 축복을 잃지 않도 록 하여라.
52. 너희가 지금 필요로 하는 성령의 은사를 주십사고 기도하여라.
53. 가정에서 나이 많은 이들이 중요한데 그들이 기도하도록 이끌어라.
54. 가정안에서 기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55. 너희들의 생활을 가정에서부터 바꾸도록 하여라.
56. 너희들은 이 메시지, 즉 이 선물을 전할 책임을 갖고 있고 또 전하는 도구가 되어 야 한다. 너희만을 위해서
꼭 간직하지 말고 사랑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하여라.
57. 기도 없이는 하느님이나 나를 체험할 수 없고 하느님과 내가 주는 은총도 체험할 수 없다. 은총 받기를 원하면서도
기도를 하지 않고 이 체험을 못하는 일이 없도 록 하여라.
58. 사랑으로 죄를 이기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거룩해지려고 노력 하여라.
59. 항상 화목과 사랑과 평화의 도구가 되어라.
60. 악이 파괴하려는 것을 사랑으로써 선으로 바꾸어지게 하여 너희가 완전히"선"이신 하느님의 편이 되어라.
61. 어떠한 유혹도 기도, 사랑, 단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62. 병이나 고통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여라.
63. 너희들 자신안에 있는 평화로 다를 사람도 그 평화를 갖도록 도와주어라.
64. "지금은 기도할 때에도 하느님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신 분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생활을 하여라.
65. 매일매일 생활을 개선하여라.
66. 하느님께서는 미지근하고 완전히 결정하지 않은 체 하느님을 쫓아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하여라.
67. 나의 메시지는 자주 묵상하여라."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을 위하여 사용하시기 위해 너희를 선택 하셨고 또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너희의 역할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기도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68. 예수 성심의 지향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69. 성모 성심의 지향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70. 자질구레한 일들을 너무 중대히 여기지 말고 천국을 동경하며 생활하여라.
71.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말아라. 너희가 나의 메시지대로 살면 하느님께서 항상 도 와주시고 또 너희들에게 길을
보여주신다.
72. 모든 이 세상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으로 사랑 하여라.
73. 주님께서 항상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되 너희 뜻에 맡도록이 아니고 주님의 뜻에 맡 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여라.
-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의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에게서 발췌
10. 성모 마리아님과 성화상 공경
예수그리스도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이 예수께서 살았고, 접촉한 장소와 사물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고
성지(聖地)로서 존경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님을 따라 산 성인들에 대하여도 사랑과 경의를 다 하였다.
성모 마리아님의 공경
마리아님은 구세주의 구세(救世)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성모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의 일치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리아님은 그리스도님의 "어머니"요 그리스도님의 지체들인 신자들[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오래전부터 마리아님에 대한 교회의 신심(信心)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원을 위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얻어주는 마리아님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님의 중재 역할을 감소 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사실 마리아님의 온갖 영향은 그리스도님의 넘치는 공로에서 나온다. 마치 그리스도님의 사제직에 성직자나 평신도가 여러 모양으로 참여함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과 같다.
1. 천주교회는 하느님과 마리아님을 혼돈하지 아니한다.
하느님께는 마리아님을 포함하여 만물 위에 높이 공경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바치므로, 마리아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성 모 마리아님을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로 사랑과 공경을 드 린다.
2. 천사와 성인을 초월하는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예(禮)는 상경지례(上敬之禮)이다
천사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예는 공경지례(恭敬之禮)이다.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께 기도하는 것은 전구(傳求, 代禱 대도)로 청한다.
3. 성모 마리아님과 천사와 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 소서" 하고, 하느님께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소서" 한다.
성화상의 공경
성상(聖像: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님의 형상, 성모 마리아님과 성인들의 상)이 상징하는 그 대상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국기 앞에 경례하는 것은 그 국기가 표시하는 조국에 대한 것과 같다.
성화상은 주로 그리스도님을 그리는데,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하느님에게서 본 것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상 자체에 신성(神性)이나 덕능(德能)이 있다고 경배하면 우상 숭배가 되고 십계명 중 첫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천주교는 십계명 중 첫 계명(출애20,3~4; 신명5,6~7)에 대해 개신교처럼 무조건 형상 제작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신 자체로 숭배 하려고 만드는 것을 금한다고 해석한다.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는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을 상징적으로 가리켜 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셨다. 구리뱀(민수21,4~9; 요한3,14~15)과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25,10~22; 1열왕 6,23~28)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성화상을 성당이나 가정에 모시는 것은 무언의 신앙 고백이며 기도를 고무시킨다. 또한 사람의 심정을 성스럽게 자극하여 성상이 표시하는 인물의 덕행과 위업(僞業)을 본받게 한다. 우상 숭배가 아니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11. 마리아와 관계된 축일들
1.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가 성모님께 부여된 것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였다. 당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호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단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여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이 아닌 '그리스도의 모친'일뿐이라고 한데 대해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임을 믿을 교리로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이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긴밀한 연관하에 교회에 수용되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이미 4-5세기 경부터 예수 성탄 대축일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축일을 지내왔다. 서방교회는 7세기경 이 축일을 받아들여 8세기경부터 성탄 8부 축일인 1월 1일을 '성모의 축일'로 기념해 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성서의 증언대로,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태어난 지 40일째에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갖고 아기를 봉헌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2월 2일을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내왔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산모는 아이를 낳고 7일간은 부정한 자로 간주되고, 그후 33일간은 축성된 것을 건드리는 것과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40일째가 되는 날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받아야 했다. 단 여자 아이를 낳으면 산모는 80일째 되는 날에 정결례를 받아야 했다. 따라서 이날은 예수님의 축일이며 동시에 성모님의 축일이기도 하다. 동방교회는 5세기 경부터 이 축일을 지내왔고, 서방교회는 7세기경에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0세기경에는 구약의 율법(레위 12,2-4)에 근거하여 '성모 취결례'로 불러왔다. 그러나 1960년 전례쇄신 규정에 의해 초대 교회의 전통대로 '주님 봉헌 축일'로 환원되었다.
3.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이 축일 역시 예수님의 탄생과 밀접히 연관된 축일이다. 즉 성탄 대축일로부터 역산하여 3월 25일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 영보 대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바로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전인적 응답으로 동참한 것을 기념하며, 마리아를 통해 이룩하신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4.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마리아는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수태 고지를 받은 후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갔다. 천사에 의하면 그 때 이미 엘리사벳은 석녀임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지 6개월째가 되었다. 엘리사벳의 집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아인 카림에 있었다. 나자렛에서는 약 4일 정도의 거리였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해 엘리사벳의 문안을 받고, 유명한 마니피캇을 노래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5.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은 현재 한국교회의 4대 의무 대축일의 하나로 다른 성인들의 축일과 같이 성모님의 사망일에 근거한 축일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께서는 성신강림 후 15년간 이 세상에 계셨다고 한다. 예수님의 분부대로 성 요한의 보호를 받으며 소아시아의 에페소에서 여생을 보내셨다. 성모님께서는 하늘로 가실 때가 되자 슬퍼하는 사도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로 올라가도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살아있으 때보다도 당신들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중재를 하겠습니다." 그후 성모님의 장례를 치른 후 사흘째 되던 날 성 토마가 무덤 문을 열어 보니 성모님의 시신은 없고 시신을 쌌던 천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6세기 경에는 이 축일이 '성모님의 귀향 축일'로 불려졌고, 날짜도 8월 15일로 정해진 듯 하다. 그후 7세기에 서방교회에 전해져 8세기에 이 축일이 확립되었고, 명칭도 '마리아의 승천 축일'로 바뀌었다.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을 맞아 교황 비오 12세는 사도 헌장 "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해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6.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월 22일)
이 날은 성모 승천 대축일로부터 8일째 되는 날로 하늘로 올려지신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과 함께 지내시며, 천상의 모후로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시고 또 희망과 위로의 표지가 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7.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9월 8일)
성모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들의 구원을 싹트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풍요로운 은총을 내려 주기 때문에 전세계에 커다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교회는 구세사적 측면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 가까워졌음을 기뻐하며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기념했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은 베짜다에서 성 요아킴과 성 안나 사이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날은 5세기 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마리아 성당 축성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8.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사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므온의 예언에서부터, 이집트 피난, 12세의 아들 예수를 잃고 3일을 근심 속에서 찾아 헤매던 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숨진 아들을 안고 통곡하는 등 일생을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며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셨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의 이러한 삶을 "정신적 순교"의 삶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오늘도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으시는 어머니의 고통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축일을 제정하였다.
9.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이 날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모님의 도움으로 레반트 해전에서 승리한 후 기념하게 된 날로 특히 묵주기도를 성모님께 바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준비하도록 한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곳에 발현하셔서 세계평화와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10.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월 21일)
교회의 전승에 기초한 이 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세 살 때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아가 자신을 봉헌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표시로 성전에 자신을 봉헌하고 양친으로부터 떨어져서 성 요셉과 약혼하게 될 때까지 성전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즉 성모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11.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교회는 오래 전부터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성모 마리아가 원죄에 물듦이 없이 순결한 영혼을 지녔다고 기념해 왔다. 이 날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9월 8일)에서 역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에 지내고 있다. 이미 8세기 경부터 동방교회에서 지켜졌으며, 9세기에 서방교회에서도 지냈다. 그러던 중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를 믿을 교리로 반포되었다. 한국 교회는 수호성인으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정해 공경하고 있다.
12.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이날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순결한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날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가 밝히 드러난 날이며, 이에 동참한 성모 마리아의 신앙이 빛나는 날이기도 하다.
13.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성탄 팔일축제 내 주일 또는 12월 30일)
성모님은 요셉 성인과 예수님과 함께 나자렛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사셨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30년간을 나자렛에서 효성어린 아들로서 지내셨다.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과 그 모범으로서 나자렛 성가정을 제시하며 성탄 팔일축제 내 주일에 성가정 축일을 지내고 있다.
- 가톨릭성직자 홈페이지에서 발췌
12. 마리아의 4가지 교의
1.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먼저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어느 누구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없었는데, 나중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러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태중에서 육체와 결합되어 육체의 법칙을 따라 탄생된 하느님의 말씀은 육체에 고유하고 육체에 속하는 출산 법칙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교부들이 거룩한 동정녀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DS 251).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인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채택한 것이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선포되기는 했지만 교회는 그 이전부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러 왔다. 이미 3세기경의 기도문 [Sub tuum praesidium]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불려졌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델 주교가 아리우스의 파문에 대해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하느님의 모친이신 마리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품안에 가지셨다고 적고 있다. 그 후로도 이 칭호는 아타나시오, 치릴로, 바실리오를 비롯한 가파도치아의 교부들에 의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니싸의 그레고리오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정통 신앙의 기준이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만일 누가 성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Theotokos)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신성(神性)밖에 있는 것이다" (Epistola ad Cledinum a cledonio 101, PG 37, 177-180). 그리고 라틴 교부 암브로시오는 희랍어 'Theotokos'를 라틴어 'Mater Dei'로 번역하여 불렀다.
그런데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던 안티오키아 학파 출신의 네스토리우스 주교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이 호칭의 사용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 주된 논쟁거리였다. 네스토리우스는 강생한 그리스도안에 분리된 두 개의 위격(신격과 인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마리아는 신성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신성과 결합된 인간을 낳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머니'대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교부들은 '속성의 교환(Communicatio idiomatum)'이라는 원칙을 통해 '하나의 위격 안에 두 가지 본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로 등에 의해 논박을 받은 다음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비록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인성만 낳으셨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페소 공의회는 교회의 전승대로 '하느님의 어머니'를 교회의 신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1) 교의형성의 역사
'평생 동정(Perpetua Virgo)'이라는 단어는 제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의 신앙고백문 안에서 명문화되었다(DS 422. 427).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교의의 시초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고백되어온 신앙이기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성서의 복음 말씀은 마리아가 동정인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루가 1,26-38; 마태 1,18-25). 초대 교부들은 이를 근거로 마리아의 출산 전(ante partum) 동정성을 언급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게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이 이루신 세 가지 신비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 신성의 보증이 되고 있다(Epistula ad Ephesios, XVIII-XIX). 유스티노는 창세 3,15과 이사 7,14을 인용하면서 마리아의 동정성이 이냐시오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증명하는 한 가지 징표로 이해하고 있다(Dialogus cum Tryphone Judaeo 100: PG 6, pp.709-712). 이레네오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교회 신앙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주한다(Contra haereses 5, 19: PG 7, pp.1175-1176).
이후 마리아의 동정성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온전한 봉헌으로 해석되면서 마리아는 점차 '영원한 동정녀'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이미 클레멘스는 외경 [야고보 복음]을 인용하면서 평생 동정을 주장하였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의 모친에게 걸맞는 모습으로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했다. 4세기 초엽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Petrus von Alexandreia, †311)는 마리아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였다. 서방교회의 암브로시오(Ambrosius,†397)와 아우구스띠노(Augustinus, 354-430), 동방교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와 시리아의 에프렘(Ephram?,†373)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관철시킨 대표적인 교부들이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의 교부들에게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삼중형식으로 고백되고 있다. 이후 교부들의 이론들은 교회안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확증되었다. 라테란 공의회(649)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52항, 57항).
2) 성서적 근거와 현대신학의 문제 (한국 가톨릭 대사전, "동정녀 잉태", 서공석)
동정녀 잉태 [라] Conceptio Virginalis [영] Virgin Conception
성모 마리아가 성령의 은총을 받아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음을 말함.
[성서전승]
마리아가 처녀로서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이야기는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마태오 복음 1장 18-25절과 루가 복음 1장 34-35절에만 있다. "그러므로 동정녀 잉태 신앙은 일부 지역 교회에서, 그것도 비교적 늦게 생긴 셈이다"(정양모, <루가복음> 33). 바오로, 마르코,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바오로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태아났음을 말하기 위해 "그 이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갈라 4,4)고 할 뿐 동정녀 출산이라는 예수의 유일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바오로는 동정 생활을 바람직한 것으로 권유하지만, 마리아의 동정으로 자기 의견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1 고린 7,25).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가 복음 1-2장, 이른바 예수의 유년기 사화는 전기적 저술이 아니라, 예수가 구약의 완성임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된 신학적 저술이다. 따라서 이 유년기 사화는 구약성서의 언어에 깊이 젖어 있다.
1) 마태오 복음 1장 18-25절: '다윗의 후손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인데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요셉은 유대인 율법에 다라 그녀를 소박하려 하였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로 그녀를 맞아 들여 동침하지 안고 동거하면서 그녀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자기 아들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마태오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 된 까닭을 밝혀서 그분이 메시아임을 말한다. 마태오는 그분의 동정녀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1,18.20). 그리고 그 잉태는 구약성서의 완성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한다. "보라,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1,23). 히브리어 원문에는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라 하는데, 마태오는 70인 역 르리스어 역문을 따랐다. 마태오가 말하려는 것은 하느님이 예수로 하여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에게서 탄생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일뿐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아들,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2) 루가 복음 1장 26-38절: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게 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와 수태를 알리는 말에 당황하여 천사에게 묻는다.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한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계약의 역사를 넘어서 창조에까지 시선을 돌리게 한다. 구약성서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창조력이다. 태초의 혼돈과 어둠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면서 세상이 창조되기 시작한다(창세 1,2). 따라서 지금 마리아에게 일어나는 일은 새로운 창조이다. 무에서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은 인류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싼다"는 말은 하느님이 구름으로 당신 현존을 더러내던, 광야에서의 장막과 이스라엘의 성전을 가리킨다(출애 40,34; 민수 9,15-22; 2역대 5,13-14).
마리아는 하느님이 현존하는 성전으로 묘사되었다. 천사는 이어서 석녀인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배려로 잉태하였다고알리면서, 창세기 18장 14절을 인용하여,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마리아의 잉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기점으로 한, 석녀의 잉태사 안에서 이해해야 함을 암시한 것이다.
3) 위의 두 사화는 서로 독립된 것으로 보일 만큼 자료의 사용에 있어서나 사화의 전개 양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이미 두 사화가 다 구약성서의 언어에 젖어 있고 구약성서의 '예고 도식'과 '소명 도식'을 그대로 옮겨 사용하고 있다(G. Lohfink). dl en 사화는 역사적 사실의 보도가 아니다. 이 사화는 이미 부활을 체험하여 예수는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을 하는 공동체가 그 신앙 고백에서 출발하여, 그분은 영원한 왕좌에 임명된 분이므로 그분을 통해 구약성서의 약속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사화는 그리스도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부활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이 들어 있다. 즉 예수가 하느님이 아들이라는 것은 그의 잉태가 하느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사화를 역사적 사실의 보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텍스트의 내용을 넘어서는 일이다.
[전통적 이해]
19세기 후반 역사 비평 방법론이 신학에 도입되기 전까지 교회는 성서의 모든 사화양식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였다. 예수의동정녀 잉태는 하느님 아들의 출생에 합당한 기적으로 이해하였다. 1965년 3월 네덜란드에서 <새 교리서-성인들을 위한 하나의 신앙 선포>가 출판 되자 1968년 10월 15일 '교황 임명 추기경위원회'는 그 교리서의 부족한 표현을 수정하도록 지침을 시달하였다. 동정녀 잉태에 대해 그 지침서는 이렇게 말한다. "교리서는 강생하신 말씀의 거룩한 어머니께서 언제나 동정의 영예를 지니고 계셨음을 고백해야 한다. 또한 강생의 신비와 지극히 잘 부합하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교리도 못지 않게 명시해야 한다. 이 진리를 부정하고 성서에 입각한 교회의 전통에 반하여 단지 상징적 의미만을 보존하는-가령,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사하신 순수한 은총을 지적하느 데 그치는-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가톨릭 신앙입문>, 639쪽). 동정녀 잉태 사화를 역사적 사실 보도로 알아들은 데서 발생한 동정녀 잉태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정녀 잉태의 교리는 순교자 유스티노(100-165)의 저서와 이레네오(130-200)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2세기 중반 이후의 신약성서 외경들, 특히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ilium)>는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서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200년경에는 사도 신경의 전신인 신앙고백문에도 삽입되었다. 4세기 라틴 교회는 마리아의 생물학적 동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리아는 출산 전에도, 출산 중에도, 출산 후에도 동정이었음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 교리는 동정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마리아가 출산 전에 동정이었음은 마태오와 루가의 잉태 사화를 근거로 정당화되지만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다는 말은 <야고보 원복음서>의 영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원복음서>는 출사 ㄴ중에도 마리아가 생물학적인 처녀성을 잃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산파를 등장시켜서 마리아의 처녀를 확인하게 한다. 출산후에도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었다는 교리는 아우구스티노로부터 시작하여 라틴 교회 안에 공통된 교리가 되었다. 이 교리는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기를 원했다고 가르치며, 마리아가 천사에게 한 질문(루가 1,34)을 이미 동정 선서를 한 마리아가 천사에게 항의한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가설이다. 루가의 텍스트 어디에서도 동정 선서에 대해 언급하는 바가 없으며, 그 시대 유대인들은 그런 종류의 선서를 생각할 수도 없었기에, 그런 해석은 마리아가 한 남자에게 약혼한 몸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현대 신학적 이해]
동정녀가 출산하는 이야기는 영웅의 기적적 출산과 관련하여 여러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D.A.Leeming). 이런 신화들의 공통점은 산모의 고통, 피, 후산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신화에는 인류의 염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즉 건드리지 않는 처녀가 구현하는 순박과 정결이 그것이다. 진실한 모성, 안도, 성숙, 양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끝으로 한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싹트는 희망, 한 어린아이가 뜻하는 희망과 기쁨이 모두 그 것이다"(J.Ratzinger).
그러나 신약성서의 동정녀 잉태 사화는 종교사적 배경에서보다 구약성서 전통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신약성서 본문들이 구약성서 언어에 젖어 있고, 마태오와 루가 두 사람의 의도도 예수의 탄생이 구약 약속의 성취임을 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중요한 순간에 기적적 탄생이 있었음을 보도한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창세 18장). 사무엘의 어머니 안나(1사무 1장), 그리고 삼손의 어머니(판관 13장) 등은 모두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들이었다. 수태와 결실이라는 인간적 희망이 없던 사람들이다. 세 여인이 모두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 줄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고(창세 18,14; 루가 1,37), 비천한 이들을 들어올리는(1사무 1,11; 2,7; 루가 1,48; 1,52)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의 결과이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의 결과로 나타나는 기적적 탄생은 석녀인 엘리사벳(루가 1,7-25)을 걸쳐 마리아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사건의 의미는 모든 경우에 동일한다. 세상의 구원은 인간에게서, 인간의 힘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느님이 무상의 선물로 주는 것, 인간은 하느님이 주는 것을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약 전통은 구원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간의 불임과결부시켜 말하고 있다. "기뻐하라, 아이 못 낳는 불임의 여인아! 환성을 지르며 외쳐라, 산고를 모르는 여인아! 과연 외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남편 가진 여인의 자손들보다 더 많으리라"(이사 54,1; 갈라 4,27).
신약성서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의 신성을 동정녀에게서의 탄생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처녀인 마리아를 어머니로 한 반신반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예수를 "온전한 하느님, 온전한 인간"이라고 천명하였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교리는 예수가 정상적으로 인간 결혼에서 출생하였다 할지라도 변치 않을 것이다"(J.Ratzinger).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예수의 하느님 아들 됨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예수의 잉태는 하느님의 아들이 새로 생겨났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희망을 의미한다(시편 2,7). 루가 복음이 말하는 '하늠니의 아들'은 이 전통을 잇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 약속의 참다운 상속자 메시아이며 이스라엘과 우주 만물을 다스릴 왕이라는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예수가 탄생했다는 말은 하느님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절망적인 인류 안에서 예수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는 인류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그 기원이 온전히 하느님에게있다는 것이다. 이 역사는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작이다. 따라서 예수는 새로운 아담(1고린 15,47)이며 그와 함께 새로운 인류가 시작된다.
[의의 및 평가]
성서가 전하는 동정녀 잉태는 하느님의 베푸심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지 동정의 수덕적, 윤리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며 인간은 그분 앞에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의 '동정녀'라는 단어를 생물학적 처녀의 의미로 해석하면 구약성서적 배경을 떠나 종교사적, 신화적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해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동정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요구되는 것일 뿐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자기 민족의 증대를 위하여 동정을 지킨다는 것은 불임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것은 큰 굴욕과 불명예로 여겼다"(<성서 신학사전>, 24쪽). 구약성서에서 동정은 인도에서와 같이 그 처녀가 속하는 집단의 순결을 상징하지도 않고, 그리스, 로마 신전의 베스탈 처녀들의 경우와 같이 종교적 특권과결부되지도 않는다(J.W.Drijvers).
성서는 신앙체험을 기록한 전승이지 생물학적, 역사적 사실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리아 한 사람이 생물학적 처녀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구원 체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정녀의 뜻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예수의 강생은 독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만 어떤 메시지가 될 수 있고 결혼 생활을 하는 절대 다수의 인류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사실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동정녀 잉태 교리의 오랜 전통이 은연 중에 독신자들의 독선적 우월감을 조장하는 데 일익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교 안에 독신 생활 전통이 있는 것은 마리아나 예수가 동정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기보다 고린토 전서 7장 25-38절의 바오로 사도의 권고와 마태오 복음 19장 10-12절의 복음적 권고에 바탕을 둔 특수 생활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동정녀 잉태에 대한 마태오와 루가의 사화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본질적인 것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무능하고 하느님은 베푸는 분이라는 메시지이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력과 동일시하는 현대 사회 안에 의미 있는 메시지라 할 것이다.
3.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교의형성의 역사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무염시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에 의해 선포되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었다"(DS 2803). 이 교의는 마리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비록 성서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이 교의가 초대교회로부터의 긴 전승을 배경으로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초대 교부들은 성서의 몇몇 구절을 통해 마리아의 탁월한 성덕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명을 통한 마리아의 업적이 죄와 불순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스띠노는 처음으로 에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마리아의 무죄성을 암시하였다. 아타나시오나 에프렘 부제도 육화의 신비와 관련하여 마리아의 완벽한 동정성과 무죄함을 표현하였다. 특히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하느님께 동정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화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깨끗해졌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에 힘을 더했다. 이후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통해서 마리아의 전적인 성성(聖性)과 무죄성에 대한 명제가 일차적으로 서방교회에서 관철되고, 오랜 발전을 거친 끝에 동방교회에서도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동방교회는 7세기부터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축일을 지내오고 있다.
12-13세기가 되자 스콜라 철학자들은 마리아의 무원죄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중세 가톨릭 신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inas, 1225-1274)가 이를 부인하는 쪽이었다면, 또 다른 탁월한 신학자였던 둔스 스코투스(Duns Skotus, 1266-1308)는 이를 열렬히 옹호하는 편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른 교부들처럼 마리아의 완벽한 성덕과 무죄함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적 원죄 이론을 따랐다. 그래서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된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그리스도로부터 힘입은 은총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경륜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같은 입장의 차이는 이후에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도미니코회 회원과 둔스 스코투스의 프란치스코회 회원간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15세기에 들어 비록 실재적인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무염시태가 신앙조항으로 선포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염시태를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자 식스토 4세는 회칙 "Grave nimis"를 선포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쟁을 금지시켰다. 트렌트 공의회(1545-1563)는 종교개혁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논쟁거리인 '무염시태'를 다루지 않음으로써 식스토 4세의 중립적인 노선을 따랐다. 다만 원죄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반적인 원죄 이론에 마리아는 포함시키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삽입했다. 1667년부터 1799년까지 13명의 교황들 역시 선대의 교황들의 입장을 따라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 전체의 분위기는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해야 한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18세기의 비투스 쉐퍼(Vitus Scheffer)는 성모무염시태에 대한 교리가 창세기에 나타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하여 일곱권이나 되는 책을 저술했다. 1830년의 '기적의 메달' 성모 발현은 신자들로 하여금 '무염시태'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여주었고, 1849년 10명의 프랑스 주교들은 공동 서한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교의 선포를 청원했다. 또한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한 책들이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1843년 프랑스 국가 교회의 총책임자였던 추기경 람브루스키니(lambruschini)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호의적인 성서, 전승, 교황청 문헌 등을 모두 수집하여 책으로 발간하였다. 또 예수회의 죠반니 바티스타 페론(Giovanni Battista Perrone)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하여]라는 책을 펴내어 큰 인기를 모았다.
성모 신심이 뛰었난던 비오 9세가 교황이 되자 교의 선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착수됐다. 그는 신학 자문위원회와 추기경 자문위원회를 소집하여 의견을 수렴했다. 대다수 주교들의 호의적인 의향과 추기경단의 동의를 얻은 비오 9세는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축일을 맞이하여 회칙 [Ineffabilis Deus]를 선포하였다.
4. 승천하신 마리아
교의 형성의 역사 -
'성모 승천'교의는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선포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성좌의 고유한 권위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천주의 모친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교의를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 공언하고 선언하며 분명히 정의하는 바이다." 이 교의의 바탕은 회칙에서 밝힌 대로 성서 '안에'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무염시태의 경우처럼 해석되어야 한다. 즉 성서 '안에' 있다는 것은 승천교리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전해주는 증언에 그 교의가 전적으로 부합한다는 뜻이다.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초대 교부들의 증언은 전혀 없다. 4세기말에 가서야 에피파니오(Epiphanius of Salamis)가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여러 불확실한 가능성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교회의 전승에 따라 5세기말부터 이와 관련된 축일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6세기경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마리아 축일의 명칭은 '하느님 어머니의 기념일(Mneme Theotokou)'이었다. 이어 황제 마우리치우스(Mauricius, 582-602)는 자신의 통치 전역의 모든 교회로 하여금 '마리아의 잠드심(Koimesis)'이라 명한 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도록 했다. 이는 나중에 '하늘에 오르심(Analephsis)'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교황 세르지오 1세(Sergius I, 687-701)는 이 축일을 서방교회의 축일표에 포함시켰다. 이때부터 축일이 되면 강론가들은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크레타의 안드레아, 다마스커스의 요한 등의 성모 승천에 대한 강론은 매우 유명하다.
마리아의 '승천(Assumptio)'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8세기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니코메디아의 Giorgio,†880)는 마리아의 무죄성에 관련하여 육체의 승천을 주장했고, Teodor Studiat(†826)는 마리아가 천상에서 우리의 위대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황제 레오 4세(†912)는 Giovanni Geometra(†989)와 더불어 마리아의 육체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다른 죽은 모든 이들의 승천의 중간 상태라는 점을 암시한다. Giovanni Furnes(†12세기초)와 Michaele Glicas(1204), Gregorio Palamas(†1359), Nicola Cabasilas(†1396)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을 주신 어머니로서 예수의 육체와 유사성을 들어 승천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가명-예로니모], [가명-아우구스티노], [황금전설] 등과 같은 많은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성모 승천 교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오랜 동안 이 교의는 특별히 논의되지 않다가 '무염시태' 교의 선포를 계기로 재조명되었다. 1869년 라벤나의 대주교는 교황 비오 9세에게 승천 교의를 선언하도록 격려하였고, 제 1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 113명도 마리아 승천 교의를 청원했다. 20세기초에 많은 국제 마리아 회의가 열려 신학적 기초를 다졌고, 전세계로부터 80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서명한 3000여건의 청원서가 교황청에 답지했다. 또한 쉐벤(M.M.Scheeben), 페쉬(Christian Pesch), 추기경 알렉시오 레피시에(Alessio Lepicier) 같은 146명의 신학자들이 성모 승천 교의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재의 교회 신앙 의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신앙의 계시적 성격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예수회의 휠로그라씨(G.Filograssi)의 주장이 교의 선포에 힘을 더해 주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를 기초로 주교들, 신학자들, 그리고 신자들의 동의를 묻고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1950년 모든 성인의 축일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했다.
5.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공적으로 선포된 교의는 아니지만 가톨릭 교회안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 내용이기에 이를 소개한다. 교회의 어머니 [라] Mater ecclesiae [영] Mother of the Church (한국가톨릭 대사전, "교회의 어머니", 박문수)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낳아 육친의 어머니가 되듯이, 교회와는 신앙과 사랑의 모범으로 어머니가 된다고 믿는 신앙이자 마리아의 별칭.
교부 시대까지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몇몇 교부들이 동정녀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것처럼, 교회 또한 신자들의 동정 어머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였을 뿐이다. 중세 시대에도 몇몇 교부들이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녀를 교회의 형상, 교회의 가장 탁월한 일원 그리고 교회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로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그나마도 성 대 알베르토 (Albertus Magnus, 1200?-1280) 이후로는 점차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비오 10세(1903-1914)에 이르러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로 관계를 맺는다. 그는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기본적인 관계가 어머니로서 갖는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녀가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라는 사실로 전체 몸인 교회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교회 역시 사람들에게는 교회로부터 사람들이 초자연적 삶을 얻고 주로 성사의 수행을 통해 양육되기 때문에 어머니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또 다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다. 현대 신학에서 마리아와 교회 사이의 관계는 구원의교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주제로 등장한다. 현대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당신 아들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제 8장은 그리스도 및 교회의 신비와 관련시킨 동정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공식화하고 종합한 문헌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위치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교부들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를 꺼렸다.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유일한 역할을 격하시키는 것으로인식될 위험 때문이다. 사실 그분의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나오고, 철저하게 그분의 중재에 종속되어 있다.
마리아가 교회와 맺는 관계에서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교회의 입장은 <교회 헌장> 제 8장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구원 사업에서 마리아는 동정녀로 그리스도를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57항) 성자와 결합하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신다고 한다. 곧 신앙의 나그네 길을 걷고 아들에 대한 일치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보존하였으며, 하느님의 섭리대로 그 십자가 밑에 서 계셨고, 거기서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쳤으며 당신이 낳은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 보십시오. 부인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신 그 말씀으로 제자의 어머니가 되시고(58항), 아울러 당신 아들이 승천한 후 기도로써 초기 교회를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59항). 이처럼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구원 사업과 성령의 활동에 전적으로 참여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었다. 바로 이 삶의 모습이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도극한 지체와 전형으로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53, 63항). 또한 지상에서 한 역할에 못지않게 은총의 세계에서도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함께하여 구원 사업에 협력하신다고 본다(61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같은 내용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관계가 예수가 제자(요한)에게 어머니를, 어머니에게 제자를 맡기신 행위(요한 19,25-27)로 확립되었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이, 곧 마리아의 특징인 모성적 협력이 교회의 특징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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