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통천군 일부에 걸친 광대한 경승지역 푸른 동해 해안선을 끼고 달리는 금강산 유람 길은 초입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동안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언제나 금강산은 감질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골골 계곡마다 가득한 천년 신비를 풀길없이 기다려온 반세기,
최초로 시도한 남북한 합동 기획취재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은 내금강, 외금강, 삼일포에 이르는 장대한 금강산의 위용을 공개했다.
원래 이 우리 내금강는 역사를 놓고 보면 1400년 전부터 내금강에 대한 전설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놓고 보면 고성은 남성적인 성격을 띄었다고 하면, 내금강에는 여성적인 성격을 띄어 가지고 아주 유하고 부드럽고 모든 탐승하는 동무들이 아주 편리하고 힘들지 않은 이런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깊고 그윽한 계곡미의 절정, 금강산 서부의 내금강은 금강군 내강리에 만천구역을 시작으로 한다.
울창한 숲속에 만천의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이곳은 수많은 사찰과 문화유물들이 산재하는 곳이다.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다리를 지나서 저 앞에 바로 보이는 터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던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장안사 터입니다. 내금강 입구에서 골짜기를 따라 약 2㎞ 가다보면 깊은 숲속에 장안사 터가 있다.
1400여 년의 유고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장안사는 여기 바로 육전 칠각 이루 이문을 비롯해서 기타 10여 동의 부속 건물을 가지고 그 웅대함을 자랑했습니다. 저기 앞에 바라보이는 터가 있는데. 바로 그 건물이 2층 건물인 대웅보전 터입니다. 그래서 이 대웅보전은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보여주는 건물로써 당시 우리나라의 국보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장안사에는 은으로 만든 상계첩과 구리향로, 그리고 이조시기 칠 반상. 자수 병풍 들을 비롯해서 우리 금강산의 귀중한 문화유적, 유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금강산 4대 사찰로 조선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왔던 장안사는 궁중으로부터 보내온 여러 귀중한 유물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 웅대했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빈 터만 남은 장안사엔 옛 건물의 주춧돌과 깨진 기왓장만 딩굴고 있다.
내금강 만천상류 백천을 따라 오르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어울려 치솟은 명경대 구역으로 들어선다.
넓죽하고 길쭉한 장방형의 큰 누룩바위가 신통히도 경대를 세우는 것만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 바위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가려내 준다는 세계에 유명한 거울바위입니다. 명경대하는 거울바위인데, 높이가 90m이고 너비가 30m나 됩니다. 예, 대단하구만요!
명경대를 향해서 머리를 들어보면, 십왕봉과 판관봉, 그리고 도장봉과 죄인봉, 사자봉이 병풍처럼 쭉 둘러 서 있는데, 그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 바위를 배석대(무릎자리)라고 하는데, 이 홈 자리가 보이지 않습네까? 이곳은 명경대를 향해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던 무릎자리입네다. 사람들이 이곳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명경대가 사람이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결해서 죄있는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극락세계로 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다른 담수들보다 유달리 누런색을 띈다고 해서 ‘누를 황(黃)’자에 ‘흐를 류(流)’자를 써서 황류담(黃流潭)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자연경관 속에서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곳 명경대엔 천당과 지옥이 함께 했다.
우리 금강산에는 천여 종의 식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이한 것을 든다면 바로 이 금강국수나무와 금강초롱을 들 수 있습니다.
아! 요거?
예!
이 금강초롱과 금강국수나무는 세계적으로 오직 우리 금강산에서만 자라는 일속일종의 식물들입니다.
푸른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지나면, 또 어떤 절경이 펼쳐질까?
야! 물맛이 참 좋구만요? 이 샘물이 바로 한 번만 마셔도 2OO년을 산다고 하는 장생불로 샘물인 200년 수입니다. 이 물을 두 번 마시면 두 배로 더 오래 살 수 있겠구만요?
안됩니다. 무턱대고 많이 마신다고 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 탐승을 하러 올라가시면서 길게 한 모금 마시고, 탐승을 끝내고 내려오시면서 짧게 두 모금 마셔야지만 꼭 200년을 살 수 있습니다.
야! 그런 줄도 모르고 ㅎ ㅎ ㅎ---.
야! 그 나무 대단하다.
이 깊은 고요함 속에서는 200년, 300년의 시간마저도 찰나로 느껴지는데, 우리 분단 50년은 왜 이리 아득하기만 할까?
골 골 계곡마다 유난히 얽힌 사연과 전설이 많고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덮인 이곳 삼불암 계곡은 고려시대 작품인 불상조각과 함께 애뜻한 울소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 부처가 삼불암입니다. 삼불암(三佛庵)이라고 하는 것은 보시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큰 바위 앞면에 세 명의 부처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 삼불암이라고 한자로 새겼습니다.
집채만 한 바위 두 개가 마치 대문 기둥처럼 마주 서있는 삼불암은 바위 높이가 8m, 길이가 9m에 이르는데, 바위 정면에는 미륵, 석가, 아미타 등 세 부처의 커다란 입상이 훌륭한 솜씨로 새겨져있고, 왼쪽 옆면에는 그보다 작은 두 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앉은 모양을 한 60여 개의 부처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 옛날 금강산 장안사의 명승 나옹조사와 표훈사 금동거사가 불상 새기는 내기를 벌인 끝에 나옹이 새겼다는 금불상 세 채는 600여년의 풍상에도 손상 없이 그 자태가 남아있다.
선하게 웃는 눈매며 둥실한 코 금새 뭔가를 이야기할 것 같은 입술이 모두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대걸작품은 큰 도량을 닦은 부처세계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금강산에서 나옹조사를 내쫒으려는 세속적 야심을 가진 금동거사의 60불의 작은 나한상은 조각술이 매우 거칠 뿐만 아니라 너무 급하게 새긴 나머지 60불 중 한 부처는 귀 하나를 미쳐 새기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마침내 내기는 끝났고 나옹거사의 걸작 삼불과 금동거사의 60불은 이렇게 함께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고 서있다.
내기에 진 금동거사는 스승의 자리를 탐낸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 그 길로 울소로 내려가 검푸른 물속으로 뛰어내렸고 아버지의 자결 소식을 들은 아들 삼형제는 못가로 달려와 아버지를 부르며 슬피 울다가 그들도 함께 울소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자리에 떠오른 시체가 돌로 굳어져 시체바위가 생겼고, 그 때부터 폭포수 소리도 마치 사람이 우는 소리처럼 구슬피 들려 울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을 뛰어넘는 천년 전설의 현장!
여기가 바로 금강산이다.
삼불암을 지나 넓은 골 안에 아늑히 펼쳐진 표훈동!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 비석이 서산대사비석입니다. 그리고 우측에 있는 이 부도가 서산대사의 무덤입니다. 속칭 부도골이라는 부르는 이 곳 백화암 터에는 서산대사 비를 포함해 네 개의 비석과 다섯 개의 부도가 한꺼번에 모여 있다.
원래 서산대사가 수련하고 정진했다는 암자인 백화암엔 서산대사, 사명당, 나옹화상, 무학대사, 지공화상 등 금강산 명승들에 진영화상이 함께 보존됐는데, 화상은 모두 소실되고 17세기 중엽에 세워진 이들 비석과 부도들만 남아 당시에 뛰어난 조각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 표훈사는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다.
우리 표훈사는 금강산 4대 사찰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 파괴, 소각되고 현재 일곱 동의 건물만 남아있는데, 이 건물 가지고도 우리 인민의 유고한 역사도 알 수 있으며, 건축예술의 경지를 다 알아볼 수 있는 외칠포 내구포로 되어있는 이 반야보전만 보아도 알 수 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높은 언덕에 날아갈듯 한 합각지붕을 이고 앉은 표훈사의 중심 건물 반야보전!
높이 1m 정도 되는 축대 위에 세워진 이 전각은 앞면 삼각, 옆면 삼각에 겹처마 8각 식 건물이다. 굵직하면서도 힘차고 섬세하고 화려한 꾸밈새를 자랑하는 반야보전 외에도 여러 불전과 누각이 즐비한데, 절에 보존되어 있던 국보급 문화재와 보물들은 안타깝게도 일제시대에 약탈 분실된 것이 많다고 한다.
몇 마리 학이 날개를 펼친 듯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 표훈사 전경이 눈부시다.
표훈사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정양사가 있다.
단정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약사전은 6각 평면에 6모 지붕을 얹은 정사각형의 건물로 들보를 하나도 쓰지 않고 기둥 위 안팎으로 포식두공만을 여러 겹으로 짜 올려서 천장을 대신하는 매우 특이한 건물이다.
신라 진평왕 22년 창건해서 여러 차례 개수, 현재 건물들은 조선 초기 다시 세워져 조선 말기 부분적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정교한 짜임새와 아름다운 꽃무늬 장식 등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고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절 마당에 천년 세월의 이끼를 이고 서 있는 신라시대 3층 석탑과 고려시대에 석등 또한 정양사의 귀한 문화유산이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이마를 맞대고 서 있는 돌문을 금강산에서는 모두 금강문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노록바위 들이 깔려 있는 넓은 골 안이 펼쳐지고 골 안을 에워싼 봉우리들이 서로 키 돋움하며 치솟아있다.
금새라도 봉우리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만폭동 골짜기!
여기가 바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만폭동입니다. 만폭동이라 하는 것은 그 이름 자체로 폭포들이 대단히 장쾌하다고 해서 만폭동이라고 합니다.
물도 바위도 봉우리도 모두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장쾌한 경치 속에 깨끗하게 펼쳐진 누룩바위 들!
금강대 앞에 펼쳐진 바위에는 16세기 이름난 서예가 양사언이 썼다는 천하명필 글씨체가 남아있고, 삼신산 신선들이 이곳 경치에 홀려 떠날 생각을 잊은 채 바둑을 뜨고 놀았다는 바둑판 3선국이 새겨져있다.
백룡이 서리고 있다 해서 백룡담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주변에 희고 깨끗한 바위와 어울려 서 비길 데 없이 맑다.
유명한 내금강 8담에 첫 시작인 흑룡담!
바위를 푹 파고 물을 담가 놓은 듯한 이 담소는 바위 벼랑과 울창한 숲을 물속에 고스란히 비쳐 안고 있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데,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용이 솟구쳐 오를 것만 같다.
삼복더위에도 눈발처럼 시원한 물방울을 날리며 쏟아진다는 분설담 계곡!
만폭동 맞은 편 깎아지른 법기봉 벼랑 중턱에는 구리기둥 하나에 의지해 절묘하게 얹혀진 암자 하나가 있는데, 이 암자가 보덕암이다.
보덕암은 고구려 영양왕 시기인 627년 처음 지었는데, 지금 이 건물은 이조 시기인 1675년에 다시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아홉미터(실제는 7.3m)의 구리기둥과 집을 바위 벼랑에 의지하고 있는 이 쇠사슬은 1511년에 설치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곳에 집을 지으려는 생각만 해도 놀라운데, 집을 지어 놓은 솜씨 또한 놀랍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20m가 넘는 아슬아슬한 절벽에 7m 짜리 구리기둥 하나를 받치고 지은 보덕암은 벼랑 중턱에 날아갈 듯 매달아 지은 기발한 착상과 하나의 구리 기둥으로 암자를 떠받들게 한 건축기교 그리고 합각지붕, 배집지붕, 사가지붕 등 여러 형태를 배합한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150m의 돌층계를 지나 화려한 천장이 돋보이는 보덕암에 다다른다. 그리고 삐걱이는 마루를 밟고 들어가는 건물 뒤편 절벽바위에는 청년 수도승 회정과 미녀 보덕각시의 애틋한 전설이 깃든 자연동굴 보덕굴이 있다.
차가운 바람은 / 바위서리에 풍기고, / 골짜기에 남긴 물은 / 깊고 푸르구나! / 지팡이에 의지하여 / 벼랑을 바라보니, / 나는 듯한 처마는 / 구름을 탄 듯하구나.
이재현의 보덕굴
만폭8담 중에서도 가장 장쾌하고 웅대한 절경을 자랑하는 대표적 명담 진주담!
13m 높이의 폭포줄기가 바위 턱에 부딪히며 사방에 진주알 같은 물방울을 쏟아 붓는다.
실로 천만가지 물의 조화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폭포와 소! 4단으로 된 화룡담의 담과 담 사이를 넘나들며 푸른 물줄기가 쏟아질 때면 마치 용이 불을 토해내는 듯 장쾌하다.
화룡담 위에는 향로봉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사자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옛날 화룡담에 살고 있던 용이 사자와 다투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이 바위는 뒷다리 발목 밑이 떨어져 모난 돌을 고였다는데, 마주보고 있는 바위 귀퉁이에서 떼어낸 자국이 일치한다고 한다.
마하연 터는 마하연에서부터 백운대에 이르는 험준하고 가파른 탐승길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휴식 터와 같은 곳이다.
지금 현재 이 마을에는 이렇게 빈 곳처럼 비만 남아있는데, 이곳은 마하연을 건설할 당시 재물을 많이 기증한 사람들이 공적을 자랑해서 바로 이곳에 비문을 해주셨습니다.
마하연은 원래 신라 의상국사가 창건한 거찰이었지만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축대봉 동남쪽 바위언덕에 자리한 이 절터는 해발 846m 되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망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내금강 오지 교통에 요지이기도 하다.
마하연 터를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마하연의 부속 건물로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칠성각이 보인다.
백운동은 험준한 봉우리와 기암 준봉을 오르며 내려다보는 전망 경치에 극치를 이룬다. 특히 설옥동 개울을 향해 앉은 아담한 8각 정자 연화대는 아름다운 수림이 우거진 설옥동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며 만폭동 일대 산봉우리가 첩첩이 내려다보이는 아주 훌륭한 전방대다.
연화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한 폭 그림처럼 생생하다.
백운동을 지나 확이동에 이르면 탁 트인 넓은 골짜기에 참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예부터 비로봉 탐승에 휴식 터로 널리 이용되는 이곳은 큰 바위 벽을 그대로 다듬어 조각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길상 불상이 압권이다.
이 묘길상에 앉은키의 높이가 자그마치 15m이고, 너비가 9.3m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돌부처에서도 가장 잘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약 600여 년 전 나옹조사가 높이 40m의 붉은 석벽에 양각으로 새겼다는 이 마의 미륵불 좌상은 현재 북한에서 가장 큰 석불이다. 손가락 하나 크기가 사람 키에 이를 만큼 규모가 거대한 묘길상은 석굴암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는데 고려 중기에 만들어졌다는 바로 앞의 석등과 대조가 되 더욱 웅장하고 두드러져 보인다.
장엄하고 힘이 있으며 미묘한 산악미로 이름난 외금강은 태백산 줄기에 동쪽 비탈면에 자리하고 있다.
외금강이 시작된다는 온정리 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은 아득하기만 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외금강 탐사 길은 맨 먼저 온정리 남쪽 신계천 연한부터 시작한다.
신계천 하류 창터 솔밭은 대낮에도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데, 예부터 국가에 위급한 전란이 닥치면 수레능이라는 이 작은 고개를 통해 궁과 활 등 군수물자를 운반했다고 한다.
온정리에 있는 신계사는 금강산 4대 사찰을 이를 만큼 그 규모가 컸지만, 전쟁으로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다.
내금강에 있는 장안사, 표훈사 그리고 이 곳 외금강에 있는 유종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종사와 함께 4대 절간에 하나입니다. 절터를 보면 주위 경치가 다 쭉 훤히 트여있습니다.
신계사는 절묘한 지정학적 조건과 뛰어난 건물배치로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대웅전 앞에 화강암 3층 석탑은 삼국시대 석탑미를 그대로 간직한 문화유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사방으로 외금강 경관이 환히 틔어있다는 신계사는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되기 전까지만 해도 5전 4각 1루를 비롯한 1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 특히 대웅전은 건물의 비례가 잘 짜이고 우리나라 옛 건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의 포식두공을 재치있게 짜 올린 건축미의 백미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무너져 건물터만 남아있는 신계사!
그 옛날에 중후하고 멋스러운 건물은 사라지고 없지만, 세기를 뛰어넘는 기발한 착상과 뛰어난 건축기술은 오래도록 남아있으리라.
금강산에 수많은 경치 중에서도 구룡연 계곡에 신계천은 웅장한 바위절벽과 숲으로 둘러싸여 계곡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 푸른 담수가 보이지 않습니까? 옛날에 네 신선이 배를 타고 올라왔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서 배를 매놓고 앞으로 올라갔다는 배소 또는 선담이라고 불리워지는 담소입니다.
지금 이 앞에 보이는 바위가 오선암입니다. 오선암이라고 새겨 넣었지 않습니까?
옛말에 다섯 명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이 바위 위에서 놀았다고 해서 오선암이라고 합니다.
나는 청산이 좋아 들어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이해서 나오느냐?
구룡연으로 향하던 김삿갓이 유장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즉흥적으로 읊었다는 명시였다. 생각하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천하제일 금강산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앙지대 기암절벽은 사방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
앙지대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이곳에 와서 보면 사방절벽으로 둘러막히고, 머리 위로 하늘만이 보인다고 해서 그 전에는 앙지대라고 했습니다. 둘러막힌 앙지대 기암들을 보면 금강산 경치가 천하의 제일이어서 찾아왔던 동물들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서 화석으로 굳어졌답니다.
영락없이 큰 코를 드리운 채 돌이 되어 버린 코끼리며, 자라가 잠을 자는 듯한 자라바위, 앞발을 버티고 앞산을 건너다보는 도마뱀바위, 그리고 왜적을 무찌른 거북선바위, 눈이 툭 튀어나온 영락없는 개구리바위하며 어쩌면 금강산은 마음대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세기의 만물의 집대성지가 아닐까?
삼록수!
세정봉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에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올라갈 때 이 물을 한 번 마시면 10년이 젊어지고, 다시 내려올 때 한 모금 마시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얘기처럼 금강산 탐승 길은 언제나 웃음과 활력이 넘쳐흐른다.
안개와 구름을 너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감싼다는 옥황상제바위, 누구나 그 모습에 감탄하는 거북이바위와 자신의 몸이 굳어가는 지도 모른 채 금강산 경치에 취했다는 토끼바위.
그 옛날 장수들이 쌓아놓은 성벽을 보는 듯한 까마득한 성벽암, 그리고 금강산 장수총각이 세긴 거대한 발자국이 모두 꾸민 듯 아스라하다.
한 구비를 지날 때마다 숨겨놓은 비경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금강산의 매력!
산행도중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금강문 중에서도 그 규모나 생김새가 독특한 거대한 돌문을 지나면 마침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연이어 펼쳐지는 절경으로 힘든지도 모르고 오르는 돌계단! 바로 여기가 옥류동 구룡연으로 가는 길목이다.
신계천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옥류동 골짜기는 금강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힌다. 멀리 동해안에서 이곳까지 숭어, 은어 떼가 올라오는 옥류동 계곡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천탄의 명시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옥류동 골 안은 시원한 폭포와 옥색 물결 감도는 담소, 너른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된 자연예술품 같다.
옥류동 계곡은 금강산의 여러 계곡들 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 와서 시도 남겼기 때문에 정말 이곳에 서노라면 옛 시인들의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곳입니다.
水作銀杆春絶壁 폭포수는 은 절구통 같이 봄 절벽을 찧고,
雲爲玉尺廣靑山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로 청산을 재도다.
月白雲白天地白 달빛도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가 모두 희고,
山深水深客愁深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근심 또한 깊도다.
-김삿갓 ‘옥류동(玉流洞)’
옥류동을 지나며 부터는 뛰어난 절경들이 연이어 펼쳐져 도무지 한 눈을 팔수가 없다. 특히 물빛이 고와 두 개의 파란 구슬을 잇대어 꽤놓은 듯한 연주담과 얇은 비단천을 드리운 것과 같은 연주폭포는 주변의 봉우리들과 그윽한 조화를 이룬다.
이 골 안 경치는 연주담이 물색이 맑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좌우 산 생김새와 나무들이 조화를 잘 이루어서 기색차면서도 우아한 맛을 주고 그윽한 풍경을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주담 위편 뾰족한 봉우리에는 보는 사람의 각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바위가 있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아기를 달래는 것도 같다(독서바위).
기암괴석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어느새 높이가 139m에 이르는 거대한 층암절벽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비룡폭포에 접어들게 된다.
폭포수가 자주 일어나는 돌개바람에 의해서 물안개로 변하여 피어오르는데, 마치 그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싶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이는 폭포는 봉황새가 흰 날개를 펴고 너울너울 춤을 추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그 이름도 비봉폭포라고 합니다.
금강산이 12폭포와 그리고 구룡폭포, 옥용폭포와 함께 4대 명폭의 하나로 이름이 높은 비봉폭포는 길이가 139m입니다. 비봉폭포를 두고 옛날부터 사람들이 ‘뚝 떨어지면 폭포요, 누워 흐르면 비단 필이요, 흩어지면 구슬 알이요, 고이면 담소요, 마시면 약수라.’ 정말 그렇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폭포수가 부딪힘이 없이 뚝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봉황이 춤을 추는 듯하다. 비봉폭포 위쪽에 위치한 구룡폭포의 장대한 물줄기가 마냥 시원하게 느껴진다.
영락없이 사람이 책을 보고 있던 모습의 연주담 바위가 폭포 위에서 보면 전혀 다른 형태로 바꾸고 만다. 올라가면 갈수록 봉황새에서 토끼로 변해 움직이는데, 그 신비한 조화가 새삼 놀랍다.
74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위력이 천지를 진동시킬 듯 웅장하다. 폭포 절벽과 바닥이 거대한 한 덩이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구룡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와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세계에서 보기 드문 우리나라 3대 명폭의 하나인데, 보일 듯 말 듯 아름다운 옥녀봉 줄기를 배경으로 그 자태가 우아하고 힘차다.
여기에 이제 그 유명한 시구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데요. 9세기 말 최치훈이 자기의 시에서 이 폭포를 보고 ‘천장백련만곡진주’라 ‘천 길 흰 비단필을 드리운 듯하고, 만 섬의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 이렇게 구룡폭포를 생동하게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16세기의 우암 송시열은 ‘노폭중사 사인현전’이라 ‘노한 폭포가 쏟아지니 사람으로 하여금 어지럽게 하는구나.’ 이렇게 유명한 시를 남겼습니다.
천 길 흰 빛 비단 필이 내리 드리운 듯하고, 만 섬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구룡폭포의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폭포와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호젓하고 조용한 산길이 전혀 다른 얼굴로 나그네를 반긴다. 구룡폭포 절벽 위 구룡대는 금강산 8선녀의 목욕 터였다는 전설이 깃든 그림 같은 상팔담 전경과 멀리 상팔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외금강 연봉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곳이다.
여기가 이제 하늘의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금강산 팔선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상팔담이구만요?
예. 구룡폭포 위에 있는 팔담이라고 해서 상팔담이라고 하는데, 이 곳 팔담 경치는 아래 내려가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 곳 구룡대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것이 경치가 더 낫습니다.
가파른 암벽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계곡수가 이루어놓은 수많은 연못들, 깎아지른 벼랑 아래 여덟 개의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잇달아 연결된 상팔담을 한 눈에 아스라이 내려다보는 멋이 일품이다.
문주담에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외금강 산행에 또 다른 코스를 만나게 된다.
험준한 관음정봉 계곡 사이로 삼단으로 흘러내리는 관음폭포는 탐승객들이 느긋하게 쉬어가는 휴식처가 되겠다.
우리가 정말 이 때까지 본 폭포들 중에서도 아주 시작되는 그 위에 부분이 아주 묘합니다. 딱 산이 막힌 것 같은데서 그런 수륜지대에서 물이 뚝 떨어지는데 바로 이 폭포를 관음폭포라고 합니다.
산이 가로 막힌 듯한 직벽의 수림대에서 뚝 떨어지듯 시작되는 관음폭포의 매력에 취하다보면 어느 새 외금강 경승지의 압권인 만물상 구역이 지척에 느껴진다.
육호암에서 만상정에 이르는 만상계곡 안을 지나 만물상으로 향하는 길!
세정봉의 기암괴석 들이 잇따라 나타나는 험한 골짜기를 지나면 드디어 세상 만물이 한자리에 모여 든 만물상과 마주한다. 만 가지 시름을 잊게 한다는 만물상 입구에 만상천 우물 맛이 기가 막히다. 만물상 입구에서 왼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서 있는 삼선암 세 봉우리는 마치 키를 잰 듯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가장 키가 큰 참선암은 그 높이가 75m나 되는 암봉이다.
귀신 형상의 귀면암이 만물상에 신비를 더한다.
금강산 자연 돌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일문은 하늘에 오르는 첫째 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툭 트인 만물상의 자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보다 더 좋은 전망대가 있을 수 있을까? 금방이라도 살아 숨 쉴 것 같은 온갖 형상의 짐승들과 거대한 바위산들이 연출하는 형형색색의 광경들이 펼쳐진 만물상은 아무리 보아도 자연바위라는 것이 믿기지를 않는다. 보면 볼수록 가슴이 뛰는 외금강 만물상!
바위 산 하나하나마다 갖가지 신비를 안고 선 푸른 봉우리들의 축제!
천선대 벼랑 중턱에는 사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두 개의 돌확이 있는데, 선녀들이 화장을 하던 천녀 화장 호다.
천만가지 돌 바위들이 꽉 들어차 신비경을 이룬다. 옛날 사람들은 천선대에서 바라보는 만물상을 진 만물상이라 했는데, 삼선암 건너 멀리 관음정봉과 집선봉, 비로봉 등 금강 연봉을 조망할 수 있고 가슴 벅차게 동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외금강 지구에 또 다른 탐승지인 동석동 계곡을 향해 떠났다.
이 동석동은 우리가 구룡연에서 본 계곡과는 달리 아늑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주 특이 하다고 보아집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희 동석동 골 안은 금강산 치고도 이 산악미와 계곡미를 겸한 구역입니다. 동석동이라고 하게 된 것은 이 앞에 큰 바위가 있지 않습니까? 작은 돌을 받침대로 해서 지렛대로 넣어서 흔들거리는…, 누르면 흔들흔들 노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위 이름이자 지대 이름으로 되게 되었습니다. 동석동은 이 골 안에서 이 너럭바위가 있지 않습니까? 너럭바위 앞으로 감돌면서 흘러내리는 물이 아주 유정하게 아늑하고 또 앞에 보이는 집선봉과 채하봉의 봉우리들이 넘어져 올 듯 우리한테로 쏟아져 내려올 것 같습니다.
동석동은 개울과 너른 바위, 숲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바로 앞에 집선봉, 채하봉 같은 봉우리를 배경으로 엄청나게 넓은 바위가 펼쳐진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동석동 개울가에 집채만 한 바위는 아랫부분에 지렛대를 대고 힘을 주면 수십 톤이 넘는 바위가 쉽게 움직인다 하여 흔들바위 동석이라 불린다.
들리느냐? 들린다. 조금만 더…. 짝! 짝! 짝!
세채동과 선하동이 합쳐지는 길목이 바로 합수물이다.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장대한 물줄기가 이루는 합수목폭포는 외금강 계곡류에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발연동 계곡을 못 보면 한이 된다는 말처럼 이곳은 특이한 명소가 많다.
여기가 바로 우리 금강산 집선봉의 남쪽 비탈면에 자리 잡고 있는 발연동 구역인데, 아주 금강산의 많은 그런 명소들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경치를 나타내는 구역입니다.
발연동 입구에서 한참을 오르다보면 이 골 안에서 유명한 놋그릇 모양의 바리소를 만나게 된다. 수정 같이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바리소는 그 모양이 기묘할 뿐만 아니라 사방 경계가 절승이라 외금강 탐사길에 빠뜨릴 수 없는 명소이다.
바리소 위쪽에 마치 무지개가 걸린 듯 세워진 홍예교!
조선시대에 축조한 화강석의 아취형으로 일명 무지개다리로 불리기도 하는 이 다리는 높이가 9m, 길이가 11m로 금강산에서 유일한 돌다리다. 옛날에는 화강석의 이 다리를 건너 발연사로 들어갔다는데, 이 돌다리 건너 북쪽에 발연사 터가 있다.
발연사 계곡 너럭바위 한가운데 누운 듯 펼쳐진 누운폭포!
경사가 한 40도로 된 희멀건 바위 위로 물이 흘러내리는데 이 길이가 모두 70m나 됩니다. 쭉 내려다보게 되면 돌 화기그릇 3개 정도 있는데, 사람이 옷을 벗고 맨 위에 앉아 있으면 물결 따라 쏜살같이 내려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네 타는 것처럼……예. 그렇습니다.
구룡폭포는 직선에 직각인 절벽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맛을 본다면, 여기 누운폭포는 아주 묘하게 아주 엷은 비단천을 들인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예.
물 미끄럼을 타듯 마냥 순수하게 오르고 내려가는 금강산 산행 오르기라 한다.
예로부터 관동팔경에 하나로 일컬어지는 삼일포는 해금강 관광의 출발지이다. 삼일포는 남강하류에 있는 자연호수로 호수 서편은 산봉우리와 송림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동편은 평지로 틔어있어 동해를 바라볼 수 있다. 잔잔한 수면과 푸른 송림! 은빛 모래밭에 만발한 꽃들의 축제! 옛날 신라 화랑들이 사흘간 묵었다 해서 삼일포라 불린 이곳은 해금강의 으뜸 경승지로 손색이 없다. 삼일포는 현재 관광지로 개발되어 호반에 보트를 띄우고 바위언덕 장군대에 전망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장군대와 연결된 허궁다리는 금강산에서 가장 긴 다리로 봉래되어 이어져있다. 봉래된 삼일포 남쪽에 위차 한 큰 바위 언덕으로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며 옛날 양사헌이 이곳을 찾아 풍광을 즐겼다 해서 그의 호를 딴 봉래대로 불린다. 봉래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삼일포의 경치가 눈부시다.
해금강은 삼일포에서 동해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금강리 앞 수원단으로부터 화진포에 이르는 바다 명승을 총칭한다. 해금강 관광코스는 입석해안에서 시작된다. 험한 바위 위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작은 산을 방불케 하는 해만물상은 천태만상을 빗어놓은 듯 그 풍광이 절묘하다. 해금강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대문인 금강문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바위가 어우러진 해금강 최고의 명소다.
총석적 구역은 통천의 총석들과 금란굴 등 금강산 북부지역에 동해명승지를 이룬다. 모두가 비슷한 크기와 높이를 가진 총석들에 자세는 똑바로 서 있는 입총, 앉아 있는 좌총, 누워 있는 와총 등 다양하다. 현무암 기암절벽에 작은 섬 국도! 오랜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나가 장중하게 펼쳐진 총석의 배열을 바라보는 해금강 탐승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 신비의 여량이다.
금강산!
천지조화에 대 걸 작품이며 불가사의한 대자연의 예술품!
이제 국제관광 공원으로 개발을 서두르는 금강산은 서서히 안개 속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산!
언젠가는 가슴속에 묻어둔 그리움을 딛고 힘차게 달려가 껴안고 싶은 산!
가고 싶은 금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