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강 재즈란 무엇인가 1.
1. 재즈와 흑인 독립의 역사
음악은 논술의 중요한 주제이다. 20세기를 통하여 음악의 주류는 고전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넘어갔다. 본 프로그램은 20세기 대중음악의 본류인 재즈의 구조와 역사를 통하여 음악 예술을 우리나라 중고생에게 분석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되었다.
논술의 주제로 음악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 우리나라 중고생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야 되기 때문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래서 오늘은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프로를 진행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에게 재즈라는 음악 장르, 그리고 재즈에 얽힌 인간의 역사을 이야기하겠다.
우리는 재즈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어떤 특별한 음악 장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즈는 미국의 20세기 역사와 관련이 있다.
제가 독립운동사를 찍으면서 느꼈던 것과 이 재즈를 공부하면서 느낀 소감은 너무나도 같았다.
우리는 20세기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한테 나라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데 비록 나라를 되찾는 운동은 아니지만, 재즈의 역사도 똑같다. 흑인들도 미국이라는 역사 속에서 스스로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억압 받는 역사 속에서 흑인들이 노력해온 눈물의 과정이 재즈의 역사에 담겨있다.
그래서 재즈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류가 20세기를 통해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재즈의 역사는 우리 인류의 중요한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재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재즈의 역사는 억압받는 흑인노예들의 독립의 역사였다. 인간 존엄성의 획득의 과정이었다.
2. 재즈란?
그럼 우선 재즈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기존 음악과 어떻게 다른가? 무엇을 재즈라고 하는가? 이런 것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여기 서울재즈 아카데미의 교수님이신 박종화 선생님을 모시고, 재즈라는 것이 무엇인지 강의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박종화
맨해튼 뉴스쿨, 블루 노트 공연, SJA 재피과 교수
박 선생님은 여기 재피과(재즈 피아노 과)의 과장 선생님이고, 내가 구차스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분이다.
재즈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예로운 무대가 있다. 뉴욕 맨해튼의 블루 노트라는 재즈바인데,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가 아니면, 거기에 절대로 설 수가 없다. 그런데 박 선생님은 그 블루 노트의 초청을 받아서, 거기서 공연까지 하셨다. 재즈계에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우리 동요를 가지고 ‘밀키웨이’라는 음반도 내셨다. 원래 뉴욕을 베이스로 오랫동안 ‘존박트리오’를 결성하셔서 활동하셨고, 지금은 한국에 와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계신 선생님이다.
도대체 재즈가 무엇인지 설명 좀 해 주세요.
[박종화]
제가 뉴욕에서 재즈를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가장 첫 시간에 가장 처음으로 칠판에 써 주신 게 ‘Jazz is Freedom.’이었다. 재즈는 자유라는 뜻인데, 이 말을 얼핏 들으면, 재즈는 자유로우니깐 ‘누구나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Jazz is Freedom.
하지만 자유로운만큼 아주 엄청난 고통과 자기 관리와 자기 절재가 필요한 음악이다.
[도올]
‘Jazz is Freedom.’이라는 말은 기존의 룰을 파괴하였다는 이야기일 거 같다. 전통적인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새로운 음악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파격을 하는 게 아니고, 그 파격에도 아마 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격을 가능하려면, 정통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더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하면, 정통 음악에 밀려서 재즈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정통 음악을 마스터하고, 오히려 그 위에서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양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재즈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3. 재즈와 즉흥연주
[박종화]
감사하다. 좋은 말씀이시다. 재즈 아티스트는 아까 말했듯이 일단 자유로워야 한다. 사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혹은 종교적으로까지 자유로워야만, 정말로 자유롭게 자기 자신의 즉흥적인 연주를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즈하는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야 하며, 특히 종교나 도덕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어야 한다. -박종화
[도올]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은 Improvisation(즉흥연주)이라는 생각이 든다.
Improvisation(즉흥연주)
고정된 악보 없이 흥(興)에 따라 연주함.
즉흥연주를 우리 전통 속에서는 시나위라고 했다. 시나위라는 것은 옛날 무속계에서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무당들이 옆에 앉아 있으면서 연주를 했다. 기본적인 음의 약속들이 있고, 그 사이는 아무렇게나 메꾸어가는 것이다. 음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만 만나면 된다. 여러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율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그게 일정한 박(搏)에서 착착 맞아 떨어진다.
내가 보긴 재즈나 시나위나 거의 같은 양식이다. 이 시나위라는 약식은 우리나라에 있었지만, 아프리카에도 있었을 것이다.
시나위
무속반주음악, 허튼가락의 합주곡
악기편성은 피리, 젓대, 해금, 장구, 징, 아쟁 등.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던 시나위가 흑인 노예들의 몸을 통해서 왔을 것이다. 문화가 변해도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류의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는 시나위적인 음악 요소가 미국 역사 속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것이 재즈다. 그래서 재즈는 아프리칸 시나위라고 하기도 하고, 블랙 시나위라고도 한다.
재즈(Jazz)는 아프리킨 시나위(African Sinawi) 혹은
블랙 시나위(Black Sinawi)라고 말할 수 있다.
-도올
그런데 그런 즉흥연주도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리듬이라든가 하모니라든가 연주할 때, 여러 가지 독특한 문제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좀 간결하게, 특히 고등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주시죠.
4. 재즈의 리듬
[박종화]
일단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세요. 작곡이 먼저였을까요? 아니면 즉흥연주가 먼저였을까요? 그렇다. 음악은 원래 다 즉흥적이었다.
즉흥연주(Improvisation)는 작곡(composition)에 선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음악행위이다.
그런데 음악이 서양에서 많이 발달하다보니깐, 제도와 규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곡법에 의존하게 되니깐, 상대적으로 즉흥력들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에게 즉흥연주를 하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즉흥연주다.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리듬의 등장이다.
리듬(Rhythm)은 멜로디와 박자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하모니(Harmony)와 구분된다.
[도올]
재즈의 리듬을 좀 설명해주시죠.
[박종화]
재즈만이 가진 독특한 이론 세계를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Cycle Progression이라고 부르는 건데, 4도권진행이라고도 부른다. 서양의 12음계가 모두 나열이 되어 있는데, 어디서 시작하든지 이 사이클대로만 가면, 12음계를 다 거쳐서 다시 시작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A(라)에서 시작하든 E(미)에서 시작하든 원점으로 돌어온다.
Cycle Progression(4도권진행)
상행진행일 때는 완전4도씩 진행하면서 화음이 구성된다.
이 진행은 재즈화성법의 기초를 이룬다.
Cycle Progression에서 나온 중요한 이론이 two-five-one이라는 것이다. Ⅱ-Ⅴ-Ⅰ은 재즈 진행에서 가장 중요한 최소 단위라고 말할 수 있다.
Ⅱ-Ⅴ-Ⅰ진행
4도권 진행 사이클에서 임의의 연속 3코드는 모두 Ⅱ-Ⅴ-Ⅰ이 된다. 이것은 Ⅰ이라는 으뜸화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Ⅱ-Ⅴ를 거친다는 뜻이다.
알다시피 클래식에서는 하나하나의 음을 모두 나열했다. 그리고 모든 음들을 나열해야만 연주가 가능했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코드라는 개념이 성립되면서, 이렇게 간단한 표기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
C메이저7-F도미난트7-E하프미니쉬-A7얼터드
멜로디를 나타내는 음의 표기가 없이, 코드만 보고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연주한다.
이러한 표기법은 이제 어떤 장르에서든 다 통용되는 보편적인 표기법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코드 진행만 보고, 즉흥적으로 연주자들 재량에 따라서 알아서 연주하는 형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기존에는 Triad라고 불리는 3화음위주의 코드가 많았는데, 재즈 시대에 돌입하면서 이 코드들이 Seventh Chord로 바뀐다. 그러니깐 음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Triad(3화음) -> Seventh Chord(7화음)
7도 화음에 되면서 여러 가지 음들을 사용하는데, 그런 음들을 텐션이라고 부른다. 텐션들의 역할이 재즈에서 아주 중요하다.
텐션(tension)
정해진 코드 톤 이외의 음들. 이 음들을 불협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긴장감을 자아낸다.
‘고향의 봄’을 3화음으로 연주하면, 명쾌하고 아름다운 코드 사운드가 나지만, 텐션을 넣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지금 이 연주는 전통적 화성 이외의 텐션을 많이 사용하여 불협적 느낌이 있지만 그것이 재즈의 맛을 낸다.
전통적인 코드 진행 방식을 들으면, 깨끗하게 화음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재즈 식은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지만, 뭔가 근사하고. 뭔가 더 복잡해지고 뭔가 더 끈적끈적하고, 뭔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재즈는 이렇게 음과 기존의 화성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텐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불확정성원리가 나오는 것, 클래식 세계에서 무조음악(Atonal Music)이 나오는 것. 대중음악에서 재즈의 텐션이 나오는 것 등은 모두 같은 시대정신(Zeitgeist)이다.
5. 래그타임과 신코페이션
[도올]
영화 ‘스팅’의 주제가로 쓰인 래그타임은 음이 하나하나 떨어지면서 빠르게 연주된다. 래그타임은 19세기 말기부터 연주된 음악이다.
래그 타임 뮤직(rag time music)
재즈의 리듬에 영향을 준 19세기말(1899~1917)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 스카트 조플린(Scott Joplin)이 래그 타임의 황제였다. 영화 스팅(the sting)의 주제곡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도 스카트 조플린의 곡이다.
[박종화]
래그타임은 스윙 리듬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래그타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클래식에서는 항상 액센트가 다운비트였다. 즉 첫 박에 액센트가 있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중 환희의 찬가 항상 4박자 중 첫 박에 엑센트가 있다.
그런데 래그타임 곡들은 전부 액센트가 두 번째 음에 있다.
첫 번째 박 ------> 두 번째 박
액센트의 변화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듬에서 액센트가 변한다는 것은 음악의 중요한 캐릭터가 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 음에 액센트가 들어온 이러한 리듬 감각이 결국 스윙시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스윙시대로 이어진 감각이 오늘날 여러분이 듣는 모든 팝뮤직, 댄스뮤직의 기본이 되는 그루브를 형성한다. 그루브는 리듬적인 형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윙시대(Swing Era)
1930~40년대의 재즈 스타일, 스윙시대에 재즈는 볼룸음악이 되고, 빅밴드(Big Band)를 출현시킨다.
그루브(groove):리듬의 길
스윙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어서 베이스라인도 같이 변화하게 된다. 그 전의 베이스라인은 아주 단순했는데, 스윙리듬을 따라서 걷는다는 뜻을 가진 ‘워킹베이스라인’으로 변하게 된다. 걷는 느낌을 준다. 워킹베이스라인으로 가면서 리듬의 다양화가 좀더 이루어진다.
다음에 말해드리고 싶은 것은 신코페이션이라는 것이다. 신코페이션은 리듬을 정박에 치지 않고, 앞에 댕겨서 치는 것이다.
신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 센 박과 여린 박의 진행이 불규칙하게 이루어진다.
[도올]
우리나라에선 엇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악에도 신코페이션이 많이 있었다.
[박종화]
신코페이션이 들어가면서 리듬이 훨씬 활동감있게, 생명력있게 변하게 된다. 신코페이션이 없으면 스윙이 아니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스윙에서는 신코페이션이 중요하다.
[도올]
스윙의 특징이 어떻게 되는가?
[박종화]
스윙은 리듬의 형식이다. 스윙은 거의 재즈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연주를 잘한다’는 말을 ‘He swings so good.’이라고 표현한다. 스윙은 워킹베이스라인과 어울러지는 리듬이라서 피아노만으로 연주하면 좀 무리가 있다. 드럼이 필요하다.
He swings so good.
6. 재즈의 발생
[도올]
재즈의 역사에 대해서 김정민 선생님을 모시고 들어보겠다. 여기서 재즈의 역사를 가르치고 계시는데, 사실 나도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 재즈라는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정민
대중음악의 명문 버클리 음대 졸
재즈의 역사는 물론 미국에 온 흑인노예들로부터 시작된거죠?
[김정민]
아까 박종화 선생님도 잠깐 말씀을 하셨지만, 재즈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오면서 가져온 음악이 발전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흑인 음악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재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재즈는 흑인들의 음악이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
[도올]
재즈의 발생지는 뉴올리언스라는 곳이다. 불행하게도 작년에 카트리나 태풍이 불어서 심하게 피해를 입은 곳이다.
원래 프랑스 파리 아래쪽에 오르레앙이라는 곳이 있다. 새로운 오르레앙이라는 뜻으로 뉴올리언스라고 부른 것이다. 원래 뉴올리언스부터 시작해서 미국 중부의 어마어마한 영토가 불란서 영토였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전쟁 때문에 돈이 모자라서 1803년, 그걸 싼값에 미국에 팔았다. 이게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이 나폴레옹으로부터 겨우 1천5백만 달러에 매입. 1803년
그걸 팔지 않았으면, 그나마 미국이 갈라져서 세계 평화가 왔을 것이다.
그 거대한 땅덩어리의 제일 아래 뾰족한 곳이 뉴올리언스다. 지금은 루이지애나 주에 속해있다. 루이지애나라는 말도 원래 루이 14세를 기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루이지애나
절대 왕정의 군주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불란서 식민지(1731년 성립)
이런 이유로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는 불란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영국사람들과 달리 흑인에 대한 편견이 비교적 적었다. 그래서 흑인 노예들을 부인으로 취한 사람들도 많았다. 당연히 혼혈아들도 많이 태어났다. 그런데 주인이 살아있을 때는 노예신분이 유지되다가, 남편이 죽으면,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 자손들도 같이 해방되었다. 이 혼혈아를 크레올이라고 불렀다.
크레올(Creole)
프랑스인 혹은 스페인 사람과 흑인의 혼혈. 그들은 자유민으로서 남부의 상류층을 형성했다. 교육열이 매우 높았다.
이 크레올이라는 사람들은 뉴올리언스에 집중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흑인이면서도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와서, 구라파의 음악전통을 알고 있었고, 농장주도 많았다. 이 크레올즈는 재즈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크레올스가 굉장히 지위가 높았다. 백인보다도 흑인들을 더 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북전쟁으로 노예해방이 이루어지니깐, 흑인 노예와 크레올스가 모두 똑같아져 버렸다.
그래서 크레올들은 자기들이 천시하던 흑인들과 같은 흑인이 되어버렸다. 양키들 입장에선 크레올이나 흑인이나 모두 흑인이었다. 이렇게 크레올의 신분이 하락하면서 노예들과 섞이게 되었다. 그리고 크레올의 고등한 문화와 아프리카 노예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결합하면서 블루스(Blues)라는 양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블루라는 것은 슬프다는 뜻이다. 최초의 양식은 우리가 슬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7. 블루스의 특징
블루스의 특징을 좀 말씀해주시죠.
[김정민]
블루스라는 말은 말씀하대로 블루에서 왔다. 우리는 파란색에서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은 ‘내 기분이 블루하다.’고 하면 ‘기분이 좀 싸하다.’라는 느낌을 가지는 거 같다.
블루스라는 음악은 12마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정한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은 농장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그 사람들이 일을 하다보면 사실 굉장히 힘들었다. 덥고 힘들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노래를 받아 주었다. ‘더워서 죽겠네’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반격을 해주었다.
흑인들은 굉장히 긍정적인 성격이 있다. 그렇게 힘든 조건에서 웃고 즐기고, 서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했다. 이런 화답식의 음악을 블루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올]
노동요를 영어로 Field Holler라고 한다. 블루스는 노동요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노동요도 보면, 대개 주고 받는다. 강강수월래, 밀양아리랑도 서로 받아친다. 강강수월래도 단순한 4박의 형식이다. 4개가 1소절이 되고, 그게 반복을 하고, 마지막에 마무리를 한다. 4마디, 4마디, 4마디가 이어져 12마디의 형식이다. 형식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블루스라는 형식은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노동요(Field Holler) : 재즈의 가장 원초적 양식.
그런데 형식이 단순하면, 멜로디가 복잡해진다. 우리 음악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재즈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김정민]
그러니깐 굉장히 단순한 틀 안에서 연주자들이 많은 시도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도 표현해보고, 저렇게도 색깔을 내보았다.
처음 블루스를 들으면 이 곡이나 저 곡이나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데 조금만 더 블루스라는 음악을 가까이해서 들어보면, 아티스트들 마다 모두 다른 색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 철학 등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상관없다. 지금 100여년이 되었지만, 블루스라는 음악의 형식은 100년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8. 시카고 재즈
[도올]
하여튼 뉴올리언스에서 뉴올리언스 재즈가 형성되었다가, 근세로 들어오면서 19세기 말기가 되면 대농장이 대개 기업화된다. 워낙 땅이 크니깐 기업화된다. 그러니깐 노예가 필요없어진다. 노예들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노예를 갖고 있으면 주인들이 책임을 졌다. 그런데 지금 해방되니깐, 피차간에 서로 임금노동자가 된 것이다. 흑인들이 싸구려가 되어버리니깐, 갈 데가 없었다. 남부에서도 기계화가 되니깐 더 이상 노예가 필요없었다. 그래서 노예들이 대거 북쪽으로 간다.
1910~20년에 걸친 남부에서 북부로 약 350만의 흑인이 대이동하였다. 이동의 중심지는 시카고(Chicago)였다.
그런데 뉴욕 쪽은 거리가 멀어서 차값이 비쌌다. 그리고 시카고 쪽은 공장이 많아서 일자리가 더 많았다. 그래서 시카고 쪽으로 가서, 그들이 거기서 빈민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뉴올리언스의 음악인들이 시카고에서 모여서 소위 시카고 재즈를 만들게 되고, 거기서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천재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재즈가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0~1971)
별명 사치모(Satchmo) 뉴올리안즈에서부터 시카고 재즈에 이르기까지 두루 재즈양식을 개척해나간 천재적 파이오니어. 킹 올리버(king Oliver)악단의 트럼펫 주자. 스캣(Scat) 보컬을 창시.
8. 루이 암스트롱
[김정민]
시카고에서 재즈라는 음악이 본격적으로 블루스나 시카고 재즈라는 이름을 가지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앨범도 내고,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재즈를 보편적으로 좋아하게 된다. 우리가 쉽게 따라부를 수 있고, 요즘에도 사람들이 듣는 ‘What a wonderful world’도 그때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이런 음악이 블루스 재즈구나 하면서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클래식이나 컨츄리 뿐만 아니라, 이런 음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재즈라는 음악이 보편화된다.
[도올]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매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사람은 트럼펫을 잘 불었고, 독특한 음색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부른 노래의 가사를 보면, 너무도 심금을 울린다. 흑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역사 의식이 베어 있는 가사가 많다. 그러니깐 그런 음악성 때문에 백인 세계까지 인정히는 계기가 된다. 아주 대단한 스타였다.
[김정민]
그런 스타가 나오는 것은 음악 장르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재즈에서 첫 번째 스타가 나온 것이다. 그전에도 블루스 아티스트 중에 로버트 존슨과 같은 스타가 나왔지만, 보편적인 스타는 아니었다. 그런데 레이 찰스가 나오면서 흑인 팝 음악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처럼, 재즈에서 처음으로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나오면서 백인들도 흑인들의 음악을 듣고, 레코드를 사거나 혹는 콘서트에 가서 보고, 환호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9. 빅밴드 시대
[도올]
시카고에서 점점 재즈가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밴드가 조직된다. 그러면서 경제도 좋아지고 화려한 사교 댄스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스윙과 빅밴드 시대가 형성된다.
[김정민]
어떻게 보면, 지금의 댄스뮤직과 똑같다. 여러분들이 영화를 보면, 군중이 모여 있고, 음악을 연주하면 마구 춤을 추고, 여자들 던지는 영상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 시대가 바로 스윙 시대다. 재즈에 있어서는 황금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라디오를 틀어도 스윙이 나왔고, 아무래도 듣기도 좋고 신나서 즐길 수도 있었다.
10. 비밥
[도올]
그러다가 1차대전 때 한번 두들겨 맞으면서 시카고 재즈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 2차대전이 오면서 스윙 밴드가 해체된다. 빅밴드는 20~30명의 악단들이 필요한데, 다 군대 끌려가고, 기피자도 나오고, 약물을 복용하는 등 별라별 사람이 다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밴드를 구성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남은 사람 몇 명이 밤중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한다.
악단에 고용되어, 춤추러 오는 백인들 앞에서 돈을 벌기 위해 댄스 뮤직을 연주하던 사람들이 이제 진짜 자기들의 음악 실력을 가지고 밤에 놀면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자, 엄청나게 테크닉이 고도화된다. 템포도 빨라진다. 밴드에서는 개인 역할이 다 결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자유롭게 연주하게 되었다. 놀면서 하니깐,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자신의 실력 발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밤새도록 놀면서 발전하는 장르가 비밥이다.
비밥(Bebop)
최초의 모던 재즈(modern jazz)양식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다양한 코드를 사용하는 순수음악
[김정민]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스윙밴드들이 해체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해야 하는데 피아노와 드럼 밖에 없었다. 모두 군대에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사람들 혹은 숨어 있는 사람들은 배운 게 음악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음악을 해야 했다. 뭔가 음악으로 풀어야만 했다. 그런 부분들을 잼세션으로 풀었다.
잼 세션(jam session)
연주자 모두가 개인기(솔로)를 발휘한 시간을 갖는 즉흥연주
재즈에서 잼세션이라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인 것이다. 약속하지 않고, 처음 만났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 바로 비밥이다.
비밥의 대표적 주자는 길레스피(Dizzy Gillespie, 트럼펫)
몽크(Thelonious Monk, 피아노)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알토 섹스폰) 등이었다.
스윙시대는 사실 대중들을 위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연주하는 사람들은 재미를 못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보에 써 있는대로 연주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비밥이라는 음악은 밤이 길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길게 연주할 수 있었다.
11. 마일즈 데이비스
[도올]
그런데 거기에 새로운 흑인 연주자가 등장한다. 그는 굉장히 상류층에 속했던 인물로 아버지가 치과의사였다. 줄리어드 음대에 다니던 그는 민트 스프렛 하우스에 기웃거리다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4년 동안 배우는 것이 여기서 하룻밤 배우는 것만 못했다.
그래서 찰리 파커를 따라다니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는데, 그게 바로 쿨재즈였다. 이 쿨재즈의 주인공이 바로 마일즈 데이비스였다.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주시죠.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
Cool Jazz를 창시한 이후, 재즈계의 피카소라 불리울만큼 모든 모던재즈운동을 리드한 거장. 트럼펫 주자.
[김정민]
마일즈 데이비스는 사실 찰리 파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별 이상한 일도 많이 겪었다. 방송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안좋은 일을 겪었다. 그런데도 따라다닐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찰리 파커가 연주하지 않았을 때는 정말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지만, 연주를 하면, 그때만은 모든 연주하는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그런 연주를 했다. 지금도 찰리 파커 이상으로 연주를 하는 연주자는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
비밥의 최고 거장. 알토 섹스폰. 즉흥연주기법으로는 최고봉에 달한 달인이었으나 인간적으로는 허점이 많았다. 약물과다복용으로 35세에 죽음.
마일즈 데이비스는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꾹 참고 찰리 파커를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자기의 네임벨류를 키워갔다.
트럼펫 연주자로서 찰리 파커의 후계자처럼 가다가, 드디어 자기의 시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쿨재즈도 나오고, 그 이후의 락재즈, 퓨전재즈도 모두 그 사람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비밥 이후의 시대를 모던재즈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던재즈의 시대는 마일즈 데이비스가 모든 것들을 다 열어놓았다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다.
12. 예술과 노력
[도올]
이러한 대중음악의 세계를 우리가 민감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결국 세계문명 사조에 뒤지는 민족이 된다. 그걸 천시하고 아직도 이 사회에서 딴따라 패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를 하면, 우리 문화가 성장할 길이 없다.
세계음악의 주류는 이미 대중음악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대중음악의 전문성과 고도성은 이미 클래식음악 세계와의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재차 이야기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은 재즈 하나를 공부하려고 해도 엄청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잘 논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놀이는 엄청난 디시플린, 공부(工夫)를 요구하는 것이다.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예술은 없다.
내가 사실 여기 재즈 아카데미에 20기 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그런데 논술 강의를 하느라 제대로 학생 노릇을 못하고 있다. 박종화 선생님 강의에 처음 들어갔을 때, 숙제로 헨리 맨시니가 작곡하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인 Moon River를 즉흥연주로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걸 지금 연주해 보겠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몽상의 월강, 넓고 드넓어라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언젠가 나는 너를 멋있게 건너리라.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오! 꿈꾸는 그대, 그래서 상심하는 그대여!
Wherever you're going I'm going your way.
내가 가는 곳은 나는 어디라도 갈 테야.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방황하는 두 연인 세상을 보러 떠나간다.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그토록 봐야 할 세계가 많을줄이야.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우리는 같은 무지개끝의 황금을 찾으러가고 있다.
watingl' round the bend
저 구비 너머엔 무엇이 우릴 기다릴까?
my huckleberry friend
헉클베리와도 같은 진실한 친구여.
Moon River and me.
몽상의 月江은 지금도 내 마음속을 흐른다.
흑인들의 영가(spiritual song)나 가스펠송(gospel song)도 재즈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흑인노예들은 기독교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을 결부시키면서 독특한 찬가를 만들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