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민신문> 기사 “성공회 용인교회 용인 상륙 100년, 어제와 오늘”(2007년 5월 23일)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908년경이었다.
천리교회(현재 이름은 성공회 용인교회)는 수원교회의 선교교회로 설립된 것으로 2대 주교 터너(단아덕)의 활동과 관련된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교회가 이 자리에 있던 한천서원(1865년에 대원군에 의해 철폐)의 매입을 통해 세워졌다는 것. 유교 사당 및 교육기관에서 기독교 교회 및 교육기관으로 자리물림을 한 것.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937년에 지어져 축복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의 사진 자료, 특히 1909년 사진을 볼 때, 이 교회가 1908년에 새로 건립된 것인지, 이전 서원 건물을 개조한 것인지, 아니면 1937년 축복식 때의 것인지 의문이 가는 점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교회 건물이 1937년 지어진 것이라면 지어진 직후부터 수난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1940년 이후는 일제의 선교사 압박이 강화되고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강제로 송환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천리교회는 1940년부터 40년 이상을 성직자 없이 평신도가 관리하면서 유지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야 신부가 파송되어 현재는 교회 운영이 되고 있다.
디지털용인문화대전에 따르면 현재 신도는 50여 명.
올해 찾아가 보니 옛 건물을 마당에 둔 채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옛 건물을 보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질적으로 그 건물로는 지금 교회를 운영하기는 힘들다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성공회의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본 다른 예로는 청주 성공회성당(수동성당)이 그랬다.
옛 건물은 이전 모습 그대로 깔끔하게 보존하면서 옆에 예쁜 새 건물을 지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전통과의 공존을 중시하는 성공회다운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용인 천리교회는 평신도의 헌신에 의존해서 지금까지 보존되었을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다.
지금도 교회 공동체가 완전히 활성화된 상태는 아니라고 보인다.
그런 만큼 그 사이 어느 정도의 우여곡절이 건물에 새겨져 있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전의 사진과는 달리 초록색 목재 출입문과 큰 유리판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용도와 관리를 위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세부 사항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이런 건물 구조 변화는 교회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이 점은 오래된 교회 건물을 보존하는 곳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필요에 따라 건물 구조를 바꾸면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며, 또 반대로 문화재 지정을 받으면 필요에 따라 건물을 변경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제약을 받는다.
그런 이유에서 아예 옛 건물을 헐어버리는 교회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문화재 지정을 안 받은 건지 못 받은 건지, 또 무엇이 교회 입장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속사정은 모르겠다.
교회 본당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런 건물은 보조적인 용도로 사용되기 마련이다.
강화 성당의 경우에는 예배당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청주 성당의 경우에는 유아부 건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용인 성당의 경우엔 적극적인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창고 정도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촬영자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잡힌 심령사진 같은 이 열악한 사진의 윤곽을 잘 살펴보면, 내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탁구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09년 5뤌 청주성당
09년 5월 청주성당
출처: 종교학 벌레 (글: 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