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러시아 선교여행기
3년 만에 다시 러시아에 오게 되었다. 이번 여행을 오기 직전 10월에 날칙에서 큰 테러가 생겨서 모즈독에는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신에 이소영 목사님이 모스크바에 세워놓으신 선교 센터에 가서 신학생들에게 강의할 수 있었고, 허 발렌틴 목사님을 만나, 그분이 목회하시는 양문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게 되었던 일도 뜻깊은 일이었다.
이미 여덟 번이나 왔고, 이번이 아홉 번째 여행이었지만,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었다고 확신한다.
< 모스크바에서 만난 사람들 >
1) 허 발렌틴 목사 - 고려인 목사. 모스크바 양문교회 담임이고, 제일신학교 선교 센터 책임자. 한국 감리교 목사의 도움을 받아 감리교 목사로 안수 받았음. 세 아들이 있고, 모두 결혼하였음. 이소영 목사님과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알게 되어 지금 함께 일하고 있음. 트레스 디아스를 했다고 해서 동네 목사들이 이단시하고 있다고 함. 내 설교를 통역하였고, 셋째 며느리는 현재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어서 통역도 가능함.
2) 아자 테레사 - 작년에 베슬란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되었을 때에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한 개의 물자를 비롯하여, 외국에서 많은 위로 물자가 왔는데, 그 배급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지금도 오세친 공화국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테레사’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고 함.
정부에서는 그때에 죽은 어린이들의 무덤에 대리석으로 묘비를 만들어 위로하고 있고, 신흥 사기꾼이 일어나 어린이들을 부활시켜 준다면서 돈을 갈취하고 있음. 이에 아자 테레사가 묘지 근처에 교회를 세우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1월 16일(수)에 이소영 목사님 부부와 함께 한국에 가서 모금을 할 계획으로 이곳에 왔다가 11월 12일(토) 제일신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음. 특히 러시아에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에 그 어느 곳보다도 오세친 공화국에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고 하며 내년에 계획된 회개 기도회를 오세친으로도 유치할 수 있는가를 물어 왔음.
13일(주) 교회 예배에서 은혜 받고, 나와서 간증함. 돈보다 먼저 하늘이 열려야 하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함.
3) 유 에프게니 - 제일신학교의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경청하고, 너무 좋아서 부인과 아들들에게 전도하여 주일(6일) 저녁 청년 예배에도 참석하여 은혜 받고, 13일 주일예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옴.
4) 이슈라 - 모즈독 이 나타샤의 쌍둥이 동생. 나타샤 양도 영어를 전공하였고, 현재 서울에 유학 중임. 슈라 양은 모스크바에서 일하고 있고, 영어를 잘함. 6일 저녁 청년 예배에 참석하여서 만남.
5) 오승호 - 조선족신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고 있고, 열쇠 상점을 운영함. 엘렉트로스탈 교회에 참석하여 매 주일 빵을 사 와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줌. 앞으로 목사가 될 것 같음.
6) 이유라, 류바 목사 부부 - 류바는 전에 통역을 했고, 유라 목사는 학생으로 다녔음. 13일 오후에 케익을 사 들고 선교 센터에 찾아왔다가 양문교회에서 설교한다고 하니까 따라와서 참석하고 은혜 받음. 최근 160만 불짜리 교회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다고 기뻐함.
7) 미하일 구즈네쏘프 목사 - 전 KGB 대령 출신의 목사. 현재 러시아 전국 회개운동의 회장. 내년 3월과 9월에 러시아 중요 7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신교 목사들을 모아 회개운동을 일으키려고 함. 나를 강사로 초청하겠다고 하였음.
8) 하나똘리 꼬벨 대령(목사) - 부인은 교회에서 일하고 있음. 7일(월) 저녁에 자기 집에 초청하여 정성껏 식사를 대접해 줌.
9) 차선숙 - 연변에서 온 조선족, 집사 후보, 14일(월) 저녁 중국식당에서 오리고기로 식사 대접함. 연변에 남편과 자녀들이 있음. 돈을 벌어서 돌아갈 예정임.
10) 주미경 - 탈북하여 중국에서 여기저기 팔려 다녔다가 쌍뜨 뻬쩨르부르그를 거쳐 모스크바에 옴. 같은 탈북자인 이일태를 만나 결혼하여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음.
11) 우정부 목사 - 사할린 출신의 교려인 목사. 14일(월) 저녁의 교려인 목사들 모임이 이 사람 교회에서 있었음. 15일(화) 목사들을 위한 강의에 참석하여 공부함.
< 모스크바 양문교회 >
이 교회는 아파트의 반 지하층의 몇 개의 방을 터서 만든 침례교회 예배실을 빌려서 쓰고 있다. 정부에서 교회 건물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또는 교회들이 미자립 상태이고 보니 불가피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작은 지하층 예배당을 무려 다섯 교회가 쓰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토요일에 두 교회, 주일 오전에는 주인인 침례교회, 오후 3시에 양문교회, 7시에 오순절교회가 쓴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아파트의 노인들이 데모를 했다고 한다.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으니, 교회를 쫓아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에 진정서를 내고, 경찰이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였단다.
그러는 중 어느 주일에 굉장히 높은 사람이 하나 왔는데, 문 앞에서 노인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그가 묻기를 “왜 들어가서 예배하지 않고 여기 서 있느냐?” 하니, 저들은 그 사람도 자기네 편인 줄 알고 대답하기를 “교회 때문에 시끄러워서 쫓아내 달라고 이렇게 데모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나는 이런 사람인데, 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다. 너희들도 함께 들어가서 예배드리자.”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그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다시는 데모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정부에서도 아무런 제재가 없어서 지금까지 왔단다. 하나님이 신기한 방법으로 그들을 막아주셨다.
이번 여행에서 크게 감동받은 말씀으로 설교를 작성하였다. 그 요약을 여기에 싣는다.
"너희는 나와 언약하자." (출 19:3-6)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애굽기 20장에는 십계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제반 율법을 주시기 전인 19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산에 오르게 하시고는 먼저 하나님과 언약을 맺자는 제안을 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겠느냐? 그렇게 하면 내가 세 가지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어떤 복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복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것을 복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복들이었습니다.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첫째는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고, 셋째는 “너희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정말 복입니까? 우리는 돈이나 권세 같은 것을 뚝 떨어뜨려 주시기를 더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 하실 때에 그가 무엇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돈이었습니까? 권세였습니까? 적국을 멸하고 자기 나라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200살쯤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것들을 구했다면 물론 하나님은 주셨겠지요. 그러나 그는 역사에 남는 위대한 왕은 결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무슨 큰 복입니까? 그런 것은 없어도 돈이나 권세 같은 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야곱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자권이 그렇게도 좋은 것입니까? 또 야곱이 장자권을 가졌다고 해서 에서가 당장에 야곱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기라도 했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오히려 야곱은 형에게 맞아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그것이 복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여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그런 것은 무엇에 쓰는 것입니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가 아닙니까?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복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어떻게 다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1.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되리라.
(1)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기는 하지만,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땅이 아닙니다. 잠시 후면 우리는 모두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죽은 다음에 정말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짐승의 생명보다도 더 가볍게 여깁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이런 자들의 종말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도 70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가난해서 그런 사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공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습니까?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한 사람들 중에 잘 된 사람이 하나나 있습니까? 모두가 종말이 비참합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의식주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스스로 거절하여 버렸기에 눈만 뜨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충족되지 못할 때에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재앙이 많고,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때가 과거에 언제 있었습니까? 참으로 한시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너무도 위태한 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습니까? 본문 4절을 보세요.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3) 하나님의 것, 곧 그의 백성이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항상 함께해 주시므로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게 됩니다. 또한 이 땅에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조금 힘이 들지는 몰라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천국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체험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살아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심을 알고, 또한 믿기에 하늘의 능력이 늘 충만한 것입니다.
2. 너희는 나에 대해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1) 하나님은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 중에서 한 나라를 세워 제사장 나라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온 세계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를 택하여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이스라엘이 이 제사장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제사장은 가장 어른이었습니다. 레위기 21:4-15에서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백성의 어른인 제사장은 자기를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절대 거룩해야 하며, 결혼을 해도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고,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 것이며,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지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는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제사장이 되지 못합니다. 옛날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모두 제사장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그 나라가 얼마나 어두웠고,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어려웠나 하는 것을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있었으나,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바른 제사를 드릴 참된 제사장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제사가 열납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제사를 드려도 하나도 받아주시지 않으니 헛수고만 열심히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재앙입니다. 전쟁입니다. 비참한 종말입니다. 또한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셨으니,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에 버려져서 재앙으로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을 더욱 잘 알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나? 그 깊은 뜻을 알기 위해 주님과 더욱 가까이 사귀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하였고, 이를 위해 자기가 자랑할 수 있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셨고, 그 거룩한 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7:26에서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영원하신 제사장을 모시고 사는 것이요, 우리도 제사장이 되어 세계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고 제사함으로 만민의 죄를 용서 받고,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복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3.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너희는 나를 닮아라.”라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닮은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올바로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마 15:8).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아비는 마귀다”(요 8:44)라고 하여, 저들의 분노를 격발시키시기도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고, 하나님을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마 23:33)라고 무섭게 질책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착각하지 말고, 겸손히 자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 거룩한 백성이란 성별된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별력이 없으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와 불의, 선과 악, 지혜의 길과 우둔의 길을 분별해야 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제단으로부터 불이 나와서 직사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런 무서운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은 모름지기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게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레 10:10-11)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먼저 거룩해져야 한다는 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22:26에 보면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유대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극심한 혼돈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종교도 혼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모두가 옳다. 그러나 아무 것을 믿거나 상관이 없고, 심지어 믿지 않아도 괜찮다. 지옥은 없으며,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세상에 온통 가득합니다.
(3) 이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첫째 방법은 이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가져야 비로소 거룩해집니다.
또한 둘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영, 곧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거룩해집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이 충만해짐으로 성결함이 이루어집니다.
4. 이스라엘은 왜 실패했을까요?
(1) 광야의 이스라엘을 봅시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남아 있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걸핏하면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고, 결국 광야에서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2) 또한 그들은 애굽에서 살 때에 우상숭배하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의 우상만 보면 미혹을 받고, 그런 우상들을 가져다가 섬겼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실은 하나님과 우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옛날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3) 또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였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마 15:8). 예나 이제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서 불합격이었습니다.
(4)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되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였습니다(롬 7:6).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습니다”(고후 3:6). 그러므로 그들이 성령으로 행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제안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1) 모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지 않았느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켜라”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당신 손의 못 자국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이 약속을 맺자고 하십니다.
옛날 모세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온전히 합심하여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큰 감격과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계명을 영으로, 마음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가 되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무서운 책망을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통해 새로운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 능력으로 지키고, 마음으로부터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열심히 읽고 듣고 깨달아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렘 5:1) 한 명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백성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2) 오늘의 세상을 보세요. 얼마나 살벌하고 위험합니까? 그런데 누가 있어서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고, 이들을 위해 복음을 전합니까? 주님이 우리 민족을 부르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부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3) 하나님과 약속을 맺고 이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복된 사명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