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관만 20년 넘게 연구한 덕에 150년의 난제 풀었죠”
‘2023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고규영 IBS 혈관 연구단장 인터뷰
2023.07.03 09:00 권예슬 리포터
▲ 2023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인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장 ⓒ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은 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장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고 단장은 림프관 분야에서 연구 동향을 선도하는 등 우리나라 연구 수준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공로다. 시상식을 앞둔 고규영 단장을 사이언스타임즈가 미리 만났다.
150여 년 만에 찾은 뇌막 림프관의 기능
“매우 기쁩니다. 그동안 연구해온 연구원, 동료 연구자들 그리고 항상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20년 넘게 림프관 연구에 매진해 온 덕분에, 150여 년이 넘은 난제를 풀어내고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이렇게 값진 수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뇌는 우리 몸 중 가장 바쁘다. 에너지 소모도 많고, 그만큼 독성물질도 많이 생성된다. 독성물질이 쌓이면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이 유발된다. 뇌에 생긴 독성물질 등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뇌척수액이다. 그런데 뇌척수액을 밖으로 배출하는 경로는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았었다.
▲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은 머리뼈(두개골) 내 공간 바로 밑에 위치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고규영 단장이 이 난제를 풀었다. 뇌척수액을 배출하는 주요 통로가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 림프관이라는 사실을 동물(쥐) 실험을 통해 규명하고, 그 결과를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보고했다. 뇌막 림프관이 처음으로 발견된 지 150년 만에 주요 기능을 찾은 것이다.
고 단장은 “혈관은 혈액 즉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상수도’ 역할을 하고, 림프관은 노폐물을 배출하는 ‘하수도’ 역할을 한다”며 “림프관 순환계은 전신과 폐에 이어 우리 몸의 ‘제3 순환계’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뇌막 림프관은 딱딱한 머리뼈 속에서 다른 혈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확한 관측이 어려웠다. 고규영 단장이 이끄는 IBS 혈관 연구단 연구진은 생쥐의 머리뼈를 얇게 박피하여 관찰력을 높이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 상하부 뇌막 림프관의 위치와 구조를 살펴보는 연구를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뇌에 쌓인 노폐물 등을 밖으로 배출하는 주요 배수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다.
퇴행성 뇌 질환 치료의 새로운 접근법 제시
나아가 고 단장 연구팀은 노화 생쥐 모델을 이용해 노화에 따른 뇌막 림프관의 구조와 기능 변화를 살폈다. 노화에 따라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비정상적으로 붓고, 뇌막 림프관의 내부 판막 구조와 지지 구조가 망가져 뇌척수액 배출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노화에 따라 뇌척수액 배출이 줄어들며, 뇌에 노폐물이 더 많이 축적되고 이 과정에서 퇴행성 뇌 질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노화에 따른 뇌막 림프관의 변화 ⓒ기초과학연구원(IBS)
지금까지의 치매 연구는 뇌에 축적된 독성 물질을 약물을 이용해 축적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로 작동했다. 하지만 약물이 뇌 혈관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는 한계와 약물로 인한 뇌출혈 발생 등 부작용이 남아 있었다. 뇌막 림프관의 기능이 밝혀진 만큼 노폐물 배출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치매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다. 고 단장 연구팀은 현재 영장류 실험을 진행 중인데, 쥐 실험과 유사한 뇌막 림프관의 구조를 확인했다.
고 단장은 “치매 완치까지는 먼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치매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뇌세포는 한번 망가지면 다시 재생되지 않는 만큼 퇴행성 뇌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등 뇌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을 줄이려고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턱과 목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것도 림프관을 자극해 뇌 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