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4:1-10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찬송: 6, 120, 122장 교독문: 119번 성탄절 (1)
본문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그의 초기에 쓴 시이다. 그의 인생은 우리가 아는 바처럼 참으로 힘든 삶이었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거의 14~5년 동안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여러 번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삼십 세에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어 칠 년 육 개월을 다스렸고, 그 후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참으로 힘겨운 인생을 견디어 낸 후에 주어진 승리의 삶이기에 그에게는 왕이 된 것이 참으로 소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왕권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베냐민 지파들과 사울의 후손들은 호시탐탐 그의 왕권에 도전할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다윗이 그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왕위 초기에 아주 중요한 행사를 계획한다. 그것은 사무엘하 6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그 당시 하나님의 법궤는 실로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후 블레셋이 다시 돌려보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법궤를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 놓은 후에 법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다윗은 그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고자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 하나님께 인정받은 왕임을 만천하에 공포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 시편은 다윗 왕의 등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표면에 나타난 의미는 다윗이 여호와의 재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승인을 받았음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선포를 위해 다윗은 1-2절을 보면 땅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여호와의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그리고 모든 세계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왕권이 여호와에게서 나왔음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호와께서 어떤 분인가를 선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3절에서 어느 누가 여호와 앞에 설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누구를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그를 백성의 대표로 삼으시겠느냐 하는 의미이다. 그는 바로 4절에 있는 대로 여호와의 뜻을 따르는 사람, 즉 다윗 자신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께 재가를 받았기 때문에 왕이 되었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 그의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하신 것이고, 그의 왕권을 인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다윗과 함께 계속될 것이라고 5-6절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다윗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고 구원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7-10절의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노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법궤와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분의 영광을 찬양할 것을 요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법궤와 함께 오는 다윗의 왕 됨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왕이시지만, 그 왕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다윗을 세우셨기 때문에 다윗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지금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 성막에 안치될 때 이 노래를 하면서 자기의 왕권이 하나님의 재가로 인해 세움을 입었음을 백성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릴 것을 맹세함과 동시에 자신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이다.
다윗은 이처럼 자신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임을 선언하는데, 이제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이 시편이 메시아께서 왕으로 등극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여기에서 “영광의 주”는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렇다. 시편 24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 되심을 선언하는 메시아 시로 분류되며, 다윗이 선언하는 “영광의 왕”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유대인의 왕 예수”(마 27:37)란 죄패를 통해 왕으로 등극하시는 대관식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대관식을 통해 그분께서 왕이심을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당신의 백성들을 구속하셔서, 즉 ’타락’의 상태에서 건져내셔서, 우리의 왕이 누구이신가를 보고 그 왕을 즐거이 따르도록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이다. 시편 24편에서 우리가 배우는 바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함이며, 또 우리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게 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그분의 영원하신 다스리심 안에 우리가 들어온 것은 우리가 그분의 영원한 백성이며, 또한 우리의 위치가 확고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영원하며, 그분의 왕 되심도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백성인 것도 영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영원토록 그리스도 안에 붙들려 있는 삶이요,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화목하며 그분의 복을 받는 삶이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귀한 복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왕으로 등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서 영광 가운데 들어오시도록 그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본문에서 문들이 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과 관계가 있다. 그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쓰레기를 따로 모아 묻는 장소가 없이 성안 아무 곳에나 버렸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갈수록 땅의 고도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성문은 낮아졌다. 그래서 큰 왕이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그 왕의 위엄에 걸맞게 그 문을 높여야 했다. 본문에서 말하는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가 있다. 외적인 부분에서는 성문을 높이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영광의 왕, 영원하신 왕께서 오시기 때문에 그 문을 높여서 그분의 위엄에 걸맞게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 위치가 바로 여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왕으로 오셨지만, 다윗과 같이 환난과 핍박 가운데에서 힘겨운 그 삶을 살아내셨고, 심지어는 십자기의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 십자가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대관식으로 인정하셨다. 힘겨운 십수 년의 삶을 산 후에 삼십 세에 왕위에 오른 다윗처럼, 예수님께서도 왕으로 오셨지만, 그 왕위를 인정하지 않는 백성들의 모함과 비난과 질시 가운데 계시다가 드디어 십자가에서 왕으로 오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왕권을 영원한 왕권을 아버지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5절에서 말하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 우리의 참된 모습이다. 이에 따라 바울은 골 3:1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왕으로 등극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왕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위의 것을 찾으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원한 왕으로 인정하는 자리에 들어온 성도들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기억하면서 오늘 내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성도들의 마땅한 삶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그 왕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받은 귀한 복이다. 이러한 놀라운 은총이 가득한 삶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찬양하며 그분의 다시 오심과 우리에게 베푸실 놀라운 하늘의 상급을 소망하면서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