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월 24일)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전봉 집사님의 전화였습니다. 여 집사님은 음식점 '할매참옻집' 안광순 사장님의 큰딸이 됩니다. 미국에서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났군요. 귀국해서 저희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목회자인 저를 위해서 음양으로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목사님, 어머니가 내일 교회 할머니들 식사 대접하고 싶어 하세요. 11시쯤 모시고 오면 좋겠어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는 기분 좋습니다. 당일 저는 교회 주위 몇 분 할머니 집사님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내일은 아침 식사 조금만 하세요. 점심 식사 맛있게 하게요. '할매참옻집' 사장님이 한 턱 쏘신대요."
그리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오전에 일을 했습니다. 이웃 교회 아는 장로님이 텃밭에 심으라고 준 야콘을 심었습니다. 보기에는 몇 개 되지 않아 보였지만 심다보니 한 판도 양이 꽤 되었습니다. 가로 여덟 줄, 세로 넉 줄 모두 32 포기였습니다. 농사에 대해서는 왕초보인지라 힘이 좀 들었지만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낮 11시 쯤 오시는 게 좋겠다는 부탁을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점심시간(12시-오후 2시)은 음식점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에 속합니다. 손님이 붐빌 때입니다. 그 시간대를 피해 조금 일찍 오라는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오전 10시 전에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11시에 맞춰 음식점으로 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먹는 것으로 인해 예배 시간을 자주 바꾸는 것도 신앙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1시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현장에서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먼저 김종말 집사님과 박말분 권사님을 음식점으로 모셨습니다. 이어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박옥남 백태연 두 집사님과 김두순 성도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순남 집사님을 모시고 들어가니 정확히 11시였습니다. 저희 내외와 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안방을 차지했습니다. '할매참옻집' 안광순 사장님은 할머니들이 가실 때는 늘 안방을 내놓으십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음식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곳에서 안방은 VIP 룸에 해당합니다. 할머니들을 극진히 모시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 설명-'할매참옻집' 안광순 사장님이 65회 생일을 맞이하여 마을 할머니들을 초청 점심을 대접했다. 식사하기 할머니들 함께 찰칵!!(왼쪽에서 네 번째가 안광순 사장, 다섯 번째가 이명재 목사, 여섯 번째가 큰딸 여전봉 집사)
어느 정도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넉넉하면서도 깔끔한 상차림입니다. 이어 주 메뉴 옻 오리가 익힌 상태에서 다시 가스 불 위에 올려졌습니다. 두 개로 나뉘어 올려진 옻 오리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습니다. 그 때 안 사장님의 큰딸 여전봉 집사님이 들어왔습니다. 여 집사님은 다른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노년부 예배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저희 교회를 똑같이 섬기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낮 11시 노년부 예배 때, 거의 빠짐없이 과일 빵 반찬 등으로 먹거리 봉사를 해 오고 있습니다.
할머니 집사님들은 고맙다며 여 집사님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매주 반찬 봉사하는 것도 더 없이 고마운 일인데, 이렇게 점심 식사 대접까지 해 줘서 고맙다는 것입니다. 박수를 받고 여 집사님이 아내에게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오늘이 어머니 생신날이에요. 저희들(아들 딸들)이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느냐고 여쭤봤지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생일 날 덕천교회 할머니들 모셔다가 점심식사 대접을 하면 좋겠다구요. 할머니들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이 어머니 생일 선물인 셈입니다."
제 콧잔등이 짠하게 아려왔습니다. 진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저희 교회 노년부 할머니들은 연세가 작게는 83세에서 많게는 94에 이르기까지 모두 80, 90대이십니다. 안광순 사장님은 금년 65세입니다. 외손자녀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친손자는 아직 어리지만 안 사장님도 엄연히 할머니입니다. 할머니가 더 할머니들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섬기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으로 제 눈에 들어옵니다.
생일을 맞이해서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좋은 옷을 선물로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호텔 뷔페를 예약해서 축하 모임을 가지면서 그날을 기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 사장님은 이런 것을 다 생략하고 어머니와 같은 연세의 할머니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생일 행사라고 생각됩니다. 자신과 가족을 넘어 이웃을 생각하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의를 차리며, 특히 힘없는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마음이 물씬 풍겨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간단하게 수요 낮 노년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선(善)을 즐겨 베푸는 '할매참옻집'의 발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김천뿐만 아니라 구미 대구 나아가 전국에 소문 나서 많은 손님들이 찾는 음식점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안 사장님이 베푸는 사랑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함께 한 분들이 한 목소리로 "아멘."하며 기도를 끝냈습니다.
옻 오리는 푹 익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치아가 약한 할머니들이 드시기에도 좋습니다. 특식에 해당되는 점심 식사인 만큼 할머니들도 양껏 드셨습니다. 과식 후 뒤탈을 걱정할 정도로 풍성하게 드셨습니다. 고기에 덧붙여 나오는 밥 또는 죽을 택일해서 먹는 것이 관례지만 할머니들은 밥과 죽을 다 드시고도 조금 부족한 기색입니다. 노인 분들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는 저의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 갈 즈음, 노년부 총무를 맡고 있는 김종말 집사님이 즉석 제안을 했습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는 게 도리입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안 사장님이 오늘 생일이라고 하니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거출해서 축하금을 전달하는 것이 어떨지요?"
회장이신 박옥남 집사님이 말을 받습니다.
"그것 좋은 의견입니다. 우리가 대접을 받았으니 그것에 값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 5천 원씩 거두어 드리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저는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들의 의견은 완강합니다. 꼭 인사를 해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절충안을 냈습니다.
"돈을 거두어 드려도 안 받으실 거예요. 어쩌면 생일을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깬 큰딸 여전봉 집사님이 혼이 날지도 몰라요. 돈을 거출하기로 하셨으면 그것으로 예쁜 축하 화분을 하나 사서 선물로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내의 말이 쉽게 결론이 되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들은 먼저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총무 김종말 집사님과 전순남 집사님이 제 승용차를 타고 시내 꽃집으로 달렸습니다. 아내가 꽃집에 들어가 꽃이 활짝 핀 예쁜 난을 구해왔습니다. 거기에 리본까지 달았습니다. 리본에는 양 갈래로 '생신을 축하합니다. 덕천교회 할머니들'이라는 글귀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차에 싣고 가는 동안 꽃향기가 진동을 했습니다. 주고받은 사랑이 향기로 화해서 후각을 건드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안 사장님은 할머니들에게 괜한 소리를 해서 이렇게 부담을 드린다며 큰딸에게 눈을 흘겼습니다. 하지만 싫지 않은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사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라고 느낍니다. 파랑새를 찾아 나선 사람이 찾지 못하고 돌아와 결국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았다는 동화가 있습니다. 비슷한 이치입니다. 사는 재미와 행복은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마음 안에 행복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안광순 사장님에 베푼 사랑에 응답하신 할머니들의 모습은 우리가 경험하는 작은 행복입니다. 안 사장님과 할머니들이 주고받은 생일 선물, 과연 칭찬할 만하지 않나요?
첫댓글 굉장히 성대한 생일 잔치 였네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행복한 사람들, 즐거운 이야기들.....목사님의 목양이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강녕을 기원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주셨으나 그 포장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지요? 포장을 잘 풀어헤치며 행복을 드러내고 세워가시는 목사님을 생각하니 김천에 가고 싶네요. 그 식당에도...
김 목사님, 언제 시간 내서 김천 한 번 오세요. 참옻오리 푹 고운 것으로 대접하리이다.
저도 이런 칼럼을 쓰고 싶습니다. 요즘 너무 일에 분주하니 아쉽습니다. 이명재목사님의 따뜻한 글, 따뜻한 마음이 우리를 격려해주시는군요. 언젠가 한번 목사님과 긴 이야기를 나눌때를 그려봅니다.
따뜻하고 셈세한 목사님의 사랑이 느껴옵니다. 건강하게 잘 계시지요?
어르신들 섬김 행복하게 보입니다.목사님의 따스한 글 장미향보다 더좋은 풀잎 향기가 나네요.(가장좋은 것을 표현할때
언제나 풀잎향이라 합니다)*^^*
반가운 이의 예쁘고 맑은 닉네임이 떴네요. 기쁩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할 때, 섬기는 달란트를 가진 고 사모님이 생각납니다. 평화의 분위기가 광주 한 쪽에 서려 있음을 봅니다. 늘 평안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