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장에서 참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싱싱한 팔로 백핸드 스트록이건 백핸드 발리 건 맘껏 구사하는 테벗들입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언제 저래본 적이 있나 싶습니다.
어제 세 경기를 하였더니 팔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공치지 말자. 낼 월례대회도 있는데’
다행히 전국체전 4강전이 오늘 진행된다니, 공을 치지 않고도 충분히 휴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겠더군요.
어제 경기장에 다녀온 부총무가 이형택 선수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더군요.
근래 부총무 공이 무척 세졌는데, 이런 관심, 열정, 집중의 결과겠지요. ^^
카메라와 휴대용 의자와 우산을 챙겨서, 요번에 전국체전을 대비해 새로 조성한 문화테니장으로 갔습니다.
테니스장의 조경은 10년 후는 고사하고, 올 전국체전만을 위해 지어 놓은 것 같은 다소 엉성한 모습이었습니다.
10면 짜리 구장인데..., 이왕 지을 걸 제대로 설계해서 지었으면 좀 좋았을까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선수들의 현란한 경기 모습에 반해 금방 잊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나와 바로 맞닥뜨린 코트에서 이형택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었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생소하더군요.
그런 반면에, 비록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이형택 같은 대선수가 이런 옹색한 구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니..., 씁쓸하고 좀 미안스런 생각도 한편으론 들었습니다.
건너편 구장에선 여자 일반부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전(한솔제지)과 대구(삼성증권)의 4강전 1단식 경기였지요.
대전의 이예라는 4대0으로 몰리던 1세트 경기를, 줄이 끊어진 라켓으로 2분이 넘게 버틴 랠리에서 점수를 따내는 투혼을 발휘하더니 1세트를 7대5로 잡아버리더군요.
2세트는 긴장이 풀렸던지 1대6으로 내주었고, 3세트 경기에선 3대5로 뒤지던 류미가 이예라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 잡는 듯하다가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다시 놓치는 바람에 그대로 승부가 갈라졌습니다.
장장 4시간여의 사투 끝에 승리를 거머쥔 이예라에게 축하를, 아쉽게 패한 류미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냅니다.
2단식에선 대전의 김소정과 대구의 조윤정이 대결을 펼쳤습니다.
조윤정은 2004년 한솔 오픈에서 보고 두 번째인데, 그때의 날카로운 스트로크를 전혀 보여 주지 못 하더군요. 순전히 관록으로 3게임을 따내더니 곧바로 4게임을 빼앗기고는 허리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해서 아쉬움을 주었습니다.
싱겁게 4강전 승리를 챙긴 대전의 이예라는 찹쌀떡으로 보이는 먹거리를 들고 와서 김소정에 권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더 맛있게 먹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습니다.
하체가 유난히 발달한 이예라를 보고 운동을 얼마나 많이 해서 저럴까라는 반응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경기가 거의 끝난 구장에서 내일의 결승전에 오른 몇몇 선수들은 숙소로 귀소하지 않고 남아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중에도 새까만 얼굴로 묵묵히 랠리연습을 하는 김영준 선수의 모습이 제일 눈에 띄더군요.
결국에 결승 복식에서 유다니엘과 손잡고 김선용, 이형택 조를 물리치고 남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지요.
희멀건한 김선용과 새까만 김영준, 이번 승리가 그 결과인 것 같아 더 멋져 보입니다.
이 번 대회를 관전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즐거웠던 일은 거의 몰랐던 여자 선수들을 조금 알게 된 것, 그리고 앞으로 더 큰 성장이 기대되어서 발전하는 모습을 눈여겨 볼 선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여자 선수들이 끝선에서 멀찍이 물러서서 주로 떨어지는 공을 치는 관계로 경기가 많이 완만해 보였는데, 경동도시가스팀의 이초원과 NH농협의 유민화는 떠오르는 공을 강타하는 타법으로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소정과 이예라에 밀려 벤치 신세만 졌으나 김소정이 대주는 연습공을 역동적으로 스트로크하는 모습을 보여준 한솔제지의 한성희, 대전 출신인 명지대의 강서경도 유연하고 탄력 있는 신체 조건을 갖추어서 앞으로 상당한 발전을 보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