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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최고의 이념이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제도나 법률이 합리적이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합리성과 정의는 서로 상반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조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즉, 합리성은 절대적 가치인 진리를 지향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에게는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능력이 없다.또한 상대적 가치인 보편성을 지향하는 정의 역시 동물 일반의 속성인 이기심으로 인해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반목 그리고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어떤 제도나 법률도 완벽할 수 없다는데 도달하고 만다. 따라서 주로 힘을 가진 측의 권력의 소산으로 만들어지거나 합의를 가장한 야합으로 탄생한다. 야합과 합의의 다른 점은 합의는 선량한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야합은 당사자간의 이익만 도모할 뿐 보이지 않는 제3자의 피해는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인간생활을 구속하는 제도나 법률이 소수의 이익집단을 위해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프로야구의 현행 FA제도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진정으로 진리와 정의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구단간의 야합이거나 칼자루를 쥔 측의 힘으로 탄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1. 주객이 전도된 FA제도
FA란 문자 그대로 자유계약을 의미하며 그 출발은 당연히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메이저리그에서 FA 제도가 도입된 것은 프로가 시작된지 100년이 경과되고 난 이후일 정도로 이 제도는 선수와 구단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일반 시장경제에서도 반독점법이 필요하듯이 FA제도 역시 재정이 약한 구단을 보호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FA보상금 제도와 우선 협상기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단의 이기심으로 인해 이 안전장치가 오히려 중하위권 선수들에게는 불이익이 되고 전체 프로야구의 발전을 저해 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데 있다. 일부 특급선수일 경우 이러한 불이익을 무릅쓰고 필요한 구단에서 영입을 하지만 중하위 계층의 선수들까지 그만한 돈을 쓰고 영입할 구단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현행 FA제도는 극소수 특급선수들의 돈 잔치일 뿐 대부분의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위화감만 조성하는 먼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옷을 벗어야 하는 불이익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로 인해 FA의 순기능인 팀에 필요한 선수조차도 뽑을 수 없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제도가 과연 선수를 위한 것인지 구단의 한몫 챙기기 위한 수단인지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2. 극소수 특급선수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
프로야구의 FA 제도가 시행된 이래 그 동안 약 70여건의 FA계약이 있었고 그중 2회 이상 계약한 선수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 제도는 야구라는 한 우물을 파온 선수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지만 평생 먹고 살만한 고액을 받은 선수는 불과 10여명 안팎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기존 연봉에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수준의 재계약 형태로 눌러 앉았다. 정확한 통계를 보지 못해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이 자기팀에 눌러 앉는다면 현행 FA제도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당초 선수들에게 합당한 몸값을 지불하고 구단으로서도 팀에 필요한 선수들을 뽑을 수 있는 순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중상위권 이상의 실력으로 검증을 받은 선수들은 행복한 편이다. 중하위권에 속한 대부분 선수들은 이 제도의 혜택은 커녕 오히려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은 현행 FA제도가 그만큼 독소조항과 함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3. FA를 저해하는 요인들
보상금 제도 --->침 발라 놓기
수년전부터 FA 대상이 되는 선수들의 직전년도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선수의 성적에 따른 합당한 대우였다면 좋으련만 실상은 다른 곳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는 실로 한심한 악심에서 출발한 다목적용이다. ①보상금이 비싸 다른 구단에서 데려갈 엄두를 못내게 만든다 ② 그래도 데려 가면 막대한 보상금을 챙긴다 ③ 다른 구단에서 영입을 포기하면 그 때는 칼자루를 쥐고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낸다.
수년전 모 구단에서는 FA 대상선수에 대하여 대폭적인 연봉인상을 하고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챙긴 사례가 있다. 공식적인 용어는 보상금이지만 솔직히 그 성격은 위약금에 가깝다. 선수가 배신하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으니 데려가는 사람이 대신 물어 달라는 것인지. 누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제도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계약위반시 위약금은 통상 계약금을 물어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렇다면 직전년도 연봉의 100%가 가장 합리적이다. 뜬금없이 책정한 현행 450%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구단간의 야합일 뿐이다. 선수를 팔아 보상금을 챙기려는 악의라면 그런 구단은 차라리 프로야구단에서 철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보상금제도가 올해처럼 희생양을 양산한 해도 없었다. 현대의 김수경은 굴욕적인 1년계약을 하였고 롯데의 노장진과 한화의 차명주는 결국 옷을 벗었다. 만일 FA보상금 제도만 없었더라면 김수경은 다른 팀의 선발급으로써 보다 유리한 계약조건을 이끌어 내었을 것이고 노장진도 데려가는 구단이 나왔을 것이며 차명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두고 두고 선수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하기에도 일생이 짧다고 하였거늘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선수들을 이렇게 만들어도 좋다는 말인가.
타구단 협상기간---> 선수들에게 좌절만을 안긴다
현행 FA 대상자들은 소속 구단과 우선 협상을 벌이고 여기서 계약을 하지 못하면 타구단과 일정기간 협상을 벌이고 최종적으로 다시 원소속구단을 포함한 모든 구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 일견 가장 합리적인 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로 위험한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는 독소조항이다. 즉, 두 번째 타구단 협상기간중 아무도 영입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그 선수는 필요없는 선수임을 확인시켜주는 절차가 되고 말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원 소속구단의 불합리한 제시액에 계약을 하거나 아니면 선수생활을 그만 둬야 한다. 설사 옷을 벗지 않았더라도 헐값에 재계약한 김수경이나 김종국은 이 조항의 대표적 희생양이다.
FA 선언해야 자격취득 ? --->선수들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빼앗아
해마다 오프시즌이 되면 특급선수들은 가슴 설레지만 중하위권 선수들은 잠못 이루는 밤이 계속된다. FA를 선언하느냐 마느냐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혹시라도 소속구단에 미운털이 박혀 계약에 실패할 수도 있고 타구단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선수생활의 기로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정신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특정된 권리를 모르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프로야구처럼 모든 것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환히 알고 이미 확정된 권리를 또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이는 다분히 중하위권 선수들의 이적을 최소화하기 위한 악의로서 출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과거 파산이나 화의를 신청하는 회사정리법에 보면 채권자라도 채권 신고기간내에 따로 신고하지 아니하면 채권이 소멸되었다. 실제로 모 금융사에서는 실무자의 착오로 이를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수십억원대의 손실을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6년도에 시행된 새로운 통합도산법에서는 채권자의 신고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인정하도록 변경되었다. FA선언을 하지 않았다고 FA가 되지 못하게 하는 그 속 뜻은 선수들에게 구단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4. FA자격 취득기간 9년은 너무 길다
최근 FA계약한 선수들의 평균나이는 32세가 넘는다고 한다. 선수들의 전성기는 대체로 30세 전후이며 투수의 경우 수명이 더 짧다. 통계를 보면 나이 33세가 넘으면 대부분 하향곡선을 그리고 35세 전후로 은퇴기에 돌입한다. 물론 송진우나 양준혁등 몇몇 선수들은 예외이지만 한창 전성기때 계약을 해야 선수로서도 자신의 실력에 부합한 몸값을 받을 수 있고 영입하는 구단역시 투자수익을 높일 수 있을 것 아닌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을 면제받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가는 경우에는 사실상 FA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한 군대생활 2년은 사적인 행위가 아니고 공적인 의무인데 그것까지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과거 군필자에 대한 공무원시험가산제도를 군사정부의 잔재라 하여 폐지하였다가 최근 다시 부활되었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민주화만을 생각하다 보니 평등과 형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평등에 집착하면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평등 보다는 합리적인 형평성이 더 중요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현행 FA 자격취득기간은 미국은 6년이고 일본은 우리와 같은 9년이다. 그것도 주전이 되어 9년간 줄기차게 뛰어야만 가능하다. 입단후 후보선수 2-3년, 군대 2년을 더하면 어느 천년에 FA 자격을 취득한단 말인가.
5. FA계약금은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 하다
FA계약에서 구단의 리스크는 영입한 선수가 계륵으로 변하는 소위 먹튀에 있다. 이는 프로야구의 FA선수들이 대부분 전성기를 지나서 햐향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자격을 취득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위험성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순수한 연봉으로만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직전년도 연봉의 일정비율 이상을 주지 못하는 현행 규약에 있다. 지켜지지 않을 규약이라면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를 유지해야 한다면 연봉 금액대별로 차등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다. 이는 숫자의 요술이나 통계의 허구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면 직전년도 연봉이 1억원 선수의 100%와 5억원인 선수의 100%는 4배가 차이가 난다.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먹튀에 대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연봉과 플러스 마이너스옵션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FA보상금에는 그토록 눈독을 들이는 구단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의연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6. 맺는 말
이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미진한 규약이 있을 것이나 필자는 야구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더 이상 파고 들어갈 생각은 없다. 다만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의 한사람으로써 건전한 상식선에서 볼 때 현 규약은 너무나도 구단을 이익을 보호하는데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본 제도의 순기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역기능만 초래하고 있다면 이는 결국 프로야구를 퇴보시키는 처사이자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불이익이 될 뿐이다.
FA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은 선수들이 기량향상을 이루고 이들의 원할한 이적을 통해 구단간의 전력평준화를 도모할 수 있다면 프로야구 흥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끝으로 이 문제 역시 정답이 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구단의 입장과 선수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금년 시즌이 끝난 후 선수의 권익도 보호하고 구단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적절한 해결책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제1기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