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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2~41)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이 충분히 있을 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급차이고 성능이 최고라도 기름이 없으면 한 발짝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필히 충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가서 충전하려면 그냥 충전합니까? 아니지요? 충전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영적 충전소에 와서는 어떻게 충전합니까? 주유소는 돈으로 해결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충전소에 와서도 돈으로 성령의 기름을 채울 수가 있을까요? 시몬과 시몬의 대결을 통해 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행 8:9~25).
어떤 도시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행해서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시몬에게 빠졌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남자나 여자나 모두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뒤에 계속해서 빌립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는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시몬이 이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이 시몬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는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안수를 통해 성령님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는 사도 시몬에게 돈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권능을 제게도 주셔서 제가 안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님을 받게 해 주십시오.”
사도 시몬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얻을 줄로 생각했소. 그러므로 당신의 은과 함께 당신이 멸망해 버리시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소. 그러므로 당신의 이 악한 것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시오. 그러면 마음에 품은 악한 것을 용서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자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저를 위해 주님께 기도해주셔서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도 닥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시몬과 시몬의 대결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성령을 돈으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시몬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도 물세례만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세례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충전소에 와서 성령의 기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가지고 교회를 마음대로 흔들려고 하면 돈과 함께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울 수가 있을까요? 마술사 시몬처럼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적 충전소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의 기름을 채우면 됩니다. 그런데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해야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신나게 시원시원하게 잘 달릴 수가 있을까요?
시몬 베드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줍니다. 성령의 기름을 채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회개’라고 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겠습니다(행 2:32~41).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 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아서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하게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도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각각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먼 곳에 있는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날 신자의 숫자가 삼천 명이나 더 늘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시몬 베드로는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기름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죄가 들어차 있으면 성령의 기름이 들어갈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가득 찬 죄를 내다버리면 성령의 기름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해서 죄가 사라지면 깨끗하게 청소된 마음에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못 배워서 더 타락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성과 지식이 발달할수록 학력이 더 높아질수록 더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학력이 더 높아지고 더 많이 배웠는데 점점 더 타락할까요? 그것은 좋지 못한 것을 더 많이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대학문에 들어가는 사람이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지간하면 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학에 들어가서 무엇을 배우느냐 입니다.
대부분의 대학교 주변에는 무엇이 꽉 들어차 있습니까? 온갖 퇴폐한 것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지성과 교양을 탐구해야 할 청년들을 유흥과 퇴폐에 빠지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한 때의 낭만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입생 환영식 때부터 술을 많이 먹는 법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순진하게 공부만 하던 신입생들을 방탕을 잘하도록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력이 높아지고 더 많이 배울수록 더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발달한다고 타락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유흥과 퇴폐와 방탕은 낭만이 아닙니다.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것입니다. 요즈음 그렇게 많이 배우고 지식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했지만 정신은 더 파괴되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최빈국의 잿더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과 과학과 경제가 발전해서 세계 15위의 선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전쟁 당시의 잿더미 상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르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자살률 1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혼란스럽고 방탕한 문화를 성령 충만한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어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두운 것은 어둡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두움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두움을 좇아가거나 어두움을 부추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빛을 사랑하고 빛 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 빛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이렇게 바뀝니다. 그러므로 꼭 성령의 기름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과 회개는 나선형 구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회오리바람과 같은 원리입니다. 역삼각형 구조의 회오리바람처럼 조그만 일에서 시작되어 큰 일이 되는 원리입니다. 성령님은 회개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려고 결단하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이신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도와주셔서 더 잘 회개하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면 점점 더 회개를 잘 하게 되고 그러면 점점 더 성령 충만하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점점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성령 충만 받고 성령 충만해져서 더 잘 회개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더 성령 충만하고 더욱 더 회개를 잘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술 취하는 것이 이론이 아니듯 성령 충만도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로 충만해집니다. 회개의 삶을 살 때 성령께서는 점점 더 뜨겁게 역사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적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할 때 천국이 오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때 영생과 더 풍성한 삶을 주는 천국이 오고,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하게 여기셨기에 회개하여 이 천국을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없어야 할 것이 들어오면 고통스럽게 됩니다. 죄가 들어오면 고통스럽습니다. 고독, 질병, 고민, 가난, 마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어도 고통스럽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소망이 있어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있어야,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계셔야 합니다. 그러면 고통 대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회개하면 이런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회개를 하려면 어떤 것을 회개해야 할까요? 많은 점에서 회개해야 하지만 본문의 문맥 중심으로 회개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은 성령님을 사모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생명의 주님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시대에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영을 죽였습니다”라고 설교할 것입니다. 성령님을 거역하는 죄,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은 죄,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런 갈급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이런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학업생활도 사회생활도 그 무엇도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을 하든 제대로 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모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대충 살겠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회개해야 할 것은 방탕하게 살아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방탕은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절제하지 못하고 방탕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해 무절제하게 살던 모습에서 성령 충만해서 절제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마구 말한 죄,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가리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죄,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리지 못하고 간 죄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본능대로 살지 않고 절제시켜주시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행 가이드를 보면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다닙니다. 마치 깃발이 펄럭이면서 “나를 따라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면 편안하게 즐겁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이드가 되신 성령님을 따라다니면 됩니다. 우리 안에 충만하신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깃발을 보고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셔서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세상 유혹에 마음이 요동치지 않도록 절제시켜 주십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채우면 이처럼 모든 면에서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