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미칼이 어울리는 여자
김도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세상은 도마였다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단숨에 제압하던 엄마의 도마
자갈치시장에서 사시미 뜨는 솜씨가 제일이었던 엄마
뼈와 뼈 사이를 미끄러지듯 사각거리는 칼날의 미세한 감각은
팔뚝의 힘줄을 따라 등에 업힌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깨너머 온몸으로 익힌 감각은
입이나 귀로 듣는 어떤 감각보다 선명했다
젖내보다 생선비린내와 땀내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더 익숙했던 나
비린내만은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배워야 한다고
유학까지 보내며 모질게도 다그치셨지만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걸핏하면 수산시장으로 달려가
생선 냄새 비릿한 엄마를 기웃거렸다
사시미칼의 보이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먹는
회 한 접시, 막걸리 한사발이면
세상은 온통 소금끼 흥건한 엄마의 등이었다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실
손마디가 틀어져 고무장갑조차 낄 수 없었던 엄마의
씻어도 씻어도 비린내 가시지 않는 손을 잡아본다
투박한 그 손에 쥐어졌던 날렵한 사시미칼의 전율이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하게 나의 감각을 깨운다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바코드가 일어난다
ㅡ 《강남문학》 2024년 32집
첫댓글 이렇게 글을 실감나게 쓰시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부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많은 것을 느끼고 갑니다
차분하게 글쓰는 일에 몰입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