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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
한 시간쯤 왔을까. 과연 멀리 뒤쪽에서 여러 필의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조영과 두 여인은 깜짝 놀라 말에 채찍을 가해 속력을 높였다.
“안되겠습니다. 다시 몸을 숨겨야 할 것 같습니다.”
“흥! 그 자들을 고이 내버려두고 온 게 큰 잘못이에요. 함부로 자비를 베풀더니 꼴좋게 되었네요.”
이루하가 빈정거렸다.
세 사람은 다시 말을 이끌고 대로에서 벗어나 곁길로 들어갔다. 한참을 지나자 희미한 달빛 아래 여러 필의 말이 속력을 내어 내닫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라서 과연 그들이 자신들을 납치해 간 괴한의 무리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으나, 그들의 수는 대략 이십여 기쯤 되어 보였다.
그들의 말발굽 소리가 귀에서 거의 사라졌을 때 비로소 세 사람은 수풀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그들을 만나지 않으려 천천히 말을 몰았다. 하지만 다시 한 시간쯤 갔을 때 이번에는 앞에서부터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멈추어 귀를 기울이니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조영은 이루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어쩔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또 몸을 숨겨야 합니다.”
“흥! 대장부, 대장부하면서, 대장부가 그리 겁이 많아서야 어디에 써 먹겠어요? 당신이나 혼자 숨으세요. 나와 여미아는 가던 길을 그냥 가겠어요.”
“아가씨, 지금은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닙니다. 펼 때가 있으면 굽힐 때가 있고 나타날 때가 있으면 숨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말이야 그럴듯하군요. 하지만 난 숨지 않겠어요. 당신이 이영월을 따라가면, 난 그 자에게 시집을 가야겠어요.”
“네? 그 자에게 시집을 가다니요?”
조영은 괴한들의 두목이 이루하와 여미아에게 치근대며 혼인하자고 설득한 일을 모르고 있었다.
조영은 이제야 생각난 듯 물었다.
“아, 아가씨, 좀 전에 그 괴한 두목을 어떻게 처리하고 무사할 수 있었는지, 경황이 없어서 아직 여쭈어보지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아실 필요 없어요. 당신의 관심은 온통 태평공주인가 뭔가 하는 그 계집애에게 가 있는데, 내가 죽든 살든, 누구에게 시집가든 무슨 상관이에요?”
조영이 하늘을 우러러 달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우리 아니었으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란 걸 잊지 마세요.”
말이야 사실이었다. 이루하와 여미아가 괴한들의 두목을 제압하고 귀신을 가장해 나타나 그들을 놀랜 다음 조영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조영은 영락없이 노예로 팔려가거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은혜,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은혜는, 기억하기만 해서는 안돼요. 되갚아야죠. 원수는 갚지 않을지라도, 은혜만큼은 갚아야 합니다.”
“제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무엇으로 갚을 거예요?”
이루하가 물었다.
“지금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속히 몸을 숨겨야 합니다.”
조영은 대답을 회피하고 이루하를 재촉했다.
“저들을 따돌린 다음, 조용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이루하는 순순히 조영을 따라 곁길로 들어가 시야가 넓은 곳에 자리 잡았다.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을 때, 고요한 월광 아래 약 이십여 기가 출현했다. 한 시간 전에 그들을 지나쳐 간 자들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훤히 들려왔다.
“나리! 그 자들은 이미 낙양성으로 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어서 따라가자!”
그 음성을 듣고 이루하와 여미아는 돌연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목소리의 어조는 분명, 자신들에게 결혼해 달라고 협박하던 그 괴한의 음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마디를 남기고 낙양성 쪽으로 멀어져갔다.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적막한 들판을 울렸다. 한참 후 말발굽소리가 가물거리다가 사라진다.
“이젠 어떡하실 거예요?”
이루하가 불만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그자들과 조우하지 않으려 여기서 날 새기를 기다릴 건가요?”
“갑시다!”
조영이 묵직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리하게 말을 몰아 그들은 동이 트기 전 낙양성 십여 리 밖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자들이 낙양성으로 왔다면 분명히 이 근방 객점에서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조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은밀한 곳에 숨어서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미아의 발언이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일부는 객잔들을 찾아다니며 우리를 수색하고 일부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으슥한 곳에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침까지 몸을 감추고 기다리는 게 안전하다는 뜻인가요?”
이루하가 물었다.
“인명은 재천입니다. 어찌 더 이상 두 분을 고생시킬 수 있겠습니까? 객잔으로 들어가죠. 설사 그들과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두 분이 도와주신다면 우리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흥, 자신의 안전을 아녀자에게 의탁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이루하가 독한 말로 쏘아붙였다.
“이 몸이 불민해 두 분께 거듭 폐를 끼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겸양을 떨면 다인가요?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구해준 은혜를 어떻게 무엇으로 갚으실 건가요?”
이루하가 좀 전의 화제를 다시 꺼냈다.
“일단 여관으로 들어간 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사방으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조심스레 말을 몰아 성 밖의 마을에 도달했다. 다행히도 그들을 노리는 매복자는 없는 듯했다. 마을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들은 등불이 내걸린 객잔을 찾아갔다. 심하게 이지러진 여름밤의 달빛 아래 한 거대한 객잔이 웅크리고 서 있었다. 소리를 치며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사환 둘이 나와 그들을 맞았다. 한 사환에게 말을 맡기고 세 사람은 다른 사환을 따라 객실로 들어갔다.
“방 두 개를 주시오.”
조영이 요청하자 이루하가 말했다.
“아니에요. 방 하나만 주세요. 조용하고 아늑한 곳으로요.”
“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세 사람이 어느 외진 방 앞에 다다랐을 때 조영이 사환에게 물었다.
“이 객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아, 모르셨군요. 고려여관입니다.”
“네? 고려여관이요? 혹시 주인께서 고려인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주인마님뿐만 아니라, 이곳의 일꾼들도 거의 다 고려인들입니다.”
“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갔다. 내부의 구조가 고려 식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방 하나와 작은 방 하나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사환은 두 방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조영이 사환에게 다시 물었다.
“모든 방이 이렇습니까?”
“아닙니다. 일부만 고려 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손님들의 옷차림과 말투를 보고, 첫눈에 고려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조영이 다시 사의를 표했다.
사환이 불을 켜고 물러간 후 그들이 자리에 앉았을 때 이루하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대답해 주세요. 저희가 구해드린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실 건가요?”
“아가씨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요청하면 제 힘이 닿는 한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 말 진심이에요?”
“그렇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죠?”
“남아일언 중천금입니다.”
“저와 혼인해 주세요!”
이루하의 말은 그녀의 직설적 성격에 걸맞게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그건 제 임의로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부와 부친의 의사를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흥! 내 그럴 줄 알았어요.”
“그리고 저는 어렸을 적 정혼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루하가 홀연 멍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침묵하다가 간신히 물었다.
“사실이에요? 누구예요?”
“사실입니다. 제 나이 일곱 살 때 어른들이 다섯 살의 여아와 정혼을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흥!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럼 그녀가 누구고 지금 어디에 살고 있어요?”
“그건 잘 모릅니다. 아마도 하늘 아래 어딘가엔 살고 있겠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군요. 그렇다면 그건 이미 폐기된 거나 다름없어요. 이름도 얼굴도 생존 자체도 모르는 여인과 정혼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이루하가 핀잔을 주었다.
“아무튼 약속은 약속입니다.”
이루하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뾰로통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조영은 가벼이 한숨을 쉬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여미아는 방에 들어오자 잠시 이루하의 시중을 든 후 곧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루하도 다른 한쪽 모퉁이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십자사의 대덕 고양원이 가르쳐준 호흡 기도를 드려보았다. 고요하고 깊게 숨을 내쉬고 마시며 심장에 의식을 집중한 채, 가슴을 하늘의 평화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심란하고 절망스런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조영에게 정혼한 여인이 있다니!’
조영 앞에서는 큰 소리를 쳤지만, 그녀에게 그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녀는 절망감을 추스르고자 떨리는 몸을 벽에 기댄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조영은 맞은 편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대략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 지났을까? 여미아가 속삭이는 음성으로 이루하를 불렀다.
“아가씨!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요.”
괴로운 가슴으로 남몰래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울고 있던 이루하가 놀라 눈을 뜨며 물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니, 무슨 말이야?”
“바깥에서 흉한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져요.”
“그래? 너의 예감은 매번 적중했는데.”
사실이었다. 여미아는 평소에 아주 예리한 지각력과 직관력, 예감을 보여주었다. 이루하는 집에서 그런 일을 여러 차례 겪은 바 있었다.
이루하가 마침 등잔 아래 있어서 입으로 불어 불을 끄려했다.
“아가씨, 끄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리는 환한 곳에 있으니 쉽게 노출되잖아?”
“괜찮습니다. 어쩐지 환한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떡해야죠?”
조영이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자기 방문을 살며시 열며 가볍게 물었다.
“잠시 기다려보죠. 공자님도 이쪽으로 오시는 게 좋겠어요.”
여미아가 말하자, 조영은 머뭇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건너가 한 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세 사람은 조용히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 때다. 봉창문 밖에서 아주 미약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이 대단히 예민했던 세 사람은 그 소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살금살금 접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눈을 감고 재빨리 자리에 누워 자는 척 하세요.”
여미아가 속삭였다.
세 사람은 신속히 누워 실눈을 뜨고 봉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봉창문의 창호지가 소리 없이 뚫리며 그 구멍 사이로 예리한 눈이 나타났다. 그 눈은 방안의 광경을 잠시 지켜보더니 곧장 사라졌다. 이윽고 뚫린 창호지 구멍 사이로 대롱 같은 것이 살짝 들어왔다.
그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사이에, 대롱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방안으로 물컥물컥 쏟아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즉시 호흡을 멈추었다.
그 때 조영이 살며시 일어나 소리 없이 봉창문으로 다가가더니 번개같이 문을 열어젖혔다. 밖에 있던 그림자가 조영이 열어젖히는 봉창문에 머리를 가격 당했는지, 가벼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와 때를 같이해 조영은 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조영은 환한 빛 가운데 있다가 갑자기 깜깜한 곳으로 나오자 사방이 어두웠으나 한 야행인夜行人이 땅에서 몸을 일으키며 번개 같이 달음질해 담장 밖으로 몸을 날리는 게 보였다.
조영은 그 불청객을 쫓아가려고 담장을 뛰어 넘었다. 검은 그림자가 그 거대한 장원의 정원을 가로질러 장원의 바깥 담장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다. 조영은 그 뒤를 빠짝 좇았다. 괴한은 바깥 담장을 가볍게 뛰어 넘더니 나는 듯 달렸다. 조영도 담장을 뛰어 넘었다.
조영이 맨발로 그를 추적하려 할 때 불현 듯 그의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다!’
여인들만을 남겨두고, 자신을 유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은 조영은 즉시 발길을 돌려 다시 담장을 넘어왔다. 이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사람의 장정이 그의 앞을 순식간에 가로막았다. 그들은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르며 조영에게 달려들었다.
조영은 기다렸다는 듯, 침착하게 맨발로 몸을 날리며 한 장정의 팔을 발길질로 걷어찼다. 그 장정의 손에서 검이 빠져 날아갔다. 그는 검을 들었던 오른 팔을 축 늘어뜨렸다. 다시 한 번 조영이 몸을 팽이처럼 돌림과 동시에 공중으로 띄우며 발길을 날리자 검을 놓친 장정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멀리 삼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다른 장정은 동료가 나가자빠지자 휘파람을 불더니 맹렬하게 검을 휘둘러 조영을 압박해 들어왔다. 조영은 몸을 빼어내 한 장정의 검이 날아간 곳으로 몸을 날렸다.
땅바닥에서 검을 집어든 조영은 괴한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갔다. 그 괴한은 긴장하며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조영은 기이한 신법으로 삽시간에 괴한에게 접근해 왼팔로 괴한의 오른 팔목을 낚아채며 칼날을 그의 목에 들이대었다.
괴한이 움찔하는 사이, 그의 손에 잡았던 검은 이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다.
“어머나!”
어디선가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루하의 음성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조영은 복면 쓴 장정을 노려보다가 그를 밀쳐버리고 그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든 다음, 이루하와 여미아가 있는 객실로 내달렸다. 그 가옥의 담장을 뛰어넘자 거기서는 기다렸다는 듯, 네 사나이가 검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의 사나이들은 칼을 휘두르는 솜씨가 아주 노련했다. 조영은 양손으로 검을 한 자루씩 잡고 쌍검으로 그 넷과 맞섰다.
“칼에는 눈이 없다. 칼을 버리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줄 알라!”
조영이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네 사람이 사방에서 조영을 노리며 협공해 들어왔다. 조영은 침착하게 한 사람씩 맞아, 몸을 마치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쌍검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장원의 뜰에 메아리쳤다. 조영은 차마 인명을 해칠 수 없어, 손에 사정을 두다 보니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들은 조영을 죽일 작정인지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리며 조영을 압박했다.
바로 그 순간, 방 안에서 흰 그림자가 봉창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 한 친구가 괴성을 지르며 검을 놓치고 땅 바닥에 나뒹굴었다. 조영이 얼핏 보니, 여미아 같았다.
여미아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더니 마치 하늘 선녀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조영을 겨누고 있던 한 사나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가 검을 들어 여미아의 칼을 막는 순간 요란한 쇳소리가 나며 괴한의 검이 손에서 빠져 날아갔다.
이어 괴한은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여미아의 가벼운 발길질에 가격 당했던 것이다.
두 친구가 졸지에 땅바닥을 헤집자, 나머지 둘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들이 머뭇머뭇하는 사이, 여미아와 조영은 가볍게 그들을 제압하고 검을 빼앗은 후, 급소를 질러 그들을 혼절시켜 버렸다.
조영은 즉시 봉창문 앞으로 몸을 날려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방바닥에서 끔찍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자세히 보니, 방안에는 거대한 뱀 몇 마리가 여러 토막으로 잘린 채, 축 늘어져 꿈틀거리고 있었고, 뱀의 피가 바닥에 묻어 있었다. 커다란 독사 한 마리는 세모꼴의 머리를 치켜들고 성난 모습으로 이루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루하는 새하얀 옷에 피 같은 얼룩이 묻은 채 단도를 빼어들고 뱀과 대치하고 있었다.
조영이 보니 그 뱀은, 사람이 물리기만 하면 즉사하는, 맹독을 지닌 무서운 독사 같았다. 조영이 검을 들고 막 방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뒤에서 여미아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공자님! 잠깐만요. 제가 처치하겠습니다. 공자님은 바깥동태를 살펴주시겠어요?”
조영이 우물쭈물하다가 한 쪽으로 물러난 사이 여미아는 품속에서 단도를 빼들더니 즉시 방안으로 들어가 독사를 향해 칼을 날렸다. 하지만 독사는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목을 돌리며 여미아가 던진 단도를 가볍게 피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여미아는 오른손을 내밀어 탄지신공彈指神功으로 허공을 격하고 뱀의 급소를 내질렀다. 여미아의 탄지신공에 칠촌급소를 정통으로 맞은 독사는 갑자기 위로 약 삼척이나 솟구쳐 올랐다. 그 때를 놓칠세라, 이루하가 손에 든 단도를 휘둘러 뱀의 목을 사정없이 쳤다.
그 뱀도 마침내 이루하의 단도에 머리를 잘리고 방바닥에 떨어져 몸부림을 쳤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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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12. 22. 겨울한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