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나 힝기스는 스키와 테니스를 2살에 시작하였으며, 4살에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코치인 멜라니 몰리터가 투어활동을 동행하며 이끌었습니다. 스위스로의 이주는 8살에 하였고, 스키, 수영, 승마를 즐겨합니다.
1997년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올라 5년간 여자테니스계의 정상을 지켰던 '알프스 소녀'는 이제 더이상 WTA 투어에는 미련이 없는 듯 보입니다.
힝기스는 고질적인 왼쪽발목 부상으로 2002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중단하였다가 2005년 올해 태국에서 열린 4급대회에 처음 출전하였지만, 1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월드팀 테니스(World Temam Tennis) 프로리그나 은퇴 선수들과 벌이는 시범경기에서만 볼 수 있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팬들은 그녀의 조기복귀를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힝기스의 주요 기록>
2000년 Forbes 매거진 선정 '부와 명예'를 가진 유명인 51위에 선정.
2000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 미국의 린지 데이븐포트에게 패하기까지 호주 오픈을 3회 우승하며 27경기 연승 행진을 함. 27연승은 코트와 셀레스의 33연승에 이은 두번째 기록임. 코트, 굴라공, 셀레스 그리고 그라프에 이어 5번째로 호주 오픈을 3연패한 선수로 기록됨.
2000년 호주 오픈 복식에서는 또 다른 파트너인 마리 피에르스와 결승에 진출했지만, 1번 시드팀에게 1-2로 패해 준우승함. 1999년 호주오픈에서는 모두 다른 3명의 파트너로 호주 오픈 단복식을 3연패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됨. 2000년 팬퍼시픽 오픈을 우승함으로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고 4년동안 팬퍼시픽 오픈을 3번 우승함(1997,1999,2000년). 2000년 팬퍼시픽 오픈 복식에서도 우승함.
데이븐포트에게 5연패를 당하며 나선 2000년 에릭슨 오픈에서는 마침내 데이븐포트를 결승에서 6-3, 6-2로 꺾고 우승함. 4강에서는 모니카 셀레스를 6-0, 6-0으로 이겼으며, 대회를 우승하기까지 6경기에서 단 21게임을 잃음.
안나 쿠르니코바, 안케 후버,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를 나란히 꺾으며 2000년 함부르크에서 우승, 데이븐포트에게 빼앗겼던 랭킹 1위자리를 되찾음.
하이네켄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생애 두번째로 잔디 코트 대회에서 우승함.
2000 듀 모리에 오픈에서 1세트를 0-6으로 내주기는 했지만 0-6, 6-3,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세레나 윌리엄스가 부상으로 기권, 우승을 차지함. 나브라틸로바, 에버트 그리고 셀레스에 이어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4번째 선수가 됨. 이 대회 단복식을 석권함으로 시즌 단식 5승과 복식 4승을 기록함.
4경기에서 단 10게임만을 잃으며 2000년 포르셰 그랑프리에서 우승, 시즌 6승을 챙김. 복식에서도 쿠르니코바와 짝을 이루어 우승함.
왼쪽 발바닥의 부상으로 2000 이탈리아 오픈에 기권함.
2000년 프랑스 오픈과 US 오픈에 4강에 진출함으로, 이전 17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적어도 15번 4강에 진출하는 성적을 냄.
2000 스테이트 팜 레일 클래식에서 상드린 테스투, 마리 피에르스를 2-0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2일 동안에 아리조나에 쏟아진 비로 인해 데이븐포트와의 결승전이 취소됨. 그 후, 2000 인디언 웰스 결승전에서 데이븐포트에게 1-2로 패해 12경기 연속 승리의 행진이 끝남. 2000 프랑스 오픈 복식에서 마리 피에르스와 짝을 이루어 우승함으로 그녀의 8번째 그랜드 슬램 복식 타이틀을 따냄.
1999년에 따낸 7개의 타이틀중 5개가 그랜드 슬램 또는 1급 대회 우승. 1999년에 출전한 20개의 대회에서 무려 13번 결승에 진출함.
1999년에 71경기를 승리하며 최다 경기 승리자가 되었고, 3년 연속 3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됨.
1999년 시즌을 마치며 데이븐포트와 함께 똑같이 26개의 타이틀을 보유하며 역대 타이틀 랭킹에서 나란히 16위에 랭크됨.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프랑스 오픈, 1999년에는 결승에서 우승을 향한 단 3 포인트를 남겨 두었지만 슈테피 그라프에게 1-2로 역전패, 우승에 실패함. 복식에서는 쿠르니코바와 결승에 진출, 6번 연속 그랜드 슬램 결승 진출의 기록을 세움.
1999년 US 오픈, 그 해 세번째의 그랜드 슬램 결승에 진출함(1999 호주 오픈 우승, 1999 프랑스 오픈 준우승). 4강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와 혈투끝에 2-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승에서 동생인 세레나 윌리엄스에게 0-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무름. 2세트 3-5, 15-40까지 뒤져 더블 챔피언쉽 포인트에 몰렸지만, 극적으로 살아나 6-6 타이 브레이크까지 몰고 감. 타이 브레이크에서 4-7로 패배.
1999 듀 모리에 오픈에서 10위 산체스, 6위 피에르스 그리고 4년연속 우승자인 5위 셀레스를 누르고 생애 첫 듀 모리에 오픈 우승을 차지. 이 대회에서의 셀레스의 24연속 승리를 저지함. 95년도 이 대회에서 피에르스에 0-6, 0-6으로 당한 패배와 전년도 4강에서 셀레스에 1-2로 패한 설욕을 갚음.
1999년 듀 모리에 오픈을 우승함으로 최연소로(18년 11개월) 상금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선수로 기록됨. 1999년 체이스 챔피언쉽 4강전에서 비너스 윌리엄스를 꺾음으로 19년 51일의 나이로 최연소 프로 경기 300승을 거둔 선수가 됨.
1998년 6월, 여자 스포츠 선수로는 처음으로 남성 잡지 GQ의 표지 모델이 됨.
1998년 체이스 챔피언쉽에서 데이븐포트를 이기고 우승함으로 6개월 간의 무관 행진을 끊었으며 그 해 유일하게 메이져 대회를 두 개 석권한 선수가 됨. 데이븐포트에게 1위 자리를 내어줌으로 1997년 3월 31일부터 1998년 10월 11일까지 80주간 계속된 여자 테니스 통치가 막을 내림.
1998년 호주 오픈 기간동안 17년 4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상금 500만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으며, 800만 달러 돌파는 1998년 체이스 챔피언쉽에서 세움(역시 18년 1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16년 1개월 10일의 나이로 상금 1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최연소 선수가 되었으며,
1997년 단일 시즌에 300만 달러의 상금을 거두어 들인 최초의 여자 선수로 기록됨.
1997년 윔블던부터 1999년 호주 오픈까지 7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적어도 단식 복식중 1개의 타이틀을 거머 쥠.
1998년에 4개의 그랜드 슬램 복식을 모두 우승한 4번째 선수가 됨.(그 외에 1960년의 마리아 부에노, 1984년에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팸 슈라이버 조). 1998년 호주 오픈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미르야나 루시치, 그리고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에서는 야나 노보트나와 짝을 이루어 우승함.
1998년 6월, 나브라틸로바와 산체스에 이어 같은 시간에 세계 단복식 랭킹 1위를 차지하는 3번째 선수가 됨. 후에 데이븐포트가 4번째 선수가 됨.
17년 7개월 10일의 나이로 18개의 WTA 대회를 우승한 최연소 선수가 됨. 전 기록을 가지고 있던 트레이시 오스틴보다 12일이 적은 기록.
1997년에 16년 9개월 5일의 나이로 윔블던을 우승하며 세기 최연소 윔블던 우승자가 됨. 윔블던을 우승한 첫 스위스 선수로 남음.
16년 11개월 8일의 나이로 1997년 US 오픈을 우승함으로 두번째 최연소 우승자로 남음(트레이시 오스틴은 16년 9월의 나이로 1979년에 우승). 17세의 비너스 윌리엄스와의 결승전의 세기 최연소 선수들간의 대결. 한 해에 그랜드 슬램 대회를 3개이상 따낸 6번째 선수가 됨(그라프, 코트, 나브라틸로바, 킹, 셀레스)
1975년부터 컴퓨터로 랭킹이 집계된 이래 1997년 3월 31일에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하며 최연소 1위선수로 남음(16년 6개월 1일).
1997년 호주 오픈에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따냄으로(16년 3개월 26일) 세기 최연소 그랜드 슬래머로 기록 됨. 그랜드 슬램을 우승한 최초의 스위스 여자 선수로 남음.
1997년 시즌 시작과 함께 37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어 그라프의 1987년 45연승에 이어 두번째 기록을 세움.
1997년 오픈 가즈 드 파리 실내 오픈에서 우승함으로 각각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대회를 3개 연속으로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됨(시드니, 호주 오픈-오세아니아, 팬 퍼시픽 오픈-아시아, 파리 실내 오픈- 유럽). 이 기록을 세웠던 유일한 선수는 1986 남자부의 보리스 베커.
1996년 US 오픈부터 1999년 프랑스 오픈까지 11개의 그랜드 슬램에서 모두 4강 이상 진출함.
1971년 이래 한 해에 5개 이상의 타이틀을 획득한 20명의 선수중 한 명으로 남음.
15년 282일의 나이로, 1996년 윔블던 복식에서 헬레나 수코바와 짝을 이루어 우승함으로, 15년 285일의 나이로 1887년에 윔블던 단식을 우승한 Charlotte "Lottie" Dod를 제치고 최연소로 윔블던 우승자로 기록됨 (단 3일차로 기록이 바뀌는....)
1995년에 14년 4개월의 나이로 호주 오픈에서 승리를 거둔 최연소 선수로 기록됨.
1993년 프랑스 오픈 쥬니어부를 우승(12세의 나이!!!)하며 제니퍼 카프리아티의 전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연소 쥬니어 그랜드 슬램 홀더로 기록됨. 1994년 ITF 쥬니어 여자 단식 챔피언으로 선정. 1994년 윔블던 쥬니어부 결승전에서 한국의 전미라를 꺾고 13년 276일의 나이로 최연소 윔블던 쥬니어 챔피언으로 기록됨. 1994년 프랑스 오픈 여자 쥬니어부 우승-단복식 모두. 1994년 US 오픈 쥬니어부 준우승.
1996년 시즌 왕중왕을 가리는 체이스 챔피언쉽 결승에 진출, 두번째로 어린 선수로 기록됨(1981년에 안드레아 재거가 15세의 나이로 체이스 결승에 진출한 바 있음). 1997년부터 2000까지 모두 체이스 챔피언쉽에 진출하는 자격을 따내었으며 1998년과 2000년에 단식을, 1999년과 2000년에 복식을 우승함.
1999년에 안나 쿠르니코바와 함께 '최고의 복식조'로 선정됨. 1998년에는 야나 노보트나와 함께 '최고의 복식조'로 선정됨. WTA 선정, ITF 선정, 테니스 매거진 선정 1997년의 '최고의 선수', 1996년에는 기량 발전상. 1995년에는 WTA 선정 '가장 인상적인 신인' 상 수상. 1995년 테니스 매거진 선정 올해의 여자 신인상. 스위스 스포츠 협회 선정 1997년의 최우수 코치상(힝기스의 어머니이자 코치인 멜라니 몰리터가 여자로는 최초로 수상). 테니스 매거진으로 부터 역시 1997년에 최우수 코치상.
쇼핑하기 좋은 파리와 뉴욕을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꼽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1996년 처음으로 WTA 우승을 차지한 포르셰 그랑프리 대회,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우승을 안았던 1997년 호주 오픈, 슈테피 그라프와 경기를 치른 1999년 프랑스 오픈 결승전, 자신의 생애 최고의 승리라고 말하는 비너스 윌리엄스와의 1999년 US 오픈 4강전 대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