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액전왕의 노래에서 찾은 반란의 史實
오늘의 이야기는 1993년 5월 30일부터 시작된 이 연재물이 꼬박 1주년을 맞이한 1994년 5월 29일의 이야기다.
「만엽집」 의 시가는 지명(地名)을 가사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는 창의적인 작법으로 읊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옛 도읍 중 하나인 ‘나라(奈良)’를 읊으면서 ‘국가’의 뜻인 우리말 ‘나라’를 이중적으로 표현하거나 하는 기법이다.
스무 자 안팎의 적은 자수의 한자로 노래를 부르는 데 있어 지명과 함께 우리 고대어로 가사까지 한꺼번에 읊을 수 있는 교묘한 절약 방식, 그리고 이중가에 쓰인 테크닉이라고 작가는 감탄한다.
겉으로는 지명을 노래한 것처럼 위장하고, 실은 그 지명에 메시지를 묻어 읊는 암호의 수법이라는 것이다.
액전왕(額田王)은 7세기 후반 일본에서 첫손 꼽히는 여류시인으로 이 기법을 곧잘 구사했다며 「만엽집」 권1의 제8번 노래를 오늘 소개한다.
총 24자의 한자로 노래한 이 가사에 대한 일본학자들의 해석은 아주 단순하다.
<니키타스라는 곳에서 달 돋기를 기다렸다 배를 탄다>
그러나 우리말로 읽는 작가는 이번에도 겉으로는 역사적인 돌발 사건을 읊은 노래,
속으로는 그녀의 첫 애인인 대해인(훗날의 천무왕)과의 베드신을 묘사한 이중가(二重歌)라고 해석한다.
먼저 역사적 사실은 이러하다고 한다.
66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하자 모국 백제를 되살리려는 중대형(훗날 천지왕) 왕자가 661년에 대규모 수군을 이끌고 지금의 오사카항을 떠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때의 수군의 규모는 배 1천 척, 병사 1만여 명의 대병력이었단다.
기함(旗艦)에는 제명여왕을 비롯한 그 권속들, 대해인과 액전왕이 타고 있었다.
배는 규슈의 쓰쿠시(현재의 하카다)의 별궁에 여왕 일행을 내려놓고 백제의 백강을 향해 출병할 참이었다.
그런데 규슈로 가던 배가 도중에 회군하여 일본 열도의 남쪽 섬 시코쿠의 항구 니키타스(지금의 에히메현 마스야마시)에 두 달이나 머물게 된다.
백제 유민이 주류성 등에서 피어린 항쟁을 하는, 한시를 다투는 다급한 전쟁 통에 왜 1천 척의 대규모 해상 지원군이 두 달씩이나 한가히 머물렀던 것일까?
그들이 머무는 동안 먹을 식량만 해도 엄청났을 것인데 해괴한 일이 아닌가 하며 작가는 의구심을 갖는다.
「일본서기」에서는 여기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배는 두 달 후 쓰쿠시로 되돌아갔다>고 만 적어놓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액전왕의 시에 있다고 작가가 밝힌다.
그녀는 이 노래를 통해 모종의 궐기가 일어나 백제로의 출병을 거부하는 선상 데모가 벌어졌음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노 젓기를 거부하고 회항을 요구하자,
지휘관이 어쩔 수 없이 니키타스 항에 배를 정박하니
전쟁터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병사들은 줄지어 하선했고,
대해인이 애써서 달래며 출정을 호소하며 병력을 보충한 두 달 후에야 간신히 재출항할 수 있었을 것으로 작가는 상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액전왕이 노래에 담았다고 풀이한다.
니기 타신니 --- 누가 타셨소(여왕님께서 타고 계시지 않소)
배 타세 모도 --- 배를 타세 모두들
돗기 맞추샤 --- 소동 마치게 하시니
시보모 가나비누 --- 투덜대면서도 가나보네
이자샤 어긔갈 제 --- 이제야 배 저어 나갈 때
여기까지의 해석은 그야말로 史實을 찾아낸 작가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분이 풀이한 속 노래는 말 그대로 음란한 장면 묘사이다.
물론 스물네 개의 한자 속 단어가 몇 개가 되겠는가마는 그 단어를 풀이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날 것 같은(?)우리말, 그리고 그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남녀의 정사 장면....
아무튼 그 속 이야기를 풀이하기 위해 일본어가 된 우리 옛말을 찾아내어 그 어원을 찾아가며 풀이하는 노력은 오늘도 대단하시다.
그러면서 먼저 언급한 <정읍사>와 더불어 이렇게 마무리 하신다.
한-일 고대가요의 지음새가 이처럼 쌍둥이 같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새삼 설레게 한다. 7세기의 동북아시아의 문화지도가 뚜렷이 그려지는 까닭이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 어찌 된 영문인지 전체 지면이 아니라 연재 내용만 잘라서 스크랩되어 있다.
그래도 뒷면을 살피니 1994년 5월 29일 종합 주가지수는 951.96,
환율은 미국달러 기준, 팔 때 794.51원 살 때 818.69원이라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