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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천국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주시오니, 주 밖에 달리 무엇을 구하리까?”
“주의 순결하고 거룩한 형상을 덧입혀 주소서,”
“주의 완전하신 아름다움을 심히 사모합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고 연모하고 그리워합니다,”
등등 영적 기호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문구를 되풀이하며 기도한다.
이 때 대개 기도자는 자기의식을, 보이지 않는 주님께, 그리고 심장이나 아니면 머리, 배꼽 등에 동시에 집중하기도 한다.
호흡기도가 습관화되고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관상觀像기도로 진입하게 된다.
관상기도란 글자 그대로 ‘형상을 보는’ 기도를 의미한다. 마음의 눈과 영의 눈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와 친밀한 밀애를 나누는 열애悅愛 기도가 관상기도다.
이 때 기도자의 심령은 하늘의 달콤한 기쁨과 신神의 사랑의 황홀한 신비, 감동적인 파도스pathos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주변 환경도 잊어버린 채 황홀경에 침잠한다.
이런 기도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 가운데 잘 알려진 인물 몇 사람만 거론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 영성이 가장 뛰어난 이로 평가받는 유명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인도의 성자聖者 썬다 싱(1889-?)이 있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이 천사를 목격한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고 순결하기 그지없었다는 천하의 절세가인, 그러나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요절한 이탈리아의 성녀 젬마(1878-1903), 그리고 33세의 나이로 이생을 마감한 한국의 이용도 목사(1901-1933) 등이다.
이만 권 독서가 김일한도 물론 이런 인물들을 환히 알고 있었다. 옥중에서 한 때 이들의 삶을 흠모하기도 했으나, 그의 가슴의 불은 다른 쪽으로 더 강렬히 타오르게 되었다.
정좌하고 마음을 집중해 호흡기도에 몰입하던 일한은 두어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몸 좀 풀 요량으로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섰다. 여인은 아직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다가 그는 속으로 몹시 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안온하고 평화로우며, 거룩하고 순결한 기운이 발그레한 낯에 가득히 감돌고 있는 그녀의 용모는, 처음 사해제일관 담장 아래서, 그리고 좀 전에 보던 그 얼굴과 영 딴판으로 달라보였던 것이다.
‘어?! 내가 딴 사람을 보았나?’
처음 몇 차례는 엉겁결에 대하느라 그녀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일별하니 매아리 자매나 에머럴드 리 등도 천하절색이었지만, 그녀들을 이 여인과 비교하면 마치 거친 들꽃에 미려한 환꽃을, 투박한 호박꽃에 고귀한 모란화를, 더부룩한 들꽃 떨기에 고고한 설중雪中 매화를 가져다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 이런 시문이 언뜻 뇌리에 상기된다.
玉色天然超世昏 옥색천연초세혼
高情不入衆芳亂 고정불입중방란
玉肌尙有淸香在 옥기상유청향재
竊藥姮娥月裏身 절약항아월리신
하늘 닮은 옥색은 세속을 초월하고
고고한 기품이야 뭇 꽃을 뛰어 넘네
옥 같은 살결은 맑은 향기 먹었으니
월중 선녀 항아가 지상에 강림했나
항아는, 하나라의 왕권을 찬탈한 동이족 신궁神弓 예羿의 아내였다고 한다. 그녀가 불사약을 훔쳐 먹고 선녀가 되어 월궁月宮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단지 감각이 그러했다는 것이지, 김일한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던 것은 아니다. 어쩐지 낯모르는 처자의 얼굴을 훔쳐보는 것은 죄가 될 것 같아, 그는 고개를 즉시 돌렸으나 그의 뇌리에 남은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다.
일한은 한숨을 내쉰 후 망설이다가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시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역시다!
마치 천녀天女가 내려와 산중에 좌정해 천상을 명상하는 듯 그녀는 어떤 고귀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의복은 비록 수수하고 범속해보였으나 그녀의 낯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신비로운 천년 비경 속의 산봉우리처럼 고고한 자태를 드러낼 듯 말 듯 숨기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일별하는 순간, 처음 보는 사람이 천사를 보는 게 아닌가 착각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성녀 젬마의 얼굴 사진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얼굴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성녀 젬마처럼, 그녀는 얼굴에 화장기가 없어 보였으나 그 고귀하고 아름다운 기품은, 국색이나 천하절색, 절세미녀, 경국지색 등의 표현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형질이 아주 다르게, 신이神異하고 영묘靈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솔로몬이 읊었다는 아가서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이른 아침과 얼마 전에도 두세 차례나 그녀의 모습을 흘낏 보았는데, 그 때는 왜 이런 영상을 포착하지 못했을까?’
매우 의아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일한은 가볍게 한숨을 쉰 후, 그녀의 면모를 이제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 은근히 고개를 돌리다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그는 얼른 시선을 원 방향으로 되돌린다.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 덧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일한은 망설이다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아가씨!”
잠시 후 그녀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일한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화장실에 가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에 혹시라도 무슨 변고가 발생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저도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여인은 낯선 남자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빛이 추호도 없이 자연스럽게 대꾸한다.
일한이 감히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화장실에 다녀온 후, 제자리에 돌아와 처음 자세로 들어갔다. 일한도 재차 가부좌를 틀고 호흡기도의 묘미를 터득하고자 마음을 다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초가을 오후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 두 사람은 약속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한이 분지 밖으로 나와 해를 보니, 서쪽 산마루쯤에 걸려있다. 일한은 여인을 큰길까지 데려다주고 곧장 황궁의 대시전 뜰로 갈 참이었다.
그 때 여인이 먼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제가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리면 안 될까요?”
“안될 건 없지만요.”
어쩐지 좀 거북스럽고 미안했다.
“제가 오늘 큰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마침 공자님의 구출을 받았으니, 괜찮으시다면 약속한 사례비 외에, 적절한 보답을 해 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일 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보답은 무슨 보답입니까? 그것이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그 말로 이미 보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 일한은 용기를 내어 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에 그녀도 얼굴을 들어 일한을 똑바로 직시하다가, 아름답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듯하더니, 말했다.
“공자님의 마음 씀이 너무나 귀합니다. 아무튼 저도 오늘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프니 식사를 같이 나누었으면 합니다.”
“네, 좋습니다.”
그가 흔쾌히 대답한다.
“혹시 자주 가시는 음식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그런 곳은 없습니다. 어제 황홀객잔이라는 곳에서 어떤 분들과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습니다.”
일한은 생각나는 음식점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불러대었다.
“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기 황궁 서편에 있지 않나요?”
“아,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마차를 한 대 잡겠어요.”
대로까지 내려온 두 사람은 쌍두마차를 잡아타고 황홀객잔으로 향했다. 도중에 마차 안에서 그녀가 품속에 접어 넣은 모자를 꺼내 펴면서 물었다.
“오늘은 바람이 좀 불어서, 제 머리가 너무 긴지라 건사하기 힘드네요. 제가 전처럼 모자를 쓰고 있어도 괜찮겠죠?”
“아, 네. 그럼요.”
그녀가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별 볼품없는 허름한 모자다. 저녁 일곱 시 경 객잔에 도착하고 보니, 황홀객잔은 내지인, 외지인 관광객 등 손님으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상황이 이런 줄 모르고, 기억나는 게 이 음식점 밖에 없는지라 무심코 이곳을 떠올렸더니 아주 잘못한 것 같습니다.”
김일한이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괜찮습니다. 이곳은 대단히 크고 넓은 것 같은데, 방 하나 쯤은 비어 있겠죠.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됩니다.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녀가 넉넉하게 대답한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사환이 신속하게 그들을 인도하는데, 두 사람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대뜸 말한다.
“자리가 비려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시겠습니까?”
김일한이 대답하기 전, 옆의 여인이 먼저 김일한에게 물었다.
“공자님, 어떻게 할까요?”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네, 그럼 기다리겠어요.”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인은 김일한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바깥에 다녀왔다.
반시간 정도 지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어느 먼 건물의 한쪽 구석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안은 아늑하고 정결했다.
“저, 공자님 뭘 좋아하십니까? 오늘은 제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공자님께 좋은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을 한 끼 식사에 함부로 쓸 수는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것으로 먹었으면 합니다.”
“아뇨! 공자님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이렇게 허름하게 보여도 돈 조금 있어요. 호호호!”
그녀가 처음으로 일한 앞에서 소리 내어 웃는다.
“이거 원 죄송해서.”
“아닙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또 저를 무시무시한 환난에서 지켜주신 은인이신데, 하루 종일 굶어 배가 몹시 고프실 공자님께 이 정도도 대접해 드리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저의 임금께서 매우 언짢아하실 거예요.”
“하늘에 계신 임금이라면?”
“공자님도 섬기고 계신 그 임금님 말이에요.”
“아, 네. 아가씨는 하늘 임금님의 눈치를 많이 보시나 봅니다.”
“호호호, 눈치라기보다 저의 최고 소원 가운데 하나가, 저의 임금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거라서요. 죄송해요.”
“제가 보기에 아가씨는 하늘임금님과의 교제에서 아주 친밀하고 은밀한 방까지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공자님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실 줄 아네요. 하지만 그건 저를 모르시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저는 정말 가련한 소녀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비록 집은 부유하지 못하고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신다 하더라도 아가씨는 어딘지 모르게 매우 고귀한 기품을 풍기고 계십니다.”
“네? 정말이에요?”
“그럼요! 오히려 그 썩어빠진 황녀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썩어빠진 황녀라면 누굴·····?”
“죄송해요. 제가 저도 모르게 남을 욕했군요. 부마간택대회인가 뭔가 하는 희한한 집회를 공개적으로 열어 관광행사를 하는 듯한, 그 황홀공주인가 누군가 하는 임금의 막내따님 말입니다.”
“아! 저도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제 오전에 제가 거기에 갔다가 참 재미있는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전 그런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황녀는 좀 특이한 성격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확실히 저도 그게 좀 희한하게 느껴지는군요.”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한 후 부마간택대회를 화제 삼아 마치 옛 친구라도 만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펼쳤다. 그러나 다소 어색함도 없지 않았다. 특히 김일한은 그녀의 낯을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영 부담스러워 얼핏 얼핏 바라볼 뿐 주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이야기하고,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여인이 묻는다.
“근데 공자님은 언제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무예를 익히셨나요?”
“부끄럽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무예를 하도 좋아해서 시도해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 무예와 중국무술, 기타 동양무술, 서양무술 등 다양하게 섭렵하고 연구했지만 수박 겉핥기입니다.”
“그 무예 덕분에 제가 오늘 평생의 한사恨事가 될 뻔한 일을 모면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 보잘 것 없는 무예가 그렇게 사용되었다니 부끄러움을 약간은 면한 것 같습니다.”
“아, 그건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어찌 공자님은 자신을 그렇게 낮추십니까?”
두 사람이 대화 삼매경에 빠진 사이 한정식이 걸게 한상 나왔다.
“어서 드세요.”
그녀가 공손히 권한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몹시 고팠던 김일한은 잠시 묵도를 드린 후 사양하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여인은 곱고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역시 묵도 후 음식을 입으로 가져간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음식 먹기에 여념이 없는 듯했다.
정갈하고 아늑한 방안의 분위기는 두 사람의 어색함과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았으나 김일한은 속으로 걱정거리가 하나 해결되어 한 시름 놓았다. 에머럴드 리를 만나 돈을 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식사 후 여인은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김일한에게 넘겨주었다.
“이거 약소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저를 지켜 주신데 대한 답례입니다. 그냥 현찰을 가져왔습니다.”
김일한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고맙습니다. 마침 돈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도움이 되길 빕니다.”
식사 후 숭늉과 식혜, 약간의 과일이 나왔다. 그들이 후식을 먹고 있을 때 종업원이 와서 물었다.
“손님 중에 혹시 김일한 공자님이라는 분이 계신가요?”
김일한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뇨! 여기에 그런 사람 없습니다.”
종업원이 나가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저녁 하늘 어디에서인가 불꽃놀이를 하는 듯 폭죽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일한은 한시 바삐 이 기분 나쁜 리을성을 떠나고 싶어,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여인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했다.
그 때 등 뒤에서 어떤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흥! 보기 좋구먼!”
일한은 그 목소리가 익숙해서 뜨끔한 가슴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삼장 밖에서 백의녀 매아리가 얼굴에 약간의 노기를 띤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한과 동행하던 여인도 뒤를 돌아본다.
매아리가 천천히 걸어오며 입을 험하게 놀렸다.
“내가 공자님을 찾느라 오늘 하루 종일 성내를 헤매고 다녔는데, 공자님은 그 새 새 여자를 꿰어 차고 이런 데서 노닥거리고 있었군요.”
일한은 대꾸하지 않고 자신과 동행한 여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가씨,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일한이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자 여인도 황급히 허리를 숙인 후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는 듯 곧장 떠나갔다.
매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일한에게 매몰차게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예요?”
“나도 모르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오.”
“흥! 공자님은 여자를 사귀는 재주가 정말 좋네요. 이런 호사스런 고급 음식점에서 어제에 이어 오늘 두 번째로 여자에게 대접을 받으니.”
“그런 말 마오. 별다른 용건 없으면,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일한이 그녀와 헤어지려 하자, 그녀가 얼굴에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온종일 미친 여자처럼 돌아다니다, 천신天神이 조우助祐하사 저녁에 겨우 공자님을 찾았는데, 떠나가시다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아가씨도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알지 않소? 이런 험악한 곳에는 있을 마음이 호리라도 없소. 나를 놓아주시오.”
“어디로 가실 건데요?”
“그건 나도 모르오. 발길 닿는 대로 갈 것이오.”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아가씨가 왜 저와 동행해야 하죠?”
백의녀 동생 매아리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공자님은 차비도 없고 당분간 머물 곳도 없잖아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해결할 겁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그가 돌아서려 하자 매아리가 만류한다.
“그렇게 무작정 향방 없이 떠나간다고 무슨 일이 해결되나요? 사해제일관이 소실된 원인도 탐색해야 하고 또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는 부모님과 할아버지도 찾아야 하잖아요? 더구나 사해제일관도 재건해야 하고.”
“다 옳은 말씀이오.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당신 언니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오. 나를 붙잡지 마시오.”
“흥! 사나이 대장부가 되어 아녀자 하나를 그렇게 무서워해서야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한담?”
매아리가 팔짱을 끼고 일한을 노려본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다. 명색이 이만 권의 책을 읽고 삼년 영어생활을 하며 인생을 공부하고 나름대로 고차원의 무예를 익혔을 뿐만 아니라 담력이 남보다 월등하게 크다고 자부하는 차에, 일한은 한 여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속으로는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부끄러워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한다는 답변이 이것이었다.
“나도 나대로 헤아리는 바가 있으니 막지 마시오.”
일한은 그녀에게 작별을 고한 후 곧 몸을 돌렸다. 성 밖으로 나가 길림 역으로 가서 고속열차를 타고 평양이나 서울로 내려갈 참이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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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6. 7. 3. 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