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의 세월과 78년의 세월이 74년의 부축을 받으며
휘청휘청 계단을 오른다.
울엄마와 언니 둘, 세 분을 모시고 떠난 가을 나들이
오늘은 볕도 따갑고 무더웠다. 더덕고을 앞마당에 그늘을 찾아 재 주차를 하고 뒤 쫓아가니 세 사람 아슬아슬 의지하며 밥집으로 오르고 있다.
식사가 나오고 나는 가방을 뒤적여 집에서 챙겨온 작은 가위를 꺼낸다. 엄마의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하여 엄마와 외식 할 때 항시 들고 다니는 가위다.
가위 없는 식당이 있으랴마는 노객으로 인한 귀찮음을 피하고 늘 쓰던 도구가 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찬을 종종 썰어 엄마 앞에 놓는다. 그 누구 손도 빌리기 안쓰러울 정도로 세 사람 모두 연체ㆍ약체다.
남들이 지켜보면 나도 포함시킬지 모른다.
98세 울엄마는 대동아(태평양) 전쟁 때 위안부 면할라꼬 '아무나'인 울아버지에게 열여덟에 시집왔다하고,
78세 우리집 장녀는 그 시절 한 동네 몇 명 갈까 말까하는 중학교에 보내 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가는 버스에서 만난 남학생과 연애나하여 모진고문 끝에 스물에 결혼했다. 우리 형부는 유복자였고 시어머니 될 분은 고약하기로 동네에 소문난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시집살이 참 오지게도 살았다.
"아버지 그때 좀 더 말려 주시지 않고요?" 이랬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둘째 언니는 본인 말에 의하면 자기가 그때 너무 어리숙해서 남자는 친구오빠 밖에 없는 줄 알았단다.
언니 친구의 오빠가 우리 형부가 되었다.
'어떻게 살았나교 묻지를 마라~'라는 노래가사가 있다.
이제는 뼈도 살도 다 내어주고 98, 78, 74라는 숫자로 내 앞에 나란히 앉아 여윈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복은 뭐니뭐니해도 말년 복이 최고다.
그래도 말년은 주머니 열고 살수 있으니 옛말하며 웃는다
밥값은 78년의 세월이 몰래가서 내더라. 나는 모른채 했다.
으레껏 그렇듯이 2차는 카페다.
대한수목원의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느라 연식을 자랑하는 내 차는 눈치 없이 고것도 나이라고 요란을 떤다.
카페에 들어서니 7080님들이 진을 치고 있다.
90이 70 둘을 거느리고 들어선다.
먹을 시간이 어디 있다고 78세 노인이 소풍오듯 잔뜩 준비해 온 간식들이 '못 먹어도 이게 정이제'하며 찡긋한다.
첫댓글 다들 건강하십니다. 다복하신 세 자매님들이 어머님을 모시고 가을 나들이 하시는 정경이 아름답습니다. 수복강령을 축원합니다.
우와 딸셋이 엄마 모신건데~^^ 딸하나 엄마셋처럼 보이는거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언니들 매력적입니다.
넘 부러워요.
전 이렇게 자매가 같이 다니는 모습을 평생 부러워하며 삽니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홀로 결정하고 혼자 해결하는 무남독녀는 늘 쓸쓸한 늦가을 속을 걷는 듯한 마음입니다.
세 자매와 노모의 모습이 황혼녘의 풍경처럼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