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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빈 몸이다. 어깨에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매달았다. 오늘 떠나 내일 도착하는 바람처럼 가볍게 공기를 밀면서, 그는 어디에 도착하고 싶은 것일까. 가고 오는 흔적이 없어서 그의 뒷모습은 늘 그늘이 짙다. 지독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자기 갱신을 도모하고 싶은 시인. 전화 속 먼 먼 통화중에도 가끔씩 끊어지는 말소리, 침묵은 막막한 자기표현이겠다. 자기를 버려서 자기를 찾아오는 먼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그의 시를 만났다. 죽음이 자명한 현실이듯이, 삶 또한 선택의 여지는 없는 법. 그는 피가 도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정선이었다가, 어제는 저기 먼 나라 인도였다가, 모량역이었다가, 자기 고향 성주였다가, 머리였다가, 심장이었다가, 이별이었다가, 몇 억겁의 시간을 건너 뛴 전생과의 만남도 그는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씩 하염없이 풀어지는 그의 시선 저 너머로 생과 사가 섬광처럼 왔다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는 그의 웃음 속에는 뭐랄까, 너무 짙은 허무가 묻어있어서 섬뜩 하기도 했었는데. 온 밤이 풀어져 새벽이 오기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렀던 정선아리랑. 그곳은 그가 세상에서 만난 또 다른 시인의 고향.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또 떠나버리는 그의 정처는 어디, 백년을 걸어서 하루를 통과한다, 문인수!
먼 길
강원도 정선 땅엘 도착했다.
첩 첩 산중이다.
숨어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다.
섬뜩, 뒷덜미가 차다.
네가 천리를 왔다고?
집 나설 때의 그 하늘이다.
■ 손현숙: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요즘은 어찌 지내시는지요?
□ 문인수: 와,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손시인, 여전히 밝아 보여 좋습니다. 요즘, 한참 심심합니다.
■ 손현숙: 시, 쓰시느라 심심 하신 거죠? 시는 참으로 나쁜 애인처럼 다가가면 갈수록 외롭잖아요, 그쵸?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 주변엔 지인들이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선생님을 뵈면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끌린다고 합니다. 무작정 무장해제가 된다고 합니다. 혹시 각별하게 가까운 시인들이 있으신지요?
□ 문인수: 따뜻한 시선? 몰라요, 주눅이 든 눈빛이겠지요. 가까운 시인들…, 물론 몇 몇 있지요. 거명까지 하라고요? 안되지요.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 친구라 하고 싶지만,” 그는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내 이름을 안 부르면 어쩌죠?” (웃음)
■ 손현숙: 그럴리가요, 또 안 불러 주면 안 불러주는 대로, 그런 것들을 시의 소재로 삼으시면 그 뿐이죠, 뭐! 그런데 흔히들 선생님을 여행의 시인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 말에 동의하시나요? 만약 아니라면 또 그 이유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요.
□ 문인수: 아닙니다. 저는 ‘여행의 시인’이 될 수 없지요. 여행, 또는 길이 제 시의 단골 주제나 소재도 아니고, 또한 그리 자주 여행 중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떤 특정한 장소가 상당 편 수에 걸쳐 집중적으로 제 시의 동기가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제 시의 모태랄 수 있는 고향땅 (경상북도)성주를 논외로 친다면, 강원도 정선관련 시가 50여 편으로 족히 시집 한 권 분량이 됩니다. 90년대 초부터 10여 년 간 뻔질나게 정선을 드나든 결과물이지요. 또 지난 2004년도 인도엘 갔다 와서 한꺼번에 열댓 편을 써 갈겨 발표하기도 했고요, 변산반도 일원, 경남 창녕의 우포늪, 경주의 모량역에서도 각각 십여 편의 시를 얻은 바 있지요. 특히 지금은 폐역이 된 간이역, 그 모량역에선 한 시간정도 살펴본 결과였으니, 거기 머문 시간 대비 편수로는 저로선 특기할 만 하다고 여깁니다. 그 외에도 남해 욕지도, 순천만, 익산 등지에서도 꽤 여러 편 마음에 드는 시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엔 울산 방어진, 부산의 감천동문화마을 골목길들,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등대에 다녀와서도 연작시 형태로 몇 편씩 쓰긴 했습니다. 이건 사족인데요, 몇 년 전부터 여행 아닌 여행도 하는데요, 우리집 근처에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는데요, 거기 가서 마음에 드는 행선지를 하나 골라 시외버스를 타지요, ‘아무 데나 가보기’ 위한 여행(?)인 셈이지요. 하하, 그러나 세상 그 어디에도 ‘아무 데나’는 없습디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현재 필히 거기 살 수밖엔 없고…. 그래서 거기가 곧 세상의 중심이고요…. 아무튼 ‘아무 데나’는 세상에 없어요. 또 요즘엔 가끔 시내버스도 타봅니다. 노선도 외울 겸 시간도 보내고…. 가끔 그렇게 ‘경로우대석’에 앉아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제 자리로 돌려놓겠습니다. 그래요, 좀 전 이야기한 그 여러 지명들만으로도 ‘여행의 시인’이라 부르겠다면, 뭐, 못들은 척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행시를 쓴 적 없습니다. 시로써 어딘가를 소개한 적이 없어요. 다만 어떤 곳에서 보편적인 사람살이나 사람, 내 인생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 손현숙: 사람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거, 그것을 저는 시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선생님의 시를 적어서 외우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살아 현현하는 인간의 시간을 받아 적으셨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인데요. 선생님 기준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또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 문인수: 돈 버는 일과 정치는 영 자신 없어요. 어느 상, 어느 원로시인 심사위원께서 날 가리켜 “이 친구는 도무지 시인 말고는 아무 것도 될 수 없겠다”고 한 말이 신문에 났어요. 하하,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이 분의 그 걱정(?)은 ‘돈 버는 일’과 관련지어 듣게 됩디다. 또 문단의 한 지인은 절더러 아무런 전략도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정치! 결코 나쁜 요소가 아니지요. 그러나 독소적 정치는 사회를 오도하고, 한 개인을 파탄케 하지요. 가장 무서운 정치적 이빨이 ‘교묘함’일 것입니다.
■ 손현숙: 그냥 한 눈에도 척, 선생님은 정치의 교활함은 그림자 끝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문학 이야기로 들어갈까요. 우리는 통상적으로 ‘시란 본질을 보는 것’이라 정의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정의하시고 싶은 시란, 무엇입니까?
□ 문인수: 시란 자기정화, 자기용서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진실로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를 쓰려는, 쓰는 시간만은 모든 시인은 깨끗하고, 죄가 없을 겁니다.
■ 손현숙: 그렇다면 시인이란 무엇일까요? 답을 듣기 전에 선생님의 시 미당문학상을 받은「식당의자」한 편 읽고 이야기를 할까요?
<미당문학상 수상작>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날 며칠 그대로 앉아 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따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 문제로 이런 저런 궁리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의자, 저기 잘 내려앉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다, 의자가 쉬고 있다.
□ 문인수: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사물을 향해 말 거는 사람들이지요. -제가 오래전 어느 지면에 썼듯이- 사물에게 거는 말, 그 말은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며,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도 그렇게는 나타내지 못한 말”이지요. 아차! 방금 내 속엣 것을 훔쳐간 것 같은 말이지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요, 그 하느님이란 ‘빽’에 기대지 않은, 양심에 비추어 진실로 각주나 부제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떳떳한 말이지요. 다시 첨언한다면 자기검열상, 아무런 가책 없는, 독자적 독보적 기쁨과 재미를 맛본 말이지요.
■ 손현숙: 그렇군요, 사르트르는 ‘시인이란 언어로 자유를 말하는 사람’이라 말한 기억이 있는데요. 제가 알기로 시인 중에서도 문인수 선생님은 최고로 자유로운 시인으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또 선생님의 시와 어떻게 연결이 지어지는 것일까요?
□ 문인수: 자유? ‘없는 것’이지요. 날개도 지느러미도 자유가 아닐 겁니다. 바람도 구름도 물길도 전적으로 진정 자유롭습니까? 물론 문학적 비유로는 그것들이 ‘자유’일 수 있습니다만, 곧이 곧대로 말하자면 그것들도 정해진 이치나 법칙, 작용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런 전제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도 ‘자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요, 자유? ‘있는 것’입니다. 자유! 그것은 결국 저 하늘일 겁니다. 허, ‘개똥철학’ 민망하지요? 저요?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강박이나 소심증에 많이 붙들려 있어요. 무엇보다 자존감이나 자기애가 턱없이 부족해 자책 같은 걸로 애를 먹습니다. 그러나 하염없이 ‘멍 때린 채’ 게으름 필 때, 어디를 헤매고 빈둥거렸는지 모르는, 그런 상태가 나의 ‘자유시간’일까요, 그런데요, 그럴 때 나는 자주 나의 시를 만납니다. 날 일으켜 세우고 껴안아 들이는, 신명나고도 복받치는, 내 목소리에 내가 취하는 시간이지요. 그 결과물이 내 시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난 참 서러운 게 많아요.
■ 손현숙: 그 서러움을 독자들은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문학세미나 자리에서 누구의 시를 읽고 눈물 흘려 본 적 있는가? 라는 질문에 한 독자 분께서 문인수시인의 시편들을 읽고 종종 눈물을 흘린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정화 아닐까요? 조금 이야기의 동심원을 크게 돌려볼까요? 지금 세계의 문학시장에서는 시는 이미 멸한 종목이라 합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시인이 대접을 받고, 활발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가 유통이 되는 중인데요. 그런 현상을 선생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 문인수: 한 마디로 복 받은 거지요. 한국의 시인들, 참 복 받은 사람들이에요. ‘나라와 겨레’를 향해 잊을만하면 자꾸 넙죽넙죽 절해야 돼요. (웃음) 우리나라는 선비의 나라입니다. 그런 맥락으로 여전히 시가 향유되는 것을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 손현숙: 복을 짓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합니다. 많은 분들의 질문인데요, 선생님의 시작법이랄까, 시를 쓰는 자세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시를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살짝 들려서 쓰는 자연주의와, 탁마를 하는 연구자형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선생님은 혹시 뮤즈가 불러주는 대로 시를 적는 들림의 부류신가요? 선생님의 시작법이 궁금합니다.
문인수: 나는 시 쓰는 일이 사는 일 중에 가장 재미있어요. 당연히 그래서 시 씁니다. 재미가 없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시를 쓰지 못할 겁니다. 시를 두고 그 무슨 거창하고도 거룩한 말씀을 해 올려야 시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나는 재미야말로 시를 쓰는 유일한 동력인 것 같습니다. 물론 시 쓰기가 분명 피를 말리는 안타까움이요,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들은 누구나 스스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고통 속으로 잠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과연 재미없이 그럴 수 있을까요. 나는 어느 지면 시작노트에다, 또 한 시집의 자서에다 이 ‘재미’라는 말 속에 인생 전부 전반 전체를 우겨넣고 하는 말이라고 사족을 단 적이 있는데요, 그것은 그야말로 사족일 뿐, 나는 정말 재미가 있어 시를 씁니다. 마침내 첫줄을 쓴 설렘과, 다음 줄을 쓰는 기쁨과, 마지막 줄을 쓴 뿌듯함이 또 시를 쓰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감동에 속아 절망하고, 그래서 퇴고를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발표하고… 이런! 발표한 지면에서 또 필히 고쳤어야할 문제가 ‘발각’되고… 그렇게 시인들은 어쨌든 좋은 시 한 편을 향해 오늘도 ‘고통스런 재미’ 속에 있는 겁니다. 나는 사물을 지치도록 들춰보고, 그 이름을 묻고, 냄새 맡습니다. 그리하여, 첫 줄이 발생하고, 다음 줄, 다음 줄로 아귀가 맞게 찰칵찰칵 넘어갈 때, 그러던 중 아주 드물게 누가 불러준 듯 한 또 그 다음 줄이 ‘금도끼’처럼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이고,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그럴 땐 참 전율하지요, 감사하지요.
■ 손현숙: 선생님의 말맛은 대단합니다. 그 맛이 결국 선생님의 재미고, 시고 운명이네요. 선생님께서는 여러 권의 시집과 여러 종류의 상을 섭렵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이 있다면 어떤 시집일까요? 그 이유를 살짝 귀띔 해주실 수 있는지요?
□ 문인수: 『배꼽』…. 아니, 『홰치는 산』으로 하겠습니다. 변두리의 인생을 시인의 관념이나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그려 모은 『배꼽』도 크게 부끄럽지는 않지만, 한 시대 전 극빈의 농촌인구와 그들의 삶이며 농경, 그리고 농촌풍경과 나의 유년시절과 어머니, 아버지의 애환 등을 한 묶음으로 담은 시집 『홰치는 산』을 ‘애착시집’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초판을 지역에서 냈다는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했고, 그러한 우리네의 어떤 풍토를 이 시집 또한 타파하지 못했습니다.
간통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선무당네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 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선무당네로 달려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해묵은 싸릿대 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 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봤다. 아니나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년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 손현숙: 저도 선생님의 『홰치는 산』은 백년을 넘어서도 살아남을 명저라 자부합니다. 그 시집 속에는 우리 농촌의 역사와 그 주변의 인물들과 환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서, 참으로 징그럽기까지 한 대요. 그런 면에서도 선생님의 언어는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언어아래 두는 매혹! 그래서 더욱 더 선생님의 안과 밖이 궁금합니다. 우매한 질문이겠지만,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안은 무엇이고 밖은 또 무엇일까요?
□ 문인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처럼 허, 안은 안이요, 밖은 밖이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습디다. 대상을 오래, 예의주시하고 있으면 풍경이나 정물이나 어떤 관념이, 그러니까 바깥이 안으로 들어와, 아니 이미 안이 되어 들끓고요, 안이 바깥에서 비 맞거나 바람 타는 비등점을 겪게도 됩니다. 그렇게 대 내리듯 고양되는, 그 통곡 같은 시간이 참 스스로 감동이고 흥분되지요. 그러나 그걸 잘못 받으면 한 줌 젖은 재같이 허망하지요. 그러나 잘 수습해 받아 적으면 우선 내 마음에 착 발리는 시가 되곤 했어요. 안과 밖, 그거 한 솥밥, 한 동네인 것 같아요.
■ 손현숙: 아, 감동! 담동입니다. 이건 조금 생뚱맞은 질문인데요. 한국시단에서 선생님은 참으로 많은 상을 타신 시인 중에 한 분이십니다. 혹시 또 거머쥐고 싶은 상이 있으신지요? 이 질문은 시인에게 상이란 무엇일까, 의 질문입니다.
□ 문인수: 상, 칭찬이지요. 칭찬, 좋지요. 물론 저도 춤 췄습니다. 어느 상 시상식 뒤풀이에서 담당 기자가 물었어요. 정말, 소감이 어떠냐고요. 나는 망설임 없이 “아이고, 이젠 여한 없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게 소위 낚인 거예요. 정작 써간 수상소감은 한 마디도 언급 없이, 이튿날, 그 뒤풀이 술자리에서 뱉은 그 아부 성 ‘소감’이 그 주관사 신문에 주먹만 한 제목으로 시꺼멓게 뜬 겁니다. 정말, 말조심해야 돼요. 하하… 또 거머쥐고 싶은 상요? 허허, 받을 손이야 여기 이렇게 두 손 다 있지만, 어디 그럴 힘이 남아있을까요. 누구 약력 난의 시꺼먼 활자 뭉치, 그 기나 긴 수상경력을 보면 느낌이 좀 그랬는데, 제가 그리됐네요. 받기도, 물리기도 어려운 게 상인 것 같네요. 몰라, 노벨물리학상이나 받아볼까요? <시의 성분이 인생에 미치는 화학적 작용에 대한 연구> 뭐, 이런 제목으로요. (웃음)
■ 손현숙: 노벨물리학상이요? 정말 시인이 전하는 시적인 답이네요. 선생님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어쨌거나 문인수 선생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를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선생님의 시는 백년을 견디는 시라 단호하게 말들을 합니다. 그 말에 대해 반박이나 불만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으신지요?
□ 문인수: 누구 듣겠어요, 저 봐요. 여기, 서울역 광장 저 사람들 다 웃는구만. 이 문항은 뺍시다. 불편하네요. (웃음)
■ 손현숙: 이제 제 속내를 드러낼게요. 이 질문 비상약처럼 꼭꼭 싸두었던 질문입니다. 가끔씩 선생님의 시에서 죽음의 환한 냄새가 묻어 날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고 인간에게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삶의 또 다른 한 면인 죽음은 선생님 시에서는 어떻게 변용이 되는 걸까요?
□ 문인수: 어려운 질문이군요. 평소 생각으로 잘 정리된 죽음이 있어 쓴 게 아니고요, 또 맘먹고 일부러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시 쓰다 보니 군데군데 죽음이 나타났을 뿐입니다. 평소 특별히 염세하거나,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않았네요. 참, 그런데요. 뭔 취미랄까요, 때로, 아홉 자 이내의 ‘묘비명’을 지어보느라 끙끙대 보기는 해요. 그런데, 그게 영 쉽지 않아요. 언젠가의 내 죽음이 내게 반할만한 명귀를 짓고 싶네요. 그리하여 영원히 날 잘 안을 수 있도록…
■ 손현숙: 그 명귀, 꼭 보여주시고 돌아가시길요 <웃음>. 여기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고려대학교 문창과 석,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푸르고 푸른 문청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 문인수: 문학을 받들어 모실 게 아니라, 더불어 잘 놀 수 있도록 사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하, 무엇보다 열정을 놓지 말고, 그저 열심히 공부합시다. 아니 열심히 노는 것도 좋겠지요.
■ 손현숙: 이제 질문을 마칠 시간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꼭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요즘 마음 속 깊이 기도 들이는 제목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즈음 쓰시는 시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 문인수: 요즘 시에 대한 재미도, 욕심도 많이 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참 열심히, 열렬히 썼다 싶어요. 그래, 이제 어쩌나싶어 저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요. 기도요? 내 속엣 것들도 육신과 함께 좀 나이 먹어 늙으면 편하겠네요. 요즘, 시의 화두요? 아, 있어요. 뭐냐하면, 왜 밝고 명랑한 내용은 시가 안 될까, 자문자답, 가끔 그걸 물어봐요. 앞으로도 변두리 삶을 그리되 코끝이 찡한 밝음, 그런 ‘명랑한 거리’를 써보고 싶네요. 고마워요, 수고 많았습니다.
그립다는 말의 긴 팔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 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도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다만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선생은 참, 다정도 병인 양, 이별을 힘들어했다. 늘 그랬다. 언제더라, 선생과 악수를 하고 지금 쯤 당연히 돌아갔겠지, 하고 뒤돌아다 봤을 때 선생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인정과 눈물과 한이 범벅이 되어서 선생은 늘 그 자리에서 떠나가는 사람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시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이 시를 쓸 때 백지 앞에서의 공포만큼이나 선생은 그렇게 이별이 힘든 모양이었다. 눈에 밟힌다는 말, 그것은 진정 문인수선생의 전매특허! 그는 세상이 밟히고, 사랑이 밟히고, 인정이 밟히고, 밟히고, 밟히고, 사람이 절대로 눈에 밟혀서 제 그림자 속으로 스스로 붙박혀버린 사람. 시인 중에서도 가장 바람을 닮은 시인으로 뽑힐 만큼 선생의 몸짓은 자유하다. 오늘, 선생과 함께 시와 인생과 문학을 이야기 하는 동안 나는 이상한 슬픔이 뱃속 저 밑으로부터 요동쳤다. 설움과 비애가 자연스럽게 묻어있는 선생의 몸짓, 눈짓, 손짓, 하나하나에서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그 무엇을 보았다면 그것은 분명한 나의 오산일까. 백년을 견디어서 백년 후에도 거뜬히 살아남을 시인. 선생의 눈가는 늘 젖어 백년 후에도 오늘처럼 눈물 보이겠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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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렇게 사진으로라도 선생님 뵈니 정말 좋네요. 우리 손현숙 선생님, 정말 짱 멋지셔! ㅎ ^^
그렇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 만난 여류 시인님 중 가장 매력 있는 선생님이
손현숙 시인님 입니다 이현정 선생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 ~~손현숙 선생님 근황도 궁금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