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지 없이 아내의 운전수로 경주 답사를 다녀왔다.
몇 년간 다녀온 수학여행지라 안 가도 되나 했더니, 막판에 '그래도 다녀 와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내 도움을 요청한 거다. 물론 자기도 운전을 한 지 몇 년 되었지만, 경주까지의 장거리 운전은 아직은 자신이 없다며....
그래서 작년에 '군위'를 제1의 실제 답사지로 다녀 왔듯, 올해는 '대구'를 실질적인 답사지로 정하고 '경주답사'를 떠났다. 대구는 '뭐, 서울이나 다를 게 있겠어...???!'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막상 여행지로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지역이다. 물론 팔공산을 가 본 적은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경주에서 필요한 일만 처리하고는 두 번째 날 하루를 온전히 대구에서 보내기로 했다....
▣ 첫쨋날 - 2014년 4월 5일(토요일)
토요일이지만 그냥 토요일이 아닌지라... 막힌다. 차가 막혀도 정말 많이 막힌다. 중부를 지나 영동에 들어서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났는데, 중부내륙도 초입부터 꼼짝마라! 하고는 기어가다가 감곡IC를 지나서야 속도를 낼 수 있었고.... 경주에 도착하니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그냥 줄줄이, 줄줄이... 차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알고 봤더니 벚꽃 축제에, 경주 마라톤에, 식목일에, 청명절에, 내일 있을 한식 미리하는 사람들에.... 이러저러해서 차는 경주 전체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고, 벚꽃이 화려한 보문단지 주변이나 불국사 단지로 들어가는 길은 그냥 줄 지어 서 있다.... 서울을 출발해서 7시간이 되어서야 아내가 답사할 숙소에 도착했고, 겨우 체크리스트 및 필요한 작업을 마치고 한 숨 쉴 수 있었다.
그래도, 그 화려한 벚꽃의 군무(郡舞)에 피곤함은 몇 배로 절감됨을 어쩔 수 없다.
[경주는 한 창 벚꽃앓이 중이다. 그 화려한 군무에 교통체증의 짜증도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경주에는 참 여러 번 와 봤는데, 그래도 아직 못 본 것들이 산재해 있음을 올 때마다 느낀다. 이번에도 아내의 의견에 따라 지금까지 못 가본 곳을 찾아 가보기로 했다. 경주시 동천동에는 시내를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자그마한 '소금강산(296m)' 있는데, 그 초입에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굴불사지(堀佛寺址)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유서깊은 절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터만 덩그라니 남아 있고, 오히려 그 보다는 사면석불(四面石佛)이 당시의 융성했던 모습을 엿보게 해 주고 있다. '기도빨'이 무척이나 좋으신 듯, 석불 뒷쪽으로는 '00합격, **합격, □□합격' 하는 플래카드들이 여럿 걸려 있고,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경건하게 불상을 돌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신라 경덕왕이 당시 이 소금강산에 있던 백률사에 행차를 할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그 곳을 파보게 했더니 이 사면석불이 세겨진 돌이 나와, 그 곳에 절을 세우게 하고 절이름을 굴불사, 즉 '불상을 파낸 곳에 세운 절'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현재는 보물 제121호다.
[굴불사지 사면석불... 석탄일을 맞이해 달아 놓은 연등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굴불사지 사면석불을 뒤로는 시멘트 포장길과 그 옆에 옛스런 계단이 따로 나 있는데, 이 계단을 따라가면 새로 지어진 백률사(栢栗寺) 본당과 종각이 나오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올라가면 새로 지어진 백률사의 '송죽루(松竹樓)가 나온다. 둘 다 어쨌든 1000년 '경주'의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생경함을 준다. 마치 구인사에서, 어색한 절집들을 따라 걸어 올라 가다가, 느닷 없이 나타나는 대조사전을 만나는 뭐 그런 느낌....
그래도 길 가에 늘어선 쭉쭉 뻣은 대나무와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장송들이 나름 흐믓한 느낌을 준다.
[새로 지어진 백률사로 올라가는 계단 길... 나름 고즈넉한 맛이 살아 있다.]
[새로 지어진 듯한 백률사 종루와 대웅전... 옛 영화를 느낄 만한 것은 남아 있질 않아 아쉽다.]
[계단과 별도로 뒤로 살짝 보이는 송죽루로 이어진 시멘트 길은 시름없이 자란 대나무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굴불사지를 뒤로하고 찾은 곳은 유리 건물로 쌈빡하게 새로 지은 식물원 '동궁원'과 조류 전시장인 '버드랜드'가 있는 보문호수 근처로 갔다. 물론 여기로 가는 길도 꽈~악 막혀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가 벚꽃의 절정지역이다. 여기만 길의 중앙분리대도 아름드리 벚꽃들로 되어 있어, 말 그대로 꽃대궐을 만끽할 수 있고, 또 이 지역이 '북경주먹자골목'이라 먹을 것도 참 많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 지역은 '경주 사람들은 순두부만 먹고 사나???!' 할 정도로 순두부 집이 줄 지어 있다. 그 중 '맷돌순두부'와 '낙지마실'이란 곳이 제일 유명한 거 같은데, 결과적으로 말해서 맷돌순두부는 '진입'에 실패했다. 저녁은 그렇다 치고, 다음 날 아침에도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 보려고 시도했지만, 대기자 줄이 너무 길어서 결국 포기했다.
대신 그 옆에 있는 낙지마실을 찾아 들어 갔는데, 여기도 대기표를 받고 20분 이상을 기다리고 나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순두부도 있고, 집 상호에서 느낄 수 있듯, 매콤한 낙지 볶음도 있었지만, 우린 TV 맛집방송에 나온 '낙곱새'를 먹었다 '낙지+곱창+새우'를 줄여서 만든 이름인데, 1인분에 7천원으로 생각보다 저렴했고, 매운 양념을 자신에게 맞춰 조절해 먹을 수 있어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낙곱새전골. 따로 육수를 부어주지 않아도 육즙이 나와 조리가 되며, 익으면 대접에 준 밥에 넣어 비벼 먹는다.]
[낙지마실 외경. 대기표는 기본. 바로 옆 맷돌순두부는 대기자가 3배.... 저녁에도, 아침에 가서도 못 들어 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주변은 온통 화려한 야간 벚꽃 잔치다. 가로등이 알맞게 켜져 있어, 등불을 머금은 벚꽃들이 낮보다 더 화려한 군무를 추고 있다.
[차는 바로 길가에 있는 동궁원 주차장에 무료로 새워두고 맘껏 꽃놀이를 할 수 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역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차량들의 행렬 속에 갇혀 갑갑하던 차에, 길 위에 보이는 자그마한, 그러나 당당해 보이는 카페가 있어 집사람과 들러서 차 한 잔 하고 숨좀 돌리고 가기로 했다. 보문호수 쪽에서 불굴사쪽으로 나가는 길 중간에 있는데, 이름은 '커피명가'. 어둑한 길 위에 흰 글씨가 형광빛을 내며 어찌나 당당하게 서 있는지, 그냥 이끌려 들어 갔다. 바닐라 라떼가 5000원. 그러나 가격이야 어쨌든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경치가 압권이다. 밤이라 끝도 없이 줄 지어 있는 자동차 불빛, 그리고 멀리 보이는 교육문화회관(요즘은 K-호텔인가로 바꿨다지?)을 비롯한 호텔 불빛만 보여 잘 몰랐는데, 아침에 다시 그 주위를 지나다 보니까 보문호수 주변 경치가 아주 멋드러지게 한 눈에 다 들여다 보이는 참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종업원들도 예쁜데다가 상냥하기까지 하고, 커피맛도 좋고... 인테리어도 모던하면서도 편안하고... 혹시 경주에서 멋진 카페를 찾으시면 강추!
[핸펀사진이라 글씨가 뿌옇다. 어쨋든 커피명가라고 상호를 정할 정도의 당당함이 맘에 들었다.]
2편에서는 대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댓글 각시는 늘 아기자기하고 신랑은 언제나 미소가 가득한 다정한 모습으로 신혼여행처럼 다니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대구편도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경주 벚꽃잔치 잘 구경했습니다
맛집과 카페정보도 유익하구요
굴불사지 사면석불 다음에는 꼭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