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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째 날(8월 31일)
(25)
맥전포에서 임포까지
밤 늦도록 기다렸으나 음악분수대는 침묵했다.
마을로 들어온 차량이 멈춰서면 기다리던 가족과 함께 들어가는 소리만 가끔 날 뿐.
(그럴 때마다 왜 허전한 마음이었을까)
58가구에 184명(남자91명, 여자93명)이 거주하는 크지않은 반농 반어촌인 마을.
마을내에 논이 거의 없으므로 다른 마을로 출입경작을 하는데 반해 밭이 많으며 6곳의
어장으로 멸치업이 주 어업이라는 마을.
깨끗하게 정돈된 국가어항이기는 해도 규모가 작고 사람을 모을 만한 관광자원이 있는
곳도 아닌데 왜 잘 꾸민 해안공원에 음악분수대까지 만들었을까.
가용예산이 남아서 반납하지 않고 소진하느라 그런 건 아닐까.
맥전포에서 용암포로 가는 길은 1010번지방도로 뿐이다.(마을인들의 샛길이 있나?)
한려수도의 청정해역을 끼고 있는 용암포(龍岩浦)의 북쪽은 좌이산의 필봉을 바라보고
마을 앞은 안장섬 건너 사량도(통영시)와 마주보고 있다.
사량도가 통영땅이지만 사천이 더 인기있는 들머리라면 용암포는 최단 거리인 듯 하다.
따라서, 운임도 가장 싼 것 같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있어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이 아름답다.
1010번도로 따라 장춘교(橋)를 건넌 후 잠시 바다를 떠난 위치에 공(空)건물이 서있다.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건물은 폐교된(2011년말?) 하일초등학교 장춘분교.
경상남도교육청의 1면1교 외의 소규모학교(60명 이하) 통폐합 정책에 따라 전교생 7명
인 이 학교가 폐교되었다는데 그동안 세계 최고의 좋은 교육환경(?)이었겠다.
질(質)은 어떠했던 7명이 큰 교사(校舍)와 드넓은 자연에서 마음껏 기를 폈을 것이니까.
그러나 가장 적은 인원이라 해도 3명(교장교사직원각1명)은 근무했을 것이며 운영비가
만만찮았을 텐데 노랑버스 1대로 해결된다면 바람직한 변화다.
인격형성 과정의 학동에게 다중의 공동생활도 교육의 한 과정이니까.
낮은 고개를 넘어 신기(춘암리) 마을 도로변에 쌓인 가리비 껍질이 눈을 끌었다.
저 많은 가리비가 바다의 산물이며 마을을 살찌우고 있는 보물에 다름아닌데 껍질은?
일일히 구멍을 뚫어 꿰매놓은 것이 담장을 이루고 있는데 왜 저리도 공을 들였을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데 장식품으로 쓰일 것처럼 보였으나 저것들이 다시
바다로 가서 굴 양식에 쓰인단다.
가리비도 버릴 것이 없구나.
다음 해변마을은 동화리(東禾里).
임진왜란때 수군 통제사의 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됨으로서 산림이 우거졌
으며 아름드리 노송이 바닷가를 뒤덮고 있어서 '솔복개,송포동(松浦)'이라 했다는 마을.
한일합방 이후에는 '구진' 또는 '동화'로 불리며 이즈음 100가구 넘는 마을은 큰 마을에
속하는데 103가구에 주민이 441명인 대형마을이다.
주목할 점은 고성군인데도 어업을 주업으로 하여 수산물의 생산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삼천포항을 생활권으로 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
어항의 교통로는 역시 바닷길?
얼핏 보아도 어획량이 풍부하며 좌이산 자락에 둘러싸인 안온한 호숫가 같은 느낌이다.
남쪽의 사량도를 방패로 하여 깊숙한 내만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요쇄지였단다,
이를 말해주고 있는 곳이 소을비포성지(所乙非浦城址)란다.
마을 입구에 체험마을 안내판이 서있는데 들어가 보지 않고 지나온 것이 유감이다.
좌이산 남쪽 자락으로 반도처럼 돌출되어 있는 동화리의 동북을 돌아가는 도로가 청정
해역 자란만을 따라 임포로 간다.
하일면(下一面)소재지 학림리(鶴林里)의 임포(林浦)마을이다.
학동, 임포, 고연, 도동 등 4마을을 병합할 때 학동과 임포의 첫자를 따서 학림리라 했다
는 법정리의 바닷가 마을이다.
수백년 전부터 풍치림이 조성되어 있어 수풀임(林)자 임포가 되었다는 마을에서 자란도
(紫蘭島)가 멀지 않게 눈에 잡힌다.
자란도를 따서 자란만인가 자란만에 있어서 자란도라 했는지 앞뒤는 모르나 섬도 만도
모두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자란만 청정해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어패류를 비롯해 수산물이 풍부한 덕인지 횟집들이
통 크게 영업을 하는 것 같다.
횟집마다 상호를 붙인 대형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
고객을 모셔오고 가는 버스들일 것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경기가 말 아니라고 울상이면서도 그만한 고객이 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상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아침식사가 된다니 이 또한 괴이쩍은 집이긴
해도 내게는 더 없이 반갑고 고마운 임포횟집이다.
이 집 역시 대형버스가 대기중이다.
임포삼거리로 나갔다가 77번국도를 따를 뻔 했다.
하일치안센터 경찰관의 자상한 안내가 아니었더라면.
초가 시니亭쉼터까지 갔다가 해안으로 난 1010번지방도로(자란만로)로 들어섰다.
왼쪽(북쪽) 멀찍한 산의 중간봉쯤에 하얀 물체가 돋보였다.
아마, 수태산 보현암 뒷봉에 있는 약사여래불의 뒷모습일 것이다.
뒤쪽 오른편이 무이산이며 그 뒤 상리면, 대가면으로 낙남정맥이 뻗어 있겠지.
낙남정맥 종주때는 앞면으로 보였는데.
그 때, 석양에 내려와 한 트럭에 편승해서 고성읍 찜질방으로 갔다.
(그때는 시장통에 찜질방이 있었다)
시장에서 먹은 돼지국밥이 어찌나 맛있었던지(아마 시장해서 그랬을텐데) 아침을 먹지
않는 내가 정맥으로 떠나기 전 새벽에 또 먹었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내 18번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룡(加龍)마을을 지나 중촌교를 건넜다.
하일면은 가룡에서 끝나고 중촌(中村)은 삼산면이다.
마을이 길다하여 장치리라고도 했다는 중촌마을을 지나면 장백리다.
맨 먼저 장(張)씨가 입촌하고 다음에 박(朴)씨, 이(李)씨가 차례로 입촌해 살았다 하여
'장박이'라 했다지만 지금은 '장백리(長栢)가 된 마을이다.
동백나무가 많은가.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에 '장백왕새우'라고 크게 씌어있을 뿐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쳤는데 유명한 새우구이집이란다.
이 집 마니아 식도락가들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니까.
알았다 해도 늙은이 혼자 뭘 먹겠는가 마는.
1010번도로는 공사중이며 단절구간이 잦은데다 안내판이 없어서 불안했는데 해명마을
에서는 아예 끊겨버렸을 뿐 아무 표지판도 없다.
하긴, 마을 주민들도 걸을 일 없는 길을 누가 걷는다고, 누구 보라고 안내판까지?
삼산면 삼봉리(三山面三峰里)가 분동되면서 마을 아래쪽에 있다 하여 하촌(下村)으로
불리다가 마을민들의 요구로 해명(海明)으로 개명되었단다.
"바다에서 해가 밝아오는 희망찬 마을"이라는 뜻이라나.
신축한 해변의 정자는 비워두고 마을의 허름한 정자에 모여있는 노파들.
누가 정자에서 살림을 하나.
취사도구와 먹거리 진열장까지 있는 정자다.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휘둥그렇고 기이한 시선인 노파들은 "큰 도로로 나가서 버스타고
삼산면으로 가시라"고 입을 모았다.
하다말다 하는 공사 언제 끝날지 모르고 마을 이후의 해안길은 없다며.
해명1교를 건너고 장지천 농로를 따라서 77번국도가 지나가는 삼봉리로 나아갔다.
선진국과 후진국, 대도시와 그밖의 지역의 다른 점을 차량에서 꺼내라면 내가 주저없이
내놓을 답은 클랙슨(Klaxon)이라 하겠다.
겁이 많은 개가 많이 짖는단다.
낯선 사람을 향해서만 짖는 것은 믿지 못하겠기 때문에 자기 방어적 경계라는 것.
겁이 많은데다 운전이 서룰기 때문인가 참을성이 없어서 그런가.
내 차를 봐달라는 과시욕의 발로인가.
요란한 경적을 남발한다.
갓길 없는 77번국도를 긴장하고 걷는데 까닭 없이 울려대는 경적에 짜증이 몰려왔다.
곧, 권태로 바뀌고 피로감을 느끼며 걷게 되었다.
아마 약간 술취한 사람처럼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코란도가 옆에 와서 멎고 중년 여 운전자는 삼산면소재지까지 간다며 타란다.
어려울 때 나를 돕는 선한 이웃이 마치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등장하는 일이 하도 잦아
이제는 놀라지도 않지만 놀라운(amazing) 일인 것만은 틀림 없다.
마치, 누군가 지근에서 지켜보다가 출동하라는 사인을 보내기라도 한 듯이.
이런 때마다 내 십팔번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우리는 삼산면소재지 용호삼거리의 농협 앞에서 함께 내렸다.
그녀는 삼산면 농협에 일보러 간 농협 VIP인 듯.
빵 사러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붙어있는 농협사무실에서 환대받는 것을 보았다.
목례로 감사를 다시 표하고 나와 국도의 내륙구간인 장지(長支)삼거리까지 버스로 가서
다시 등장하는 1010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디카의 배터리가 나갔고 여분 역시 충전한지 오래되어 자연방전된 것을 몰랐기 때문에
삼산 이후에는 육안(肉眼)에만 담으며 걸었다.
승용차 간의 교행마저 어려운 구간이 많은 도로다.
차도 사람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두둑한 배짱으로 해결될 길이 아니다.
새마을동산을 지나고 고성만으로 뛰어드는 병산천(병산교) 앞에서 버스에 올랐다.
도착한 고성여객자동차터미널은 통영별로 때 이용한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곳이다.
낙남정맥 때는 내륙교통의 관문인 배둔(회화면)터미널을 이용했지만.
롤모델 삼겠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통영길에 들어섰다.
고성에서 부산 입성을 마산, 진해를 경유해서 할까 통영, 거제를 거쳐 거가대교를 건너
갈까 망설였으나 산지기님의 호의에 감동하여 통영을 택했기 때문이다.
영남대로 걸을 때 서울에서 상주로 내려와 하루를 함께 걷고 귀경했는데 이번에도 심야
버스 편으로 통영에 내려와서 하루를 내 동무가 되어주겠다는 그.
그가 통영출신이기는 하나 마음 쓰기가 쉬운 일인가.
그래도, 주말인 것이 다행이지만.
고성터미널에서 통영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14번국도가 유일하다.
2호관장을 지나는 시내길도 다운타운을 벗어나면 14번에 흡수되고 해안을 도는 1010번
도로도 곧 14번도로에 업히고 말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공사중이라 어수선했지만 시내구간은 인도가 있으므로 걸을 만한 길이다.
송학리교차로, 고성오광대전수교육관, 고성탈박물관, 율대사거리, 신월IC, 월평천(월평
교), 흥류교, 시군계(市郡界)인 바다휴게소를 지남으로서 완벽하게 통영땅에 들어섰다.
통영시 광도면이다.
얼마 가지 않아 원동마을이다.
통열별로 때 사량도에서 나와 라면을 맛있게 먹은 원천휴게실이 있는 곳이다.
시장했던 참이라 그랬겠지만 드물게 맛있는 라면이었다.
군침을 삼키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휴게소에서 나오는 듯한 1톤트럭이 멈춰섰다.
통영, 거제까지 간다는 운전자의 호의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인데 사양할 리가.
더구나 이 도로는 누비듯이 걸었던 길인데.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이 트럭은 김해에서 인쇄하는 C 중앙일간지의 수송차량이란다.
신문 수송차량은 특권차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크가 묻어나며 냄새가 물씬한 신문을 촌각을 다투어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 외의
교통법규 위반 정도는 눈감아주는 것이 관행이다.
게다가 지정된 코스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나므로 최고로 인기있는 직종이며, 그래서
하늘의 별따기에 다름아니게 갖기 어렵다.
월남전 상이용사로 환갑 직전인데 65세 이후에는 나처럼 살겠다는 그.
내가 바로 자기의 롤모델(role model)이라며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산에서도 길에서도 나를 롤모델 삼겠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내 사는 방식이 부럽다는 뜻인가.
산이나 타고 길이나 걷는 늙은이를 동경할 리 없으므로 자기 관리에 성공한 늙은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럴까.
통영에 도착해서도 내게 양해를 구한 후 함께 지국들을 돌며 내 이야기를 더 들었다.
거제까지 동승하며 더 얘기해 주기 바라는 눈치였다.
거제시에서는 거가대교를 건너서 김해로 가야 하는 그가 통영을 되돌아서 갈 수 있음을
말했으니까.
통영으로 귀환할 버스에 대한 확신만 있었으면 아마 그와 함께 거제까지 갔을 것이다.
통영시민문화회관 갈 곳이 그리도 없었는가
통영대교를 건너서 있는 봉평동(도남동?) 지국을 끝으로 일을 마친 그는 봉평오거리에
나를 내려놓고 거제로 갔다.(내가 원했다)
미륵도관광특구 지역으로 산지기님과 다음날 들르라라는 생각을 어찌 했겠는가.
눈에 띈 하나로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산 후 해저터널 앞에서 남망산공원을 물었다.
택시 또는 버스를 타란다.
버스는 이따금 있으니까 기본요금 밖에 나오지 않는 택시를 권했다.
지방민들의 예외없는 택시 이용 권고는 애향심의 발로인가.
걷는 것이 직업(?)인 늙은이가 기본요금 거리를 걷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물을 비롯해서 구입한 저녁거리가 무거운데 배낭에 빈 공간이 없기 때문에 양손에
들고 걷는 일이 쉽지 않았을 뿐.
일몰까지는 여유있는 시간이므로 윤이상기념공원에도 들렀고 내일 새벽에 산지기님과
도킹할 터미널도 확인하는 등 모처럼 여유롭게 해변을 걸었다.
그러나 남망산공원의 가파른 길에서 늙은이는 또 맥이 풀렸다.
여기도 차존인비(車存人卑) 지역이라는데.
짐을 든 늙은 길손은 제쳐두고 고을의 남쪽 맞은 편에 있는 산이라 해서 단지 남산을 뜻
하는 남망(南望)이라 했을 뿐이라지만 불특정 다중이 찾는 공원이다.
공원만이라도 매연 없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안에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면 통영시에 무슨 변고라도 생길 것이라던가.
공원 중턱에 시민문화회관이라는 커다란 괴물을 세워놓고 수영장도 있다고 자랑하다니.
여기에서 일하는 귀하신 분들은 물론 이시설을 즐기는 이들은 너나 없이 차를 몰고 오르
내릴 것이다.
보행자들이 비탈길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브레이크 독가스를 담뿍 마시며 걸어야 한다면
이게 무슨 공원인가 .
그러고도 시민복지를 운운하고 있다니.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야외 조각공원은 바다와 육지가 조화된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한 작품마다 예술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희
망과 안식감을 일깨워주며 또한 아름다운 남해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개성있는 작품세계
를 선보임으로 예술적 자극과 상상력,넓고 확트인 공간이 주는 시원함으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위 글은 조각공원에 대한 통영시측의 홍보다.
예술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세계의 유명 조각가라는 분들의 작품들이 어떤 경로로 여기에 서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유명한 분들이 현장에 와서 보았다면 당장에 회수해 갈 것이다.
'유명'을 빼던가 작품을 제대로 대접하던가.
시민문화회관 갈 곳이 그리도 없었는가.
이 괴물만 없다면 참 좋은 동산이다.
충무공의 입상이 있는 정상은 최고의 조망권을 갖고 있다.
한단 밑 정자를 점찍었으나 해발 80m라는데도 일몰 후의 거센 바람에 한기를 느껴 조각
공원으로 내려갔다.
조각공원 내의 정자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펴려는 순간 퍼뜩 떠오른 것은 배터리충전.
주변에 부탁할만한 민가가 없고, 있다 해도 산지기님과 새벽약속 때문에 안되는 일이다.
어처구니 없는 건망증.
어두워진 항구의 밤, 누워보지도 못하고 짐을 꾸려 찜질방을 찾아나섰다.
통영별로때 한 밤 보냈던 통영해수랜드를 업은 애기 3년 찾듯 주변에서 맴돌다 찾았다.
헤메고 헤메다가 물었더니 바로 옆이다. <계 속>
첫댓글 내고향을 여기서 보니 정감 백배입니다.^^
무척 반갑습니다.
벌써 해가 4번이나 바뀌었는데 그 때 일이 새록새록 스쳐갑니다.
바다에서 밝게 솟아오르는 해처럼 마을과 주민 여러분 모두 희망찬 나날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