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체성은 한자와 유학경전에 있다. (서문)
일제 식민지 해방이후 지난 60년간 통용되어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명제는 옳은 말인가? 틀린 말인가? 교과서상으로는 틀리지만 현실에서는 옳다. 쿠데타를 통한 집권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정치권력 은 공공연히 이를 퍼트리고 조장해왔다.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은 모든 분야에서 편법을 넘어 초법적으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또다른 사례는 부적격자의 당당한 복귀이다. 부적격자라 해서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한 낙천자가 무소속으로 당선해서는 그 정당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당대표, 원내대표도 된다. 부적격자라고 공표해놓고는 나중에 자기 당의 대표 자리에 앉히는 행태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라는 한국식 명제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더욱이 오랜 세월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모두들 ‘으레 그러려니’ 한다. 불감증 내지 마비 증상이다. 당사자는 부끄러움을 못 느끼며,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조계는 여전히 전관 예우가 건재하고, 이를 감시・감독하고 문제 제기해야 할 지식인이나 언론은 이익집단 또는 파벌집단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 않는 대한민국 성공신화 역시 이 명제를 배경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들 보고는 대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우리 사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자신도 가능하면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
이에 대한민국 국민은 이 사회에 공정한 잣대나 규범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라는 말이나, ‘사촌이 땅사면 배아프다’나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참는다’는 속담이 횡행하는 배경이다. 우리 사회에 승복과 합의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이 성공신화에 가려진 부작용과 후휴증을 고쳐 보려는 의지나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많은 국민들이 성공신화의 수혜자로서 자기 삶에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여 상대적 박탈감 속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행복지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가 100위권에 불과한 것이 그렇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되지만, 생존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이에 인간은 가족이라는 혈연(血緣)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온통 관계망(연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관계망이 어떠하냐에 따라 인간의 삶과 행・불행이 결정되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관계망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이 관계망에 대한 동서양의 규범이 완전히 다르다. 크게 서구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동양의 공동체 평등주의와 집단주의로 대별된다.
서구문화의 토대인 기독교는 유일 神이자 절대 神인 하나님과의 1 : 1 관계 즉 인격적 요소가 강한 종교이다. 생활은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유목문화였으며 사회체제는 독립 분산된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따라서 개인주의와 자유쥬의가 발달하였다.
반면에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은 특정 神이나 유일신 개념이 아니라 천지자연에 모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생활은 가족 노동력과 정전제(井田制)에 의한 공동체 중심의 농경문화이며, 사회체제는 농경사회의 관리에 효율적인 중앙집권적 국가로 조직되었다. 이에 공동체 평등주의 또는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 두가지 삶의 방식은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문화로서 동서양을 규정짓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런데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 산업화, 근대화, 대의제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독교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가 동양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히 서구식 사회체제로 변모하였다. 기독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영어는 성공의 언어이며, 미국 유학은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비롯해 다수의 대통령이 기독교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서울시장 재임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奉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정점에 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행동 양식과 의식 문화는 서구식이 아니라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의 기독교는 본래의 서구식 종교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뿌리깊은 무속(巫俗)문화에 내재된 기복(祈福)신앙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회나, 성령 대회, 수능시험 100일 기도회 등이 그것이다. 또한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에 의한 관계망 중심의 유교문화가 강력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구식과 전통적 방식이 뒤섞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앞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명제로 인한 현실과 교과서의 괴리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도 겪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갈수록 이익집단화되어 가고 있다.
오죽하면 신문에 반 평생동안 사설과 칼럼을 써온 어느 언론인은 우리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사회’라고 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사회적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충돌과 대립이 해소되기보다는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