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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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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역사문화 단궁(檀弓)의 성격과 원형 복원 문제
고마실 추천 0 조회 169 14.12.05 22:5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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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2.08 16:53

    첫댓글 단궁의 원형 복원과 경기방법의 개발 연구...,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4.12.08 18:40

    감사합니다. 12월 13일에 열린다는 국궁연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데...지방이라서 힘들 것 같고...자료 파일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14.12.09 23:47

    檀자가 박달나무 단자이므로 활의 재료가 박달나무였을 것이라는 추정은 동의하기 여려운 점이 있습니다. 박달나무는 단단하기 짝이없어서 야구 방망이나 다듬방망이 재료로 쓰였다고 합니다. 각궁의 전통 줌통도 참나무이고요. 활채의 주재료는 대나무인 것만 보아도 박달나무와는 거리가 멉니다. 저는 밝음의 의미라는 신채호 선생의 의견도 동의않고 있습니다.
    박달은 몽골어와 연관성이 높은 단어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bator는 영웅, 전사의 의미이지요. 단지 한자로 차음한 것이라고 봅니다. 몽골이나 만주에서 무소뿔을 구하기 어려웠고 뿔이 큰 산양뿔로 활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한

  • 14.12.10 11:26

    고조선을 세운 단군(檀君)왕검때 부터 사용된 활(弓)을 일러 단궁(檀弓)이라고 했을것이라는 생각은 어떤가요?

  • 작성자 14.12.10 18:54

    단궁을 박달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은 제가 아니라 현재 여러 책들에 그렇게 쓰여있음을 전한 것이고 그 개연성을 인정한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단군문화권 전반과의 관계를 좀더 중시해서 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를 위에서 장황히 언급했구요. 권위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해당 글에는 "고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활. 박달나무로 만들었다. 고대 동예족(東濊族)의 특산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하였고 (네이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콘텐츠닷컴에는 "박달나무로 만들었다고 하여 단궁이라 하며 우리나라 목궁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네이버 / 문화콘텐츠닷컴)고 쓰고 있습니다.

  • 작성자 14.12.10 19:08

    그러나 檀자를 꼭 박달나무로만 생각해야 하는지, 또한 박달나무는 요즘 생물학계에서 정의하는 그런 참나무 수종으로만 생각해야하는지 등도 재고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상고시대 한국인들이 오늘날처럼 엄밀한 개념 규정 하에 이런 용어를 사용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후대에 한국 목궁은 산뽕나무와 산비마자를 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조선의 궁술'에서는 단목에서 이쪽으로 변화된 것으로 이해했으나, 단목의 의미를 참나무에 국한할 수 없다면 애초 단궁의 재질이 상기 수종을 포함했을 개연성도 서둘러 차단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 작성자 14.12.13 21:49

    박이 광명의 어근임은 여러 학자들이 공인하는 사실로서 재언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박달이란 말이 그 광명의 뜻으로 쓰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저로서는 구태어 예외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몽고도 알타이 어족으로 한국어와 밀접하므로 같은 어근이 많음은 당연하나 위에서 예로 드신 언어와의 관련성은 잘 알지 못하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 작성자 14.12.13 22:01

    단군왕검은 환단고기 류의 책에서는 1대 단군에서부터 쭉 왕통계보를 이어가나 학계에서는 그런 정도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단군왕검때부터 사용된 활"이라 할 경우 논쟁의 소지가 커질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수준이 무난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우리가 서기에 2333년을 더하여 단기로 쓰고 개천절을 두어 단군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오신 날을 기리듯이 민족 상징성의 측면에서는 설향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단순 간이한 설명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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