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혜의 책읽기《아름다운 책》
임병식
신문의 신춘문예에서 수필부문이 배제된 것 말고도 이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수필작가에 대한 창작지원금을 중단했지만 지금은 수필문학시대이다. 수필을 공부하고 싶어 하고 쓰고자 몰려들고 있다. 그 점이 반가운 일면도 없지 않으나 수필이 받는 홀대를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수필에 대한 대접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다. 나는 그 이유를 단순한 감상이나 추억위주의 회고적인 글쓰기, 거기에다 살짝살짝 자랑을 곁들이며 자기를 벗지 못하고, 치장하는 가벼운 글에 식상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더 중요한 이유는 수필작가들의 독서가 부족한 글쓰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쓰는 글에 어디 문학성이 자리 잡으며 고뇌가 깃들겠는가.
독서는 글쓰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충분한 독서로 무장하지 않고는 결코 좋은 글을 써낼 수가 없다. 읽으면서 자연스레 문체공부를 하게 되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간접체험을 습득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펴낸 류인혜의 《아름다운 책》은 수필쓰기에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주는 책이다. 50여 권의 책을 읽고 나름대로 렌즈를 맞추어 그 소감을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선 작가가 어떤 책을 어떤 시각과 사고를 하며 읽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대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책》의 목차는 모두 52권의 책이 7부분 -기억, 생명, 소통, 사유, 역사, 관계, 은유-으로 나누어져 있다. 역사서에서 기행문, 그림책, 소설, 시집까지의 다양한 책을 접하고 있어 가급적 모두를 언급하면 좋겠지만 몇 작품만 텍스트로 해서 읽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책은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화요일》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소감을 낯선 길을 찾아갈 때 혼자서 지도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 직접 묻는 심정으로 읽었다고 한다.
그럼 이 책은 어떤 내용인가. 루게릭병에 걸려 다리부터 마비가 되어오는 바람에 얼마 살수가 없는 모리교수와 신문, 텔레비전 등 언론 매체에 기사를 보내는 미치라는 제자가 '사랑을 나누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매주 화요일이면 만나서 나누는 인생담론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결혼, 문화, 용서,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성찰 등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인생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짚어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죽음에 관한 명제'에 대한 어느 대목에 주목한다.
"죽는 방법을 알아야 사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의미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죽음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는지, 이별의 고통을 조금이라고 덜어주기 위한 의식과도 같은 스승의 마지막 수업은 감동적이다."
수필이 보다 심층적으로 사람의 심리와 그 삶의 반영을 보여주는 문학이라면 명제에 다가서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짚고 있는 독후감이다. 이렇듯 작가는 수필쓰기의 소재 확장 면이나 자세에 있어서 독서가 좋은 아이디어가 됨을 글의 핵심을 짚어 은근히 보여주고 있다.
<마당을 서성이며> 편의 《한옥의 고향》은 한국의 전통가옥에 대한 미를 추적하는 글이다. 한옥의 우아함과 단아함에 취해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맛을 한껏 담아내고 있다. 곁들인 사진이 시선을 끈다. 한 대목 읽어본다.
“고샅을 돌아드는 곳에는 부지런한 일꾼이 쌓아놓은 나무더미가 반겨주고, 언제나 열어두는 대문이 저 멀리에 눈에 익다. 달려가 어머니를 찾는다. 앞마당을 지나서 뒷마당으로 간다.” 금방이라도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달려 나올 것 같은 풍정이 그려진다.
원문에는 함양 정여창 선생 댁이 언급되어 있는데, 언젠가 내가 그 집의 벽면에서 보았던 ‘일두(一蠹)’라는 글자가 선명하여 기억에 남아 있다. 그게 호라는데, 그 ‘두’자가 좀벌레를 뜻하는 것이어서 자기를 얼마나 겸손하게 낮추어 말함인가 싶어 선생에게 존경심이 일어났었다.
<삐삐와 앤 그리고 토토>에서는 '구로야나기 테치코'가 쓴 《창가의 토토》를 소개한다. 작가는 수필을 통해 만난 인연부터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수필 <움직이는 미술관에서> 속에서 언급된 그림 ‘한강위의 뜬 구름’은 정상복 님의 그림인데, 그분의 아드님이 어느 잡지에 실려 있는 수필을 읽고 연락을 해왔다. 작가가 수필집을 보낸 답례로 이 책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책속의 천진난만한 토토 만큼이나 아파트단지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나는 모든 어머니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개척해 가는 세계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집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지 말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개성을 개발의 필요성과 함께 인연의 소중함도 말하고 있는 글이다.
《산에서 사는 산야초 이야기》는 저자 전문희가 전남 장흥 천관산 아래 고향으로 내려와 한방과 자연의학으로 어머니를 간병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몇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과는 달리 삼년을 더 살게 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류인혜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산야초의 치료기능에 신비해 하면서도 염려도 잃지 않고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나무들의 새순을 채취하여 만든 차가 사람의 몸에 이롭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 몸에 좋은 먹을 것이라면 일제히 덤벼들어 일시에 멸종시킬 수 있는 능력과 열심과 집착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산으로 올라가면 어쩌나 심사가 불편해 진다.”
그저 막연히 어떤 정보만을 전달하지 않고 그 결과 대한 염려와 우려를 함께 담아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독후감이기도 하다.
《메디치가 이야기》와 《괴테의 아탈리아 기행》은 류 작가가 짧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서 읽은 책이다. 전자의 책에서는 메디치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탐구를 하게 된다. 이 글에서 작가는 이탈리아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서 떠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독일의 대문호의 글인 만큼 읽고 생각할 것이 많은 부분을 살핀다. 특히 베로나에서와 베네치아에서 느낀 점을 상세히 옮겨놓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된다면 달빛이 내리는 날, 고대 로마 유적지에 가 서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달빛속의 풍경과 함께 황홀함에 취해있는 괴테를 만날 적이다.” 라고 글을 맺고 있다.
<마음의 중심축을 찾아서>편의 김훈의《자전거여행》은 기행문에 해당한다. 이 책은 박완서 선생의 책 《두부》와 곽재구의 《포구여행》과 함께 글을 읽는 재미를 한껏 즐기게 하는 내용이다. 나 또한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작가의 뛰어난 서술과 묘사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동백꽃을 묘사해 놓은 대목에서 무릎이 쳐졌다. 소름이 돋도록 적실한 문장표현이었다. 작가도 그 필치에 취했음인지 간접적으로 각 언론사의 신문에 실린 서평을 옮겨놓고 있다. 한 부분을 옮겨 본다.
“서정어린 지은이의 시선은 경주 감포를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로, 영일만을 태양보다 밝은 노동자의 불길로 보았는가 하면 미암분교에서는 꽃피는 아이들을 봤다. 미문이되 힘이 느껴지는 필치가 어느 산자락, 바닷가 모퉁이를 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낸다.” 또 다른 곳의 예문을 살펴보자. “나는 네모가 좋다. 네모가 지니는 사각의 예리함이 좋고, 사각을 뻗어있는 직선의 거리낌 없음이 좋다. 네 개의 각이 주는 안정감이 든든하고, 그 경쾌함이 매력적이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문장이다. 작가가 책속에서 뽑아낸 일련의 이런 예문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글의 우선은 문장이 갖춰져야 함을 간접적으로 일깨우는 의도이지 싶다.
이 책을 읽으면 50여권의 책을 다 읽는 것과 같다. 책속의 핵심을 뽑아내고 숨겨진 의미를 은근히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수많은 책을 읽는 기쁨과 색다른 수필집을 만난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은 수필이 어떤 면에서는 통합과 분화를 계속하는 추세다. 전자는 중수필과 경수필이 결합하는 퓨전수필이 그러하며, 후자는 그림과 수필, 특정분야를 파고드는 에코수필, 기행수필, 꽃이나 나무 그 밖의 수석과 역사현장을 발로 뛰며 쓰고 있는 수필 등 다양하다. 거기에다 이처럼 작품집을 읽고 쓰는 수필도 소재개척과 생각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측면에서 효용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는가 한다.
첫댓글 수필에 뜻을 둔 분이라면
충분한 독서를 해야한다는 데
적극 공감이 가네요.
회원으로 참여해 주시고 조언도 아끼지 않아서 늘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지요.
독서하는 작가는 마르지않은 아이디어샘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겠지요.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독서를 많이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몇분의 작품평을 썼는데 류인혜수필가는 평소 독서를 많이하는 작가로 알려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