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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일해와 회자정리(소브라도를 놓치고 낯선 얼굴뿐인 까미노)
일리일해(一利一害), 일득일실(一得一失)은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이만 있고 해가 없거나 득만 있고 실이 없다면 이와 득 자체를 모를 것이다.
전쟁을 치뤄야 평화를 실감할 수 있고 중병을 앓아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하찮게 여겼
던 몸의 어느 부분도 그것이 고장난 후에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처럼 손실을 겪어야
이득을 알 뿐 아니라 분발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윈윈(win win)은 도달할 수 없는 수사(rhetoric)에 불과한 것?
어제의 강행군이 그러하다.
해(害)와 실(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볼프강과 멀어졌고 알랭 그룹과는 더욱 멀어졌고 3일치 거리(80여km)가 남았을 뿐인 막판에
오스뜨리아와 이딸리아 청년 외에는 전원 물갈이 하게 되었고.
비슷한 보속으로 진행하다가 어느 날 많이 걷거나 태만하면 알베르게에서 낯이 설은 얼굴들을
대하게 되니까.
나는 밤을 보내는 곳에서는 2km~4km를 마을 답사에 바친다.
관광은 아니라 해도 까미노와 관계가 깊은 여러가지를 탐방하는 것은 뻬레그리노스의 당연한
임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생략하게 된다면?
임무 유기 또는 태만이 되는데 소브라도 도스 몽헤스가 이에 해당한다.
어제는 밤중에 도착했기 때문에 전부가 생략되었으니까.
그렇다 해서 아침에 걷기를 중지하고 그 일을 한다면?
그것은 순례(peregrinaje/pilgrimage)가 아니고 관광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소브라도 도스 몽헤스를 놓치고 말았다.
갈리시아지방 자치정부는 소브라도 도스 몽헤스(Sobrado dos Monxes), 스페인 중앙정부는
소브라도 데 로스 몽헤스(Sobrado de los Monjes)인 기초지자체의 핵심을.
갈리씨아 지방정부의 아 꼬루냐 주에 속해 있으며 공식 명칭이 '소브라도'라는 이 기초지자체
에서 수도원을 빼면 허깨비에 다름아니란다.
중세에 갈리씨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도원 마을이었다지만 1950년에 6459명이던 지자체
전체 인구가 불과 60년에 3분의 1로 토막났고 다운타운도 300명이 못되는 소형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느낌을 갖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을 책자에서 옮기며 중언부언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생략하고 소브라도를 떠난 시각은 아침 9시 30분.
이유가 어떠하던 나의 까미노 여정에서 가장 태만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전번 프랑스 길 때는 멜리데에서 50km 되는 몬떼 도 고소까지 가느라 아르수아에서 쉬지 않았
으나 이번 노르떼 길에서는 프랑스 길에 합류하는 아르수아에서 꼭 1박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과로 때문이기도 했지만 23km 미만이라 얕잡아 보고 늑장부린 것이리라.
4년 전에는 41km 다음날 50km를 강했했건만 70대와 80대의 차가 이다지도 큰가.
꼰차와 노랑화살표 까미노마커의 안내 따라 샛길과 AC-934도로로 해서 소브라도 다운타운을
벗어났는데 적지 않은 아쉬움을 눌러야 했다.
노르떼 길은 AC-934지방도를 떠나 긴 농로를 따라야 한다.
빠로끼아 산 뻬드로 데 아 뽀르따(San Pedro de A Porta)의 마을들이며 2014년현재 주민이
4명인 아 뽄떼뻬드라(A Pontepedra)와 28명의 빌라르차오(Vilarchao)를 지나는 포장로다.
개울(Rego Da Fonte Dos Carballos)을 건넌 후 지루하다고 느껴지려 할 때 숲길을 통해 오
뻬로힐(O Peroxil)과 까스뜨로(Castro)를 지났다.
산 로우렌소 데 까레예(San Loourenzo de Carelle) 교구의 루가르들이다.
턱걸이 해서일 망정 두 자리수를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마을들이다.
잠간 AC-934도를 거쳐서 까레예의 마을인 아 이그레하(A Igrexa/2014년현재 주민41명)의 산
로우렌소 교회(Igrexa de San Lourenzo de Carelle)를 지나가게 되어 있는 노르떼 길.
하지만, AC- 934를 고수하는 뻬레그리노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직선 위주의 지방도 개설 때 굴곡이 심한 노르떼 길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며
어차피 얼마 가지 않아서 두 길이 만나게 되므로 무방하리라.
간밤에 이 길을 걸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이어지는 마을은 아 까사노바(A Casanova)와 장신 숲길로 마델로스Madelos).
주민 6명과 14명인 미니 마을이며 빠로끼아 까레예의 루가르다.
마델로스는 까레예 교구의 마지막 마을이며 기초지자체 소브라도의 서쪽 마지막 마을이다.
직선화 된 지방도(AC-934)에 합류하여 AC-840지방도와 이루고 있는 십자로를 건너가면 기초
지자체 보이모르또니까.
AC-934도와 십자로를 이루는 AC-840도는 까미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로다.
잉글레스길(Camino Ingles)의 베딴소스(Betanzos)를 시종점으로 하여 노르떼 길, 프랑스 길
(+ 쁘리미띠보 길) 등 4개의 메인(main) 까미노를 연결하고 쁠라따 길까지 접근하니까.
여기 아스 꼬레도이라스(As Corredoiras)에서는 노르떼 길을 횡단하고 프랑스 길과 쁘리미
띠보 길이 합류하는 멜리데를 지난다.
이어서 뽄떼베드라(Pontevedra) 주의 기초지자체 아골라다(Agolada)에 진입하면서 PO-840
으로 변경, 1.000km 쁠라따 길(Via de La Plata/Silver Way)까지 연결한다.
이 도로를 개설할 때 까미노의 연결을 염두에 둔 설계였을까.
단지 결과물일까.
나는 후자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골인점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목전에 두고 유기적 관계를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뻬레그리나(Peregrina) 플로레스
무니씨삐오(municipio)계(界)를 넘어 아스 꼬레도이라스(As Corredoiras)에 진입했다.
기초지자체 보이모르또(Boimorto)의 빠로끼아 산따 마리아 데 안헬레스(Santa Maria de An
xeles))에 속한 루가르다.
주민 64명(2010년 현재)으로 요새 거쳐온 시골 루가르 중에서는 큰 마을이며 십자로의 코너에
그럴싸한 까페 빠르(Cafe Bar Carreira)가 있다.
간밤에 잘 먹었다 해도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에 9km쯤 걸었다면 출출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반기는 여인.
브라질녀Brazil女) 플로레스(Ivelise Flores)를 또다시 만났다.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출신이며 바르쎌로나(Barcelona)가 현 주소라는 여인.
노르떼 길을 마치고 귀가한 후에, 내가 쁠라따 길을 걸을 때 e-메일로 무더위 걱정과 격려를
해준 여인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까미노를 떠도는 프랑스 길의 홈리스(homeless) 여인과 흡사하다고 생각
했으나 재회가 거듭되는 동안에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여성적인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남성스런 여인이며 표현이 거칠기는 해도 정이 담겨있는
특이한 여인이라고.
6일 전에 따삐아 해안을 지나 리바데오 강 이쪽, 아스뚜리아스의 마지막 들길에서 잠시 동행
한(28회 글 참조) 후 다시 만난 그녀다.
아마도, 까미노를 통틀어서, 재회를 거듭한 뻬레그리노스 중 으뜸일 것이다.
바르쎌로나에서 발렌씨아(Valencia), 알리깐떼(Alicante), 알메리아(Almeria) 등 지중해 따라
남하, 그라나다(Granada) 입성이 내 마지막 여정임을 들은 그녀는 연락을 신신 당부했다.
바르쎌로나 안내역을 자임하겠다며.
여유 부리며 걷기를 재개했다.
기초지자체가 바뀌면서 AC-234로 바뀐 지방도를 따라 아 까사노바(A Casanova)를 지났다.
빠로끼아 산 미겔 데 보이밀(San Miguel de Boimil)에 속해 있으며 주민 5명(2010년 현재)의
미니 마을이다.
지방도와 함께 가던 노르떼 길은 산 미겔 데 보이밀 교회(Igrexa Parroquial de San Miguel
de Boimil)에 들르기 위해 지방도를 떠났다가 다시 그 도로에 합류한다.
까미노와 교회, 직선화 위주의 신설도로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 곳에 교회가 없었다면 그 길은 아마도 자투리 길로 남게 되었을 테니까.
해발 600~700m대 고원지대가 400m대로 떨어지면서 도로변은 물론 까미노 주변에도 집들이
현저하게 늘어나서 무료를 덜어주는 듯 했다.
보이밀 교구의 마지막 루가르 아 쎄르나델라(A Cernadela) 길에서 우측의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아담한 알베르게가 시선을 끌어갔다.
들러보지 않고 배길 수 있는가.
갈리씨아 지방 자치정부(Xunta)가 2012년 여름에 개설하였다니까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신설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Boimorto)다
장애인용 2베드를 포함해 34베드에 입실료 6€로 컴퍼터블( comfortable)한 순례자 숙소라는
이미지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소브라도~아르수아의 중간 지점이라는 것.
까미노의 성지임을 자부하는 지방정부 답게 알베르게의 신설, 증설, 개축 등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노력은 가상하지만 WiFi를 왜 설치하지 않았을까.
숙박소와 음식점은 물론 사설 알베르게까지도 고객 유치에 동원하고 있을 만큼 뻬레그리노스
에게 절실한 WiFi의 설치를 외면한다면 모순 중 모순 아닌가.
노르떼길은 기초지자체와 동명인 보이모르또(Santiago de Boimorto) 교구의 첫 마을 오 레고
도 세이호(O Rego do Seixo)를 지나 빌라노바(Vilanova)로 간다.
이 때(이 지점에서) AC-234를 떠나 우측의 지방도를 따라야 한다.
한데, 이 도로명이 갖가지다.
DP-1002(CP-1002, AC-0602),
DP-1004(CP-1004, AC-0603), CP-0603.
도로변의 붙박이 표지판과 책자들의 안내(괄호 안)가 제각각이니.
도로명이 다르다 해서 까미노가 달아나거나 행방불명 될 리 없지만 어느 한쪽은 뻬레그리노스
에게 자기네의 경망을 노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후발 신설도로로 인해 도로명의 조정과 정리가 불가피할 수도 있으나 희소한 것이 아니고 허다
하기 때문에 불쾌감 마저 일고 있다.
이런 경우에 나는 안내 책자를 버리고 현장의 표지판을 따른다.
DP-1002(CP-0602)도를 따라서 루가르 오스 아센또스(Os Asentos)와 보이모르또 다운타운,
아르수아가 10km쯤 남은 루가르 간다라(Gandara)를 지났다.
1개월쯤 걸어온 뻬레그리노스에게 간다라는 자칫 유혹의 곳이 될 수 있다.
프랑스 길을 이미 걸었거나 그럴 예정, 또는 아르수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았았다면 10km
쯤 전방에 위치한 아르수아를 생략하도록 유혹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상당히 단축할 수 있는 길의 시점이니까.
뻬레그리노스를 난처하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여기처럼 단축로를 만들어 놓거나 경치 위주의 관광로를 개설하고 택일하라는 것 말이다.
뻬레그리노스의 순례에 지름길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관광이 웬 말인가.
33.6km 한 구간을 통째로 바꿔버린 뽀르뚜 길(Varcelos~Ponte do Lima)에서 불만, 원망을
넘어서 분개했던 일이 잊히지 않고 더욱 생생해 가고 있지 않은가.
마을 간, 지자체 간의 이해와 얽혀 있기 때문인 이런 짓이야 말로 까미노를 타락, 변질시키고
있으며 타기해야 할 추행에 다름아니다.
이름이 CP-0602와 AC-0602로 거듭 바뀌는 도로를 따라 센데예(Santa Maria de Sendelle)
교구의 루가르 프랑소밀(Franzomil)을 스치듯 지나 당연한 코스인 교회로 갔다.
산따 마리아 데 센데예 교구교회(Igrexa de Santa María de Sendelle)다.
특이한 애프스(apse/교회 동쪽끝에 있는 반원형부분)를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교회를
살펴보았으나 나는 건축 양식에 무지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돌 벤치가 있는 교회 앞의 너른 휴게 공간이었으니까.
아쉬움을 안겨주는 아르수아의 교구교회
한반도 남쪽에서 해발 600m~700m대의 고원지대라면 강원도가 떠오르며 대표적인 기초지방
자치체로는 가장 광대한 평창군이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홍보와 달리 기복이 심한 산간지대라 인구밀도는 최하위를 면치 못한다.
스페인의 갈리씨아 지방은 이베리아반도의 강원도라 할까.
청정한 공기와 달리 삭막하다.
그러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해발 700m대까지 올라갔던 고원지대가
반으로 떨어지고 까미노의 분위기도 안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삐녜이로(Piñeiro)와 아스 갈리녜이라스(As Galiñeiras)마을을 지나 기초지자체 아르수아(Ar
zua)에 진입한 노르떼 길이 조금 전에 헤어졌던 AC-234도를 건너면서 가진 느낌이다.
숲과 목초지, 경작지는 여전해도 사람의 체온으로 인한 온기가 느껴진다 할까.
이어서 통과하는 아르수아의 교구 빌라다빌(Santa María de Viladavil)의 마을인 아 뜨라빠(A
Trapa), 까살도에이로(Casaldoeiro)와 뻬쎄녜(Peceñe)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잇따른 마을들에 이제까지와 달리 2자리 수의 주민들이 거주하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을 정치적 동물, 종교적 동물 운운하지만 더불어서 사는 것(공동체)이 상식인 사회적 동물
임을 입증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산따 마리아 데 아르수아(Santa María de Arzúa) 교구의 마을 리바디소(Ribadiso), 오 비소
(O Viso)와 아 아그라 데 발레스(A Agra de Vales)를 지났다.
리바디소는 프랑스 길의 산따 마리아 데 렌달(Santa María de Rendal) 교구에도 있다.
동명이동(同名異洞)이며 교구가 다른 두 마을이다.
프랑스 길 때는 동쪽의 리바디소를 거쳐서 아르수아에 진입하였는데 노르떼 길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리바디소를 통과했다.
아르수아의 북쪽과 동쪽의 동구 밖에 있는 동명의 마을이기 때문에 혼동하는 일이 잦겠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같은 동명이동 현상은 다른 자치지방, 다른 주 간의 일이 아니고 같은 주
는 물론 같은 기초지자체 안에서도 흔하기 때문에 마지막 소속 교구까지 확인해야 한다.
기초지자체 아르수아의 다운타운으로 가는 마지막 고빗길이 끝났다.
오 비소에서 우측의 아 프라가(A Fraga)로 가면 비탈 오르는 고생을 하지 않고 아르수아에 편
히 들어가게 되는데도 또 고집이 발동했나.
신심 깊은(?) 한 초로의 여인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은 길을 택한 고집불통의 늙은이?
그래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느니 한번, 그리고 잠간 고생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지호지간의 아르수아 다운타운으로 갔다.
목적지는 알베르게지만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프랑스 길 때 세요를 받았던 교구교회(Igrexa Parroquial de Santiago de Arzua)다.
까미노는 이변이 없다면 교회를 거쳐서 가는데 동에서 서로 가는 프랑스 길이 이 교회를 경유
하고 마지막 구간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노르떼 길도 이 교회에서 막을 내리니까.
근래에 리모델링 했다지만 12c에 창건되었다니까 최소 800여년을 버티어 왔는데, 2011년 4월
30일(전번에 내가 통과한 날) 이후 3년 11개월 사이에 어찌 되었을 리 없는 교회.
다만, 프랑스길을 걷던 그 때는 활짝 개방하고 세요(sello/stamp)까지 찍어가게 하는 등 상냥
했던 교회가 어떤 화라도 난 듯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라레도를 비롯해 도중의 일부 교회에서는 무사 완주를 축원하는 미사시간도 갖는데 830여km
에 달하는 장거리를 걸어온 노르떼 길의 뻬레그리노스로서는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어떤 퍼포먼스performance) 같은 행사(?)를 상상하며 온 것이 결코 아니다.
피스떼라(피니스떼레), 무히아(묵시아), 포루뚜 길의 빠드론 등에서 주는 순례증서 같은 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단지, 교회가 노르떼 길을 걸어온 뻬레그리노스로 하여금, 가톨릭교회의 신자 여부를 떠나서
감격과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어느 공간을 마련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프랑스 길 뻬레그리노스에게는 아직 남아있으며 노르떼 길의 그들도 한 단원을 완료했다 하나
최종 목적지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일 것이므로 아직은 미완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알베르게?
프랑스 길 멜리데에서 마감하는 쁘리미띠보 길을 포함하여 3개의 메인(main) 루트가 하나로
뭉치는 중요 지점 아르수아.
프랑스 길 하나만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형 까미노에 중량감 있는 두 길(Norte 길과
Primitivo 길)이 포함되어 있는 아르수아.
큰 강이 지천들을 흡수함으로서 아주 큰 강이 되어 바다에 합류하기 직전의 형국이다.
그러므로, 산띠아고 데 꼼뽀스렐라 다음으로 뻬레그리노스로 북적대는 것이 당연한 마을이다.
프랑스 길의 직전에 위치한 멜리데(Melide)와 이웃인 아르수아는 라 꼬루냐 주(La Coruña)의
알베르게 마을들로 그 수(數)의 최다에서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다.
(Leon 주의 Leon과 Lugo 주의 Sarria와 Portomarin 등이 가세하고 있지만)
수요에 따른 공급이라 할 수 있는데 주목거리는 두 기초지자체와 뻬레그리노스의 관계다.
알베르게의 증가와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전환 현상을 보이고 있는 인구.
뻬레그리노스의 증가가 지역의 안정과 발전에 공헌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놓을만한 것이 없는 아르수아다.
지금은 막달레나 예배당(Capilla de la Magdalena)이지만 전에는 아구스띠노스(Agustinos)
수도원 교회였다는 14c의 건물과 사도 야고보에게 봉헌한 산띠아고 교구교회 외에는.
그런데도, 알베르게가 많고 그 지역에 음식점(Bar-Restaurante)이 늘어나고 석양이 되면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뻬레그리노스로 성시를 이루는 현상이 매일 계속된다.
그렇다면, 기초지자체(Municipio 또는 Concello)와 교구들(Parroquias)이 까미노 쟁탈(?)에
열을 올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산띠아고 교회 앞에서 방향을 잘못 읽는 오류를 범했다.
자신만만하여 컴퍼스 대보는 일을 하지 않고 서쪽으로 갔으니까.
내가 찾는 훈따(Xunta/público)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의 위치는 동쪽인데도.
교회를 기준으로 하여 알베르게가 동남서 3방에 부챗살 형으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알베르게들을 순차 방문하는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
서쪽의 첫 방문 알베르게가 10€에 쁘리바도인 까미난떼스(Los Caminantes).
다음도 10€의 쁘리바도 폰떼(da Fonte).
3번째인 비아 락떼아(Vía Lactea) 역시 10€의 쁘리바도로 초대형(120베드)이며 기업형이다.
한데, 내가 물어본 훈따(갈리씨아 지방정부 직영) 알베르게의 위치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동문
서답으로 응했다.
유객 현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해도 경쟁의식 때문일까.
미구에 그럴 가능성이 곳곳에서 엿보이며 아스뚜리아스 지방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곳이 있다.
누에바의 한 뻰시온 주인은 1km가 넘는 곳까지 나와서 차량으로 모셔가고 있으니까.
알베르게를 순례하듯 차례로 방문한 것은 훈따 알베르게 찾기가 난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친 김에 전체 까미노에서 알베르게 많기 1위를 다투는 아르수아의 알베르게 상태를 알아볼
요량으로 방문을 이어간 것인데 중지했다.
미구에, 현재의 공립 알베르게에 비해서 약간 고가의 기업형 알베르게가 이 세계를 평정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짓을 더할 이유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알베르게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되겠다.
시설과 환경이 비교 불량해도 저가라는 이유로 인기를 유지해 왔지만.
극명하게 될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서 피 볼 사람은 아주 안타깝게도 순례의 원형(original)만
고집하는 고지식한 순례자와 빈곤을 탈피하지 못한 나라들의 순례자들 뿐일 것이다.
심각한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에 저가 알베르게의 전폐는 어렵겠지만 한 울 안의 알베르게가
2~3의 등급으로 분리 운영됨으로서 순례정신이 박제가 되고 말 것이 걱정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운영되고 있는데, 나처럼 천막집을 짓는 명분의 충족을 위해서(?) 내가
정한 상한선(10€)이 넘기를 은근히 바라는 뻬레그리노스가 몇%나 되겠는가.
그 날을 고대하며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은 이미 자자하게 회자되고 있는 대로 한국인을 비롯
하여 서방의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 (비기독교인)일 것이겠지만.
일어탁수(一魚濁水)로 치부될 소수와 이들에 영합하는 일부 탈선 상혼 때문에 필그림 정신이
혼탁해지고 순례의 본질이 실종된다면 조성되는 것은 뻬레그리노스 간의 위화감뿐일 것이다.
결국, 물과 기름의 형국이 되고 불가분의 상호관계인 까미노와 알베르게, 뻬레그리노스 모두
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 분명한데 이 지경에 이르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까미노에 침투한 저질 상술
훈따 알베르게 찾기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에 꽤 늦었다.
그런데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베드를 지정해준 오스삐딸레라.
내 여권에서 나이를 확인한, 몸이 부한 편이고 나이 지긋한 그녀의 배려였을 것이다.
알베르게 마다 많은 뻬레그리노스로 북적대지만 낯 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비율로 보아 거의 전부가 프랑스 길로 왔고 노르떼 길 출신도 있겠지만 그들도 바아몬데 이후
모두 물갈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번(4년 전)에 아라곤 길을 마친 날도 그랬다.
프랑스 길 오바노스 알베르게의 밤에 나는 낯 설고 외로운 이방인 처럼 느껴졌었다.
그 체험이 아르수아의 이 알베르게에서 생생하게 반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르떼 길을 모르는 프랑스 길 뻬레그리노스에게 나는 괴이쩍은 늙은이로 보였는 듯.
아무에게나 쉽사리 기억되는 영감인데 아무도 본 적이 없다며 아르수아를 기점으로 하는 아주
짧은 거리를 걷느냐고 물어왔으니까.
성수기에는 매트리스(mattress)를 동원해 60명 이상 수용하는 큰 알베르게지만 WiFi가 없다.
지근의 바르 또는 길 건너의 까페떼리아를 이용하면 된다고 안내한 오스삐딸레라.
그녀의 안내가 없다 해도 뻬레그리노스는 그럴 것이며 모든 까미노에서 고맙게도 WiFi의 오너
측이 협조적이다.
그러나 이곳(아르수아) 사정은 달랐다.
콜라 1잔이라도 마셔야만 패스워드를 물어볼 자격을 갖게 되어 있으니까.
일본의 시코쿠 헨로에서는 순례자에게 약간의 돈을 주거나 손수건, 인형 등 자기가 손수 만든
것으로 짐이 되지 않을 물건을 헨로상(pilgrims)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나는 100엔이 대부분이지만 1.000엔, 5.000엔의 현금, 손수건, 작은 인형, 수예품 등을 받았다.
동행은 못해도 그같은(동행하고싶은) 마음을 담았으며 건강하게 마치기를 축원하는 증표라며
준 것들이다.
모기의 습격을 막는 향기로운 모기향을 듬뿍 가지고 내 잠자리(善人宿)로 찾아온 이도 있었다.
동양과 문화가 다르지만 까미노에서도 뭉클하게 감동적인 일이 종종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순례길에서는 보기 드문 늙은이라 그런 기회가 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 또는 사용 빈도의 다과에 따라 요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도 순례자의 WiFi
사용에 인색한 경우는 내 경험으로는 아르수아가 유일하다.
뻬레그리노스의 무제한 사용을 권하는 안내장(ID와 Password가 적힌)을 출입문 또는 벽면에
부착한 바르(Bar)도 있건만.
노르떼 길은 프랑스 길보다 먼 거리다.
아르수아에서 완료는 했으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필그림 사무소(Oficina de Acogida
al Peregrino)가 최종 목적지일 수 밖에 없다.
단언하건대, 뻬레그리노스는 예외 없이 소위 '순례증서'라는 '꼼뽀스뗄라'(COMPOSTELA)를
받기 바라는데 자랑스런, 더러는 가보로 모신다는 이 증서를 받으려면 그래야 하니까.
'순례자여권'(Credencial)의 발급 장소는 루트마다 있지만 '꼼뽀스뗄라'는 산띠아고의 필그림
사무소 외에서는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km 이상 걷거나 자전거로는 200km 이상 달려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입성해야 하며
반드시 순방향(逆방향은 절대 불가)이라야 하는데 불합리한 조건이다.
사도 야고보의 선교 여행길이라면서 순방향만 인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노르떼 길은 아르수아
까지 60km쯤만 걸으면 되니까.
아르수아 ~ 산띠아고의 40km는 프랑스 길이기 때문이다.
쁘리미띠보 길은 노르떼 길 보다 더해서 2분의 1인 50km만 걷고도 증서를 받는다.
멜리데 ~ 산띠아고 50km는 프랑스 길이니까. <계 속>
소브라도 수도원(위)
아르수아 시청(아래)
아르수아 알베르게(위)
아르수아 교회(Iglexa de Santiago de Arzua/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