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6.mp3
비닐 우산의 추억
어렸을 때 비가 오는 날이면 길거리에서 파란색 비닐 우산을 파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가끔씩 비오는 날, 아버지께서도 비닐 우산을 쓰고 퇴근하는 모습을 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비닐 우산 하나에 500원이었던가 1000원이었던가... 가격에 비해 나쁘지 않은 우산이었지요.
나름 재질도 좋았습니다. 대나무 막대에 대나무 살로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에 파란색 비닐을 붙여서 만들었었지요. 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우산으로서 시중에서 파는 우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닐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찢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요. 어린 시절에 비오는 날, 제대로 된 우산보다 비닐우산을 즐겨 썼습니다. 특별히 나갈 일이 없는데도 비닐 우산을 들고 비오는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비닐 우산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글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리지요. 비닐 우산을 써 본 적이 있는 분들은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비닐 우산을 쓰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쓰고 다니는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손에 좋은 우산을 들고 있음에도 비닐 우산을 사고 싶었습니다. 물론 돈이 없기 때문에 우산을 살 수 없었지요. 혹시 누군가 버린 비닐 우산이 없나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비닐 우산을 발명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사람에게 사탕 하나 건네주고 싶을 정도로 비닐 우산 발명자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얼마 전 비가 내린 날, 외출을 하려고 우산을 꺼냈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투명 비닐 재질로 만들어진 우산입니다. 3000원을 주고 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사은품으로 받은 좋은 우산이 있었지만 한쪽에 세워 둔 투명 비닐 우산을 꺼냈습니다. 요즘 나오는 투명 비닐 우산도 재질이 좋고 튼튼해서 오래 쓰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닐이 투명하다보니 사방으로 시야확보가 되어서 길을 다니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그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간간히 파란 비닐 우산이 생각납니다. 어디서 구할 수 있으면 꼭 하나 얻고 싶습니다. 파란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기대했는데, 요즘 편의점 비닐 우산은 그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튼튼하고 오래 쓰지만, 파란색 비닐 우산처럼 낭만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때의 그 기분으로 비오는 날 길을 걷습니다.
가끔씩 비닐 우산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흐뭇이 웃습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놀이터를 뛰어놀 던 그 때, 100원짜리 아이스크림 사먹으면서 친구들과 잡기놀이하던 그 때, 문구점 불량식품 먹으면서 당을 보충하고 제 입을 즐겁게 했던 그 때.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힘들고 지칠 때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 기억이 지금 제 눈 앞에 놓인 복잡다양한 일들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삶의 활력소가 될 때가 많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요.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은총의 체험을 떠올리며 그 희망으로 사는 우리가 될 때, 분명 하느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 삶을 충실히 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어린 시절 비닐 우산의 추억처럼, 하느님께서 제게 속삭이시던 말씀을 마음 속에서 꺼내 봅니다.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를 좋아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제 마음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오늘을, 내일을 충실히 삽니다.
좋은 추억이 우리에게 웃음이 되고 힘이 되듯,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던 거룩한 은총 체험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다시 체험하리라는 희망으로 지금을 삽니다. 비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향연처럼,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들 마음에 울리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되길 빕니다.
◆ 출처: 살리시안 묵상 원글보기 ▶ 글쓴이 토토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