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釜山廣域市)
한반도 남동단에 있는 광역시. 면적 761.79㎢. 인구 374만 7369(2002). 한국 제1의 무역항이며 제2의 도시이다. 동쪽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하면서 한반도의 문호적 역할을 담당하고, 서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시·진해시(鎭海市)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다대만(多大灣)·부산만·수영만(水營灣)을 끼고 남해에 면하고 있고, 북쪽은 양산시(梁山市)와 접하고 있다. 상공업 등을 기반으로 하는 대도시로서 울산·마산을 잇는 남동해안공업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상공업 외에 연근해 어업활동의 중심항구이다. 시청소재지는 연제구 연산5동(蓮山五洞).
연혁
고대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영도구(影島區) 동삼동(東三洞)·영선동(瀛仙洞), 서구(西區) 암남동(巖南洞), 사하구(沙下區) 다대동(多大洞), 북구(北區) 금곡동(金谷洞) 등의 해안과 강변에 있는 조개더미[貝塚(패총)]들이 있다. 여기에는 석기·빗살무늬토기 등의 생활용구와 먹고 버린 조개·동물뼈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주로 어로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내륙의 평지나 구릉지대에서 발견되며, 그 분포는 부산시내 전지역에 퍼져 있고 특히 동래구(東萊區)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 이미 원시적 농경생활이 이루어져 사회와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여 삼한시대에는 유력한 부족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은 동래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보는 의견이 유력한데, 이 나라는 김해지방의 가야연맹체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동래 복천동고분군(福泉洞古墳群)과 연산동고분군(蓮山洞古墳群)의 규모와 껴묻거리[副葬品(부장품)]의 내용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는 옛 장산국 또는 내산국(萊山國)인데 신라가 이를 빼앗아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동래군으로 개칭하고 동평현(東平縣)과 기장현(機張縣)을 영현으로 하였다. 835년(흥덕왕 10)에 범어사(梵魚寺)를 창건하였다.
고려
1018년(현종 9) 동래현이 울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뒤에 현령을 두어 분립하였다. 동래현의 영현인 동평현은 양주(梁州)의 영현으로 이속되었다.
조선
1397년(태조 6) 동래에 진을 설치하여 병마사가 판현사(判縣事)를 겸하였다. 고려 말부터 창궐하던 왜구가 1396년 동래현·동평현·기장현을 침범하였다. 1423년(세종 5) 부산포를 개항하여 왜관을 설치하였다. 1428년 동평현이 동래현 소속으로 복귀하였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을 폐쇄하였다가 1547년(명종 2) 다시 개관하였는데, 이때 동래현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울산 개운포(開雲浦)에 있던 경상좌수사영(慶尙左水使營)을 수영(水營;지금의 水營區 水營洞)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 정발(鄭撥)은 부산진성을,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는 동래성을, 다대포첨사 윤흥신(尹興信)은 다대포성을 사수하다가 순국하였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송상현을 모시기 위하여 송공사(宋公祠)를 세웠다가 1624년(인조 2) 충렬사(忠烈祠)로 사액되면서 임진왜란 때 이 지방에서 순국한 충신·열사를 합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이 함락된 뒤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599년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07년 두모포(豆毛浦)에 왜관이 다시 설치되었다. 1655년(효종 6) 동래부에 독진(獨鎭)이 설치되고 1690년(숙종 16) 부사가 방어사를 겸하였다가 2년 뒤에 방어사가 폐지되었다. 1678년 왜관을 초량(草梁;지금의 龍頭山 일대)으로 옮겼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 의하면 1759년 동래부 호구수는 6657호 2만 5753명이었다.
근대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에 따라 부산포가 개항장이 되었다. 1877년 부산에 조계(租界)가 설치되었으며, 일본·청·영국의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883년 개항에 따른 항만관리·외교사무를 담당하기 위한 감리(監理)를 두어 동래부사가 이를 겸임하였으며, 부산해관(釜山海關;부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890년 동래감리서(東萊監理署)를 설치하였다. 1895년 동래부는 경상남도에 소속되었으며, 1914년 군면통폐합 때 동래군이 되었다. 1906년 일본 영사관이 폐지되고 이사청(理事廳)이 개설되었다. 1908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1909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하관)] 사이에 연락선이 취항하였다. 1914년 동래부가 동래군으로, 동래부 부산면이 부산부로 개편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으며, 1934년 영도대교가 준공되었다. 1936년 동래군 서면과 사하면 암남리를 편입하고, 1942년 동래읍·남면·사하면을 편입, 시역을 확장하였다.
현대
6·25가 일어나자 임시수도로 반격의 기지가 되었으며 피난민이 몰려 인구가 급증하였다. 1955년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1957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6개 구청을 신설하였다. 1963년 정부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동래군 구포읍·사상면·북면 및 기장면 송정리를 편입하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6년 김해국제공항이 개설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시로 옮겨갔고, 1987년 지하철 제2단계 구간이 개통되었다. 1995년 3월 양산군 장안읍(長安邑)·기장읍(機張邑)·정관면(鼎冠面)·일광면(日光面)·철마면(鐵馬面)과 진해시 웅동2동(熊東二洞) 일부를 병합하여 광역시로 되었다. 이때 통합된 양산군 지역에 기장군이 신설되고, 동래구는 동래구와 연제구로, 남구는 남구와 수영구로, 북구는 북구와 사상구로 각기 분구되었다. 2003년 현재 15구 1군 2읍 3면 221개 동으로 되어 있다.
자연
한반도의 남동단에 있는 위치성과 북서쪽으로 뻗은 험준한 태백산맥의 여맥, 서쪽에 흐르는 낙동강 등의 지형적 조건은 도시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북서쪽으로 금정산(金井山, 802m)·백양산(白楊山, 642m)·고원견산(高遠見山, 504m) 등이 뻗어가면서 이어지는 능선은 구봉산(龜峰山, 405m)에서 남쪽으로 급전하고, 남서쪽에는 천마산(天馬山, 322m)·장군산(將軍山, 144m) 등이 구릉성 산지로 이어져 다대반도·암남반도를 이루며 바다에 돌출하여 부산항의 남서단을 감싸고 있다. 북동쪽에는 황령산(荒嶺山, 428m)·금련산(金蓮山, 419m)을 잇는 짧은 능선의 저구릉성 산지가 남동방향으로 이어가면서 적기반도를 이루어 부산항의 동단을 감싸고 있다. 이 밖에도 계명산(鷄鳴山)·구월산(九月山)·증산(甑山) 등이 있다. 북서산지의 서쪽에서 남서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남해로 유입하면서 양안에 사상 및 사하지역과 김해지역의 넓은 평야를 이룬다. 지류인 죽림강이 김해군 대동면(大東面)에서 녹산 쪽으로 흐르면서 넓은 삼각주평야를 이룬다. 동래분지상을 흐르는 수영강(水營江)은 장산과 황령산 사이를 흘러 수영만에 유입하기까지 침식분지를 이루고,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은 부산항에 유입하면서 서면 일대에 평지를 이루며, 금정구(金井區) 북동부를 범어천(梵魚川)이 흐른다. 해안에는 적기·암남·장군·다대반도가 돌출하여 그 사이로 수영만·부산만·감천만·다대만 등이 있다. 해안선 가까이 산지가 임박하여 대부분 수심이 깊고 해안침식이 왕성하다. 따라서 태종대 등의 암석해안에는 해식애·해식대 등의 해안지형이 잘 발달하였고, 만입부에는 두각지에서 침식된 물질로 자갈해안·사빈해안 등이 있다. 기후는 전형적 해양성기후로 연평균기온 14℃,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5.4℃이며, 연중 0℃ 이하의 평균일수는 10일 미만이다. 연강수량 1466.2㎜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강수량은 4∼9월에 약 78%가 집중된다. 바람은 겨울에 북서풍, 여름에 남서풍과 해륙풍이 심하며, 연중바람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1967년 부산항 전경.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5위

연간 무역규모 1조달러를 돌파한 이튿날인 6일, 부산 감만부두에 수출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부산항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이 1500만TEU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세계 다섯 번째다. 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다.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