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조지 말로리가 그랬다.
산을 왜 오르느냐는 기자들의 성가신 질문에 귀찮은 듯이 내뱉었다.
'It's there!' 거기 산이 있어 오른다고...
별 뜻 없이 한말에 후세의 사람들은 심오한 의미를 붙였다.
그것은 이제 땅위에 있는 어느것 보다 높은 산같은 철학의 문구가 되었다.
75년만에 발견된 말로리의 주검을 보고 사람들은 의문을 던진다.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던 중이었을까, 정복하고 내려오던 중이었을까"
일요일 이다. 등산 학교 다닌다고 쉬어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건설현장의 특성상 토요일은 제일 바쁘다. 보통 밤 열시다.
일요일 쉬는공정을 앞당겨서 하다보니 항상 그렇다.
더구나 중장비 일을 하다보니 하기 싫다고 맘대로 빠지지도 못 한다.
전철역에 나가니 아직 역사에 불도 켜지지 않았고...한참을 기다려 첫차에 몸을 실으니 앉자마자 비몽사몽 이다.
옆자리가 소란스러워 고개를 돌리니 꼬마 아가씨가 동생을 안은 젊은 엄마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계속 질문이다.
"엄마! 저게 뭐야?"
"응 배낭."
"배낭이 뭔데?"
"가방 같은거"
"왜 저렇게 커? 안에 뭐가 들었어?"
"아저씨 산에서 필요한거 점심밥,물, 옷같은거."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라 아무렇지도 않은듯 귀 기울이고 있는데 젊은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짜증으로 변해가고
"산에는 왜 가는데?"
보채는 동생을 고쳐 안으며 엄마가 드디어 폭발 했다.
" 얘!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게 질문 이라고 하니, 물어볼걸 좀 물어봐라"
그리고 한마디 더 던진다.
"그렇게 궁금 하면 아저씨에게 직접 물어 보렴. 참 별놈의 것이 다 궁금하다."
순간 정신이 번득 든다.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 한다.
정말 꼬마아가씨가 내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 해야 하나? 응 거기 산이 있어 오르는거야.
오! 이건 아니다.정말 아니다. 그건 조지 말로리의 말 일뿐이다.
갑자기 천금의 무게로 화두 하나가 던져졌다.
우선 다행인것은 꼬마 아가씨가 내게 묻지 않았다는 거다.
난 왜 산을 가는걸까?
벌서 몇주째 쉬지도 못 하면서,낼이면 또 새벽에 나가야 하면서 말이다.
단지 건강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것들이 많다.성취욕? 도전? 그런건 지금껏 살아 오면서
무수히 경험 했다.고장 나버린 집채만한 장비를 밤새도록 내손으로 기름묻혀 가며 수리해서
아침에 우렁차게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 하나에 그 큰 쇠덩이 괴물이 움직일 때
그 성취감.뿌듯함은 모든 시름을 잊게하는 디젤엔진 소리를 경험하지 않은사람은 모르리라.
그러면 왜일까? 왜?
아마 그건 내가 산이 무척 고팠던 모양이다.
그래 나는 산이 고파서 간다.단지 그것 뿐이다.
배고프면 밥 먹는데 왜? 라는 물음은 필요없다.
산이고파서 산에 가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엄마에게 혼나는 꼬마아가씨로 인해 내가 산에가는 이유를 알았다.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어 갔고,나는 산이 고파서 간다.
세상을 살면서 언제 부턴가 내겐 좌우명 비슷한 철학이 생겼다.
"가득채우지 말자. 가득에서 서너개 모자란 만큼만 취하자"
글로 써 보니 별로 멋있지도 않은 좀 이상한 문구지만 좌우지간에 나만의 삶의 한 방식이다.
조금 덜 채운다는소리다.그게 내겐 가득이다.
조금 모지란 만큼 끝없는 목표가 되고, 그 비운 만큼 한없는 여유가 존재 한다.
산행도 마찮가지다. 조금 덜차게 다니자. 채운다는건 과식이다.
산에 조금 경험이 쌓이다보니 비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잠깐,비박이 아니라 비브악(bivouac)이라 해야 맞는것 같다.
초보시절엔 한문인줄 알았는데 외래어란다. 원래가 불어라고 그러네!
어찌됐건 비브악에 관심을 갖고 나름 고수라는분들의 정보를 찾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과식의 모습이 너무도 많이있다.
가득 채우다 못해 넘치게 가지려 한다.
자연과 함께 한다면서 모든것은 자연을 차단하기에 좋은 성능의 것만 찾는다.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는 천막, 습기한방울 차지않는 매트, 침대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침낭,
그리고 내 일년치 일상복 보다 비싼 우모복,주방의 까스렌지 보다 더 성능 좋은 버너를 구하기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필수의 조건이라며 이유를 단다.과연 그런가? 너무 꼭꼭 눌러 채우는것 같다.
바람 한점 들어오고 습기 좀차면,그리고 밥이 좀 늦게 되고 국이 좀 오래 끓으면 어떤가?
쌀 올려놓고 국 올려놓고 책속의 멋진 구절 하나 읎조리다가 밥이 탄들 어떠리오 국이넘친들 어떠리오.
먹고 살기 위해 피터지는 속세의 모습이 싫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산에서도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모습이 어찌 씁슬하다.
주위를 한번 돌아 보자 흔히들 고수라는 사람들은 거의가 고가장비에 고가의메이커 의류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런 장비의 지식들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고.초보들은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선택한다.
왠지 그래야 관록 있어 보일것 같다.일단 고수들이 사용하는 거니까.
근데 내가 봐도 고가의 메이커 들이 멋은있다.폼난다.
이렇듯 외적인 부분들에 눈길이 가고 관심이가니 아직도 내공이 쌓일려면 한참 멀었는가 보다.
2000m 도 안되는 산을 오르면서 내가 가진 장비와 옷은
그 오래전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빙 의 것들 보다 확실히 좋은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런글을 본적이 있다.
시골 살면서 깜장고무신에 삼베바지 입고 온산을 동네 마을길 돌듯이 다니던 사람이
도회지 산악회 들어와서는 메이커 의류 안입고는 산행 할수없는 지경이 되버렸다고..
자기도 어쩌다 그런 지경이 되버렸는지 모르겠단다.
잘못된문화,잘못된 의식이 모두 과식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어 버렸다.
산행 고수들의 장비탐구와 정보의 전달은 자연의불편을 최소의 것만으로
극복 할수있는 정도 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것이 진정 산을 사랑하는, 먼저 올라본 고수분 들의 몫이 아닐까?
얼굴에 깊은 주름을 가진 노년의 바위꾼들이 초크가루 마저
바위에 함부로 묻히지 않으며 등반 하듯이 말이다.
바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은 장비의 발달로 바위도 못가는 곳이 없다.
어디건 오른다. 그리고 남이 못한것 했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바위 좀 탓다하면 새로운길 하나쯤 개척해야 체면 서는것 같은 모양이다.
제발 못가는 곳도 몇개 쯤 남겨 놓자.그런 여유가 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히말라야에 가면 에베레스트 보다 훨신 낮게있는 마차푸차레 라는 산이 있는데
14좌 아니라 16좌를 오른 엄대장도 오를수 없는 산이란다.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서가 아니라 이것 만큼은 네팔 정부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단다.
신성시하는 산이기에 그대로 남겨지기를 바라는 이 얼마나 멋있는 네팔리 들의 모습 인가...
취하는것 보다 때로는 비워 둘때 더 큰 의미로 와 닿을수 있는것 같다.
옛날 우리네 어르신들은 감나무의 감을 따더라도 모두따지않고 몇개씩은 남겨 뒀다.
이런바 까치밥 이라는거다. 날아다니는 새들 까지 챙겼다.
언젠가 도심지에 감나무 를 심었더니 모양도 갖추기 전에 매연에 찌든 것을 다 따가 버리더란다.
가득 채운다는건 결국 과식이다.죄악이다.
사람이 편할려고 차를 샀는데 그놈의 차에 매달리다보니 차를 위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차의 노예같은 사람을 많이 본다. 나도 경험했던 일이고..ㅎㅎ
산행을 위한 장비인데 어쩌다 보니 장비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더 넓은 산을 위해 암벽등반을 배웠는데 자꾸 그매력에 빠져 들고 있다.
제발 조금 모지라게 빠지자. 결국은 산을 위한 바위다.
산은 바위를 품지만 바위는 산을 품지 못한다. 영원히...
토칼루 25L M 사이즈 (7주차 간현암장 교육후 간현역 에서 아내꺼 빌려 메고) 매달린 배낭이 불상해....
첫댓글 '아마 그건 내가 산이 무척 고팠던 모양이다. 그래 나는 산이 고파서 간다.단지 그것 뿐이다. . 배고프면 밥 먹는데 왜? 라는 물음은 필요없다.'멋진 말입니다. 배고플때 안먹으면 나만 손해보니까 열심히 먹습니다.그래서 산도 열심히 다닙니다. 옛날옛적에 회장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와는 달리 한차원 높은 수준을 배웁니다.'제발 조금 모자라게 빠지자 '공감합니다.항상 안산,즐산하세요.
따로 들일 말이 없네요... 사는 모습은 다양하죠. 그래서 따라도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고 나름 공부도 하고...그래서 먼저 해보신 분들은 안타깝기도 하고...비닐 한장이면 되는데 무슨 첨단 섬유에 이름도 모를 기술에 고가의 장비들...산에서 집사람과 등반하고 같이 자보려는 꿈은 소박한데 산에서 뭘 하려니 겁이나서 이것 저것 사 봤습니다. 한심해 보여도 잘 봐 주세요...
저는 이래서 저희 카페가 좋습니다..저처럼 아직 젊어서 실패나 실수할 기회가많은 이들에게 지금 자리에서 그리고 발디딛기전에 한번더 생각하게끔해주는 글들과 선배님들이 있어서요.. 사람이기때문에..그래서 산처럼 될수가없어서 산에서 느끼고 채울려고 본능적으로 산에 가나봅니다. 살아가며 느껴가는 과정이나 산을 오르는 과정이나 매한가지인듯 합니다..^^...
산을 3년이상 매주 다녀보니 그때의 생각과 변함이 없는것과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변함이 없는것은 산에선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여야한다는 생각.. 그런 변화무쌍한 자연앞에 남들이 좋다는것보단 제 체질에 맞는 등산용품과 몸에 무리를 덜 주는 가벼운 제품을 꾸준히 검토하여 그결과 이젠 등산용품에 대해 해탈비슷한 느낌을 얻었구요.. 달라진것은 산을 가면 갈수록 무리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것입니다.. 그냥 산이 좋아 그곳에서 야생화등 자연을 느끼고.. 쏟아질듯한 별빛을 바라보며 잠잘수있다는것만으로도 등산용품에 지출한 비용과는 비교할수없는 자연을 사랑하는 맘을 얻었다고봅니다.
남들과 틀리게 살아야지하고... 항상 옆에는 집사람이있고 어느용품이듯 2벌사고...메이커사달라고 졸라 사주고 경험해서... 걍사주는것 입는데 아직까지 배낭과 등산화와 비옷상의가 전부인외국제품...비박장비 구입하면서 외산몇개구입하고나니 남들과 사는게 비슷해져 머슥해지곤 합니다 내몸에 맞는것 찾는다는 이유로 아직도 지르는것에 습관이되버린지 오래들 되지 않었나 하는생각입니다 아니 풍덩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메는것이 아닐런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고! 우나기님 누굴 비난 하고싶은건 절대 아님니다.그럴 필요도 없구요.그런데 돈이 정말 너무 많이 드네요.어지간히 벌어선 엄두도 못낼것 같습니다.눈앞에 보이는것에 초연 해져야 하는데 그정도의 내공은 언제나 쌓을수 있을려나....ㅎㅎ
그러게 말이예요. 더 늙기전에 멋도부리고 폼도 좀 잡고 살아야 하는데, 한도 끝도 없으니 산이 참 넓긴 넓은것 같습니다.ㅎㅎ
옛날옛적에님 줄잡으시고 멋부리면되셨지 또 무슨멋을 부리실려구여ㅎㅎㅎ 찌금만 부리세요 현재도 짱으로 멋진데 더 멋져보이면 셈납니다
그건 순전히 몸부림 이예요. 아~ 이제 한번 남았습니다. 이번주 일요일.....끝나면 가까운 산행 한번 합시다.우리도 번개 같은거 해봅시다
인생은 경험인것 같습니다..저 같은 초짜..내공에서 표출되는 선배님들의 글들을 보면서 조금씩 저 자신이 성숙해져가는것 같습입니다...감사합니다...아침부터 황사가 심합니다...모든님 오늘도 웃음이 묻어나는 그런 날이길 빕니다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욕심을 줄여야겟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군요^^
제게 정말 필요한 말씀을 해주셨네요. 비단 산악용품 뿐만이겠습니까...잘 보고 실천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