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샘의 시창작강의(2),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맑은샘]

감상음악 : "The John Dunbar Theme" - performed by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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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강의(2),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3. 시 창작은 언어와의 싸움이며 사랑이다

시를 언어의 예술이라고 한다. 도공이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는 것처럼 시인은 언어로 시를 빚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언어와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갈 운명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시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언어는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말이 안 따라와서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특히 자연의 오묘하고 장엄한 아름다움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이런 경험 속에 빠지게 된다.

숲 속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의 무리, 어마어마하게 무리를 지어 비상하는 새떼들,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 온 산에 불붙은 듯 타오르는 장엄한 단풍, 포개지고 이어지는 수많은 산의 능선들, 하늘에 깔리는 새하얀 구름의 융단들, 밤하늘의 광활한 공간과 쏟아지는 별들, 이러한 자연 앞에 서게 되면 그 아름다움을 속시원히 담아낼 말이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저 감탄만 하다가 "형언할 수 없다",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다" "표현할 길이 없다"는 말로 적당히 끝을 맺고 언어로써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남겨 둔 채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을 붙들고 싸움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과 절망을 이겨내려고 온몸으로 바둥대는 일이 시 쓰는 일인 것이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저녁놀이 져 가는 것이었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나는 그 때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 이 순간도

빨가니 타서 아, 쓰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깎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無名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천상병, <무명> 전문 ----------------

시인은 장엄하게 져 가는 노을을 보며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말할 수 없이"라는 것으로 이 아름다움 앞에서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시인의 심정은 안타깝고 절망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 안타까움과 절망이 오히려 시인에게 시를 쓰고 싶도록 하는 시적 충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원성을 상징하는 광활한 공간의 하늘과 순간적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존재들의 대비를 통해서 그 존재들의 이름없음을 깨닫고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싶은 것이 시인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의 다음 졸시를 한번 보자

 

노을

                                          맑은 샘

남녁 창문을 열면

순결한 마음으로 물든 저 붉은 노을이

서서히 아름드리 가고 있나니

옛날이여

부드러운 손길 내밀어

내 뜨거운 입술을 맞추어 보려하나

아련히 곱게 천천히 저물어 가는

기억들이여

긴 세월

맑고 푸른 하늘도

비, 바람, 구름도, 천둥 뇌우(雷雨)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거늘

새 날 그리워

정성된 마음 붉게 타

서서히 아름드리 가고 있나니

 무슨 성곡(聖曲)들 준비하셨기에

저리도 고운 빛깔들 머금어 울고 계시는지

이젠 아련히 간직하도록

황혼(滉魂)이여

내 품안에 안겼던 모든 것들

찬란히 입맞춤해 주소서

노을이여 

아련히 붉어가는 무대 저물고 막이 오르면

님의 성좌(星座) 홀로 빛나도록

이젠 고웁게 간직하도록

서서히 편히 저물어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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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Brahms piano concerto no. 2 part 3   piano - Soloist --Nino Gvetadze

클릭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FKSP815jg2g&feature=player_embedded

천상병 시인의 시에서는 시의 화자인 '나'와 더불어 지는 노을빛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 존재들의 모습임을 알기에, 시인은 그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새겨 둘 하나의 이름을 찾아내고 싶어했던 것인데, 필자의 졸시에서는 감히 이런 정서가 좀더 구체적으로 노을의 이미지들로, 필자의 돌아가신 시스승을 정서이입하여 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사물에 다가갈 수 없다. 언어 없이는 사물을 부르고 그 존재를 지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시 창작은 이러한 사물에게 그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멋진 일이다. 무명을 유명으로 바꾸기 위해서 그 사물에 가장 알맞은 언어(이름)를 찾는 일이며,  찾아 헤매는 행위이다.

플로베르는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하나의 단어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말을 찾을 때 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일물일어설을 이야기 하면서 작가의 치열한 언어의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언어의식은 시 창작에서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시가 언어의 정수(精髓)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시는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문학 중에서 가장 완벽한 표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언어에 대한 엄격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시에 쓰이는 언어들은 물론이거니와 문장부호 하나까지 살아서 호흡하고 제 역활을 해야 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삐끗하면 전체적으로 얼크러져 버리는 것이다.

최근 나는 어느 다른 문학창작 사이트에서 몇몇 매우 가능성있는 습작시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습작생들 중에서 매우 자존감이 강한 의견을 가진 작품이 있었는데 그는 기성 작가들의 무슨 언어의 권위를 질타하면서 무슨 조사들에 쓰이는 -적, -의라는 표현을  --에 등의 표현으로 애써 파괴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때는 정말 진지한 연구와 공부를 통한 독자적 의견도 아니고 책몇권 읽고 세상을 몰라 부린 하잘 것 없는 습작생의 어린 치기로만 보였다. 사상이 다르던 정서가 다르던 바라보는 대상의 사물이 달리 보이든지 간에 모든 시인, 작가, 독자들, 우리사회의 공용언어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문법을 무시하는 일은 제대로된 베껴무스 포스트모더니즘도 해체주의적 창작도 아니며 독자적 의견도 뭐도 아니고 아주, 매우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그냥 단순한 자폐적 우울성 정신질환일 뿐이다.

무슨 남들이 존경 할만한 이유와 실력을 갖추고 엄청난 문단, 세기적 창작의 경력으로 세계적 대가(大家)의 반열에 오른 이라면 모를까? (아니 그렇다 해도 우리 문법을 무시하는 일은 나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나마 예전 보다는 이토록 행복한 시대에 무슨 개뿔 아직 등단도 하지 못한 낙서생 주제에 자폐증, 우울증 환자도 아니고 상태가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렇게 그 친구의 의견대로 된다면 문학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언어들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파괴만 되고 동물세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밥먹고 할 일이 없어 남아 도는가?  그가 만약 자신의 문제를 반성한다면 큰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모두 본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시창작은 시간이 남아돌아 할일이 없는 또래이 정신질환자 되라고 하는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물며 그런데 습작생들의 시들을 좀 심사해 본 적이 있는 나도 많은 작품들 중에서 일단 문법의 틀림, 맞춤법, 띄어쓰기가 틀린 시들을 읽으면 정말 짜증이 난다. 그 시의 내용이 아무리 좋고 독창적이며 훌륭하고 뛰어나도 기본적인 사항이 틀리면 아예 나도 휴지통행이다. 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미 이런 작품들은 기본적인 시인의 자질과 소양, 마음의 예의, 시창작의 진정성에서 제로이기 때문이다. 자기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도 모른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워즈워드는 "최상의 말을 최상의 순서로 늘어놓은 것이 시'라고 했다. 이 '최상의 말'을 찾기 위해서 시를 쓰는 사람은 수없이 헤매야 하고 언어와 피 흘리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것은 동시에 언어와의 사랑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언어를 찾아가야 하는 시인은 자기의 모국어와 열애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는 꼭 국문학과 우대주의자는 아니다...국문학과의 학문적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사실 내가 경험한 언어를 다루는 치열한 내 직장에서도 국문학과 출신은 매우 희귀종이다. 거의 없다. 또 나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시, 꽤 사회적으로 무게있는 시들을 쓰는 내 시대의 국문학과 출신의 시인들을 보지 못했다. 내 자신도 내가 지향하고 마음에 들 시를 쓰는 구상을 할 때 국문과 커리큘럼을 참고해서 도움된 적은 거의 없다.)

어쨌든 시인은 자기의 모국어와 열애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작가는 국어사전을 베개삼아 잠을 잔다고 했다. 나도 오래 전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할 당시, 어떤 경제학도 친구가 찾아와 "방에 뭔 저리도 큰 국어사전이 있는가?"하고 의아해 한 적이 있다.  같이 원서 읽을 일도 바빠 죽겠는데 필요도 없는 엄청 큰  국어사전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그 친구는 내가 시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나는 사법고시를 때려 치우고 언론고시로 인생항로를 바꾸어 언론사인 내직장에 취직했는데 기사를 쓰는 기자로, 고참 간부로 근 10여년 동안 문법과 띄워쓰기를 갈고 닦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기본적으로 기자가 기사를 쓰는데 국문이든 영문이든 문법이 틀렸다?  시인이 자신의 예술작품을 쓰면서 문법과 띄워쓰기가 틀렸다?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소리다. 소쉬르 이후 춈스키도 자기가 말하는 사상과 앞뒤 맞지않는 이중적 정신생활 때문에 욕먹는 시대에도 말이다.(그는 언어학자로서 성과를 냈지만 좌파의 이상향을 지향하고 현실지적을 하면서 하는 행동은 주식투기 등 자신의 말과 매우 다른 이중적 생활로 인해 세계적으로 비판과 질타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국내에서는 이상돈 박사가 최초 소개했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소위 우리도'강남 좌파'라는 말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왜 우리 인문학자들만 모를까?) 또 이런 점을 말하지 않아도 시를 쓰는데 고등학교 과정의 국어실력만 제대로 갖추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언어를 떠나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자신의 모국어를 애인처럼 아끼고 사랑한 시인이나 작가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중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는 모국어와 열애한 작가로 유명하다. 투르게네프는 장기간을 자기의 조국 러시아를 떠나 외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조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국어를 끔찍히 사랑했다. 그는 늘상 자신의 모국어인 러시아어는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어떠한 사상과 감정이라도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신문에 그가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소설을 쓴 후 나중에 다시 러시아어로 번역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것은 근거 없이 꾸며낸 말이었지만 투르게네프로서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전기문을 쓰고 있던 윈카이로프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이다.

" 나는 일생동안 어느 한 줄도 러시아어로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망나니일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의 나라 말로 글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제 나라의 언어로 형상을 창조하고 사상을 표현하는 데도 힘에 부치는데......."

'예술가가 아니라 망나니'일 거라는 투르게네프의 극단적인 말은 그가 남의 나라 언어로 소설을 썼다는 오명을 벗기 위한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일생 동안 제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게 해 준다. 이런 그였기에 죽음에 이르러서도 "순수한 러시아말을 순수한 그대로 보존하게 하라" 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사물들을 가장 완벽한 이름으로 호명하기 위해서 끝없이 언어를 찾아 헤매고, 언어를 사랑하고, 언어와 싸우는 것이 시를 쓰는 기본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다음편 예고   :    시창작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참여,

                        시창작은 인생의 진실에 대한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