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있어야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아픔이 다가오면 더 예뻐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여기면 되는 거니까. 그러면 되는 거니까.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13일]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2-3) : 에즈라와 느헤미야 (1-2)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이스라엘이 바라던 주님 나라 실체는 공동체원 모두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
선물을 받았다. 화장품이었다. 주는 건 무조건 받고 본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엔 좀 낭패감이 앞섰다. 또 얼굴에 버짐 폈나? 방문자들이 돌아간 후 급히 거울을 보았다. …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선물을 쌌던 포장지. 상품명이 ‘나 이니스프리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하던 예이츠의 시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요즘 화장품은 제목도 꽤 시적이군… 만감이 엇갈렸지만 종합적으로는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나를 누군가가 챙겨주는 곳, 그 곳이 곧 예이츠가 말하는 이니스프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살펴볼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공으로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공동체를 훌륭히 구성해나가는지 그 역동성을 보여준다. 서로의 소통과 이해를 통해 공동체원 모두가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곳,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의 귀환 공동체가 이룩하고자 했던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실체였던 것이다.
개관
히브리 경전 목록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한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다.
원 이름은 ‘에즈라’로서, 각기 다른 책이었으나 최종 편집자에 의해 한권의 책으로 엮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 사건 당시에 기록된 여러 자료들, 2)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회고록, 3) 에즈라 1~6장의 덧붙임 등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를 통해 편집자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사제 에즈라와 평신도 느헤미야의 공동 노력과 그를 통한 하느님 공동체 형성이었다.
실제적으로는 느헤미야(아르닥사싸 1세, 기원전 465~423년)는 에즈라(아르닥사싸 2세, 405~358년)보다 먼저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에즈라가 경전에 먼저 배치된 이유는 아마도 종교적 입장이 강조된 결과인 듯하다.
즉 역사적으로 실제 사회 개혁의 주도적 역할은 느헤미야의 몫이었지만, 그 뒤에 에즈라가 이를 종교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개혁의 정도를 볼 때 에즈라가 전반적인 면을, 느헤미야가 특정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에즈라의 개혁이 선행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러한 입장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에즈라는 느헤미야보다 먼저 귀환했고 개혁도 먼저 단행되었다고 본다.
역대기 상하와의 관계
1932년 레오폴드 춘쯔(Leopold Zunz)이후, 역대기 상하는 역대기계 역사서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학자들은 이 책들(역대기-에즈라-느헤미야)이 ‘역대기계 역사학자’라고 불리는 동일 저자(혹은 저자 그룹)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서로 다른 저자의 작품임을 주장하는 논의도 존재하고 있다.
저작 시기
에즈라 1~6장은 헬레니즘 시대 초기(기원전 3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최종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도 이때쯤으로 여겨짐). 그런데 히브리 성경에 배치된 대로, 에즈라서의 형성이 느헤미야서에 앞서는 것으로 보여 지고, 또한 느헤미야에 관련된 마지막 날짜는 기원전 430~424년 사이가 되므로, 결론적으로 이 두 책은 기원전 400년~300년대에, 가장 중요한 두 번의 편집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숙제를 푸는 과정
위령성월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왠지 ‘인생은 40부터’ 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어릴 때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그저 나이든 분들 스스로가 무료하고 힘없는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왠지 서글프고 맥 빠지는 담론 정도로만 생각되던 그 말….
그런데, 역사서 원고를 준비하고 대학원의 지혜문학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나도 이제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그 숙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파악하게 되는 때가 40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이전에는 자기 숙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시간들일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살펴보게 될 역대기계 역사서에 대한 내용들이 자기 인생의 역사를 하느님 안에서 풀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20일]
패배에 대한 두려움 떨쳐버리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폭풍우로 집이 날아가니 전망이 좋아졌다.’ 오래전 본 ‘쉬핑뉴스’라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 올랐던 구절이다. 긴 고난과 폭풍의 여정 속에, 주인공 가족이 연연해하던 낡은 가옥이 날아가 버리자, 오히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광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인간은 부여잡고 있는 것을 결국 놓치고야 말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 가장 비극적인 처지에 놓였을 때에, 표현할 수 없는 담담함과 의외의 평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놓칠까봐 연연하는 마음이 사실은 우리를 시달리게 하는 지옥이며, 공포의 원상이기 때문이다.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성전’(temple)이라는 특별한 ‘집’의 붕괴와 그와 함께 무너진 이스라엘의 자의식을,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 새롭게 시작되는 이스라엘을 전해 준다. 사실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새 이스라엘을 꿈꾸며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패배를 통해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 가능했던 시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즈라서
에즈라서는 부분적으로 아람어로 서술되어 있다(4, 8~6, 18; 7, 12~26). 아람어는 페르시아의 공식 언어로서 왕실의 공문들은 대부분은 아람어로 기록되어 전달되었고, 편집자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아람어 문헌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유배 이후 파급되기 시작한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언어로 정착되고 예수님도 아람어를 쓰셨다고 알려져 있다.
명칭
에즈라는 ‘야훼께서 도와주신다’라는 뜻의 히브리말이며, 페르시아의 사신 격으로 유다 지방에 파견된 사제 출신 율법학자의 이름이다.
구조와 내용
에즈라서는 모두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1~6장)는 이스라엘의 귀환과 성전 재건, 후반부(7~10장)는 에즈라의 개혁을 다루고 있다. 간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환한 이스라엘은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의 지도 아래 성전재건에 착수하지만 이내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우여곡절 속에서 성전 건축은 재개되고, 결국 기원전 515년 성전을 봉헌하여 그곳에서 과월절 축제를 지낸다.
이후 아르닥사싸 임금에게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 에즈라가 도착하는데, 그는 혼종혼을 우선적으로 정리한다. 바빌론의 지배 아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그곳의 이방인 여인들과 결혼하여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유다 지방에서 추방(10장)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명칭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야훼께서는 위로이시다’라는 뜻이다. 에즈라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활동했다면, 느헤미야는 정치적-사회적 측면에서 공헌한 인물이었다.
수사의 페르시아 궁정의 음료 담당관이었던 느헤미야는 기원전 455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라는 전권을 부여받는다. 후에 그는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고(느헤 5, 1) 귀국하여 성벽을 개축하고 여러 사회적인 개혁을 도모한다.
구조와 내용
느헤미야서는 모두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느헤미야가 아르닥사싸로부터 성벽을 재건하라는 허락을 받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후 그는 주민들끼리의 채무 관계를 해결(5장)해주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8~10장) 에즈라에 의한 율법(모세오경) 선포와 초막절 축제 내용이 등장한다. 마지막부분(11~13장)에서는 예루살렘 성벽 봉헌과 느헤미야의 두 번째 사회 개혁(성전 정화, 레위인에 대한 대우, 안식일, 혼종혼 금지 등)이 제시된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무너짐이 고통이 되는 이유는 그것을 새로 시작할 절호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그저 상처로만 묶어둔 채 슬픈 마음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 내부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기 어려운 까닭은 상처를 고집스레 묶어두고 있는 스스로의 집착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 뭐가 그리 두려운가요…” 앞에서 언급했던 영화에 나오는 어린 딸이, 늘 불안과 열등의식에 시달리던 아빠에게 물었던 내용이다. 혹시 무너짐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정식으로 물어야할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운명을 걸고 물어야할 이 질문에서 나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27일]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4) : 역대기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이 사회 어리석음 독설로 매도말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해·용서해야
‘퍼햅스’, 삶을 살아가면서 문득 각별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아마도’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용서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듯해서….
‘역대기’는 이러한 지나간 역사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다시 서술된 역사서’이다. 모래 위에 내 발자국만 찍혀져 있어서, 어려운 시절 나를 외면하신 하느님을 원망하며 지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모래 위에 찍혀있던 두 개의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 아니라 나를 업고 오신 하느님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되는 체험, 바로 그런 체험 속에 ‘다시 쓰인’ 역사서가 역대기인 것이다.
개관
역대기 상하는 아담에서 유배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후의 이야기(귀환 공동체)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서가 담고 있는데, 이 두시기를 연결해 주는 카루스 칙령은 역대기 하권의 마지막(2역대 36, 22~23)과 에즈라서의 첫 부분(에즈 1, 1~4)에 중복되어 등장한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서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책이다. 칠십인역의 구성을 따르는 우리 성경에서는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지만, 히브리말로 서술된 히브리 성경(BHS)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역대기가 등장하고 있고, 이는 역대기야 말로 구약성경 전체를 종합적으로 수렴함을 의미한다.
구조와 내용
이 책의 내용은 아담에서 바빌론 유배, 그리고 귀환하기 직전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어서 창세기에서 열왕기까지 서술되고 있는 내용의 반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오경과 신명기계 역사서의 내용보다 훨씬 더 해석되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와 편집
역대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2역대 16, 11; 2역대 27, 7), 열왕기 주석(2역대 24, 27),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쓴 기록(2역대 26, 22) 등 다수의 문헌들을 참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역대기는 1)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기본 문헌으로 참조하고 여기에 2) 여러 역사 문헌들, 3) 예언전승들을 참조하여 현재의 역대기를 완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수한 생략기법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많은 부분 신명기계 역사서가 언급했던 내용들을 삭제하고 있다. 특별히 생략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출애굽 사상의 부재: 역대기에 출애굽, 족장들, 시나이 계약 사건들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역대기가 이스라엘 사고의 핵을 사건들보다는 예루살렘 성전 예배로 집중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2) 북 왕국에 대한 언급이 부재: 북왕조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남북 분열이후, 북 이스라엘을 더 이상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는 다윗 왕조의 정당성과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정통성을 합법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3) 다윗왕조에 대한 이상화: 하느님을 섬긴 대표적인 왕으로 다윗을 추대하기 위하여 그 위상에 방해가 되는 사건들(다윗의 간통, 압살롬의 반역, 솔로몬의 통치 말년의 사치와 우상 숭배 등)이 통째로 빠져있다.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픈 역사가 소중한 이유
지나간 역사의 우여곡절과 아픔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선물이요 은총일 수 있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을 행동을 지금은 선뜻 할 수 있게 하는 동인(動因)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 아무리 애원해도 야멸차게 거절하고 그냥 자신에게만 연연하던 이들도, 오류와 실패, 좌절의 역사를 거치면서,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나처럼 존중받기를 원하는 인격체임을 깨닫게 되지 않던가. 이스라엘은 유배라는 혹독한 고통을 통해, 고통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고통이 왜 자신들의 역사가 되어야만 했는지를 절절히 깨닫게 된다.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지 못했기에 다가온 고통이 유배였음을, 그리하여 무엇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회의 어리석음을 비판이나 독설로만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안고, 진심어린 미소로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 역시 철없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어리석었던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아는 ‘진정한 나’를 만들어 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각자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4일]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5-6) : 전체적 신학 (1-2)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역대기계 역사서에서 주목한 주제는 유배로 흩어진 유다인들 규합하는 것
신문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다. 배우자의 수입이 많으면 대한민국 남성들 중 34.8%는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 마음이 있다는 기사였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집안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던 전통적 구조가 붕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경제력이 곧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적 구도가 가정에까지 들어와, 가정의 구조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역대기계 역사서는 귀환 후, ‘뒤집어진 권력관계’가 야기한 문제들 속에서, 새롭게 질서를 잡아나가고자 저술된 역사서였다. 구체적인 신학적 메시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신명기계와의 관계
유다인들은 이미 역사서(신명기계 역사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기계 역사서’를 새로이 제작한다. 역대기계가 신명기계 역사서의 관점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 새롭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면 ‘사제적’인 시각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경신례와 사제, 레위인들의 부상,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정 공동체 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참된 이스라엘은 누구?
역대기계 역사서가 무엇보다도 주목하고 있는 주제는, 유배로 인해 산산이 흩어진 유다인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이 바빌론으로 유배 가자, 팔레스티나에 남게 된 이들은 변두리 계층의 사람들뿐이었다. 도저히 저항세력이 될 수 없다고 간주된 이들만 남게 되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60년 가까운 유배기간 동안 지도자 없이 지내기란 불가능이었다. 자연히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북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이 모두 바빌론제국의 지역관구로 귀속되면서 사마리아인들, 이방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유배 갔던 이들이 돌아오면서부터였는데, 유배에서 귀환한 이들(소위 ‘남은자’라고 불리던)은 이전의 기득권을 되찾기 위해 주력하였고, 팔레스티나의 잔존인들(소위 ‘땅의 백성들’이라고 불리던)은 새로 돌아온 이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다.
한편 삶의 터전을 이미 바빌론에 마련한 이들은 본토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였고, 이집트에도 커다란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역대기계 역사서는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라는 화두를 대주제로 삼는다. 유배라는 긴 공백 동안, 변두리 세력과 기득권층 사이의 권력구조가 뒤집어지고 대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자, 이스라엘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기나긴 역사서술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예루살렘이야말로 하느님이 뽑으신 도시이고, 그곳의 성전이야말로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장소임을 주장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함께 모인 예배 공동체’야말로 진정한 이스라엘의 맥을 잇는 참 이스라엘임을 주장한다.
성전과 사제계급의 부상
이렇게 예루살렘의 성전을 강조하다 보니, 역대기계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전에 집중하여 재해석하고 있다. 또한 성전에 대한 집중된 관심은 사제계급과 레위계열의 부상을 자동적으로 가속화시켰는데, 결국 혼란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을 종교적이고 경신례적인 관점에서 재조직 하자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강조는 역대기로 하여금 솔로몬 이후의 역사를 남 유다의 역사로만 제한시키게 하였다. 즉 북왕국의 역사를 역사에서 제외시킨 것인데, 이는 ‘땅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외로움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성경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심기를 드러내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같은 반전도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들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외로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 속에 섞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잘 지내려고 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감정은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에즈라 느헤미야 시대에 일어난 ‘땅의 백성’(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과 유다인들의 갈등(에즈 4, 1~4)은 사실 유다인들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오직 유다인들 뿐이라는 무서운 선민의식 때문에 야기된 결과였던 것이다. 유다인들의 지독한 배타성으로 인해 아웃사이더가 된 땅의 백성들… 약자이기 때문에, 수줍은 미소로 다가가는 것조차 무시되는 구조는 옛날부터 있어온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외로움을 열병처럼 앓고 있나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할 때이다. 연말 아닌가?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11일]
실정법 위상가진 모세 율법(성경) 이스라엘 삶 전반에 중심으로 자리잡아
올 한 해 동안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넘기다 보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편안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달에 근심스런 일이 많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메모가 이것저것 많을 때에는 뭔가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던 때이고, 반대로 한글자도 없이 여백만 계속되는 때는 세상 편하게 살 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꼭 걱정스런 일이 생겨야만 비로소 삶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마주했을 때 작성되었다. 물론 현재 살펴보고 있는 역대기계 역사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늘 해오던 말이지만, 힘든 삶은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생명과 삶을 체험하게 하는 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주에 이어 역대기계 역사서가 표현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윗왕조와 솔로몬
역대기계 역사가가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다윗왕조의 위상이다.
창조 때부터 유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역대기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다윗의 통일왕국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윗 이전 시대(아담에서 사울까지)를 간단히 족보로 처리하고(1역대 1~9장), 사울의 죽음을 다윗이 등극하기 위한 단초로만 제시하며(10장), 이후(11~29장)에 다윗 왕국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 봐서도 이 역사서가 다윗왕조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음은 쉽게 판별된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다윗의 정치를 신정(神政)의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 때문에 다윗은 정치적 인물이라기보다 신정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로서 부각되어 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할 때, 정치력이나 군사 지도자로서의 모습 보다는 예배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종교적 이미지에 힘입어 신명기계 역사서가 보도하고 있는 바세바와의 간통사건, 혹은 왕자들의 난 등은 완벽하게 삭제되어 있다. 물론 솔로몬도 다윗처럼 이상적인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그의 품위를 손상시킬만한 사건들(통치 초기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사건, 말년의 사치와 우상숭배, 이방여인들과의 혼종혼)은 하나도 역사서 안에 기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 사상
다윗 왕조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남 왕국에 대한 부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입장은 신명기계 역사서의 주요사상이었던 인과응보사상으로 연결된다. 역대기계에 의하면, 남왕국이 북왕국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훼의 계약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이유 때문에 상응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역대기의 입장인 것이다.
혈통에 대한 강조
또한 역대기는 ‘족보’라는 특별한 장르를 통해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예배 공동체의 특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과의 분리가 가장 시급했고, 이러한 관점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혼종혼을 금지하고(에즈 9~10장; 느헤 13, 23~27) 이미 결혼한 이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추방하는 완고함을 드러낸다(느헤 13, 1~3).
모세의 율법
성전에 대한 강조와 함께 매우 강하게 부상된 것은 모세의 율법, 즉 토라였다. 에즈라에 의해 초막절 축제 때 선포되면서 귀환 공동체의 실정법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모세의 율법은 귀환자들(남은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려는 대사회적 움직임의 내부적 기준이 된다(느헤 8, 1이하). 이로써 모세의 율법(성경)은 이스라엘의 삶 전반에 걸쳐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한 사회(종교)개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러한 상황은 에즈라를 ‘유다이즘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하며, 실정법으로서의 토라는 이스라엘을 율법위주의 사회가 되게하는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무지함으로부터의 해방
현실을 정확히 보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그 어떤 장애도 넘어서서 진행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구약성경의 역사서들은, 그 넘지 못할 장벽을 뚫어주시고 그 장벽에 문을 내어주시는 분은 누구도 아닌 하느님이심을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자기 삶의 역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간 순간 이어지고 있음을 여간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나야 내가 그동안 하느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구나, 그래서 다쳤구나, 를 깨닫게 되니 말이다.
2006년에는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나의 무지함에서 제발이지, 한걸음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이런 결심을 한 것 같은데, 그 전 해에도…!?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