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속 가능한 본당이 되기 위하여
로마에 가서 대구대교구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과 장신호 요한보스코 총대리 주교님을 뵙고 왔습니다. 주교님들과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우리 성당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서였고, 둘째는 우리 성당의 본당 설립 연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오늘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두 분 주교님들께 우리의 현실에 대해 소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원양어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많은 분들이 한국이나 타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곳 라스팔마스에 남아 있는 우리 교우들의 평균 연령은 상당히 고령화되었습니다. 교우 숫자도 많이 줄었지만, 특히 젊은 신자들이 없다는 것은 우리 성당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10년~15년 안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어려운 현실을 주교님들께 말씀드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성당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에 대해서도 알려드렸습니다. 1981년에 가톨릭 신앙공동체가 생긴 후 40년 넘게 역사를 이어오고 있고, 주보성인으로는 자랑스러운 한국 순교성인을 모시고 있으며, 유럽에 15개가 넘는 한인 공동체 중에 현지 교구로부터 ‘parroquia’ 즉 ‘본당’으로 인준받은 곳은 우리 라스팔마스 성당이 유일하다는 사실과, 더군다나 자체 성당 건물까지 가지고 있는 곳도 우리가 유일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자들의 신심이 깊고, 어디 내놓아도 모자람이 없는 라스팔마스 한인성당이 예전에 비해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미래 지속 가능한 성당이 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곳에 살고는 있으나 한인성당에는 나오지 않고 있는 30대 후반~50대 사이의 비교적 젊은 신자들이 장차 이 본당의 주역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앞으로 최소한 20년~30년 정도는 유지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성당이 없어지지 않도록 제가 준비 작업을 잘 할 테니, 다음 신부님은 스페인 말을 잘 하고, 젊은 신자들과도 잘 어울리며, 한국적인 마인드보다는 외국 땅에 사는 신자들을 잘 이해해 주는, 그런 마인드를 지닌 신부님을 후임으로 보내주신다면, 우리 성당에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고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교님들께서도 지지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성당 역사에 있어 아주 중대한 사실에 대해 교회 공적인 자문을 주교님들께 구했습니다. 라스팔마스에 가톨릭 신앙공동체가 시작된 것은 1981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본당이 설립된 때는 언제일까요? 2011년에 ‘30년사’ 책자를 발행하면서, 1981년을 본당 설립으로 보았고 2011년이 30주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본당은 무엇입니까? 관할 신자가 있어야 하고, 신자들을 사목할 사제가 임명되어야 하며, 해당 지역의 교구장 주교님이 본당 설립을 공적인 문서로 인준해 주어야 본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이 다 채워지기 전에는 정식 본당이 아니라, 전사(前史)에 해당합니다. 라스팔마스에는 유학 신부님이나 다른 지역의 신부님들이 잠깐씩 방문하여 세례자들을 배출하면서 신앙공동체가 탄생했고(1981년) 발전했습니다. 그러다가 대구대교구로부터 상주 신부님으로 정식 임명을 받은 1대 전재천 신부님이 오셨고(1994년), 2대 주임 문봉한 신부님 때인 1998년 2월 2월, 카나리아 교구장 주교님께서 이 지역의 한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속인적(屬人的) 본당 설립을 인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라스팔마스 신앙공동체의 시작은 1981년이지만, 라스팔마스 한국 순교성인 본당의 시작은 1998년입니다. 이 사실을 주교님들께 자문을 구해 확실하게 확인하였습니다. ‘103위 순교성인 제대로 알기’ 운동을 하는 중에 ‘우리 본당 역사 제대로 알기’도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올해는 공동체 설립 43주년, 본당 설립 26주년인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긴 인생을 살아보니 10년이란 시간이 길던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10년이 아주 긴 시간 같아도, 어쩌면 눈 깜빡하면 지나가 버릴 시간처럼 너무나 짧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 소중한 라스팔마스 한국 순교성인 본당이 10년 후면 허무하게도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미래 지속 가능한 본당이 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10년이 긴 시간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새롭게 되지 않으면, 그래서 별 다른 준비를 하지 않으면, 10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릴 것이고, 더 이상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우리의 땀과 노력이 깃들인 이 소중한 본당이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본당의 날 행사를 잘 마쳤으니, 그리고 오늘 이 강론을 들으셨으니, 바로 오늘부터 미래 지속 가능한 본당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더 많이 기도합시다. 그리고 변화하고 새롭게 되는 첫 걸음을 함께 걸어갑시다. 저는 본당신부로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며 미래 지속 가능한 본당이 되기 위한 준비를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믿고 마음으로 일치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본당이 되도록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4년 10월 첫 주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