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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uwhkf/JvX3/44 - In English (영문 번역)
2012년도 유럽 해동검도 세미나 차 프랑스 몽플리에에서 머물면서
이 기간 중에 해동검도 수련과 더불어 강조하였던 부분들을 글로 적어 본다.
여기서도 역시 기운의 흐름을 알아서 깨우쳐야 된다는 것으로써 각 세미나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만 했을 뿐 기본 내용은 똑 같은 것이다. 몸 속 기운의 흐름을 알면서 그 흐름을 통해 우리 주변과 어우러진 전체 기운의 흐름을 잘 쫒아가면,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결국 무술 수련의 맥락도, 결국에 가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을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표현방법만 다르게 할 뿐 같은 내용을 강조한 내용이다.
장소 : 프랑스 몽플리에
Place : Montpellier in France
기간 : 2012년 5월 3일 부터 12일까지
Date: From 3 to 12 May 2012
제목 : 자연의 이치
Subject : The Principles of The Nature
1) 제로화의 원리(What is the Law of Natural Balance?)
2) 깨달음(What is Enlightenment?)
a. 자연 형평의 원칙(Natural Law ) - 자연은 에누리가 없다.
b. 인생에서 무임승차란 없다.( No Free Ride in Life)
3) 결언 (Conclusion)
1) 제로화의 원리(What is the Law of Natural Balance?)
"제로화의 원리” 라는 말은 모든 상황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돌려 놓게 되면,
우선 육체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병의 원인이 없어지게 되며, 치료를 가능하게도 하며,
자기 주변의 일들이 불편함이 적게 되어,
일을 효율적으로도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 될 수도 있으며,
자기와 자기 주변과의 소통이 원할해 짐으로써,
건강하고 즐겁게 모든 일들을 재미있게 할 수도 있게 되어,
결국에는 우리 생활 속에서 행복이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이게 제로화의 원리이며,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우리 몸을 고치도록 자연에서 받은 소중한 선물 중에 침과 뜸을 들 수가 있는데,
이의 치료원리가 몸의 상태를 자연과의 소통 속에서, 반드시 그 이치에 순응하여,
제로화 시키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신체 각 부분 부분의 불편한 부분을 기운의 가감( +, - => 0 )로
막힘이 없이 기운을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를 제로화 시켜 정상화 되도록 한다는 이치이다. 이는 수돗물을 공급하는데 각 지역에서의 압이 똑같이 제로로서 일정치 않으면
물이 흘러가질 않는데서 나온 말로서 상수도의 원리와 같은 맥락이라고 배웠다.
몸이 불편하거나 환자의 경우, 몸의 각 부위의 압이 다르며, 막힌 곳에 따라,
기운의 흐름의 정체에 따라 각 부위의 압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기운이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어느 부위가 지극히 약해 져있거나,
강하게 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를 잘 간파하여 각 부위의 조화를 맞추어
그 정도에 따른 강함과 약함을 동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제로화 시킬 수 있을 때, 신체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결국에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의 지속적인 행위가(마음 씀씀이와 음식물섭취 등)
자기 스스로 몸의 자동작동에 의해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더욱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연 속의 조화를 전제로 하는 제로화의 원리이며,
우리 몸의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이롭게 되도록 바탕이 되어 있는 이치 중의 하나를 인간적인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 “제로화의 원리”이라고 감히 사용해 본다.
2)깨달음(Enlightenment)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하라고 한다.
모두들 다 잘 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즉각적인 주변상황에 대처되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는 확실히 알기도 한다.
아는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참으로 쉬운 일일 수도 있다.
사람이 병이 생겼다.
그 원인은 외부의 물리적 충격을 제외하고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하나는 자기 마음과 성격에 따른 스트레스, 과도한 일 등에서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리 몸을 영위하기 위해 섭취되는 음식물에 의한 것이다.
아주 건강한 육체의 경우에는 비록 좀 힘든 일을 했다거나,
좀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았다하더라도 이내 자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
되며, 설사 좀 맞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자동 시스템에 의해 되도록
빨리 정상화 시키도록 되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 자동 시스템들의 성능이 무력화되어감에 따라 민감해지기도,
둔감해 지기도 하는 여러 과정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감각적으로 알게 되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의해 판단될 때는 나쁜 정도가
상당히 악화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당뇨병 고혈압 등의 병들은 이미 몸 안팎의 불필요한 행위와 습관, 자연스럽지 못한 생각과 마음 등에서부터
최소한 십수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자연의 이치를 잘 따라야 함은 인간이 자연 속의 지극히 조그만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마땅히 따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인들이 그러했고,
많은 종교에서 “서로 사랑해라” 라고 한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데는 반드시 사랑이 기본이 되고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는 말이다.
이 사랑의 의미는 남녀 관계의 단순한 사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속에서 무한대로 소통되고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에너지를 극대로 느끼고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최선을 다하고,
베풀어라.
라고 항상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를 바로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열쇠일 수도 있다.
자연의 이치는 아주 간단하며, 알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초등교육에서 다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진실된 마음으로 실천의 삶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자기 생활 속에서 힘들어 하고,
그래서 몸이 빨리 지치기도 하며,
불편해 하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일찍 죽는다.
단지,
조금 더 알았던 사람이,
조금 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조금 더 자연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인간으로서 표현을 자기의 주관 속에서 그 설명을
좀 더 멋있게 좀 더 인간적인 마음으로
너무 자신의 지적수준에 맞추어 나타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 그 설명과 이치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이 된 경향이 있다.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면 그것이 최고인 것으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나타낸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 제로화의 원리에서도 깨달음을 간단히 설명해 볼 수가 있다.
깨달음이란 “뭔가를 알아차렸다“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몰랐던 것을 어느 순간 또는 많은 자기 생활 속에서
문득 알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무언가를 알게 되었으면
이제 시작인 것이다.
“깨달았다” 라는 말은
“이제 정상이 되었다.”
“이제 주제파악을 조금 했다.” 라는 말이며.
“여태까지 내가 잘난 줄로만 알고, 내 생각이 맞다라고 생각했고,
내 행동이나 생각과 말에 모가 났던
내 자신을 이제서야 보았다”
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아프리카 원시부족이 어느 날 콜라병을 우연히 줍게 되어 신기하고 기이한 물건으로 신성시하여, 매일 절을 하다가 어느 날,
이게 콜라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앎으로써 자신의 사고와 행동은 정상화 되어 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상화란 제로화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깨우쳤다라는 말은
아무 것도 깨우친게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본인이 배운 우리 생활 속의 또 다른 표현으로,
깨우쳤다는 말은 주위 상황에 잘 녹아 들어가는 것이며,
주위에 동화되어 내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깨닫는 것이며,
이것이 제로화의 원리로도 설명되어 질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속에
남에 대한 예의나 배려 없이 내 생각만 주장한다면
이는 나의 못난 사고방식이며,
내 주관에만 맞추어 상대를 꼬집고 헐뜯는다면,
이는 나의 못나고, 모난 행동일 수 있어,
언젠가는 후회와 원망이 따르기가 쉽고,
결국에는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고 아프게 되며,
자연의 조화 속의 순조로움과 순탄함에서 벗어나고,
제로화의 원리에 맞추어 지지않아 일이 깨어지기 쉽고,
어렵게 되기 십상이 되어버린다.
a. 자연 형평의 법칙(Natural Law)
자연은 주어진 조건은 어디에서나 똑같으며,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을 항상 자연스럽도록 유지 계속시켜나가는 법칙이 만들어져 있다. 물질적 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계 속에서 적용되도록 되어 있으며,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중용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을 하는데, 이는 그 의미를 다르게 본다. 암튼 자연 속에 사는 우리들은 모든 일들을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데 자연스럽지 않으면, 우선 개인적으로 힘이 들게 되며, 불편해 지고, 상호간에는 거부감이 올 수가 있고, 단체생활에서는 불만과 의심으로 비약될 수가 있어 결국 그 위치에서 튕겨나가든지, 뛰쳐나올 수밖에 없다.
“자연은 에누리가 없다“
자신만 편하기 위한 어떤 행동,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어떤 도모 등등 모든 것들이 가장 먼저 남을 위한 배려와 이해가 있지 아니하면, 말이나 행동들에 있어서 결국 알게 모르게 잘못 자행된 것이나 가식된 모든 것들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자기 스스로가 노력하여 얻지 않은 것들,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고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는 모든 말과 행위들은 다 거짓이 되며, 부질없는 것들이 되고,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후회와 원망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은 최선을 다한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선행에 대한 상은 상일 수가 있고, 악행에 대한 벌은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사실이며, 상과 벌은 결코 서로간 상쇄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또는 설마 하는 맹목적인 기대나 자기편의주의석 사고발상이나, 기적 같은 우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자연 속에 행해지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라는 말로서,
무엇을 행함에 있어 두려워할 줄 알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나서 적군이 총칼을 들고 쳐들어오고 있는데, 종교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자기착각아래 마냥 앉아서 책만 읽고 기도만 하고 있다면, 또는 자신들의 자식에게 몸소 참된 교육은 시키지 아니하고 기도로서 잘 되기만을 바란다면, 또는 공부는 한 시간 해 놓고 열 시간 기도나 절로써 바램을 성취하려 한다면, 또는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사람이 몸은 움직이기 싫고, 부지런하지 못한다면, 몸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입으로만 설파하려 든다면, 과학자가 많은 실패의 쓰라린 경험 없이 훌륭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이들 모두가 참으로 어리석은 짓들일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글로써 읽을 때는 대다수가 쉽게 이해를 하기도 하지만 실제적 상황이 변화되어 자신에게 부딪쳤을 때는 그렇게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들에 대해 자기스스로가 유심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다.
자연 속의 우리는 반드시 한 만큼 이룰 수 있고, 자기가 실천한 만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거짓이 있을 수가 없고, 신비함도 우연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요행을 원하며, 편하게 뭔가를 쟁취하려하는 경향과 속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경우를 내 자신과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종종 사람들은,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잘 안될까 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거짓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힘으로 윽박질러 무언가를 얻는다면,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잘못과 불행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도 하나의 이치이다.
b. 인생에서 무임승차란 없다 - No Free Ride in Life
놀고, 먹으며 건강하고 사랑하고
행복질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정신없이 왔다가
정신없이 후딱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내일이 중요할 수도 있고,
과거 또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 몸과 마음으로 알 수 있다면 과거를 논할 생각할 시간도, 저 사람이 어떻고 이 사람이 어떻네 라고, 콩이네 팥이네 할 여유도 없다.
그저 밥 먹을 때 열심히 잘 챙겨 먹고,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가족 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부딪치는 인연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저 지금 그 순간순간들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중하며,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사라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자기공부나 자기수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결언(Conclusion)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잡념이 생기고 병이 생기게 되어 있고, 홀로 편하게 뭔가를 쉽게 하려하면 엉뚱한 망상으로 자신과 주변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 망쳐 놓기 일쑤다.
오직 최선의 노력과 열정 속에, 최고의 사랑으로, 능력껏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수준 속에서 어진 마음과 성실한 마음으로 순간순간들에 계속적으로 충실 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마지막까지 잘 영위하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는 “나도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왜 나는 안 될까“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거의가 여태까지 배우고 경험한 자기주관 속에서 자기 계산으로 상대를 가름하고, 자기 주관과 착각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아상, 커가는 자기우물을 알지 못한 채 자기만족으로만 일관 해 왔기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각자 자기 착각과 고정된 자기 논리 속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기보다, 내 생각과 내 논리 속에 상대를 맞추도록 하려다 보니 항상 다툼이 있고,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모난 내 생각과 논리를 상대에게 요구를 한다면 그 분위기의 흐름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나,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상대를 받아 드린다면, 다시 말해서 내 생각과 마음의 기운이 제로로 맞추어져 그 기운이 잘 흘러 소통되게 하면, 나와 상대의 흐름은 원활하게 되어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느낌과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흐름을 그리고 또 우리 몸 안의 흐름을 그 각각의 조화 속에서 순탄하게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어 매사의 모든 일들을 원할한 소통이 되도록 하는, 그것을 제로화의 원리라고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만사형통은 자연스러움 속에 이루어진다.
내 몸속 각 장기의 조화로 심신건강유지, 나와 내 주변과의 조화로 상호관계의 소통 원할, 모든 것들이 제로화 되어 그 흐름의 기운을 지극히 자연적으로 되게 하여 진실된 소통을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반드시 사랑과 실천, 그리고 자신의 열정 속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조건이 아주 중요한 사실로 되어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의 질은
그렇게 많은 세월 속에서 최선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땀으로 이루어져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고,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인 인간의 행복에 도달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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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과그림에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