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글을 썼던 이원수(1911~1981) 선생의 시가 노래로 불려진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다.
일제의 말발굽 아래 조선민중은 도탄에 빠져 있을 때 그는 마산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금용조합의 직장을 얻어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일본 말로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를 인정받아 비교적 다른 조선 사람들에 비해서 편하게 살았던 것 같다. 당시 상금도 꽤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1942년 ‘지원병을 보내며’, ‘낙하산(落下傘)’이라는 친일시를 썼다. 그 시들로 인해 친일파로 낙인찍혔고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오욕의 큰 획을 그었다. 그가 쓴 ‘고향의 봄’ 동시가 노래로 만들어져서 어린 시절 꽤 많이 불렀다. 그런 동시작가 이원수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당한 역사의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당시에 어떻게 친일하지 않고 그 시대를 무사히 살 수 있었겠는가를 말한다. 친일 하지 않은 작가들도 많이 있는데 말이다. 윤동주, 이육사 , 한용운 같은 시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끝까지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다. 나중에는 옥중에서 저항하다 죽는 윤동주 같은 시인도 있었다.
이원수를 기념하여 창원에는 ‘고향의 봄 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그를 기념해 한동안 백일장도 열리다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져 중단됐다. 그가 죽은 지 28년이 되었는데 그가 남긴 ‘털어 놓고 하는 말 (잡지-뿌리 깊은 나무)’을 읽어 보면 그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원수 작가가 일평생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친일작가라는 오명은 벗겨지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죽어서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우리고장의 인물 중 1919년 3·1만세운동, 독립선언서에 33인중 6명의 명단이 자랑스럽게 올라 있다. 그런데 그중에 정춘수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 목사의 동상이 청주의 우암산 자락 우회도로 옆에 서 있었는데 1996년에 역사정의실천협의회 회원들과 시민단체에 의해 철거됐다. 당시 동상은 목뼈가 부러지면서 동상의 머리가 박살나고 땅바닥에 내려 꽂혔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현장을 보면서 친일을 하면 죽어서도 이렇게 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2009년의 봄에 역사교과서가 뒤틀리고 왜곡돼 아이들의 책상위에 펼쳐졌다. 바른 역사, 참된 역사를 가르쳐야 할 교육부가 뉴라이트와 앞장서서 역사를 왜곡하고 김 구, 안중근 같은 애국자를 잘못 기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춘수 동상을 다시 만들어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누가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 3.1만세운동 90주년이 되는 해에 말이다. 일본제국주의 ‘고향의 봄’은 참혹했다. 남편과 자식이 징병, 징용으로 끌려갈 때 이원수는 아름다운 시를 썼다. 일제의 위안부로 끌려가 몸을 망치고 희생된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나는 남과 북이 그런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안다. 그의 노래가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비참하게 고생하며 살았던 고향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고향의 봄’ 노래를 아무 의미 없이 즐겨 부른다. 이런 고향은 망가져 가고 있다. 4대강 개발로 인해 아름답던 강물은 더욱 빠르게 파괴돼 없어져 갈 것이다. 그로 인해 아름답던 강가의 고향의 봄 정경도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전히 조국은 분단돼 있고 친일파와 부자들은 어려운 경제 속에서도 계속해서 골프를 즐기며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며 산다.
청주의 아주 큰 교회 동산에는 정춘수 목사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어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항의를 하러 갔는데 우리 간 날 그곳에 흉상은 다른 곳에 두었다가 우리가 떠나고 난 후에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옮겨져 있다. 정춘수는 변절해 교회종과 모금을 통해 일본 비행기 헌납에 일조했고 감리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여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청주의 3.1공원에 일본의 침략전쟁에 앞장섰던 정춘수 목사의 동상을 다시 세우는 일은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원수 동화, 동시 작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루를 바르게 사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