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생 시절의 독서 편력
이광주 | 2003-09-01
어느덧 반세기도 훨씬 넘은 8·15 광복 전 해, 중학생 때 구입한 두 권의 책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일제 말기이던 당시 우리 학생들은 집을 떠나 이웃 도시 흥남의 군수 공장에서 이른바 근로 봉사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루는 작업을 마치고 몇 백 명의 학생들이 대오를 지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마루젠(丸善) 서점의 간판이 눈이 띄었다. 마루젠 서점은 동경에 본점을 둔 일본의 유명한 양서(洋書) 전문 서점이다. 우리 학교가 있는 도청 소재지 함흥에도 없는 마루젠 서점이 이곳 세계 유수의 화학 공장의 고급 두뇌들을 위해 마련된 모양이었다.
지금의 우리 포항에도 이처럼 큰 양서 서점이 있을까? 나는 곁의 급우에게 눈짓하고는 살짝 대오를 벗어나 서점에 뛰어들었다. 대오를 무단이탈했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서점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두 권의 책을 뽑아들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와 시몬즈의 『단테』였다. 두 권 모두 일본어 번역본의 신간이었다. 하지만 『단테』는 읽은 기억이 전혀 없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도 억지로 몇 십 쪽을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공부방에는 책상의 책꽂이 대신에 초등학교 5~6학년 생도로서는 분에 넘치는 좋은 책장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 2~3학년 때에는 자주 드나드는 서점에서 단골 대접도 제법 받았다. 그러나 책과 서점을 무척 좋아한 것에 비해서 나의 독서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 하여 그 흔한 조숙한 문학 소년도 못 되었다.
당시 애독한 책으로 기억되는 것은 춘원 이광수의 『사랑』,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 하는, 그러나 당시에는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박계주의 『순애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몽테크리스트 백작』, 『레미제라블』, 『부활』, 『죄와 벌』정도이다. 그리고 중국의 『십팔사략』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십팔사략』 이외에도 몇 권의 중국 고전을 한문 공부를 겸해 원문을 대조하며 읽은 기억이 있지만, 특히 밤을 새며 탐독한 것으로 일본 작가가 번안한 『삼국지』도 잊을 수 없다.
이상과 같은 나의 독서 수준으로 『단테』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재미있게 읽을 수 없었음은 당연하였다. 그 무렵 내가 책에 기대한 것은 우선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으며 그에 더해 지적 호기심이었다고나 할까.
8·15 해방은 하루 아침에 문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고서점과 노점 서점을 출현시켰다. 그리고 그 혜택을 나는 누구보다도 듬뿍 받았다.
그리하여 나의 서가에는 문학 작품 이외에도 철학서, 그리고 약간의 사회 과학 서적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복은 오랫동안 빼앗긴 말과 문자를, 그리고 지식과 사고를 도로 찾게 하고 또한 풍요롭게 하였다. 그런데 그 매개체로서 이 땅에서 쫓겨난 일인들이 남기고 간 많은 책들이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음은 아이러니컬하다고 할 것이다.
해방 다음 해 나는 가족과 함께 남하하여 서울로 이사하였다. 어렸을 때 수학여행으로 한 번 찾은 일이 있었던 서울의 대도시 풍경은 나를 다양하게 자극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기뻤던 것은 거리거리를 메운 고서점들이었다.
충무로와 인사동은 그 후 몇 해 동안 고서점들이 처마를 잇대어 나에게는 보물로 가득 찬 파라다이스로 비쳐졌으며, 종로와 을지로, 광화문에서 서대문 네거리까지 그 일대도 발길을 몇 발짝 옮기기만 하여도 서점과 마주쳤다. 그 고서점들은 물론 일인들이 남기고 간 책들로써 꾸며진 것이었다. 쫓겨간 일인들이 한반도에 남긴 유일한 공덕이라고 할까.
나는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서점을 찾고, 돈이 없어도 또한 서점 순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본의 아니게 상과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강의는 거의 동숭동 문리과 대학의 독문과 강의를 청강하였다. 대학 입학 이전부터 탐독한 괴테의 작품과 그의 인간적 매력에 끌리어 나는 독문학 전공을 마음먹고 있었다.
나의 괴테 입문은 그의 일역판 전집으로 시작되었다. 차츰 독일어판 저작집(10권)을 구하면서 괴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서 36권의 미장본 일역판 전집을 고서점에 처분하였다. 내가 고따(Gotta) 판의 괴테 저작집을 구입한 날짜는 1953년 11월로 메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들인 고서점은 분명히 청계천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괴테 저작집 제1권의 뒷표지 앞면에는 한자로 ‘경성 원남 서원대학전’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원남동 네거리에 있었던 원남 서원은 나에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독일어 전문 고서점이었다. 6·25 사변이 터지기 약 한 달 전쯤 될까, 하루는 오래 전부터 탐내 왔던 19세기 독일의 서정시인 묄리케의 호화 미장본 전집(4권?)을 구입할 작정으로 들렀더니 주인이 2층으로 안내하여 한 책장을 열고는 몇 권의 고색창연한 고서를 내보였다. 5권의 플라톤 저작집이었다.
주인의 간곡한 권유와 호의에 의해 반외상으로 손에 넣은 플라톤을 나는 6월 27일 안암동 K대학 도서관에서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포성에 신경을 쓰면서 읽고는 하였다. 그리고 적의 치하에서 주거를 전전하며 작은 가방 속에 그것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묵직한 가죽 장정과, 꼭 한지와 비슷한 종이에 인쇄도 투박한 고딕체의 1803년판의 그 플라톤 저작집은 몇 권 되지 않는 나의 희귀본 중의 희귀본으로 지금도 애장하고 있다.
나는 독서의 세계에서도 게으른 편식가이다. 상과 대학에 2년 재학하면서도 나의 서가에는 경제 원론 서적이 한 권도 없었으며, 사회 과학 서적으로 정독한 책을 든다면 맑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정도이며 해방 직후 맑스주의가 대학 사회를 풍미하고 많은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 서적을 탐독하는 풍조 속에서 내가 읽은 좌파 계열의 책이라고는 『공산당 선언』이 고작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나는 학창 시절 괴테를 비롯하여 횔덜린, 노발리스, 그리고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및 한스 카로사의 작품들을 거의 빠짐없이 탐독하고 그들에 관한 연구 서적도 여러 권 가까이하였지만,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부활』과 『안나 카레니나』정도이고, 도스토예프스키로 말하자면 『죄와 벌』 한 권밖에 읽은 것이 없다.
또 미국의 적지 않은 작품들이 오늘날 고전으로 평가받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읽은 유일한 미국 작품은 『대지』뿐이다. 이처럼 나는 학생 시절이나 지금이나 결코 반듯한 독서인은 못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