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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묵주기도 성월 | |||
4일 |
연중 제27주일 |
마르 10,2-16 |
성가 45, 271 |
11일 |
연중 제28주일 |
마르 10,17-30 |
성가 41, 459 |
18일 |
전교주일 |
마태 28,16-20 |
성가 63, 76 |
25일 |
연중 제30주일 |
마르 10,46-52 |
성가 19, 239 |
●● 말씀나눔 l 연중 제27주일~연중 제30주일
함께하는 복음묵상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
한강성당 십자가의 길 (최봉자 수녀 작)
사진 :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준성 신부
한 마음 한 몸의 부부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마르 10,2-16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엄중하게 말씀하신다. 혼인한 부부가 갈라선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부모를 거스르는 일이며 자식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엄청난 죄이다. 그래서 결혼은 시작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다(신명24,1-4참조). 그런데 ‘이혼장을 써주라’는 조건은 본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이혼증서는, 그것을 갖고 있는 여성은 전 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된다는 것을 전 남편이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실제 이 구절은 이혼증서도 없이 물건 버리듯 마음대로 아내를 버리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면 아예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는 율법을 준 것은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불행한 부부관계의 가장 큰 원인은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완고하게, 굳을 대로 굳어진 마음에 있는 것 같다. 결혼이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두 육체의 결합인 동시에 두 정신의 결합이며 두 생명의 결합이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면 함께 힘을 합쳐 험난한 인생길도 동고동락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묵상: 우리는 혼인 때 무엇을 약속했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마르 10,17-30 |
오늘 복음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로 맺는다. 부자 청년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려면 먼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외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성실하고 건실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의 그 말씀은 틀림없이 가혹한 요구였을 것이다.
부(富)는 하느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많은 이웃이 고통당하고 굶주릴 때 그들을 외면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자신의 재물만을 축적한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 물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진 것만큼 하느님과 이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신앙인은 진정한 포기와 나눔으로써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께 질문했던 부자 청년은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실천하는 자신에게는 흠잡을 것이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감 넘치는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셨다. 결국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애착’이라는 ‘걸림돌’에서 넘어지고 만다. 성경에서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면 그것이 탐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여러 차례 경고한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수많은 성인 성녀가 걸었던 길은 ‘가난’이었다. 예수님을 등지고 떠났던 부자 청년의 뒷모습에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 묵상: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 10월 18일 전교주일 마태 28,16-20 |
예수님의 제자들은 심한 패배감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스승을 배신하였다는 수치심과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셨다는 충격 속에 갇혀있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를 통해, 갈릴래아로 가면 당신을 만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보내 주셨다.
그들은 먼저 이 ‘기쁜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신 분, 즉 죽음까지도 권한 아래에 두고 계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모든 민족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열 한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까지도 곁에서 체험한 그들은 이제 만민에게 파견되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는’ 사명을 받았다.
이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주신 가장 든든한 보증이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5,13-16)’의 역할을 하려면 갖가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동체에는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에 주님과 함께 고통과 시련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은 가장 큰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임에 틀림없다.
■ 묵상: 나는 언제 주님과 함께라고 믿는가?
영적인 눈을 뜨는 사람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마르 10,46-52 |
구약 시대에는 소경이 되는 원인을 일종의 하느님의 벌로 간주했다. 그래서 나병환자나 귀먹고 눈멀게 된 이들은 신체적인 어려움도 컸지만,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다는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더 참혹하게 살았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르티매오라는 소경 거지가 예리코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되찾고 그분을 따라가게 된다. 바르티매오는 여러 면에서 신앙인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눈먼 소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소경인 경우가 많다. 바르티매오에게는 예수님만이 자비로우신 분, 용서하시는 분,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구원을 체험한 다음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앞서 제자들은 외적으로는 멀쩡한 눈을 갖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뜻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는 소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거지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능력을 믿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용기 있는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특히 꾸준히, 용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보고도 못 본다면 소경의 처지가 아니겠는가? 만약 이런 상태에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해야 할 것이다. “주님, 저희도 소경입니다. 저희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 묵상: 나는 어디에 눈을 떠야 하는가?
●● 문화산책 l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
친밀한 영성가, 멘토, 헨리 나웬!
우리 곁을 떠나며 남겨준 마지막 작품, 과연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책은 헨리 나웬이 1995년 9월부터 1996년 8월까지 1년간, 온전히 기도하고 글을 쓰며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려고 9년간 몸담고 있던 ‘새벽’ 라르슈 공동체를 떠나 안식년을 보내며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가 8월 30일 마지막 일기를 쓰고 3주 후, 예순넷의 나이에 심장마비(발작)로 갑자기 선종하여 이 글들은 그의 마지막 일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삶, 두 번째 죽음과 새로운 탄생, 영적 메마름과 어둠, 굶주린 영혼과 우울함, 기도와 명상,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부활의 삶, 나눔과 대화, 슬픔과 고통, 질병과 시련과 관련된 글이 끊임없는 물음과 자기 성찰을 통해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1년은 마치 만남과 친교로 이어진 모자이크처럼 통합되어 번뜩이는 지혜를 줍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에서 얻는 비전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 곁에 있는 것, 친밀함과 애정에 대한 깊은 갈망을 채울 길을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찾는 것이라는 소망을 실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입문의 : 02)944-0944 또는 바오로딸 인터넷 서점(http://www.pauline.or.kr)
헨리 나웬 지음 / 성찬성 옮김 / 344쪽 / 12,000원
●●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l 색깔 옷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白衣民族)’, 즉 흰색 옷을 즐겨 입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고대 부족국가인 부여 때부터 흰 옷을 널리 입었다고 하니, 그 역사는 무척 오래된 셈입니다. 우리 민족이 유독 흰 옷을 즐겨 입게 된 연유에 대한 설은 분분합니다. 어떤 이들은 태양 숭배 사상이 강한 우리 민족이 광명(光明)을 나타내는 뜻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흰색을 신성시하고 흰 옷을 즐겨 입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또 흰색은 순색(純色)이라 하여 청정과 순결 또는 광명과 도의의 표상으로 신성한 빛을 뜻하기에 즐겨 입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다른 견해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흰 옷을 입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배층 외에는 입지 못하게 한 금제 복식 규정이 많아서 일반 백성들은 그냥 흰 옷만을 입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염료를 구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염료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견해를 내놓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법으로 흰 옷 금지령을 내렸던 때도 있는 것을 보면 단지 염료가 비싸서 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색으로 옷을 만드는 것은 그 시대 염료 기술과 세탁 기술의 수준으로 볼 때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 시대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 이전입니다. 따라서 염료가 더욱 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스라엘)이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 요셉에게 “채색옷(창세 37,3. 공동번역에는 ‘장신구가 달린 옷’, 새 성경에는 ‘긴 저고리’로 번역)”을 마련해 주는데, 그것이 다른 형제들의 크나큰 질투를 유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염색된 천들은 전쟁에서 항상 “전리품(1마카4,23)”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색으로 염색된 천들은 그에 맞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낼 때, 하느님 현존의 표시였던 성막은 ‘피륙 열 폭’으로 만들 되 ‘자주와 자홍과 다홍실, 그리고 가늘게 꼰 아마실로 휘장을(탈출26,31)’ 만들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사제 아론의 옷은 호화로운 복장과 권위 표지들을 갖추되 ‘금색과 보라색 자주색 실로 수놓은 거룩한 어깨걸이(집회45,8-10)’를 걸치도록 했습니다. 이렇듯 염색된 천들이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는 염료의 희소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염료들 중에서도 더욱 귀한 염료는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라고 불리는 ‘자색 또는 보라색(홍색을 띠는 보라색으로 자홍색이라고도 함)’ 염료입니다. 로마 시대에 왕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여 ‘왕의 색’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염료는, 지중해 중에서도 주로 아프리카와 근동의 해안에 있는 바다달팽이(퍼플 달팽이, 라틴어로 ‘푸르푸라(Purpura)’)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달팽이를 죽일 때 나오는 검붉은 분비물을 원료로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 귀한 염료가 만들어집니다. 염색공들은 여러 가지 미네랄 성분이 함유된 달팽이의 분비액을 팔팔 끓인 다음 햇볕에다 내다 말립니다. 그러면 붉은 색에서 노란 색과 녹색을 거쳐 마지막에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햇볕에 말리는 시간입니다. 그들은 오랜 경험으로 이 귀한 색소에 다양한 색조를 입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햇볕에 내다 말리는 제조 공정 덕분에 옷감에 사용했을 때에도 변색되지 않는 귀한 염료를 얻게 되었답니다. 바다달팽이 한 마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색소의 원료는 한 방울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티리언 퍼플 색소 1그램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달팽이 8천 마리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대에 티리언 퍼플 색소는 황금과 맞먹을 정도로 귀중한 상품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염료 1킬로그램에 2백만 유로, 한화로는 약 40억 원을 호가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짐작이 갑니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리디아라는 여인은 바로 이 티리언 퍼플을 취급하던 사람이었습니다(사도16,14).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전도 시에 이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자기 손으로 노동하며(사도18,3) 대가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던(1코린9,18) 바오로가, 그렇게 쉽게 허용하지 않던 ‘경제적인 도움’을 이곳 필리피의 리디아에게서는 받아들였습니다. 유럽 땅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첫 인물인 ‘리디아’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교회를 세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사도16,15). 그리고 그 모습이 바오로 사도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회와 리디아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렸을 정도였습니다(필립1,7). 리디아는 필리피 교회의 첫 세례자였을 뿐만 아니라 귀한 것을 귀하게 사용할 줄 알았던 유럽 교회를 위한 주님의 사도였습니다.
이렇듯 ‘왕의 색’으로서 귀하게 사용되던 ‘자색’은 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진정한 왕국인 교회의 봉사자, 주교들의 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만남,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장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가톨릭 교회 교리서 50~141항)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
제2절 하느님 계시의 전달
사도전승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메시아로 활동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사도들은 성령의 비추임 아래 설교, 증거, 관습, 예배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그 복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고 성령의 도움으로 알게 된 모든 내용을, 후계자인 주교들을 통하여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세대에게 전달합니다.
사도전승은 ‘성전(聖傳)’과 ‘성경(聖經)’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지고 실현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성령의 감도로 오류 없이 올바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 또는 그 내용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계시 진리를 성령의 감도로 오류 없이 바르게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는 구원의 소식이 담겨 있습니다.
성전과 성경의 관계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통합니다. 이 둘은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솟아나 그리스도의 신비를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합니다. 또 유일하고 성스러운 신앙의 유산을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합니다.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은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의 유산’을 올바르게 해석할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敎導權)에만 맡겨져 있습니다. 즉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교도권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냅니다.
성전과 성경과 교도권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다른 것들 없이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셋은 모두 함께 고유한 방식으로 성령의 활동 아래 영혼의 구원에 효율적으로 기여합니다.
제3절 성경
그리스도 - 성경은 ‘유일한 말씀’
교회는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말뿐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1테살2,13참조).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십니다.
성경의 영감과 진리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고, 그들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영감을 받은 책들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종교입니다.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의 종교입니다.
성경의 해석자이신 성령
성경은 하느님의 작품이면서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사고나 표현방식을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경 해석을 위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유의할 것, 둘째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에 따라 성경을 읽을 것, 셋째는 ‘신앙의 유비’, 즉 신앙 진리들 간의 일관성에 유의할 것입니다.
정경
‘정경(正經)’은 교회가 사도전승에 따라서 선별한 성경 목록으로, 구약 성경 46권과 신약 성경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책들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이 성경들은 구원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교육 방법을 증언합니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하느님에 관한 숭고한 가르침과 인생에 관한 건전한 지식과 기도의 놀라운 보물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구원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무엇보다도 우주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고자 기록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하느님 계시의 궁극적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중심 주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영광 받으심,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통한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 등입니다. 특히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으뜸가는 증언이기 때문에 모든 성경의 핵심을 이루며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의 책입니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을 준비하고,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완성시킵니다. 둘은 서로를 밝혀 주는 책으로, 둘 다 하느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말씀과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가르침과 인간의 삶에 대한 유익한 지혜과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 46권으로 아래와 같이 크게 네 묶음으로 나눕니다.
① 율법서 :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② 역사서 :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역대기 상·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상·하권
③ 시서와 지혜서 :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
④ 예언서 :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신약성경 :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단 한 편의 글도 직접 쓰거나 남기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직접 따라 다녔던 제자들이나 그 제자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그리고 그분의 행적에 관한 내용들을 모아 글로 쓴 것입니다. 모두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네 묶음으로 나눕니다.
① 네 복음서 :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카 복음, 요한 복음
② 사도행전
③ 사도들의 서간집 : 사도 바오로의 편지들(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과 가톨릭 서간(야고보 서간~유다 서간)
④ 요한 묵시록
교회 생활과 성경
성경은 교회에 버팀이 되고 활력을 줍니다.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이며 영혼의 양식이자, 영성 생활의 원천입니다. 또 신학과 사목적 복음 선포의 생명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해 왔습니다. 시편 작가는 성경을 “주님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119[118],105).”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신자가 성경을 자주 읽도록 권고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성 예로니모)’이기 때문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가정기도 l I am
가정에서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합니다.
1. 시작 기도
│진행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 중의 한분이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생활 말씀
│진행자│ 다음의 성경 말씀을 다함께 소리 내어 읽겠습니다.
† 마태오 복음서 6장 28절 ~ 34절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
28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진행자│ 이번에는 다함께 소리 내어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다 읽은 후) 약 2분 정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상을 끝내고 다음의 나눔을 진행합니다)
♠ 나눔
① 성경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② 다음 문장의 빈칸을 완성해 봅시다. 그리고 서로의 답을 비교해 봅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 중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진행자│ 오늘의 주제는 ‘I am’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함께 살펴봅시다.
♠ 나눔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과거를 살아갈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 살아갈 때 너의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었던 자로서 이다(I was)’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미래를 살아갈 때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으로 살아갈 때 네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을 자로서 이다(I will be)’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너의 삶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기 때문이다.
- 헬렌 말리코트(Helen Mallicoat)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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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가면서 발표해 봅시다.
4. 함께 실천합시다
│진행자│ 다음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도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도 바로 오늘뿐입니다.
오늘을 아끼고 사랑하십시오.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십시오.
오늘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오늘입니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없습니다.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습니다.
어제의 미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입니다.
오늘이 30번 모여 한 달이 되고,
오늘이 365번 모여 일 년이 되고,
오늘이 30,000번 모여 일생이 됩니다.
-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 중 미리 걱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5. 가족 회의 시간
│진행자│ 가족 회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사항이나 논의가 필요한 일들, 가족 친지들의 생일, 축일 소식이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족에 바라는 점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자녀에 대한 훈계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6. 가족 평화의 인사
│진행자│ 지금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해줍니다.)
7. 마침 기도
│진행자│ 다함께 손을 잡고 주모경을 바치겠습니다.
●● 소공동체 전례 시안 l 우리를 변화시키는 불
준 비 물 | 성경, 가톨릭 성가책, 숯불이 든 향로, 향가루, 성냥,
연필, 작은 종이 여러 장
준비 기도
마음을 고요히 하고 주님의 사랑에 자신을 맡겨봅니다.
성경 읽기 : 루카 12,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침묵 가운데) 준비된 숯불 향로에 작은 종이 몇 장을 넣어 불이 타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성경 구절을 한 번 더 읽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잠시 묵상합니다)
신앙나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불’이십니다. 습관적으로 지은 죄와 그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그때에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그만두고 벗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의 체험을 나누어 봅시다.
변화의 예식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안아주시어 당신 가슴 깊이 받아주소서.
그곳에서 저를 새롭게 하시고, 불사르시어 높이 오르게 하소서.”
그리스도 사랑의 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표시로 다음과 같이 합니다. 각자 작은 종이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과 열망을 적어봅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숯불 향로에 넣으며 “예수님, 당신 사랑의 불로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모두가 종이를 숯불 향로에 넣은 후에는, 향가루를 숯불 위에 뿌리고 분향을 하듯 향로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립니다.
성경 읽기 : 루카 12,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마침기도
가톨릭 성가 510번 ‘주님께 올리는 기도’를 부릅니다.
●● 그리스도교의 상징 l 알파와 오메가, 어린양
오래 전부터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의 교리 교육을 위해서 여러 상징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상징들은 우리 신앙 고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양’이 예수님을 뜻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의미와 전통을 알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선교전례사목부에서는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상징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면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A와 Ω)
알파와 오메가는 영어의 A와 Z 같은, 그리스어의 처음과 마지막 문자입니다. 그리고 이 두 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의 다시 오심 사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 안에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시려 이 시대의 마지막에 오실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그 완성을 향한 지속적인 긴장과 기다림 속에서 삽니다. 부활 전야 예식 때 이 두 문자는 사제를 통해서 부활초 위에 그려지고, 또 사제는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요 마침이요 알파요 오메가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시작이요 끝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영혼에 완성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목적이시고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시며 인류의 중심이시고, 모든 마음의 기쁨이시며 그 갈망의 충족이시기 때문(사목헌장 45항)”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성사로부터 삶이 시작됩니다. ‘알파’라는 우리 시대는 ‘오메가’라는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도록 살고, 영성적으로 주님과 일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활 예식에서 이 두 문자를 기억하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가 결국 시간의 주인인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 삶의 시작과 끝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린양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1코린5,7)’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교회헌장 3항). 유대인의 파스카는 탈출기에서 어린양의 희생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탈출12,1-4).”
이것은 예수님에게로 그 의미가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의지에 따라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의 파스카를 진정으로 완성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도 이것을 언급했습니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53,7).” 때가 찼을 때, 세례자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스승님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 구약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어린양이, 신약에서는 참다운 구원자로서의 어린양이 되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 노년의 향기 l 노인에 대한 이해
노화
인간은 누구나 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늙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요? 불로장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인류의 숙원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영원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노화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노화란 생물학적으로 성숙한 인간에게 나타나는 변화, 연령이 증가하면서 생기는 모든 변화를 말합니다. 원인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불충분한 영양공급, 방사선 치료, 만성질환, 흡연과 운동부족, 건강치 못한 습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노년기는 퇴화되는 속도가 재생되는 속도보다 더 빨라서 복구가 더디고 결국 생물학적 파괴가 가속화되는 시기입니다. 이런 노화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개인차에 따라 노화의 속도나 형태, 신체적 의존성 정도는 모두 다릅니다.
노화과정을 이해할 때 우리는 먼저 정상적인 노화와 병리적인 노화의 개념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노화는 생리적 혹은 정신적 질병이 없는 가운데 순수하게 연령의 증가로 진행되는 노화를 말합니다. 노화의 대부분은 정상적인 노화에 속하며, 또 노인 대부분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그러나 신체적 쇠퇴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병들어간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이가 들면 으레 아픈 것으로 생각하여 습관적으로 늘 아프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주름이 늘거나 노안이 오고 체모가 희어지며 순발력, 지각 속도,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정상적인 노화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병리적인 노화는 의학적인 원인이나 병적 증상을 동반하는 노화과정입니다. 이 경우는 능력 저하나 심각한 부적응과 함께 우울증, 치매 등을 동반하기도 하여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 과정을 늦추는 것은 각자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개인의 섭생 관리 여하에 따라 노화를 늦출 수도, 가속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나이는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활동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노인을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불리한 장애를 지닌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노년기 역시 인생 전 생애 발달 과정 중의 한 기간입니다. 아직도 계발되지 않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시기임을 알고, 이제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발달되고 완성에 가까운 삶의 질을 영위하는 때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사목연구위원 조해경(스텔라)
젊은이의 자랑은 힘이고 노인의 영광은 백발이다(잠언20,29). ● 나눔 : 노화의 과정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
●● 노년의 향기 l 웰다잉
1. 서론 : 죽음 - 최고의 과제2. 죽음준비와 고독 3. 죽음준비의 첫 번째 과제 :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 4. 죽음준비의 두 번째 과제 : 우리는 하느님의 같은 자녀임을 인식하는 것 5. 죽음준비의 세 번째 과제 : 미래의 세대에게 부모 되기 6. 잘 죽기로 선택하는 결단 내리기7. 죽어가는 사람 잘 보살피기 8. 죽어가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 알리기 9. 죽어가는 사람에게 모든 인류와의 연대 권하기 10.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올 세대의 부모 되길 권하기 11. 결론 : 예수님 부활의 지평 아래 죽음 맞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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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최고의 과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 시간마다, 어느 곳에서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사로 우리 모두가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잘 맞이하고, 잘 죽고 있습니까?
죽음이 너무나 끔찍하고 불합리한 것이어서 아예 생각하지 말거나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요?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지워버렸으면 하는 부분이므로, 마치 죽음이 우리의 실제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까요? 과연 죽음과 점차적으로 친구가 되고, 죽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살며, 아무 것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를 집에 오라고 환영하는 친구처럼 우리의 죽음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죽음은 그저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또 죽음은 인간의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더 인간적인 행동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 모두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자각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입니다. 이 자각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쁘게 살면서 애써 죽음을 무시해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서로 죽는 것을 도와주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죽음은 단지 슬픔의 원인을 하나 더 제공하는 데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희망,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친구들에게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했고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신과 하느님의 영을 전해주는 새로운 길이 되도록 어떻게 우리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죽기를 원합니까?”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위대한 도전과 대면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단지 잘 살 뿐만 아니라, 잘 죽어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자신의 경험의 깊이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듣고 느낀 바에 조심스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우리 삶의 이 시기에 기쁨과 슬픔으로 우리를 가장 많이 건드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있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 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270번
로사리오의 기도
1990년대 발칸 반도는 여전히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일어나 싸우는 전면전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국지전 때문에 밤새 이웃의 집이 폭탄으로 불타 없어지기도 하고, 외출 나간 가족과 친지들이 주검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그야말로 폭력과 공포의 시대였습니다. 삶과 죽음이 바로 눈앞에서 공존하는 불안한 때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폭탄 소리와 총성이 들리지는 않게 된 어느 해, 저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짜그랩(Zagreb)으로 합창 연주를 떠났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독일 교회음악 학교의 학생들과 독일 어느 한 성당의 성가대로 구성된 우리 연주단은 버스로 13시간 이상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든 단원들은 현지 신자들의 집에 나뉘어 홈스테이(Homestay, 체류국의 일반 가정에서 지내기)를 하면서 그들의 가정과 그들이 가진 구체적인 문화를 조금이나마 익힐 수 있었습니다. 동네 청년들과 어울려 술집에 가서 잡담도 하고, 크로아티아의 간단한 인사말도 배우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소박함과 가톨릭 신앙에 대한 충실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연주회 당일! 우리는 우선 주교좌성당에서 주교님께서 집전하시는 미사 중에 성가를 부른 후, 오후에 합창 연주회를 공연해야 했습니다. 주교좌성당은 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로 북적거렸고, 신자들은 검소하고 평범한 옷차림으로 미사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여자 신자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미사보가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 착용하는 머리 수건을 정갈하게 쓰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고 우리는 연습한 미사곡들을 부르며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봉헌 예절이 시작되었는데, 순간 귀에 익은 성가 멜로디가 들려 왔습니다. 바로 ‘로사리오의 기도’였습니다. 원래 브리타니아 성가로,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이 성가는 특히 노래 뒷부분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로사리오의 기도’가 울려 퍼지자 남자 신자들은 손을 뻗어서, 여자 신자들은 머리에 쓰고 있던 머리 수건을 모두 벗어서 공중을 향해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성당 안은 주님을 향해, 그리고 성모님을 향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손과 머리 수건을 흔들어대는 열성팬(?)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
전쟁의 아픔과 삶의 고단함을 안고 살아가던 크로아티아 신자들은 가톨릭 신앙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주님만이 의지할 수 있는 바위이며 구원이시고, 성모님만이 진정한 어머니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성모님을 향해 손짓하며 자신의 기도와 애원을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사리오의 성모님! 천사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엘리사벳을 방문하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어머니!
로사리오의 성모님! 당신 아드님께서 겟세마니에서 피땀 흘리고, 무참히 매 맞으시고 가시관 쓰신 채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을 지켜보셔야만 했던 어머니!
로사리오의 성모님!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주신 당신의 아드님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시어 천상의 화관을 받으신 우리의 전구자이신 어머니!
미사는 계속되었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그들은 다시 한 번 주님께,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로, 다른 어떤 이들은 성당 옆면에 마련된 작은 제대에 몸을 기댄 채로,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성모상 아래 엎드려 하염없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신앙은 오롯이 하나였습니다.
로사리오 성월인 10월!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전구해 주시는 우리의 기도는 아드님께서 절대로 거절하시 않으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우리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함께 노래합시다.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
최호영 신부 (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 사제의 해 특집
사제의 해 특집(2)
10월 성시간 지향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소공동체와 영성 성장을 위한 『길잡이』”는 ‘사제의 해’ 기간 동안 ‘사제들의 노력을 북돋우며’ 직무사제직에 대한 관심과 성소를 증진시키기 위한 특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달에는 ‘사제의 해’ 특별 대사에 대한 안내와 교황청 내사원 교령을 소개해 드립니다. |
‘대사(Indulgence)’란 교황이나 주교가 일정한 규례에 따라 죄를 고백하고 사죄받은 신자의 보속(補贖)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즉, 대사는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른 잠벌, 곧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사람이 회개를 통해 죄는 뉘우쳤지만, 아직 돈을 돌려주지 못한 상황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돈이 생기면 돌려주겠다고 늘 마음으로 다짐하고 결심하지만, 정작 갚을 돈은 그렇게 쉽게 모이지 않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한 영벌은 사함 받지만 부득이한 경우에 보속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그에 따른 책임(잠벌)이 남습니다. 이 잠벌은 연옥에서의 고통을 통해 갚아야 합니다. ‘대사’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대사에는 죄에 따른 잠벌(暫罰)에서 ‘전부’ 풀리는 전대사 혹은 전면대사와 부분적으로 면제받는 부분대사 또는 한대사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전대사로는 ‘위령의 날’ 전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확대하는 때가 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이나 ‘바오로 해’ 전대사가 그러하며 이번 ‘사제의 해’에도 교황청 내사원은 교령 [사제의 해를 위한 전대사 수여](2009년 4월 25일 서명)를 통하여 2009년 6월 19일에 시작하여 2010년 6월 11일에 끝나는 이 ‘사제의 해’ 동안 특별 대사의 은총이 수여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먼저 사제들의 경우에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제들이, 어느 날이든 공적인 조배를 위하여 현시되거나 감실에 모셔진 성체 앞에서 아침 기도나 저녁 기도를 한 번 경건히 바치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모범에 따라, 언제나 준비된 마음으로 정성되이 성사들, 특히 고해성사를 거행할 자세를 갖추고, 현행 규정에 따라 성사적 고백을 하고 영성체를 하며 교황 성하의 지향에 따라 기도를 드린다면, 하느님의 자비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고, 기도를 통해 죽은 동료 사제들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사제들이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성무를 거룩하게 수행하며 정식으로 승인된 기도문을 경건히 바칠 때마다 부분 대사를 받을 수 있고, 이는 죽은 동료 사제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경우에는
사제의 해 개막일이나 폐막일,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50주년이 되는 날, 매달 첫 목요일, 또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지역 직권자들이 따로 정한 날에, 성당이나 경당에서 미사에 경건히 참여하고 교회의 사제들을 위하여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리거나 자신들을 성화하고 예수 성심을 닮기 위해 선행을 하며 고해성사로 속죄하고 교황 성하의 지향에 따라 기도(예를 들면 “① 사제 성화를 위하여 잠시 묵상 ② 성체 앞에서 하느님께 개인기도 ③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④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사제들을 위하여 경건한 간구-묵주의 기도, 사제들을 위한 기도의 순서로 기도하거나” 또는 “첫목요일 성시간 참여”)를 바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들, 병자들, 합당한 이유로 집을 떠날 수 없는 모든 사람도 어떠한 죄도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과 또 되도록 빨리 전대사의 세 가지 일반 조건을 이행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앞에서 제시한 날들에 사제 성화를 위해 기도하고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의 질병과 고통을 바친다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신자는 사제들이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도록 예수 성심께 간청하며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을 다섯 번 바치거나 ‘사제의 해’ 기도문을 경건히 바칠 때마다 부분 대사를 받습니다.
교황청 내사원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을 기념하고자 선포된 사제의 해에 실천하는 특별한 신심 행위는 거룩한 대사의 은총으로 더욱 풍요로워진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대사의 은총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사목국 교육안내
사목국 일반교육부
■ 10월 구역(반)장 월례연수
주제 : 체험 사례
일시 및 장소
10월 |
오전 10:30 |
오후 2:00 |
13일(화) |
신도림동 |
연희동 |
14일(수) |
|
흑석동,(봉천동) |
15일(목) |
방배동 |
혜화동 |
16일(금) |
창 동 |
오금동(2:30) |
19일(월) |
(불광동) |
|
20일(화) |
청량리 |
명일동 |
21일(수) |
중곡동 |
역삼동 |
22일(목) |
대방동 |
등촌1동 |
23일(금) |
목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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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천동, 불광동은 지구자체 교육입니다.
※ 2009년 ‘명동(가톨릭회관)’에서는 월례연수가 없습니다.
문 의 : 727-2062~3
■ 성경나눔학교
대 상 : 구역장·반장 및 관심 있는 신자
날 짜 : 10월 10일 (토)~11일(일), 2일간
시 간 : 10:00~16: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30,000원 (접수마감 10/1)
문 의 : 727-2062~3
■ 삼위일체리더십(기초과정)
대 상 : 구역장·반장 및 관심 있는 신자
날 짜 : 10월 14일~21일(매주 수, 2주간)
시 간 : 13:00~17: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20,000원 (접수마감 10/7)
문 의 : 727-2062~3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 전례학교
대 상 : 본당 전례분과위원, 전례봉사자, 일반신자
날 짜 : 10월 13일~11월 10일(매주 화, 5주간)
시 간 : 14:00~16: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25,000원 (접수마감 10/6)
문 의 : 727-2065~6
■ 함께하는 여정 3단계 교육
대 상 : 함께하는 여정 2단계 수료자
날 짜 : 11월 12일~12월 3일(매주 목, 4주간)
시 간 : 19:30~21:3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25,000원 (접수마감 11/5)
문 의 : 727-2065~6
사목국 기획실
■ 2010 서울대교구 사목지침 설명회
대 상 : 본당 사목회장, 부회장
날 짜 : 10월 24일(토)
시 간 : 추후 공지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추후 공지 (접수 마감 10/16)
문 의 : 727-2132
사목국 가정사목부
■ 가정성화 생명수호 월레특강 및 미사
내 용 : 아동 정신장애
일 시 : 10월 6일 (화) 10:00~12:30
장 소 : 가톨릭회관 2층 강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낙태치유 프로그램 및 월례미사
대 상 : 낙태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내 용 : 생명의 소중함, 화해 및 치유 프로그램, 미사
일 시 : 10월 13일 (화) 13:30~16:30
장 소 : 서울대교구청 별관 6층 소성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62차 약혼자주말
대 상 : 예비부부, 1년 미만 신혼부부
내 용 :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프로그램
일 시 : 10월 9일 (금) 19:00
~11일 (일) 18:00, 2박 3일
장 소 : 신길동 살레시오 회관
참가비 : 240,000원/커플
문 의 : 727-2069 (www.ihome.or.kr)
사목국 노인사목부
■ 제23회 노인의 날 경축행사
대 상 : 연합회 소속본당 노인대학 학생 및 봉사자
일 시 : 10월 6일(화) 10:00-16:00
장 소 : 월드컵공원 평화의 공원 내 평화잔디광장
참가비 : 1인 5,000원(봉사자 포함)
문 의 : 765-8456 (노인대학연합회)
■ 노인대학 봉사자 월례교육
대 상 : 연합회 소속본당 노인대학 봉사자
일 시 : 10월 13일(화) 9:30-13:00)
장 소 : 우리은행 본점 4층 대강당
교육비 : 총 6,000원
문 의 : 765-8456 (노인대학연합회)
■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
-노년준비교육 모집(3기)
대 상 : 55세 이상 서울시민(장소당 40명)
내 용 : 멋진 인생 후반기를 위한 교육 및 클럽활동
날 짜 : 10월 12일~11월 30일 (매주 월, 목)
시 간 : 15:00~17:00
장 소 : 구로3동성당, 도봉동성당, 등촌1동성당, 월계동성당, 종로성당
교육비 : 총 80,000원 중 10,000원(본인부담), 70,000원(서울시 지원)
접 수 : 9월 14일~10월 11일
문 의 : 765-8458
(사단법인 서울시니어아카데미)
●● 성화에 담긴 영성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의자의 성모 (Madonna della Seggiola, 1514)
<의자의 성모>는 성모님의 우아하고 자비로운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적이고 이국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라파엘로의 걸작입니다. 둥근 화면만큼이나 부드럽게 처리된 인물의 윤곽선과 성모님의 단아하고도 그윽한 눈길이 이 작품을 더 없이 평화롭고 따사로이 느끼게 합니다. 이 그림은 길을 지나던 라파엘로가 한 모자의 다정한 모습에 반해 그 자리에서 그리려는데 마침 화판이 없어서 옆에 있던 술독의 둥근 뚜껑에 스케치를 해서 원형화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캔버스 안에는 인물들이 가득 차 있지만 전혀 답답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의자 깊숙이 앉아 아기 예수를 다정히 안고 있는 성모님은 그 당당한 눈길이 인상적입니다. 털옷을 입고 뒤로 물러나 성모자를 바라보는 아기 세례자 요한은 훗날 세 사람이 겪어야 할 수난을 예고합니다.
오른쪽으로 붓질된 아기 예수의 노란 옷은 그 반대 방향으로 붓질된 마리아의 두건과 대조되며 생동감을 더합니다. '하늘의 여왕'을 상징하는 성모님의 푸른 천을 아기 예수가 깔고 앉은 모습 역시 이 작품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 부분입니다. 색상의 처리 또한 놀라워서 화면 중심의 아기 예수가 입은 황금빛 의상은 마리아의 어깨에 두른 초록색 숄과 대비를 이루고, 마리아의 붉은 옷도 이에 뒤질세라 강렬한 빛을 발합니다. 차갑고 따뜻한 느낌의 색이 서로 교차되면서 화면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아무도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역동성이 느껴지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정지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의자 등받이입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방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종류로 밝혀진 이 의자는, 이들이 천상이 아닌 지상에 존재함을 확인시켜줍니다. 아울러 화면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정(靜) 가운데 동(動)을 표현하고, 성스러움 가운데 세속의 미를 살려내는 라파엘로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지영현 신부 (가톨릭회관 평화화랑 관장)
한강성당 제대에서 바라본 내부 전경
2009년 6월 19일~2010년 6월 11일
사제의 해에 바치는 ‘사제를 위한 기도’
○ 영원한 사제이며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백성을 당신께로 인도하도록 사제들을 불러주심에 감사하나이다.
● 사제들이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데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
○ 날마다 주님의 성체성사를 이루는 사제들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 사명에 충실하게 하소서.
● 사제들의 모범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소서.
+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교회의 수호자 성모 마리아님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사제들의 수호자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