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돌이.' 고우영이 펴낸 첫 만화 단행본이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53년 16쪽짜리 작품으로 출판업자 권유를 받아 펴냈다. 지금이야 만화가 흔하고 누구나 그리는 세상이지만 당시는 만화가 귀했고 아무나 그리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 시절 그 나이에 출판 권유를 받았다는 건 이미 고우영 만화가 알려졌고 인정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한 푼 두 푼 돈이 아쉽기도 했다. 여섯 살, 다섯 살 터울 두 형은 징집돼 군복무 중이었다. 둥글고 큰 귀를 가진 쥐를 남자아이로 의인화해 흥미진진 펼쳐지는 무용담을 담은 이 만화의 미국식 이름은 미키 마우스. 집 근처 미군부대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주운 미국만화 '미키 마우스'에서 착안한 만화다. 미키 마우스의 한국식 이름이 쥐돌이다.
중학교 시절에도 고우영과 박수웅 단짝 관계는 이어진다. 박수웅이 다니던 경남중은 토성동에 있어 동성중과 거리가 있었지만 같은 배를 타고 통학했기에 가능했다. 감만동에서 시내로 오가는 대중교통은 달리 없고 배가 유일했다. 현재 우암동 부산은행 자리 적기 뱃머리에서 옛 부산시청 뒤편 뱃머리까지 배가 다녔다. 태풍이 불거나 풍랑이 심하면 부둣길을 걸어 다녔다. 차와 마차와 사람이 더불어 다녔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으로 이듬해 부산에 있던 서울 학교들이 환도했고 고우영 가족도 짐을 싼다. 고우영이 중3으로 올라가던 해였다. 고우영은 서울 동성고교에 들어갔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그게 그의 마지막 학력이 되었다.
"요즘은 인물이 브랜드 시대 아닙니까." 남구청 문화체육과 김용민 홍보계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동항초등학교 후문에서 동천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감만 창의문화촌까지 '고우영 만화의 거리' 조성이 어떨까 한다. 담을 허물고 벽을 허물어 소통의 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괜찮겠다 싶다. 창의문화촌을 들락거리는 예술가들이 나서고 주민들이 소매를 걷어붙이면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거리가 되겠다 싶다. 여기는 삼국지 길, 여기는 수호지 길! 여기는 일지매 집, 여기는 극진 가라데 최배달 집!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낄낄낄 나온다. 고우영 가시 돋친 만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나오던 그 웃음처럼. 내친김에 고우영 축제도 머리 맞대 구상해 보자.
첫댓글 그러면 볼거리가 더 생기겠어요. 기대 됩니다^^
감만창의문화촌에서 후문까지 거리를 어떻게 만들면 되지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