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쇼제"가 전파를 타기까지http://yanbian.moyiza.com/1745192010.05.14 08:52:14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작자와 정원수 작곡가
나는 원래부터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중국에 있을 때부터 <베이징쇼제>, <첫사랑 오빠> 등 작곡가 정원수가 쓴 노래만은 어쩐지 특별히 나를 매료시켜 이 노래의 창작(작사, 작곡)자 정원수 선생님을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지난 5월 2일 ‘한민족신문 창간 2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원수 선생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였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원래부터 궁금하였던 문제 즉 ‘베이징쇼제’의 창작으로부터 가수 김월녀를 찾기까지의 과정에 대하여 묻기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이 노래를 창작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는1992년12월30일 서울의 잠실롯데호텔 크리스탈볼륨에서 현철가수의 년말송년콘서트를 총지휘해서 마치고 그당시“ KBS전국은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한반도 전체의 환경보고 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와서 연길, 대련, 장춘, 하얼빈, 장백산을 둘러보며 방송프로그램을 구상하던 중 중국에 매료되어 1993년에 중국 대련에서 중한합자 회사 天天宮 을 한국식당, 가라오케, 커피숍 등 대련시 개발구 구청옆 발전공사빌딩 1층과2층 전부를 임대해서 꾸렸다.
1년 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하여 한반도에 긴장상태에 들어갔을 때 한국에 계시는 어머님이 전쟁날지 모르니 빨리 들어오라고 울며 독촉하는 바람에 그는 어머님의 의사를 존중하여 경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귀국하게 되였다.
그때 함께 일하면서 정들었던 한 여인과 갈라지게 되였는데 그 여인은 너무도 갈라지기 아쉬운 심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항까지 배웅하였다. 정원수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에 앉아서 대련시를 내려다 보는 그 순간, 아직도 공항에서 사라져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눈물로 자기를 그릴 그녀, 1년간 같이 사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추억들이 주마등마냥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러한 추억들은 작곡가로서의 그에게 창작의 충동을 느끼게 하였다.
자이젠바 다롄쇼제 / 오늘의 이별이 / 우리의 사랑에 / 시작일 수 있잖아 / 언제 다시 돌아온단 / 기약은 없지만 / 울지는 마라 / 워 아이 니 / 영원한 내 사랑 / 자이졘바 다롄쇼제 / 그의 흥분된 심정으로 가사와 선율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비행기가 한국으로 나는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다 완성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중국말을 섞어 하는 것이 습관적이어서 가사에서도 그 습관이 표현 되였으며 멜로디에는 중국풍을 짙게 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본래 가사를 쓸 때에는 ‘다롄쇼제’였는데 가사전달에서 순통스럽지 못하여 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인 수도 ‘베이징’이 좋을까 싶어 ‘베이징쇼제’로 고쳤다. 그런데 귀국하여 다사분주하게 보내다니 누구를 통해 음반을 취입할까 하는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그는 한국과 중국최초로 1996년도12월,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수교 4주년 기념공연 ‘友義之夜’을 어렵게 성사시켜 중국 국제방송국 서창술 부장과 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치게 되었는데 그때 알게 된 서창술 부장과 함께 국제방송과의 교류를 계속하면서 한국노래 음반들도 공급해주고 서창술 부장과의 인연을 계속 맺어오던 중 1997년에 그가 중앙민족가무단의 조선족 가수 김월녀를 소개 하였다. 그러나 김월녀가 계속 외국공연 중이라서 만나지 못하다가 1999년 정원수의 형격인 정우혁씨가 북경에 갔다가 서창술 부장이 김월녀를 만나게 해주면서 한국의 정원수에게 얘기해 달라고 하여 정우혁은 한국으로 정원수에게 전화하여 김월녀를 만났으니 곡을 보내달라고 하여 서울에서 북경아가씨악보를 팩스로 중앙민족가무단으로 보냈다 불러본즉 너무나 맘에 든다고 하여 정원수가 서울로 초청하여 급하게 녹음시키는데 그날따라 김월녀가 노래하는데 녹음실의 스피커가 터져버렸다 그 순간 정원수는 이건 히트다 라고 예감하게 되었다 그 이후 녹음을 끝내고 음반을 냈으며 그당시 정원수는 한국에서 현철, 설운도, 남진, 심수봉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전국순회콘서트를 기획하여 김월녀를 함께 출연시키며 한국인들에게 김월녀를 알리고 KBS열린음악회와 2001년 12월31일 밤, KBS의“가는 해 오는 해”라는 프로그램에서 2002년 새해 재야의 종소리 타종후 0시 15분 KBS를 통해서 중국동포가수 김월녀의 <베이징쇼제> 가 차이나복을 곱게 차려 입은 40여명의 무용수와 함께 울려퍼지면서 이 노래는 알려지기가 무섭게 돌풍을 일으켰다. 곧바로 정원수는 CD200장을 둘러메고 북경으로 날아가 국제방송 서창술 부장에게 전해주어 서창술은 중국 전역의 방송국과 심지어 평양중앙방송까지 전해주어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울려퍼지게 된것이다 ‘베이징쇼제’가 이렇게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자 한국과 중국의 음악계와 대중속에 급속히 펴졌으며 대중속에서 히트곡으로 되였고 이때로부터 정원수와 김월녀의 이름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이후 북한식당들에서 연변노래인줄 알고 부르기 시작하고 현재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있는 세계곡곡에서 널리 불려지는 애창곡이 되어있다
/주청룡
한민족신문
[출처:연변모이자 yanbian.moyi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