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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5. 9. 21.~23.(일~화) - 음력(7. 30.~8. 2.), 일출 06:16~일몰 18:25
●산행지: 각호지맥 1구간(2박3일) 졸업
●산행코스: 한천주차장-황룡사-쉼터-삼마골재-전망암-삼도봉-팔각정-석기봉-민주지산-대피소-각호산-산불감시초소-상용정-도마령-천만산-산막봉(906.0m)-882.6m봉-산막산TRS기지국-임도-삼봉산-산악기상관측장비-송전탑-794.5m(상촌산)-서낭당재-743m봉-화산5터널 위-돌리네 안부-삼면봉-303.3m봉-가리재(삽재)-405m봉-537.7m봉-백마산-성황당고개-무룡산-절터샘-유원대삼거리-솔티재-331.3m봉-점말고개-322.3m봉-분통골고개-279.7m봉-314.4m봉-갈고개-139.0m봉-용당지하도-합수점
●먹거리: 생수2리터, 따베페스츄리4, 단팥빵3, 다이제스트, 사브레(2x4), 사탕5
●준비물: 텐트, 매트리스, 스틱, 바람막이, 고아텍스, 헤드랜턴, 말방울, 스패츠, 구급약(소화제,정로환,밴드),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2, 팔토시, 휴지, 물티슈,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보온의류, 양말, 띠지13, 현금 지폐
●거리: 약 58.9Km
●소요시간: 46.36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기차24,900원, 점심11,000원, 아스크림1,400원, 캔커피1,000원, 기차2,600원, 기차13,700원, 뒤풀이8,000원
●날씨: 15~26, 첫날, 둘쨋날 흐림, 둘쨋날 밤 비 약간, 셋째날 맑음
●산행경과:
* 9. 21.(일) : 13.4km(15.5km)
- 15:50 : 출발
- 17:34~51 : 삼도봉(1,178m)
- 18:22 : 석기봉(1,242m)
- 19:29 : 민주지산(1,241.7m)/ 삼면봉
- 19:40~54 : 대피소
- 20:50 : 각호산(1,202m)
- 21:40 : 도마령 비박
* 9. 22.(월) : 42.96km(54.4km)
- 06:12 :도마령 출발
- 06:57 : 삼면봉/ 천만산(960m)
- 07:09 : 865m봉
- 07:48 : 산막봉(916m)
- 08:15 : 삼읍면봉(882.6m)
- 08:27 : 임도(삼봉산 고갯마루)
- 08:42 : 삼봉산 전위봉(919m)
- 08:56 : 삼봉산(929.9m)
- 09:55 : 783.3m봉
- 10:42 : 740.1m봉/ 삼각점봉
- 11:55~12:17 : 794.5m봉
- 12:48 : 서낭당고개
- 13:18 : 737m봉/ 보조도근점NO402
- 13:56 : 649.5m봉
- 14:55 : 681.4m봉
- 16:32 : 삼읍면봉(303.3m)
- 15:12~22 : 가리재
- 18:18 : 537.7m봉
- 19:14 : 백마산(535.7m)
- 20:22 : 성황당고개
- 20:56 : 무량산(426.5m)
- 21:24~35 : 절터샘
- 22:16 : 372m봉
- 22:21 : 비박
* 9. 23.(화) : 58.95km(65.6km)
- 06:18 : 출발
- 06:26 : 291.9m봉
- 06:48 : 솔티재
- 08:23 : 331.3m봉
- 09:19 : 점말고개
- 09:38~46 : 322.3m봉
- 10:08 : 분통골고개
- 10:38 : 삼읍면봉(279.7m)
- 12:34 : 314.4m봉
- 13:08 : 갈고개
- 13:25 : 139.0m봉
- 13:41~53 : 용당지하도
- 14:25 : 합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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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호지맥(角虎枝脈)이란?
백두대간 삼도봉(1,178m)에서 분기하여 서북진하며 석기봉(1,242m), 민주지산(1241.7m), 각호산(角虎山, 1,202m), 도마령을 지나 천만산(960.1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칠봉산, 성주산, 월영봉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 하나를 떨구고 한줄기는 계속 북진하며 삼봉산(930.4m), 상촌산(794.8m), 가리재, 백마산(534.4m), 무량산(426.5m), 솔치재, 갈고개를 지나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 초강리에 도달해 금강과 초강의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3km로 각호지맥의 산줄기는 금강 동쪽, 남으로 천만산에서 발원한 영동천(永同川)과 북으로 초강(草江)을 나누는 분수령이 되며, 동시에 상주 봉황산부터 영동 삼도봉까지의 백두대간과, 북쪽의 팔음지맥(八音枝脈)과 함께 초강 물줄기를 오롯이 가두어 금강(錦江)으로 흘러보내는 우측 울타리가 된다.
♤ 각호지맥 개념도
♤ 각호지맥을 지나는 동네
* 김천시
김천시는 경북 서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금오산, 서쪽은 황악산으로 백두대간의 일맥이 험준한 산악 지대이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대전과 대구의 중간 지점에 있다. 율곡동 일원에는 한국도로공사 등이 이전하여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시청 소재지는 신음동이고, 행정구역은 1읍 14면 7동이다.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의 김천면·군내면·미곡면 일대가 시로 발전한 곳이다. 김산군은 신라 때 동잠현(桐岑縣)으로 이곳은 눌지왕대에 아도(阿道)가 직지사를 창건하는 등 신라 불교전래의 통로가 되었던 곳이다. 757년에 김산현(金山縣)으로 고쳐 개령군 영현이 되었다. 1018년에는 경산부(京山府:성주)의 속현이 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되었다. 조선에 들어 성주의 속현이었던 어모현(禦侮縣:지금의 김천시 어모면 일대)을 병합했다. 제2대 임금인 정종(定宗)의 태(胎)를 안치했다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금릉이었다. 김산군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3등군이 되어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에 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김산군·지례군·개령군을 통합하여 김천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20개면으로 조정했다. 이때 김산군의 군내면과 미곡면이 금릉면으로 통합되고, 김천면은 그대로 존속했다. 예천과 안동을 연결하는 경북선이 부설되던 해인 1931년에 김천면과 금릉면을 합하여 김천읍으로 승격시켰고, 1949년 김천읍은 대구에 이어 경상북도에서 2번째로 시가 되었다. 이때 김천군의 나머지 지역이 금릉군으로 개칭되었다. 김천시는 고려시대부터 충청도에서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로 통하는 김천역이 설치되어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며, 조선 후기에서 일제시대 초기에는 김천장이 대구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여 활기를 띠었던 곳이다. 1905년 경부선, 1931년 경북선, 1918년 경부국도,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함으로써 더욱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러나 김천시는 통과지역의 성격만을 지니게 되었고, 신흥도시인 구미의 그늘에 가려 도시 및 시장의 기능이 침체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 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금릉군과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다. 시의 동북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추풍령(秋風嶺, 1,111m)·삼도봉(三道峰,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눌의산(743m)·황악산(1,111m)·천덕산(98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삼도봉은 충북·전북·경북의 경계가 되고 있다. 남쪽에는 대덕산에서 갈라져 나온 수도지맥이 뻗어 있고, 수도산(修道山, 1,317m)·단지봉(丹芝峰, 1,327m)·국사봉(875m) 등이 주봉을 이루며 경남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쪽에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 977m)이 솟아 있어 구미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영암산(782m)은 김천시·칠곡군·성주군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남쪽에는 백마산(716m)·압속산(870m) 등이 솟아 성주군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또한 추풍령·면목령(面目嶺)·주치령(走峙嶺)·우두령(牛頭嶺) 등의 고개는 높은 산지를 가로지르며 인접지역으로 통하는 주요 육로가 되고 있다. 직지천과 감천은 이 지역의 주요 하천으로, 직지천은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흐르며 금릉평야의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된다. 모암동에서 직지천과 합류하는 감천은 남서부에서 북동부로 이 지역을 관통하며, 직지천·아천·율곡천·부항천 등과 합류하여 개령평야를 이루고 구미시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들 하천에 의해 형성된 개령평야와 금릉평야는 넓고 비옥하여 예로부터 경북 남서부지역의 주요곡창지대가 되어 왔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영동군
영동군(永同郡)은 충북 최남단에 있는 군으로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옥천군, 서쪽으로는 충남 금산군과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경북 김천시, 상주시, 남쪽으로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과 접한다. 영동 남부의 민주지산(1,242m)에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3도의 경계가 되는 삼도봉이 있다. 영동의 농특산물로는 곶감, 포도가 유명하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유원대학교가 있다. 군청 소재지는 영동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0면이다. 길동(吉洞), 계주(稽州), 영산(永山), 계산(稽山)으로 불리었으며, 군청 소재지인 영동읍에는 주곡천(主谷川)과 양정천(楊亭川)의 이수(二水)가 합류하여 영동천(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한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된다. 신라시대 길동의 "吉"도 이두문에 따라 발음하면 "길=永"이 되며 본군의 명칭인 "永同"은 이 "二水"와 "吉同"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초에는 길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당시에 영동으로 고쳐 불렀다. 영동군은 백두대간과 금북정맥 양쪽에 위치하고 있어 군 전체가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는 눌의산(訥誼山 743m) · 황악산(黃岳山 1.111m)이 우뚝 솟아 있고 금강정맥에서 금강기맥이 갈라지는 지점인 서쪽에는 마니산(摩尼山, 640m)·천태산(天台山, 715m)·성주산(聖主山, 624m) 등이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한다. 남쪽으로는 천혜의 자연림으로 알려진 민주지산(眠周之山, 1,242m)과 석기봉(石寄峰, 1,200m)·각호산(角虎山, 1,176m)·삼도봉(三道峰, 1,176m)·천마령(天摩嶺, 926m)·막기황산(1,000m) 등 높은 산들이 모여 있으며 북쪽에는 백화분맥의 포성봉(捕城峰, 933m)이 있다. 예전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어 온 북동부의 추풍령(秋風嶺)과 괘방령(掛榜嶺)에 지금은 고속도로와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3도가 모두 접하는 위치인지라 상촌면에 '삼도봉'이라는 산이 있으며, 3도의 방언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등에서 방언 연구를 하러 많이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리학과, 지리교육과 역시 문화 연구 차원에서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의 방언은 기본적으로 충청도 사투리로 분류되지만 데우다-뎁히다, 피곤하다-대근하다 등의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경북과 가까운 황간면, 상촌면, 매곡면, 추풍령면 등 경부선 연선에 위치한 쪽은 아예 말이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전북과 가까운 용화면과 학산면은 전라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생활권은 도청 소재지인 청주가 아니라 대전, 김천과 가깝다. 특히 동부 지역인 상촌면, 황간면, 추풍령면, 매곡면은 김천 생활권에 가까운데, 이들 지역은 거리상으로 영동읍보다 김천 시내가 훨씬 가깝기 때문에 김천과 매우 밀접하다. 그래서 김천시 시내버스가 도 경계를 넘어 황간면, 상촌면, 매곡면, 추풍령면까지 온다. 심지어 영동군 농어촌버스가 상주시 서부지역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김천시 시내버스, 구미시 시내버스, 칠곡군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김천, 구미, 칠곡, 대구에서 영동군까지 시내버스만으로도 갈 수 있다. 또 서남부 지역에서는 무주로 가는 110, 111, 112번 버스가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무주에서 기차 타러 영동에 오는 등 무주군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전이 가까워 매우 살기 좋은 환경이다. 다만, 전투기 훈련이 많아 엄청나게 시끄러운 편이므로 조용한 곳을 원한다면 피해야할 고장이다. 영동은 금강 상류지역으로 곳곳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금강에 흘러들고 있는데 산과 물이 많아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남쪽 석기봉(石寄峰 1,200m)에서 시작되어 동부와 북부를 돌아 금강에 합류하는 초강천과 서부의 호탄천·원당천 등이 있다.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지만 충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아 '과일나라'라고 불릴 만큼 생산되는 과일이 많고 맛이 매우 좋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무주군(茂朱郡)
무주군은 전북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충북, 충남, 경북, 경남 등 4개 도와 인접한다. 반딧불이의 대표적인 서식지로 유명하고, 청정환경을 기반으로 관광ㆍ레저형 기업도시를 지향하는 휴양도시로서, 무주덕유산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2017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의 개최지이다. 2005년 정부로부터 기업도시로 선정되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군청 소재지는 무주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5면이다. 무주는 고려말까지 독립현이었던 주계현(朱溪縣)과 무풍현(茂豊縣)을 조선초에 통합하면서 머리 글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삼국시대에 주계는 백제의 적천현(赤川縣), 무풍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적천현은 단천현(丹川縣)으로 개칭해 진례군(進禮郡, 금산)의 영현이 되었고, 무산현은 무풍현으로 개칭해 개령군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까지 단천현은 마한·백제 문화권에 속했으며, 무풍현은 변진·신라 문화권에 속했다. 940년(태조 23)에 단천현을 주계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주계현과 무풍현이 모두 진례군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무풍현에 감무를 두고 주계현도 겸임하도록 했으며, 1391년(공양왕 3) 무풍현에 주계현을 병합함으로써 지금의 무주군의 틀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의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4년(태종 14)에 무주현으로 개칭했고, 중심지를 주계(朱溪)에 두었다. 임진왜란 후에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된 것을 계기로 1674년(현종 15)에 도호부로 승격하고 금산군의 안성면·횡천면을 편입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남원부 무주군, 1896년에 전라북도 무주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로 금산의 두입지인 부남면이 무주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부내면·서면·북면이 무주면으로, 풍동면·풍남면이 무풍면으로, 신풍면·풍서면·횡천면이 설천면으로, 상곡면·유가면이 적상면으로, 일안면·이안면이 안성면으로, 부남면은 그대로 통합되어 6개 면이 되었다. 1979년에 무주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백두대간의 여러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이 뻗어 있다. 또한 진안고원의 북부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높이 400~500m 이상의 내륙산간지역이므로 논으로 이용할 수 있는 평야는 협소하다. 군내에는 적상산(1,029m)·거칠봉(1,178m)·백운산(1,010m)·지봉(1,248m)·덕유산(1,614m)·두문산(1,051m)·대덕산(1,290m) 등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 금강이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서 발원하며, 무주구천동에서 발원한 남대천과 덕유산 산록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금강에 합류한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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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백두대간 삼도봉-1.2km-석기봉-2.4km-민주지산-2.8km-각호산-1.3km-도마령-1.4km-천만산-3.6km-삼봉산-6.0km-성황당고개-9.1km-가리재-3.6km-백마산-2.7km-성황당고개-5.1km-솔치재-11.7km-갈고개-3km-초강/금강합수점
♤ 구간거리
- 물한계곡 ~ 도마령 13.5km(지맥 7.9km, 어프로치 5.6km)
- 도마령 ~ 가리재(묵은점) 21.5km
- 가리재 ~ 합수점 24.5km
-. 솔치재 ~ 합수점 14.7km, 5.5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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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도마령 : 깨끗한 화장실
- 가리재 : 대동산업, 수도, 식수 가능
- 솔치재 : 1.1km 유원대학교 편의점
- 비탄고개 : 인가(스치로폼 판넬 외딴집), 식수 가능
- 점말고개 : 저수탱크 수공
- 갈고개/ 용당로 : 인가, 공장
- 영동택시 : 010-7458-3700
♤ 서울에서 각호지맥 분기점 가는 길
- 서울역 ~ 영동역: ~08:49, 09:08, 10:23, 10:48,~ ,20:17, 02.14h, 20,400원, 05:53, 02.45h, 13,700원
- 서울 ~ 대전: ktx, 08:35, 08:58, 09:04, 09:23, ~, 1.09h,
- 대전 ~ 영동: 무궁화호 ~09:28, 10:04, 10:40, 10:58, 12:16, 12:38~, 0.25~36h,
- 영동역 광장~ 물한계곡 640번 버스: 06:30, 07:30, 12:20, 14:40, 17:50, 1h, 1,000원
- 영동역 ~ 물한계곡: (신탄리로) 택시 45,000원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심천교/ 용당리입구 정류소 ~ 영동역 420번 버스: 11:40, 16:20, 17:30, 18:50, 19:50
- 심천역 ~ 서울: 16:45, (19:41 대전,조치원), 13,000원, 2.40h,
- 유천콜택시: 043)743-4490,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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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역에서 물한리 들어가는 12:20분 버스를 이용하고자 했으나 주말이라 매진된 열차가 많아 출발이 늦었습니다. 충북 영동군이 품고 있는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각호지맥, 백하지맥, 장령지맥, 팔음지맥 등이 있으나 각호지맥 이야말로 영동군의 심장부 영동읍을 반시계방향으로 돌아 백두대간의 기운을 남쪽 용화면에서 북쪽 심천면까지 운반하는, 삼도봉에서 분기하여 민주지산에서 전북도와 헤어진 이후로는 영동군으로 들어서서 합수점까지 오롯이 영동군 만을 지나는 영동군에게는 축복이자 샛별입니다. 원없이 가을 바람으로 풍욕을 즐겼습니다. 자연의 냄새, 자연의 속삭임, 자연의 풍광과 함께 하는 일은 감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절친이자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죠.
각호지맥은 크게 업다운 없고, 가시도 없고 깔끔하네요. 여름에도 무난한 지맥으로 분류합니다. 영동군이 때맞춰 축제 중에 있습니다. 첫날 비박은 도마령에서 했는데 전망대는 바람이 심해 계단에서... 주차장 엠프가 시간마다 떠들어 시끄러웠어요. 둘쨋날이 문제였어요. 12시경 빗소리에 잠이 깻네요. 난감 무지로소이다. 방수 텐트가 아닌데 우짜징~ 가지고 있는 은박매트 두개를 나무로 구멍을 내 노끈으로 연결하여 텐트를 덮고, 그 위에 쪽동백나무를 꺽어 뒤집어서 눌렀습니다.
물한계곡으로 올라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출발해 초강이 금강과 만나는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용당리에서 끝냈는데, 역시 영동군은 과일과 인심이 풍부하네요. 가리재와 비탄고개에서 홍시 몇개 주워 먹었고요. 합수점으로 가는데 레드포도도 주시고, 배도 네개나 주시고, 복숭아도 땅에 떨어진거 맛만 봤는데 당도 대단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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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두번 하며 말로만 들었던 물한계곡과의 인연이 이번에 닿았습니다. 비가 온 직후라 상부 쉼터까지 물이 풍부한 물한계곡을 올랐어요.
♤ 물한계곡(勿閑溪谷)/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청정 계곡으로 물이 많아서 붙은 이름으로 물이 차다해서 붙여진 한천(寒川)마을 상류에서부터 약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으로, 삼도봉(1,176m)·석기봉·각호산(1,176m)· 민주지산(1,242m) 등 1,000m고지급 산 4개를 아우르고 둘러싸여 있어 계곡의 물이 풍성하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끝없이 흐른다. 계곡물은 한여름의 낮에도 목욕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 차서「한천」이라고도 했는데 이 때문에 「한천계곡」이라고도 부른다. 한천계곡은 삼도봉과 석기봉을 오르는 등산로에 황룡사 뛰엄바위, 옥소, 옥소폭포, 의용곡폭포, 백일산제골, 구시용소 흔들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이중 8명소를 「한천팔경」이라고도 부른다. 대동여지도의 勿困의 困(곤)은 閑(한)의 약자로 보이고, 勿閑 지명이 표기된 옛 지도도 여럿인데, 안내판에 표시된 계곡 이름만 미니미골부터 은주암골, 무지막골, 쪽새골, 배나무골, 보리밭골, 각호골까지 일곱이니 물이 많기도 하겠다. '물한'이란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물한리에서 유래했다. <여지도서>에 상촌면 물한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흔히 알려진 지명유래로 물이 차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전해지나 영동 향토사학자들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지역이 때문에 물한이란 지명이 명명됐다."고 설명한다. 물한은 부정적 의미의 '勿'에 한가할 '閑'은 한가할 수 없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고, 평지가 없는 지역에서 충분히 유래할 만한 지명으로 보인다.
♤ 황룡사(凰龍寺)/ 기우제(祈雨祭)폭포
황룡사 대웅전앞 석등이 이채롭다. 삼도봉(三道峰)의 정기를 이어받아 민족화합, 남북통일, 국태민안을 성취하려는 취지로 1972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황룡들이 석등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절로 들어서서 삼성각 지나면서 황룡사를 나와 출렁다리를 건너 삼도봉으로 향한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좌측 계곡으로는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휀스가 처져있고, 이곳 안에는 옥소폭포를 비롯한 폭포들이 있는데 지금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옥소폭포를 기우제(祈雨祭)폭포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통일신라시대 가뭄이 심할 때에 황간 현감이 이 옥소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내어 가뭄을 이겨냈다는 기록이 있고, 그 후에 이 상촌지방에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였다. 이 옥소폭포에서 면장이 농민들과 함께 기우제를 지내려고 하였더니 지내기도 전에 후드득 후드득 내리기 시작한 비가 장대비로 변하더란다. 그 후로는 마을에서 큰 고목이나 큰 바위에서 지내던 기우제를 아예 이 옥소바위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삼도봉까지 약 1시간 40분 소요되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 걸으니 시원하더군요.
♤ 삼막골재(森幕谷嶺)/ 무덤골계곡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서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삼마골, 삼박골로 불리는 삼도봉 준령의 하나이며 지명유래는 나무가 우거져 장막을 쳐놓은 것 같다하여 나무빽빽할 '삼(森)'자와 장막 '막(幕)'자를 따서 삼막골이라 하는데 산마골재는 산막골재의 誤記로 보인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보이며,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으며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으며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으며,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는데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출발이 늦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갈 마음이라 미처 분기점 산패를 찾을 생각을 못했습니다.ㅠㅠ 준희선생님 말씀으로는 삼도봉 광장에서 약간 내려선 지점에 있다는데 각호지맥 분기점산패는 저를 봤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군요.
♤ 백두대간 삼도봉(三道峰, 1,178m)/ 삼도봉대화합기념탑/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3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1989년부터 영남, 호남, 충북의 삼도 화합의 상징인 거북, 용, 검은 여의주의 돌탑을 세우고, 매년 10월 10일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동서화합의 제를 올린다고 한다. 이곳은 삼남(三南)의 기(氣)가 한곳으로 모이는 꼭지점이며 원 지명은 화전봉이었다. 조선조 태종(1414년) 때에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이 봉우리가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나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이곳 삼도봉과 민주지산 일대는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영토전쟁이 이루어진 국경지대이자 삼도가 만나는 곳으로 각 도의 사투리와 풍속, 습관 등이 모두 확인되는 지역이다. 삼도봉 서쪽의 물줄기는 금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부항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조망 또한 사방으로 확트여 서북쪽으로 석기봉, 민주지산과 각호산이 이어지고 동북쪽으로는 화주봉을 비롯한 백두대간 능선과 황학산 줄기가 달리며, 남동쪽으로는 해인리 산곡마을을 지나 가야산 줄기가, 남으로는 삼봉산 너머 덕유산 줄기가 이어진다.
♤ 전북 무주군 설천면(雪川面)
설천면의 지명유래는 조선 영조 때 이봉상(李鳳祥, 1676~1728)이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설천(雪川)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이 고장에 9천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는데, 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1914년에는 이전의 금산군에 속했던 구천동 지역을 설천면에 통폐합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삼두마애불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은 백제의 주천 땅이었고 등너머 무주군 무풍면은 신라 무풍현 영토였다.
♤ 충북 영동군 상촌면(上村面)
영동군 상촌면은 남동쪽은 경북 김천시, 남서쪽은 전북 무주군, 북동쪽은 매곡면(梅谷面), 북서쪽은영동읍과 접하며, 백두대간이 면의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험준한 산악지역을 형성하고 남쪽에 민주지산(岷周之山)·각호산(角虎山)·막기항산·황학산(黃鶴山) 등 높은 산이 중첩되어 있어 평지가 거의 없다. 다만 북쪽으로 흐르는 초강천 상류의 산간지역에 좁은 경지가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은 감·잎담배·양잠 등이며, 그 밖에 임산물이 풍부하고 광산물도 산출된다. 관광지로 물한리의 물한계곡이 있으며 산지가 연속되어 교통이 불편하며 북부의 황간으로 연결된 도로가 있다. 문화재로는 영모재(永慕齋:충북유형문화재 176), 영동 삼괴당(三槐堂:충북기념물 22), 인천채씨(仁川蔡氏) 열녀문, 세심정(洗心亭), 하도대리 사지(下道大里寺址), 밀양박씨(密陽朴氏) 열녀문, 충주박씨(忠州朴氏) 열녀문, 고반대(考槃臺), 유곡리(柳谷里) 성지 등이 있다.
♤ 석기봉(石奇峰, 1,242m)/ 도계/ 군계/ 면계/ 삼리봉(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 대불리)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전체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품봉(食品峰), 석의봉(石衣峰)이라고도 한다. 바위산이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도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석기봉은 민주지산의 주릉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산이기도 하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마치 파노라마 산 사진을 보는 듯 전망이 사방으로 일망무제다. 가야산, 덕유산, 속리산, 금오산, 황악산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좋으면 계룡산과 지리산도 볼 수 있다. 석기봉 정상에서 북사면 암릉 아래로는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또는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 안내판이 서 있는데 ‘민주지산 석기봉 삼신상(民主之山 石奇峰 三神像)’이라고 적혀있다.
밝을 때 조금이라도 더 진행해야 했고, 삼두불상은 무주 무풍 불땅마을에서 올라 구경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우회하여 진행했습니다.
♤ 석기봉삼두마애불상(石奇峰 三頭磨崖佛)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불당/ 내북마을 중고개에서 올라서면 석기봉 정상 서남향 50m 아래 암벽의 암릉에 새겨져 있는 시대미상의 몸이 하나에 머리가 셋이 중첩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로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한 마애불상 머리위에 조금 작은 불두를 올리고 그 위에 더 작은 불두를 올려 3두의 불두가 피라미드 형태로 양각되어 있는 특이한 마애불로서 이런 불상은 우리나라 마애불중에 유일한 형태이다. 마애불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왼쪽발 발가락이 오른쪽발 정강이 밑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자세로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납의는 음각된 두 선이 오른쪽 허리까지 돌려 지극히 형식적으로 표현했다. 몸에 비해 비대한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머리는 소발이며, 귀는 목까지 내려왔다. 비교적 짧은 목에다가 삼도(三都)를 표현했고 양쪽 어깨에서 가슴까지는 영락(瑛珞)이 장식되었으며 양 손은 약간 벌어진 형태로 배에 앉혀 있는데 손가락만 너무 선명한 부분은 누군가 손을 댄 느낌이다. 얼굴은 오랜 풍우(風雨)에 마모된 탓인지 윤곽은 투렸하지 못하나 옅은 미소를 머금고 가늘게 뜬 눈과 다문 입술, 얕게 조형된 코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다. 마애불 오른쪽 아래로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탕이 있다. 삼두마애불이 양각된 바위 밑에있는 샘이다. 삼두마애불이 있는 모암벽에서 떨어지는 석간수인데, 1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인지라 약수라하여 이 샘물을 먹고 목욕을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알려져 왔다.
♤ 민주지산(1,241.7m)/ 1등삼각점(영동 11/ 2013 재설)/ 도계/ 군계/ 삼면봉(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 영동군 용화면 안정리, 조동리)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용화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삼면봉으로 민주지산(岷周之山)의 한자(漢字) 이름을 보면 민(岷)은 산맥을 뜻하고, 주(周)는 두루 혹은 둘레를 뜻하므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이후에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단순 표기하여 원래의 이름과는 다른 지명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민주지산 정상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다. 기운넘치는 거대한 능선이 계속해서 시선을 빼앗는다. 민주지산이 민주화투쟁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여기는걸까. 하지만 민주지산(岷周之山)은 민주(民主)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또한 봄철 능선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와 산죽이 매우 아름답다.
♤ 충북 영동군 용화면(龍化面)
고려 시대에 용화현이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영동현에 편입되었다. 용화라는 지명은 용화면사무소 뒤로 뻗어 내려온 내룡리와 용화리를 잇는 산 능선이 풍수지리설에서 용으로 표현되고, 용강의 물줄기가 용같이 생겼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영동군, 더 나아가 충북의 최남단으로, 영동군청(영동읍)보다 무주군청(무주읍)이 훨씬 가까운 데다가 면소재지 자체도 남대천만 건너면 바로 무주군일 정도여서 무주와도 생활권이 밀접하다. 근데 정작 무주읍 가는 버스는 없다. 심지어 추풍령면과 달리 영동읍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한 막장 고갯길을 통과해야 하며, 양강면에서 용화면으로 산을 타고 넘어가는 길이 여러모로 굉장하다. 용화재와 도덕재를 넘는데 이 두 고개는 말 그대로 산을 깎아서 빙빙 돌아 올라가는 식의 길이라 굉장히 위험하다. 사실상 눈이 내리면 실질월경지 신세나 다를바 없는 수준이다. 무주에서 영동으로 가는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겨서 딱히 용화 쪽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약 20분 정도 소요). 영동군임에도 영동읍으로 가려면 무주군을 거치는 게 더 편한 곳. 영동읍에서 용화로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기존 도로를 이용할 때도 있고, 해당 도로가 있는 골짜기 한가운데에 있는 자계리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탈 수밖에 없다. 그 외 상촌면으로 가는 도마령도 굉장히 험하다. 각호산, 민주지산 방면 등산로가 있는 도마령은 아예 국지도가 지나가는 길이다.
♤ 충북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肇東里)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용화면 조동리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도로가 보인다. 영동군 용화면에 있는 조동리는 천만산과 각호산 자락에 있으며 용화천의 발원지이다. 임야가 넓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산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새골(조동), 불당골(불당곡), 상촌, 평촌 등이 있으며 조동리는 마을이 민주산과 천마령 사이의 골짜기에 있어, 새골 또는 조동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불당골은 옛날에 불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촌은 조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고, 평촌은 들이 넓어 평평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리는 조동1리와 조동2리로 나뉜다.
♤ 민주지산 무인대피소/ 위령비
1998년 4월1일 특전사 소속 제5공수 특전여단(흑룡부대) 부대원들이 눈보라와 폭설로 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사고가 난 뒤다. 당시 특전여단 부대원들은 천리행군 훈련 도중 만난 강풍과 폭설 등 4월 이상기온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피해를 입었다. 2001년 정상부근에 무인대피소가 세워졌다.
♤ 1,185m봉/ 방아쌀개봉 갈림길
이곳에 각호산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방아쌀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방아쌀개처럼 생겼다 하여 쌀개봉 혹은 아가리째진 산으로도 불리는 각호산은 해발 1,176m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밑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하며 상촌면과 용화면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주변 능선에는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며 가을에는 온갖 버섯이 지천이다. 물한리 버스종점에서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데 정상은 맞은편 암봉이다.
역시 공부를 조금 덜한 티가... 우람한 각호산 정상석은 볼품없는 정상보다 살짝 옆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간에는 모두가 다 용서가 됩니다.ㅋ
♤ 각호산(角虎山, 1,202m)/ 면계/ 삼리봉(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상촌면 물한리 → 둔전리)
충북 영동군 용화면과 상촌면에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인근의 민주지산의 명성에 가려 등산객들이 뜸한 산이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는 접근하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옛날에 뿔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두개의 암봉으로 이뤄진 정상부가 빼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동국여지도에는 각괴산(角魁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배거리산이라는 지명도 가지고 있는데 개념도상 배거리산은 여기가 아니다. 『대동여지도』에는 '각귀산(角鬼山)'이 기록되어 있고,『조선지지자료』에는 "각휘산(角輝山)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 "각휘곡(角輝谷)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 "각후산(覺后山)은 군동면 상가리촌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지금의 산 이름인 각호를 각휘(角輝), 각후(覺后)와 같이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각호산의 다른 이름으로 '쌀개봉'과 '아가리째진산'을 기록하고 있으며, "산에 있는 바위가 뿔 또는 쌀개처럼 생겼으며, 그 아래에 호랑이가 살았다."라는 각호산의 지명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 843.1m봉/ 이동통신탑/ 4등삼각점(영동 456/ 1980 재설)/ 면계/ 삼리봉(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상촌면 둔전리 → 고자리)
산불감시초소 옆에 이동통신탑과 삼각점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 고자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高子里)
능선 오른쪽 아래로는 상촌면 고자리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도로가 보인다. 상촌면 상고자리(上高子里)에서 도마령을 거쳐 용화면 조동리로 넘어가려면 24구비를 돌아야 한다. 영동군 상촌면 상고자리(上高子里)는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에는 막기항산 등의 높은 산지가 이어지며 서쪽에는 초강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흘러간다. 자연마을에는 상고자골, 중터, 지동이 있으며 고자골은 마을이 도마령(刀馬嶺)의 앞이 된다 해서 상고자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중터는 마을이 고자리의 가운데에 터를 잡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상용정(上龍亭, 841m)
영동군 상촌면과 용화면의 앞글자를 따서 상용정이라 하였다.
♤ 도마령(都馬嶺, 800m)/ 49번도로/ 전망대/ 고자리고개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9번 도로가 지난다. 영동 횡간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길이고 지명의 유래는 '말을 키우던 마을', '혹은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고 하는데 용화면 방향은 구절양장의 도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도마령보다는 고자리고개라 부른다. 도마령 주변에는 민주지산, 천만산, 각호산, 삼봉산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24굽이를 돌아가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이다.
♤ 973m봉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전망대 3.86km, 도마령 0.68km 이정표가 서있다. 좌틀로 꺽어져 내려선다.
♤ 천만산(千萬山, 960.1m)/ 백하지맥 분기점/ 삼면봉(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용화면 조동리 → 양강면 산막리)
넓은 정상부에 장의자가 몇개 놓여 있고, 천만산과 백하지맥 분기점 산패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준희선생님 여기가 삼면봉입니다. 영동군 상촌면, 용화면, 양강면입니다.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충북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와 용화면 조동리, 상촌면 둔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맥의 왼쪽이 용화면 조동리 → 양강면 산막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조선 후기 『해동지도』에 천마령(天摩嶺)과 함께 '천마산(天摩山)'으로 표기되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는 "천마산(天摩山)은 현 남쪽 25리에 있다. 황간 황악산으로부터 천마산 주맥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 '남일면 천만리(千萬里)'가 기록되어 있다.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지지자료』에 '천마산(天摩山)'으로 표기된 반면에, 『대동여지도』에는 '천마산(天馬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지명은 비교적 최근에 사용된 이름으로 여겨지며, 마을 지명인 천만리(千萬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산(天摩山)과 그 다른 이름으로 '천만산(千萬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천마령(天摩嶺)은 북동쪽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만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백하지맥은 좌틀로 내려서고 각호지맥은 직진이다.
♤ 충북 영동군 양강면(楊江面)
면소재지는 괴목리, 관할 법정리는 14개이다. 영동현 남일면과 남이면 지역으로 1914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 령에 따라 남일면과 남이면 및 양남이소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일면의 소재지인 양정(楊亭)과 남이면의 소재지인 구강(九江)의 이름을 따서 양강면이라 칭하고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양강과 송천이 흐르는 평야지로 토지가 비옥하여 경제작물이 재배 적지이며 경부선과 4번 국도 및 지방도의 확,포장으로 교통이 원활하다. 용화면을 거쳐 전북특별자치도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 외에는 평범한 시골 농촌마을이다. 영동읍이 바로 옆인지라 사람은 꽤 살고 있어 군데군데 마을이 있다. 유동인구가 화요일과 목요일에 조금 늘어나며, 어차피 시골인지라 티는 별로 안나지만 이 두 날에 영동읍 읍내 상점의 매출이 늘어난다. 이유는 속칭 양강부대라고 하는 중요 군사시설(8탄약창)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어 화요일, 목요일에 휴가 복귀자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2011년에 육군종합행정학교가 영동읍과 면해 있는 지점에 생기면서 더 증가하였다. 관내 학교는 양강초 하나 있다. 원래는 쌍암리도 존재했었는데 상술한 군부대 부지로 편입되며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 되면서 폐지되었다.
♤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山幕里)
영동군 양강면에 위치한 산막리는 남쪽의 삼봉산과 넓은 산자락을 두고 있는 산골짜기 마을이다. 동,남,서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평지가 좁으나 산막저수지와 영동천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산막골, 신방동, 외천마, 내천마가 있으며 산막골은 과거에 산속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외천마와 내천마는 각각 바깥쪽과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전문가님 띠지가 떨어져 있어 스틱으로 잡아 끌었더니 산패도 딸려오네요. 여기 이정표에 잘 부착해 두었습니다.
♤ 916m봉/ 산막봉/ 면계/ 삼리봉(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양강면 산막리 → 죽촌리)
나무데크 계단 위에 자리한 봉우리이다.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양강면 산막리 → 죽촌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각호지맥이 영동읍과 처음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후 지맥은 영동읍을 반시계방향으로 휘감아 올라갑니다.
♤ 삼면봉(882,6m)/ 무인산불감시탑/ 데크전망대/ 군계/ 삼읍면봉(상촌면 고자리, 양강면 죽촌리 → 영동읍 당곡리)
준희선생님 산패와 그린나래 삼면봉 산패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30m 정도 더 진행하면 각호산과 영동읍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경치 좋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산막리로 이어지는 임도 뒤쪽으로 백하지맥 능선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장령지맥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지맥의 왼쪽이 양강면 죽촌리 → 영동읍 당곡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영동군 영동읍(永同邑)
영동읍은 충북 영동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서 삼봉산과 백마산 부근에서 발원한 영동천이 소규모 산간 곡지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읍 중앙에는 경부고속철도와 경부선 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수도권 및 충청권과 영남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이 되고 있으며 현재 계산리, 동정리, 회동리, 화산리, 당곡리, 산익리, 매천리 등 1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영동이란 지명은 삼국사기지리지(상주)에 영동군은 본시 길동군인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길동군이 현재의 영동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동(吉洞), 계주(稽州), 영산(永山), 계산(稽山)으로 불리었으며, 군청 소재지인 영동읍에는 주곡천(主谷川)과 양정천(楊亭川)의 이수(二水)가 합류하여 영동천(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한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되는데 신라시대 길동의 "吉"도 이두문에 따라 발음하면 "길=永"이 되며 본군의 명칭인 "永同"은 이 "二水"와 "吉同"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초에는 길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당시에 영동(永同)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읍은 조선 시대 영동현의 읍치가 있던 군내면과 함께 서이면 및 군동면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 군내면은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여지도서에는 군동면이 동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정리와 회동리 및 가이리 등 6개 리를 관할하였고 서이면은 토금리와 산리동리 및 마곡리 등 5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이와 함께 각 동리의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동면이 동여도에는 현동면이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동면과 서이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군동면 지명은 동면 혹은 현동면으로 지칭된 방위 지명이었으나 1914년에 소멸되었다. 신구대조에는 군내면을 포함해 군동면의 22개 리, 서이면의 4개 리, 남일면의 음가동을 병합해 영동면이라 명명하여 새롭게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의 군청은 영동면 계산리에 있었다. 계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영동의 별칭으로 현재는 지명 영역이 축소되어 촌락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1940년에는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K9승용차 한대가 제가 도착하니 막 빠져나가네요. 인사라도 나누면 좋을텐데 그럴 여유가 없는 모양입니다.
♤ 삼봉산 임도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상고자동과 영동읍 당곡리 삼봉마을을(영동군 양강면 죽촌리) 잇는 임도 고갯마루로 삼봉산까지 3.7km 출발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堂谷里)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당곡리는 영동읍의 동쪽에 위치하며, 삼봉산 자락에 걸쳐 있으며 하천이 흘러 내려가는 산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당곡(당골), 삼봉이, 새터(신기), 양지말(양촌) 등이 있다. 당곡은 본래 관성당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삼봉이는 삼봉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새터는 새로 된 마을이란 뜻이며 양지말은 새터 동쪽 양지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곡리의 신당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문화유적으로 영동 당곡리 12장 신당이 있다.
바위봉우리 전위봉을 넘어서야 하는데, 우회를 하며 알바에 빠질 수도 있겠더군요.
♤ 삼봉산(三峰山, 929.9m)/ 3등삼각점(영동 308/ 1980 재설)/ 군계/ 읍면계(영동읍-상촌면)/ 리계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와 상촌면 고자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삼각뿔 모양의 나무로 된 정상 표시목, 3등삼각점, 묘지가 있었는지 묘지처럼 보이는 봉분이 있다. 삼봉산은 『해동지도』(영동)에 삼봉산(三峯山)이 표기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대동여지도』에는 삼봉(三峯)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삼봉산 북쪽 기슭 영동읍 당곡리에는 삼봉이라는 마을 지명과 삼봉천(三峰川)이라는 하천 지명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삼봉산(三峯山)이 기록되어 있고, 지명 유래에 대해 산 모양이 세 봉우리로 되어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산의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삼봉천이 있는데 영동읍 당곡리 삼봉산에서 발원하여 화신리, 회동리를 지나 계산리에서 영동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금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금강의 제 2지류, 영동천의 제 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삼봉천과 지류인 주곡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11.5㎞, 유로연장 12㎞, 유역면적 44.41㎢이다.
♤ 783.3m봉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걷기 편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 764.5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오른쪽으로 능선이 나가는데 지맥은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왼쪽으로 내려선다.
♤ 740.1m봉/ 4등삼각점(영동 430/ )
준희선생님 산패가 계수나무에 매어 있다. 삼각점은 흙에 덮여 있어 식별이 곤란하다. 지맥은 우틀이다.
♤ 687.3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영동읍 당곡리 → 화신리)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당곡리에서 화신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번호키던데 저 비밀번호를 기둥에 적어두면 들어가서 비박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 산악기상 관측장비시설
연두색 펜스가 쳐진 산악기상 관측장비시설을 내려서서 송전탑을 건설하며 만든 듯한 임도를 잠시 따른다.
♤ 상촌산(794.5m)/ 2등삼각점(영동 24/ 1983 재설)/ 군계/ 읍면계/ 삼리봉(상촌면 고자리, 영동읍 화신리 → 임계리)
왼쪽으로 영동군 영동읍 화신리 절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고, 정상에는 준희선생의 산패와 2등삼각점이 있는데 선답자들의 일부 산행기에는 상촌산으로 등장하는 봉우리이나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며 지금은 상촌산이란 산패나 표지기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우틀로 내려선다.
♤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林溪里)
영동읍 임계리는 삼봉산 자락에 있어 산과 골짜기가 많으며, 주곡천의 발원지로 임야가 넓으며 밭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두미동, 상고, 안점(내점), 임실, 장내동 등이 있다. 안점은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는데 그 안쪽이 된다고 하여 생겨난 지명이며 임실은 예부터 산에 숲이 우거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임계리는 임실과 임실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지명이다.
♤ 780.4m봉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이후 서낭당고개까지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 서낭당고개(545m)/ 성황당고개/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임계리,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 상도대리)
V자 안부로 특히 737m봉으로의 오르막경사가 심하다. 2구간 접속 구간인 49번도로 선화치고개로 하산길이 있다.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 안점마을에서 상촌면 상도대리 선화치로 이어지는 고개로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흔적의 희미한 길이 보이고 서낭당의 흔적인 돌무더기와 노거수에 준희선생님 여기가 서낭당 고개입니다. 산패가 벚나무에 걸려있다. 서낭은 마을의 터를 지켜주는 신(神)인 서낭신이 붙어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낭신은 원래 성황(城隍)에서 온 말로서 한 나라의 도성을 지켜주는 신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토속신으로 변하여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같은 유래 때문에 아직도 마을 어귀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곳을 서낭당, 성황당, 성황단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서낭신을 마을과 토지를 지켜주는 신으로 믿고 섬겨왔는데, 마을 어귀 큰 고목나무나 바위에 새끼줄을 매어놓거나 울긋불긋한 천을 찢어 달아놓고 그 옆 작은 집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당집을 서낭당이라 했다. 때로는 당집 없이 큰 고목나무에 울긋불긋한 천이나 새끼가 매어 있는 것만도 서낭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낭당 앞을 지날 때는 서낭신에게 행운을 빌며 돌을 하나씩 쌓아놓기도 하고, 잡귀가 달라붙지 말라는 뜻에서 침을 뱉고 가기도 한다.
♤ 선화치(仙化峙, 295.4m)/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 (上道大里)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의 선화터 고개는 영동군 상촌면에서 도마령으로 향하는 49번 국도상에 있는 고개로 입구에는 경부고속철도 화신5터널 표지판이 서 있다.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 선화마을에서 도마령으로 올라가는 산간지역의 높은 산지로 험준한 산을 좌우에 두고 있어, 지금은 길이 잘 포장되어 그렇지가 않지만 예전에는 대낮에도 산적들이 길을 가로막고 나올 듯한 으스스한 고개였다. 실상 가까운 곳에 있는 삼도봉(三道峰)의 험한 줄기에서 도적들의 출몰이 빈번했던 만큼 예로부터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그 같은 불안을 안고 다녔던게 사실로, 산적뿐만 아니라 골 깊은 산중에서 당장 산짐승들이 나타나 행인들을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산 길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어느 길이 두려운 길이고 또 어느 길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지 소문을 자주 듣게 마련이어서 관아(官衙) 출입이 잦은 사람이거나 등짐장수ㆍ봇짐장수들도 행로(行路)가 편한 상도대의 고개를 즐겨 찾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험한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신선(神仙)이 되어 넘는다 해서 어느 사이에 고개 이름이 선화터로 되었다고 한다.
♤ 영동보도연맹 사건 희생지 안내판
고속철도 화신 5터널 사갱 옆에 영동보도연맹 사건 희생지 안내판이 있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중순경 영동군 주민 약 300여 명이 보도연맹원으로 무고하게 예비검속되어 영동경찰서에 불법 구금된 후 1차로 약 80여 명이 이곳 충북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와 고자리의 3개 지점에서 집단 총살되어 고귀한 생명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 737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임계리,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 → 하도대리)/ 지적도근점
서낭당고개에서 올라선 무명봉이다.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상촌면 상도대리 → 하도대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지적도근점 NO430이 있다.
♤ 743m봉
넙데데한 안부를 지나 올라선 무명봉이다. 좌틀로 내려선다.
♤ 경부고속전철 화산 5터널
이 등로 아랫쪽으로 경부고속철도 화산 5터널이 통과하고 있다.
♤ 718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임계리,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리 → 임산리)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리 → 임산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林山里)
상촌면 임산리는 영동군 상촌면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초강천이 흐르는 청정 산촌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임산, 관터(관기), 낮천동, 당골(당곡), 비니실(비래곡), 새터(신기), 수무(수산) 등이 있다. 관터는 고려 때 소라현이 있던 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낙천동은 1954년 피난민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즐거운 마을이 되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당골은 예전에 산제당이 있던 곳이다. 새터는 관터 동남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이고, 수무는 숲이 무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관이 빼어나 임산팔경(林山八景)이 있는데 문화재로는 영모재, 영동 삼괴당, 세심정, 인천재씨 열녀문 등이 있으며 임산1리와 2리로 나뉜다.
♤ 649.5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영동읍 임계리 → 가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굵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임계리 → 가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영동군 영동읍 가리(加里)
영동읍 가리는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주곡천, 삼봉천이 흐른다. 벼 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가이(가리), 강변말, 관사, 말목이(마항리), 묵은점(중가리), 사기점, 상가리, 하가리(밀근이) 등이 있다. 강변말은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말목이는 백마산 줄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묵은점은 상가리와 하가리 중간에 위치하여 중가리라고도 하며,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상가리는 가이 위쪽에 위치하며, 하가리는 가이 아래쪽에 위치한다.
♤ 돌리네 안부
돌리네란 석회암 지대에서 용식작용이나 함몰작용에 의해 지표에 형성된 원형 또는 타원형의 와지(窪地)로 싱크홀(sinkhole) 혹은 번역하여 낙수혈(落水穴)이라고도 하는데 돌리네라는 말은 슬라브어로 계곡(valley)이라는 뜻을 갖는다. 단면 형태는 사발형, 접시형 등 다양하다. 규모는 직경 수~수백m까지 다양하나 대체로 20m 내외로 발달한다. 깊이도 1~수십m에 달한다. 깊이와 직경의 비율이 대체로 1:35를 넘지 않으며 아주 얕은 것은 식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 지적도근점
등로 가운데에 NO400이라 쓰여진 삼각점 같은게 보인다. 선돌도 지나고 약초재배지를 알리는 횡단막이 보이기 시작한다.
♤ 681.4m봉/ 읍면계/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가리,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 돈대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상촌면 돈대리 상림마을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좌북쪽으로 이어진다.
산불조심 횡단막이 걸려 있고, 감마로드 띠지가 분맥을 향하고 있네요.
♤ 633m봉/ 각호월류분맥분기봉/ 군계/ 삼읍면봉/ 삼리봉(영동읍 가리, 영동군 상촌면 돈대리 → 황간면 서송원리)
충북 영동군 영동읍 가리, 영동군 상촌면 돈대리, 황간면 서송원리가 맞닿는 삼읍면봉이다. 정상에는 봉따먹기 大家(?)들의 시그널들이 보인다. 오른쪽 능선은 지맥의 분기점인 삼도봉에서부터 이곳까지 길게 같이해 온 상촌면에서 황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나 왼쪽은 영동읍과 계속 같이한다. 4번국도 노근리고개(210m)를 지나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월류봉(400.2m)에서 초강으로 가라앉는 산줄기가 분기하는 봉우리이다.
♤ 영동군 황간면(黃澗面)
충북 영동의 황간은 물이 채워진 산골짜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땅 이름이다. 북쪽으로 백화산, 남쪽으로 황학산이 자리 잡고, 이들 산지에서 각각 발원하는 석천(石川)과 송천(松川)이 서쪽으로 흐른다. 유로를 따라 경부간의 철로와 고속도로가 통과하여,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준령을 이루고 있는 고장이다.
♤ 영동군 황간면 서송원리(西松院里)
영동군 황간면 서송원리(西松院里)는 황간면의 서북쪽에 위치한마을로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산수가 빼어나며 앞으로는 서송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서송원, 명륜동, 신탄(신의티리), 탄막(서탄막) 등이 있다. 서송원은 조선시대에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원집, 서송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륜동은 해방 후에 난민 정착 사업으로 이뤄진 마을이다. 탄막은 서송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숯을 많이 구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탄은 탄막 옆에 새로 생긴 마을로 신의티리라고도 한다. 문화유적으로는 안정 박사 삼묘표가 있다.
♤ 531m봉
약초재배지도 지나고 능선을 따라 업다운을 반복하며 진행한다. 장거리 체력을 요구할뿐 크게 힘들지 않은 능선이다.
♤ 무명고개
영동읍 상가리와 황간면 서송원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 303.3m봉/ 4등삼각점(영동 413 )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흑염소방목장을 철조망 오른쪽으로 지나고, 폐 농장 철망을 왼쪽에 두고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면 왼쪽에 태양광 시설물이 보인다. 철조망과 간벌목으로 어지러워 걷기에 불편하다.
♤ 중생사고개
언제적 얘기일까 고개 왼쪽 아랫쪽에 중생사라는 절집이 있었는지.... 중생사 고개를 지난다.
♤ 281m봉
마루금 오른쪽 아래로 대동산업(퇴비 공장)이 깊이 파고 들어와 절개지가 형성되어 있고, 퇴비공장이 보이는 왼쪽 능선을 따라서 내려선다. 맥길은 퇴비공장 안쪽으로 이어지는데, 울타리 밖으로 우회하여 정문 방향으로 찾아간다. 후문 안쪽으로 진행하여 편하게 정문으로 나갈 수도 있다. 퇴비공장을 내려서서 4차선 도로인 4번국도 암거를 통과하여 한고비를 넘으면 가리재가 나온다.
산꾼들에게 가리재로 알려져 있는데 왼쪽으로는 영동군 영동읍 가리쪽으로 이어지는 구도로가 있습니다. 영동역에서 버스를 타고 황간을 걸쳐 물한리 물한계곡으로 들어갈 때 지나가는, 버스가 자주 다니는 길입니다.
♤ 가리재(加里峙, 225m, 4번국도)/ 삽재/ 영동황간로/ 명륜동/ 읍면계/ 영동읍 - 황간면
충북 영동에서 황간, 추풍령을 거쳐 김천으로 이어지는 4차선의 4번국도 흐른다. 가리재는 충북 영동군 영동읍 신탄리와 황간면 서송원리의 경계에 있는 가리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가리는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주곡천과 삼봉천이 흐르며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서송원리쪽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고개 옆에는 명륜동 유래비와 영동감체험장 팻말이 있다. 산꾼들에겐 가리재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삽재로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가이(가리), 강변말, 관사, 말목이(마항리), 묵은점(중가리), 사기점, 상가리, 하가리(밀근이) 등이 있는데 강변말은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말목이는 백마산 줄기에 있는 마을, 묵은점은 상가리와 하가리 중간에 위치하며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고개 아래로는 경부선 가리터널이 지나가며 아랫마을이 영동읍 가리(加里)라 가리재라 했는데, 마을 유래비에는 삽재고개라 했다. 명륜동은 황간면 서송원리의 자연부락이다. 신탄이나 탄막 역시 서송원리에 속한 마을인데, 고속도로는 노근리에서 북쪽 옥천으로 올라갔지만 경부선 철도와 국도 4호선이 지나는 이곳이 예전 조선시대부터 주요 길목이었던 모양이다.
♤ 명륜동 마을 자랑비
명륜동 마을 자랑비에 의하면, 신탄2리는 탄막 명륜동 11호 샛번지 4개 자연마을로 백마산(白馬山) 기슭 아래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대동맥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도(國道)는 물론 경부선(京釜線) 철로가 마을 한가운데로 지날 뿐만 아니라 경부선 철도의 중앙 지점이 바로 이곳에 있다. 탄막(炭幕)은 예부터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나 보부상들이 지나던 길목으로서 원님도 쉬어 갔다하여 “원골”이란 곳도 있고 1905년 경부선 쌍철 개설때는 주막(酒幕)이 많아 “주점동”이라고도 했다. 명륜동(明倫洞)은 6·25직후까지는 백운동(白雲洞)으로 세가구가 살다가 1955년 손치각(孫治珏)선생님이 난민정착서업소를 세워 30호의 마을을 이루고 이때 새로 생겼다 하여 “샛터”라 하다가 한문학자 박장몽(朴長蒙)선생이 “명륜동”이라 동명을 짓고는 임야(林野)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청소년들이 4-H 클럽을 조직 박토를 옥토로 가꾸고 마을주민들이 일치단결 하여 새마을운동으로 살기좋은 복지농촌을 건설 지금은 포도 선진주산단지가 된 마을이다. 그때 그 옛날 그 시절에 태어난 후손들이 이제 이사회에 진출하여 명인명사(名人名士)가 많아 탄생하였기에 이 비(碑)를 영동읍(永同邑)과 황간면(黃澗面) 경계 지점인 삽재고개 마루에 “이정표... 삼아 세우노라
양회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계속 가면 6.25당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현장인 쌍굴다리로 가는 길입니다.
♤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중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 사이에, 미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민간인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잠입했다고 주장하며 폭격과 기관총 발사로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학살당한 이들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였다. 미군측은 이 사건을 부정했으나 1999년 9월 미국연합통신이 발굴한 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2001년 1월 사건이 공식 인정되었고,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 405m봉/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가리, 영동군 황간면 서송원리 → 우천리)
가리재에서 405m봉까지 40분 가량은 길이 없다. 간벌지와 잡목지를 요리저리 통과해야 하는 빡신 오름이다. 임도와 만나면서 편하게 진행하는데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황간면 서송원리 → 우천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농막이 있는 인삼밭을 지나 맥길을 찾아 올라서서 1시간 가까이 진행하면 등로 오른쪽으로 굴봉이 보입니다.
♤ 굴봉(窟峰, 549.1m)/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가리,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 → 영동읍 심원리)
굴봉은 영동읍 심원리와 황간면 우천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멀리서 봐도 까칠하게 생긴 산으로 마치 촛대봉을 연상케 하는 산인데 산에 굴이 있어서 굴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지맥이 여기부터 솔치재 직전의 274.2m봉까지 영동읍 안으로 들어서서 읍내를 통과합니다.
♤ 537.7m봉/ 4등삼각점(영동 410/ 1980 재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삼각점은 마모되어 식별이 불가하나 대충은 읽을 수 있겠다. 좌틀로 완만하게 내려선다. 537.7m봉에 오르며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 → 영동읍 심원리로 바뀌면서 영동읍 내로 들어서서 이제부터 영동읍 가리와 심원리의 경계를 따른다.
♤ 460m봉/ 묵은점 마을
완만하게 암릉 구간으로 이어지는 잔펀치를 지난다. 영동군 영동읍 가리 무근점(묵은점) 마을이 보인다. 묵은점은 상가리와 하가리 중간에 위치하여 중가리라고도 하며,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 437m봉
안부를 지나 백마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맥은 백마산 정상에서 좌틀로 이어집니다. 뚜렷하게 보이는 길이 아니라 야간이라 감잡기가 힘듭니다.
♤ 백마산(白馬山, 535.7m)/ 백마산성터/ 삼리봉(영동읍 가리, 심원리 → 봉현리)
준희선생님 산패와 그린나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백마산은 충북 영동군의 영동읍 가리와 주곡리 및 봉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1872년지방지도』에는 '백마산성(白馬山城)'이 표기되었다가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에는 "백마산(白馬山)은 군동면 심원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백마산(白馬山)'으로 소개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백마산 아랫쪽으로는 임진왜란 때 축성했다는 백마산성 성터들이 남아있다. 백마산성은 영동군 영동읍 가리와 봉현리, 주곡리에 걸쳐있는 백마산에 자리잡고 있는 성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산성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부산포를 함락하고 북상하고 있을 때, 그 소문을 들은 장사가 나타나 주먹으로 바위산을 깨 높이 6척, 둘레 6,000척의 석성을 쌓은 다음에 마을로 내려가 피란할 자리를 마련하였다며 백마산성을 올라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왜군이 추풍령을 넘어 황간과 영동으로 들어왔고 일부가 백마산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시도했으나 장사의 기지로 왜군을 물리쳤다고 하며 지금도 정상에는 그 당시 밥을 지어 먹었던 자리와 샘터및 성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 영동읍 봉현리(烽峴里)
영동읍 봉현리는 천지봉, 백마산 등이 우뚝 솟아 마을을 감싸며, 앞으로는 봉현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봉현이라 한 것은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통신시설이었던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던 산 밑 동네이기 때문이며, 봉우재나 봉화현이라 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자연마을로는 봉우재(봉화재,봉화현), 양짓말, 음지말 등이 있다. 봉우재는 마을에 봉화대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봉화재, 봉화현이라고도 한다. 양지말은 봉우재 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이다. 음지말은 음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백마산 위에 백마산성이 있다.
♤ 346m봉/ 삼리봉(영동읍 봉현리, 가리 → 주곡리)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가리 → 주곡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영동읍 주곡리(主谷里)
영동읍 주곡리는 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주곡천이 흘러나간다. 임야가 넓으며 밭 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임실(주곡), 미륵댕이(미당, 미륵동), 산막골(산막곡), 새재(조현), 소막골(소막곡) 등이 있다. 미륵댕이는 옛날에 마을 어귀에 미륵이 서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막골은 미륵댕이 서남쪽 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소막골은 산막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백마산성에 얽힌 전설이 있다.
기묘한 바위를 감상하며, 백마산에서 가파르게 내려서서 약 40분 정도 진행한 곳입니다.
♤ 성황당고개/ 봉화재
왼쪽의 충북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와 오른쪽의 봉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고개에 돌무데기가 쌓여있는 성황당의 흔적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무량산 오르막 등로가 시작된다. 여기도 성황당고개도 마찬가지로 진행방향 왼쪽으로 짧게 약 1km 산을 내려서서 굴다리로 철로를 건너면 곧바로 주곡리버스정류장으로, 구간을 끊어가기에 좋은 지점이다.
영동, 옥천, 보은으로 이어지는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답게 봉우리마다 성터 흔적이 많습니다.
♤ 무량산(無量山, 425.9m)/ 3등삼각점(영동 303/ 1980 재설)/ 삼리봉(영동읍 봉현리, 주곡리 → 설계리)
지맥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다. 무량산은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와 봉현리 회동리, 동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부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묘지, 그리고 예전에 봉화대 터가 있었던듯 이정판이 서있다. 무량(無量)이란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로 《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수(數) 중 한 수의 이름이다. 이 단어는 정토신앙(淨土信仰)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인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등장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산 이름 중에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다. 무량산의 명물로는 울창한 송림지역과 연대미상의 절터 흔적이 곳곳에 있고 절터에는 부처님께 정한수를 올리던 샘터가 있어 지금도 등산객의 피로와 갈증을 푸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정상부근에는 삼국시대 봉화대 터가 있어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고 전망대에 서면 영동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등산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무량산에서 내려와 바위들이 많은 암릉지대를 지난다.
♤ 영동읍 설계리(雪溪里)
영동읍 설계리는 본래 영동현 현내면 목적리(目赤里)지역으로 1909년에 영동군 군내면 구수동(九水洞)과 목적동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구수동, 목적동, 어미곡(魚尾谷)을 병합하여 구수동(구수골)과 목적동의 뜻을 따서 설계리라 명칭하여 영동면에 편입시켰다. 설계리로 명칭된 과정은 일제시대 목적동의 눈(目)자를 눈(雪)자로 잘못 표기하여 마을의 이름이 유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명칭인 설계리로 불리게 되었다. 설계리의 자연부락인 눈어치(누어치, 목적동)는 ‘물고기의 혈’로서 ‘눈의 언저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어미실(왜미실, 에미실)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의미하며, 눈어치 북동쪽에 위치한 구수동(구수골)은 아홉 골짜기의 물이 이곳에서 합쳐진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 415.3m봉/ 돌탑
지나온 무량산과 영동시가지가 바라보이는 암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암릉 아래 등로를 진행하다가 왼쪽 암릉으로 415.3m봉에 오른다. 돌탑 옆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 절터/ 옹달샘 갈림길/ 398.5m봉
415.3m봉을 내려서서 암릉구간 능선을 걷다가 [절터·샘, 0.1km] 스텐레스 이정표가 서있고, 그 뒤로 암봉의 무명봉이 보이는데 암봉을 우회하여 오른쪽의 절터샘 방향으로 진행한다. 커다란 돌탑이 두개 있고, 지붕이 씌어져 있는 절터샘에 물은 있으나 관리가 안되어 식수로는 부적합하다. 굳이 절터샘으로 우회하지 않고 암릉구간을 올라 능선을 택할 수도 있다. 398.5m봉 정상에는 봉분은 보이지 않는 묘지가 있다.
가까운 삼거리는 대학교내와 500m 거리입니다.
♤ 영동대학교 갈림길 삼거리
절터·옹달샘을 지나 무명 암봉을 우회한 지맥 마루금에 닿고, 영동대학교,절터·샘 스텐레스 이정표가 서있는 약 375m봉에서 산악오토바이들로 길이 패인 등로를 내려선다. 오른쪽 아래로는 절터샘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어미실 소류지(저수지)로 가는 길이고,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어미실(왜미실, 에미실)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의미하며, 붙혀진 지명이다. 영동대학교 갈림길 이정표에서 지맥은 오른쪽 봉현리3.5km 방향으로 진행한다. 영동대가 현재는 유원대로 바뀌었다. 영동대갈림길은 두번 통과한다.
♤ 372m봉
바위 위에 작은 돌탑 두개가 쌓여져 있고 참나무에 산지킴이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은 급좌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291.9m봉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산악오토바이로 인해 오르내림길이 깊이 패어 조심스럽다.
영동읍 내를 통과한 지맥이 영동군 용산면과 처음 만나는 지점입니다.
♤ 274.2m봉/ 군계/ 읍면계(영동읍-용산면)/ 삼리봉(영동읍 설계리, 봉현리 → 영동군 용산면 율리)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읍 봉현리 → 영동군 용산면 율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가리재에서 올라선 굴봉에서 영동읍 내로 들어선 지맥이 영동읍 내를 통과하여 영동군 용산면과 처음 만나는 지점이다.
♤ 영동군 용산면(龍山面)
영동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북북일면의 풍천리와 송림리, 북이면의 대동리와 어천리 지역으로 1985년에는 북일면의 산저리, 풍천리, 송림리와 북이면의 대동리, 와촌리, 어천리의 2개면 6개리로 편성하여 영동군 관할이 되었다. 1914년 총독부령에 의해 행정구역이 통폐합 됨에 따라 북일면과 북이면을 통합하여 황간군의 서면과 청화리의 일부, 서일면의 광탄동을 병합하여 용머리와 비슷한 용산의 이름을 따서 용산면이라 하고 18개의 법정리로 개편하였다. 용산면은 남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금강이 9.8km 길이로 관통을 한다. 경부고속도로 19번국도 관통으로 교통이 편리하며, 영동IC가 위치한 영동군의 관문으로 금강상류 연안을 따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혜 관광지이다. 공장 입지조건 양호하여, 영동특별농공단지가 위치하여 성업중으로 현재 관내 50여개 기업체에 지역민이 근무하고 있으며 특히 용산농공단지가 조성되어 분양중이고 행복주택이 준공되면 지역주민의 고소득과 고용창출 등 발전 잠재력이 풍부한 곳이다.
직전 내려서는 곳에 전망암에서 서대산을 바라보며 큰그림을 눈에 담기 좋았습니다. 솔치재에서 영동읍 영동역으로 교통편도 좋고, 구간 끊어가기 용이한 아주 가까운 지점이네요.
♤ 솔치재(松峙, 210m)/ 솔티재/ 2차선, 19번국도/ 남부로/대학로/ 이동통신탑
274.2m봉에서 급좌틀로 솔치재로 하산한다. 오른쪽으로 영동군 용산면 소재 박달산(480.5m)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와 용산면 율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영동읍내에서 영동I.C로 이어지는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오른쪽의 용산면쪽에는 소공원이 있었는데 새로 길이 확장되며 변신 중에 있다. 영동읍 방향으로 약 50m 지점에 있는 솔티재표석에는 영동읍과 용산면의 경계를 표시해 놓았다. 솔치재/ 솔티재란 지명 이름은 충북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솔티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듯 싶은데 솔티는 소나무가 많은 고개에 붙여진 이름이다. 솔티재 도로를 건너 왼쪽 양회임도를 따라 약 10m 진입하다가 오른쪽 산으로 올라선다. 이동통신탑쪽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 박달산(朴達山, 480.5m)
박달산은 충북 영동군의 용산면 율리·한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박달산에 대한 지명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박달산 혹은 박달라산으로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가 1곳이니, 현 북쪽의 박달산이다. 동쪽으로 황간 소이산에, 서쪽으로 옥천 임내의 이산현 현이산(懸伊山)에, 북쪽으로 청산 덕이산(德伊山)에 응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박달산은 고을 북쪽 14리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박달산 봉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에도 유사한 내용과 함께 박달라사(朴達羅寺)라는 사찰도 언급하고 있다. 『해동지도』에 박달라산봉대가, 『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 박달산이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에도 표기자 변화 없이 "박달산은 북일면 풍천리에 있다. 북이면 어천리 신자촌 앞에 있다."고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박달산(朴達山)'이 기록되어 있다.
묘지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 263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군 용산면 율리, 영동읍 설계리 → 오탄리)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설계리 → 오탄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지맥은 좌틀로 임도를 따른다.
옥천전공 묘지에서 내려서면 6번군도가 나오고 스치로폼 판넬 농가가 있는데 물을 구할 수 있네요.
♤ 비탄고개(飛灘峴)/ 2차선도로/ 산이비탄로/ 구수로/ 인가
지맥의 왼쪽 아래로 비탄마을이 있다.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 비탄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로 영동읍에서 심천면으로 가는 2차선의 6번 군도가 지나가고 있다. 고개의 이름은 비탄마을에서 따왔다. 비탄고개 2차선 차도를 따라 왼쪽 비탄마을로 내려서면 도로건너 오른쪽에 과수원으로 오르는 양회임도가 보이고 양회임도를 따라 과수원 왼쪽 산으로 오른다.
♤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 비탄(飛灘) 마을
영동읍 오탄리는 들이 넓으며 마을 앞으로 주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오정리, 바깥오정, 안오정, 비탄리, 점말(점촌) 등이 있는데 오정리는 예전에 오동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오탄리는 오정리와 비탄동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자연마을 중의 하나인 비탄리는 지대가 비탈지고 오목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앞 개울 밑에 깔려있는 암석이 마치 고기가 여울을 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탄(飛灘)이라 하였다. 비탄리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로 선조들께서 조선 중엽에 임진난을 피해 터전을 마련한지 4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열악한 입지조건을 강인한 자립정신과 협동심으로 극복하여 교통, 식수 등 타 마을에 부럽지 않는 편리한 생활환경을 조성하였다. 특히 일제에 의해 민족문화가 말살될 위기에 처한 암울했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마을입구에 개량 서당을 세워 우리 글과 역사를 가르치는 등 민족정신을 계승하는데 앞장섰으며 마을에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민주주의의 기초인 영동읍 의회의원, 초등학교 교장 대학교수 등 각계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마을주민들은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60년대에는 영동에서 가장 모범 마을로 70년대에는 품질 좋은 연초생산 80년대에는 과수로 전환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으며 오늘에는 전국 제일의 명품 포도를 생산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는 자립마을로 성장한 마을이라고 한다.
가까이 계산리쪽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는지 아침부터 총소리가 요란합니다.
♤ 양회임도/ 고개
왼쪽의 양회임도가 있는 쪽은 영동읍 오탄리 비탄마을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임도가 끊겨있고, 용산면 율리방향인데 아랫쪽은 영동군 자원순환센터가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간밤에 살짝 내린 비로 시계가 깨끗해서 서대산과 멀리 식장산도 바라보입니다.
♤ 331.3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읍 오탄리, 영동군 용산면 율리 → 시금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용산면 율리 → 시금리로 바뀌는 지점으로 우틀로 벌목지 능선을 따르다 작은 봉들을 연이어 오르내린다. 삼도봉에서 지나온 각호지맥의 능선이 바라보이고, 약 285m봉에서 322.3m봉을 바라보며 내려서다 오른쪽 초강 건너편 강안으로 영동군 용산면 시금리 귀비재 마을이 보인다. 박달산 너머로 팔음지맥이 좌우로 펼쳐져 흐른다.
♤ 영동군 용산면 시금리 귀비재(龜飛洞) 마을
영동군 용산면 시금리는 평야가 매우 넓은 지역이며 초강천이 굽이굽이 흘러 마을을 감아 돌고 있고 하천을 따라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높은 지대에 있으므로 시궁골 또는 시금동이라 하였는데 시금리의 자연마을에는 광탄(너분열), 시금골, 구대도(구비재)가 있는데 광탄은 너분열이라고도 불리며 넓은 지대에 마을이 위치하였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시금골은 예부터 철이 많이 났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구비재 또는 구대동이라고도 부르는 귀비재 마을은 이 마을 사람들은 귀비대라고 부른다. 마을앞에 있는 초강천에서 곧잘 거북이가 기어나와 구비재, 구비동, 귀비동(龜飛洞)이라 부른데서 마을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북동쪽에는 박달산이 있다.
♤ 점말고개/ 저수탱크/ 수조
영동읍 오탄리 점말에서 초강의 강가로 이어지는 고개로 최근에 만든 듯한 물탱크가 보인다. 흐르는 수공이 있어 먹기에는 부적합 하지만 더운 여름날 씻기에는 그럭저럭 적당하나 금새 쇳물이 일어난다. 점말고개는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인 점말마을 위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좌측에 있는 점말은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박달산 오른쪽으로 백화산도 바라보입니다.
♤ 322.3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정상에 가까워지며 오른쪽 벼랑으로 초강이 내려다 보인다. 초강 너머로 팔음지맥이 보이고 가까이는 영동군 용산면에 위치한 박달산(480.5m)이다. 지맥은 우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분통골고개(1차선도로)/ 시궁길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이동통신탑과 반사경이 보인다. 지맥의 왼쪽 아래가 분통골이다. 분통골에는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신미대사는 속명은 김수성(金守省)으로 어려서 부터 두뇌가 총명하여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았는데 글을 읽어 집현전 학사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벼슬에 마음이 없고 불가(佛家)에 뜻이 있어 자칭 신미(信眉)라 하여 머리 깍고 스님이 되었다. 분통골고개는 영동군 영동읍 산이리 분통골에서 용산면 시금리(詩今里) 시궁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자연마을인 분통골 뒤쪽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영동현 서이면 오정리 지역으로 1909년에 영동군 서이면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정리와 비탄동을 병합하여 오탄리라 해서 영동면에 편입되었으며 행정리는 오정리(외오정, 안오정)와 비탄리(비탄, 점촌,점말)로 나누어진다. 언제부터 인가는 이곳에 오동나무(梧) 정자(亭)가 있어서 오정리라 불러왔으며 비탄리는 마을 앞 개울 밑에 깔려있는 암석이 마치 고기가 여울(灘)을 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탄으로 불렀다고 한다. 안오정 동쪽에 위치한 점촌은 여행객들의 숙식처인 주점과 주막이 있어서 붙여진 동명인데 과거에는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 256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군 용산면 시금리, 영동읍 오탄리 → 산이리)
분통골고개에서 약 10분 올라선 봉우리이다.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오탄리 → 산이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멀리 장령지맥 능선을 바라보고 내려서면 예상치 못하게 바위지대이다.
♤ 279.7m봉/ 삼읍면봉(영동읍 산이리, 영동군 용산면 시금리 → 심천면 단전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무명고개 안부에서 약 10여 분 올라선 특징없는 삼읍면봉이고, 뒤돌아서 내려서면 넓은 임도를 만나 임도따라 우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영동군 심천면(深川面)
영동군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물이 맑고 깊어서 지프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고, 이를 한자로 심천이라고 하였다. 심천면은 백화산, 삼도봉, 덕유산이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가까운 서쪽에는 마니산, 어류산, 국사봉, 월이산이 심천을 두르고 있다. 금강의 상류인 버들내(양강천)이 영동천과 만나서 심천으로 흘러 들어와 이곳에서 솔내(송천)와 합류한다. 조선시대에 영동현 서서일면의 상단구리, 하단구리, 구탄리 장동리, 고당포리, 대초지리와 서이면의 마곡리, 지계리, 남이면의 힘물내(二十川里)지역이다. 1914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령에 따라 서일면과 서이면을 병합하고 남이면의 태소(太沼)와 힘물내의 2개동, 옥천군 이내면 내동 일부를 편입시켜 양강천과 송천이 합류하여 심천이 되므로 심천면이라 고치고, 단전리.심천리. 용당리. 초강리. 고당리, 구탄리, 장동리, 길현리, 각계리, 약목리, 기호리, 명천리 등 14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금강과 송천강이 흐르는 평야지로서 토지가 비옥하여 특수작물 위주의 농업이 발달하였다. 경부선고속철도, 경부선 및 4번 국도가 관통하는 교통요충지이다. 옥계 폭포, 난계사, 호서루, 국악박물관 및 국악기제작촌 등 관광명소가 많아 년중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고장이다.
지맥이 영동읍과 헤어지고 완전하게 심천면 내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272m봉/ 군계/ 읍면계/ 삼리봉(영동군 심천면 단전리, 영동읍 산이리 →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지맥의 왼쪽이 영동읍 산이리 →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로 바뀌는 지점으로 지맥이 영동읍과 헤어지고 완전하게 심천면 내로 들어서서 단전리와 각계리의 경계를 지난다. 지맥은 우틀로 내려선다.
♤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핏골마을
핏골은 한 전설로부터 유래된 지명인데 과거 백제시대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 지역에서 접전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의 푸른 물까지 피로 변하고 벌판이 모두 피로 물들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저 사람들은 점심밥도 안먹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투기 두대가 하늘을 나는데 굉음이 시끄럽네요. 영동군 상공이 전투기 비행 훈련장이랍니다.
♤ 298m봉/ 삼리봉(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단전리 → 용당리)
지맥의 오른쪽이 영동군 심천면 단전리 → 용당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왼쪽에 배 은진송씨 묘가 있다. 지맥은 좌틀로 내려서다 곧이어 우틀로 간다.
♤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龍塘里)
심천면 용당리는 금강을 끼고 있어 마을 경관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주로 벼농사와 포도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용당(용냉이), 장동리(노루골, 장동), 차실(차곡) 등이 있다. 용당이란 지명은 마을에 용당(龍堂)이 있었으므로 용당 또는 용댕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장동리는 노루가 많아, 노루골 또는 장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차실은 노루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수레바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차곡이라고도 하며 용소에서는 용이 승천하다 아낙네의 고함을 듣고 이무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260.5m봉/ 4등삼각점(이원 424/ )/ 리계(심천면 각계리-용당리)
조그만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260.5m봉을 오르며 우회 등로를 따르면 알바이다. 우회등로를 버리고 올라야할 314.4m봉이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삼각점에 글자는 식별되지 않는다.
♤ 314.4m봉/ 리계(심천면 각계리-용당리)
가느다란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파묘 흔적이 있다. 묘터로 이어졌던 콘크리트계단을 따라서 우틀로 내려선다.
주변에 튤립나무가 많이 보이는군요. 능선갈림길에 표지기 하나 달아둡니다.
♤ 264m봉/ 삼리봉(영동군 심천면 용당리, 각계리 → 초강리)
경부고속철도 영동보수기지가 보인다. 내림길에 임도는 왼편으로 향하고 지맥은 오른쪽 능선으로 진행한다. 장명등이 있는 묘지가 있는 264m봉에서 내려서며 지맥의 왼쪽이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 초강리로 바뀐다.
♤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草江里)
금강이 흐르며, 과거에는 황새가 많아 황새마을로 불렸다. 원래 영동군 일면 지역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영동군 심천면에 편입되었다. 초강초등학교와 심천중학교가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심천중학교는 골프 특기생이 많다고 한다. 맛있는 수박, 포도, 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 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동학농민운동 시기, 어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초강열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공장이 산을 파헤치고 들어와 갈고개로 내려서기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묘향암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이 되어 있습니다.
♤ 갈고개(2차선도로)/ 용당로/ 리계(심천면 용당리-초강리)
갈고개는 오른쪽의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와 경계에 있는 고개로 6번 군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며 왼쪽의 초강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오른쪽에는 (주)동영콘크리트가 있고, 묘향암 안내판이 있다. 차량 통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갈고개에 내려서서 용당로를 따라 오른쪽 용당리 방향으로 가다가 갈고개에 있는 묘향암입구에서 양회임도를 따라 좌틀하면 묘향암을 만나는데 지맥은 묘향암 뒤로 이어진다. 절에 빈대가 사는지 폐사가 되었다. 절의 앞마당을 지나 뒤쪽 능선으로 달라 붙는다. 이후로 등로상태가 나쁘다. 합수점까지 이제 약 3km가 남았다.
♤ 139.0m봉/ 4등삼각점(이원 422/ )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각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여름에는 여기부터 경부선 철로까지 약 0.5km가 진행하기 힘든 가시 잡목지역이다. 그래도 끝까지 묵은 임도를 고수해야지 좌우로 조금만 들어가도 가시덤불이라 다시 나와야 한다. 가시의 급이 다른 탱자나무도 만난다. 139.0m봉 앞의 Y자 임도에서 오른쪽 묵은 임도로 향한다.
막아 놓은 암거에서 철길을 따라 왼쪽으로 한참을 갔다고 돌아왔습니다. ㅋㅋ 밭을 헤집느라 옷에 달라붙는 가시만 잔뜩 붙었네요.
♤ 경부선철로
벽돌로 봉쇄된 암거에 봉착했다면 오른쪽, 왼쪽으론 뚫을 수가 없다. 다시 뒤로 돌아 100m만 작전상 후퇴하면 용당지하차도 입구다. 마지막 도로에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향해야 한다. 왼쪽 철로로 향하면 봉쇄된 암거를 만나게 된다.
영동역으로 가면서 심천역을 지나 차창 밖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이쯤이 합수점일텐데 하고 쳐다보았던 바로 그 지점입니다. 비닐하우스 과수원단지를 지나는데 샤인머스켓, 거봉, 복숭아, 배, 레드포드, 체리 등등의 과일을 재배하네요.
♤ 심천교/ 505번도로(이원심천로)/ 리계(심천면 용당리-초강리)
경부선 초강변 심천 철교에 이르고 용당지하차도를 통해 철도 하부 통로를 통과하여 우틀한다. 기남포도농원을 지나 이원심천로를 통과해 계속 직진하다가 마지막에 우틀한다. 심천교/ 용당리입구 정류소로 가서 버스정류소에 배낭을 벗어두고, 초강천 위에 놓인 심천교를 건너지 않고 왼쪽의 제방길을 따라 합수점을 바라보는 금강정까지 약 1.1km를 다녀오기도 한다.
♤ 초강/ 금강합수점/ 정자(금강정)
배수문이 있는 곳을 지나, 합수점까지 접근이 힘들어 보통은 여기 금강정에서 초강천이 금강에 합수하는 합수점을 바라보는 것으로 각호지맥을 마무리 한다. 강 건너편에는 백두대간상의 상주 봉황산에서 분기되는 팔음지맥이 합수점으로 가고 있다. 용당리 들녘 뒷쪽으로는 천모산 투구봉 월(달)이산(551m) 능선이 멋지게 보인다. 그 앞으로는 경부고속철도가 보인다. 합수점에서 강건너 왼쪽이 심천면 고당리, 오른쪽이 심천리이다.
초강을 건너는 심천교 건너편으로 지프내 공원이 보입니다. 심천이 '지프내'의 훈차 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네요. 지프네공원에서 심천역으로 걸어가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초강(草江)
초강은 금강의 제1지류이며, 충북 영동군의 심천면과 황간면에 있는 하천으로 상촌면 삼도봉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고자천(高子川), 장교천, 석천(石川), 송천으로 불리다가 심천면 심천리와 초강리에서 심천과 초강이 되어 심천교를 지나 금강 본류인 고당강에 합류한다. 지명은 조선시대에 대체로 심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초강으로도 표기되어 있는데 초강은 해동지도에 초강서원이 표기되면서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 서일면 대초지리라는 관련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초강은 서일면 대초지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현재의 초강리 지명으로 존속되고 있다. 초강의 다른 이름인 심천은 조선 시대의 여러 지리지와 고지도에 이른 시기부터 기록되어 표기자 변화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심천(深川)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고당포로 흘러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 이후 해동지도에 심수천(深水川)이, 여지도서에는 심천진(深川津), 심천교(深川橋), 심천원(深川院)이 그리고 대동여지도에는 심천진(深川津), 1872년지방지도에는 심천교(深川橋), 심천점(深川店)이 기록되어 있다.
♤ 금강
금강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쳐 강경에서부터 충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394.79 Km에 유역면적은 9912.15 Km2이다.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 기타 초강과 갑천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하고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 영동에서 양산팔경 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을 만들었다. 강경 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을 이루어 군산과 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과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첫댓글 긴 산행기 읽다보니 영동군의 지리와 향토사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네요.
고등학생 때 상촌면에서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인 당시에는 경부선 통근열차를 타고 황간에서 대전까지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표고버섯 꼭지로 만든 소고기 장조림 같은 장아찌도 맛 보았습니다.
겨울방학에 임산리 친구집에 놀러가서 장터에 나온 산토끼, 꿩, 임산물 등을 보며 신기해 했습니다.
잘 때는 친구 어머니께서 얼마나 장작불을 땠던지 뜨거워서 몇번이나 깼습니다.
밥은 큰 사발에 고봉으로 주시는데 배불러 숟가락을 놓으려니까 어머니가 숭늉을 확 부어서 억지로 다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백두대간 진행 중 상촌면을 지나며 친구댁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여름 민주지산 산행을 하고, 수소문 끝에 90이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신 친구 어머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고교 졸업 후 헤어졌던 친구와도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산행을 통해 오래된 추억과 인연을 찾게 되었습니다.
주절 주절 댓글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봉화동천선배님!^^
추석명절이 다가오네요. 미리 명절 인사 드립니다.
대전 내려가는 길에 올만에 반가운 전화 드렸습니다.
영동군 상촌면에 친구와 오랜 추억을 소환해 주셨네요.
버스를 타고 물한리로 들어가며 상촌면 읍내를 스쳐갔습니다.
영동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황간에서 잠깐 쉬었다가 가던데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가네요.
아마도 상촌면이 영동군에서는 제일 넓은 면인가 봅니다.
서울에서 구미나 김천 가는 고속을 타고 황간에서 내려 물한리 가는 버스를 타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금북기맥 이치재까지 가신댔는데 잘 다녀오셨는지요. 30km 뛰신다고 하셨죠.
한여름에 15시간 정도 쉬지않고 걸으면 35km를 넘기도 하더군요.
천천히 재미있는 산줄기여행 즐기시기 바랍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예. 22일 한남금북정맥 4번째 추정재~상당산성~이티재 약 29km 걷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장거리라 걱정했는데 길이 평탄해서 쉽게 다녀왔습니다.
한남금북, 한남, 금북 정맥 3개 남았는데 내년 봄까지는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
퐁라라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
멀리서 오셔서 각호지맥 마무리 하셨네요
홀산으로 비박까지 하시면서 마무리 하시는 운영자님 대단하십니다
도마령 내려서기전 정자에서 비박 하셨나요?
전12월에 첫구간 짧게 하고 이듬해 2~3월 한구간 세번만에 마무리 했네요
아직 덥고 비도 내리고 그 열정만은 식지 않는 모습이 부렵기도 합니다
백하지맥에 비하면 각호지맥이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덥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직 낮기온은 덥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초강이 금강에 합수되는 금강정 정자에서 마무리 하셨네요
마지막날 날씨도 좋고 멋진 뷰가 보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즐거운 명절 잘 보내시고 가을 모임때 뵙겠습니다^)^
와룡산선배님!
오늘은 자양역 뚝섬암벽에서 10시~17:50분까지 28번을 올랐어요.
11c를 온싸는 못하지만 붙는데 크게 부담은 느끼지 않는 수준입니다.
응봉암장에선 12a를 붙는데 뚝섬은 오늘 올해 두번째로 나갔거든요.
운동 마치고 집에까지 유산소운동으로 약 1시간 걸어서 들왔네요.
도마령에서 첨에 전망대 아래에 텐트를 펼쳤는데 바람이 세서 날라갈것 같더군요.
그래서 다시 내려가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로 옮겼습니다.
최대한 가볍게 꾸려서 가는데도 박배낭을 메고 가니 힘은 좀 들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 일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네요.
물 보충만 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물 무게는 줄겠지만 겨울옷 무게가 늘어나는 시기입니다.
저는 기럭시가 긴것 부터 차례로 내려왔기 때문에 60km 정도의 지맥은 산에서 두밤을 자면 넉넉합니다.
물론 1박2일로 꽉차게 간다면 가능하지만 그럴려면 출발지에 오전 일찍 도착해야 하는데 교통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통편과 식수 보충 장소 등 지맥을 미리 공부하고 어떻게 진행하는게 좋은지 방법을 연구해서 내려갑니다.
가능하다면 체력에 부담이 되지 않게 여유있게 진행할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의 각호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어둠에 민주지산을 통과하여 2박3일 동안 비박도 하면서 멋진 발자취를 남겼네요.
지나온지 그리 멀지 않아 힘들었던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납니다.
명산도 즐비하고 비교적 깔끔했다는 지맥 총평은 ... 저에게는 그리 쉽게 와닿질 않는데요. ㅠ
어느 산줄기 한 곳이라도 소홀이 할 수 없고, 만만치 않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군요.
멋진 산행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